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4)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4화(414/505)
414화 지옥 [4]
아까 본 지옥 아니, 교도소에서 봤던 물건보다는 훨씬 작았다.
그거야 진짜 물을 기르려고 만든 것이니 당연히 거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걸 설치하려던 곳은 강가가 아니라 기껏해야 곡식이나 빻는 용도라 작은 거라고 들었다.
“이게…….”
“대체…….”
물론 아까 거보다 작다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작다는 얘기는 아니다.
눈앞에 두고 있으면 참으로 육중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생긴 거부터가 묘하게 이제부터 위로 올라타야 할 거처럼 생겼기 때문에 우리의 비만한 시민 여러분들은 벌써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정도 이상의 비만이 발생하면 아무래도 몸 움직이는 게 어려워지니 그럴 수밖에 없다.
각종 성인병, 심지어 염증 질환이나 암, 급사의 원인이 되는 것까지 넘어갈 것도 없다.
그냥 관절이 다 상해 버린다.
괜히 WHO에서 비만을 질병이라고 정의하게 된 게 아니다, 이 말이다.
‘뭐…… 이런 말을 잘못하면…… 비만에 대한 혐오가 더해지겠지?’
19세기는 환자는 곧 죄인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강한 시대이지 않나.
아마 중세 시대부터 병은 곧 하나님의 벌이란 인식이 이어져서 그럴 터였다.
심지어 치료도 벌 같지 않나.
어?
팔다리 칼로 자르고…….
그것도 마취도 안 하고…….
당시에 수술하는 거 그림으로 그려 둔 것들이 있길래 몇 개 사 놨는데 볼 때마다 진짜 끔찍하다.
‘하지만 21세기에 병이라 하는 건, 치료해 주려고 하는 거다. 무엇보다 병은 우연히 생기는 거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네 잘못이 아니라는 뉘앙스도 있고.’
근데…….
생각해 보면 사실 이건 유럽만 뭐라고 할 건 아닌 거 같긴 하다.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너 게임 해서 그래’, ‘운동 안 해서 그래’, ‘뭐 해서 그래’라는 게 우리나라에도 있었잖아?
물론 많은 질환에 위험 요인이 있기는 하다.
의사들이 이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떠들고 있기도 하고.
한 가지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다면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방하기 위함이라는 거다.
일단 걸렸으면 그건 그냥 개인적인 불운으로 생각하는 것이 환자의 예후에도 좋고 치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문도 있다.
‘뭐…… 거기서도 어려웠던 걸 여기서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지.’
나는 잠시 상념에 빠져 있다가 순식간에 나와서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올라가세요.”
“네, 네?”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라고 속으로 되뇌면서였다.
“올라가라고. 저주 내려?”
“히익.”
여기선 말보다 주먹이 훨씬 가깝고 또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은 대개 옳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한들 어쩌겠나.
결과적으로 이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인데.
더 나아가 우리 대영제국의 귀한 분들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다소 충격적인 결과가 필요한 법이다.
“형님. 좀 도와줘요.”
“어? 아…… 그래.”
다들 내 말에 따라 러닝머신에 오르고 있었는데, 쉽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몸이 너무 무거우면 그럴 수 있는 법이었다.
말이 계단 타기지 벌주기 위해 만든 물건이다 보니 사용자에 대한 배려도 부족해서 더 그랬다.
아마 리스턴이 없었다면 나도 포기했을 친구들이 몇 있었지만, 리스턴은 너무나도 가뿐하게 그들 모두를 슥슥 기계 위로 올렸다.
“자…… 이제 계단을 오르는 겁니다.”
“아…….”
다행히 기계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더럽게 높지만, 기계의 계단 자체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너무 계단이 높으면 그거 하다가 무릎은 물론이거니와 고관절까지 다 박살이 나기 때문에, 잘 만들어 놨을 거란 생각에 이유를 물어보니 그건 아니었다.
-아…… 예전 모델로 했더니 죄수들이 하루에 2시간만 해도 나가떨어지고 해서요. 하는 수 없이 좀 더 편하게 만든 겁니다. 그래도 벌인데 6시간은 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돈도 벌고요?
-그럼요.
엄벌주의와 자본주의가 묘하게 혼합된 결과물이었다.
너무 급하게 죽어 나가면 일이 안 되니까 적당하게 죽어 나가게 만들었단 뜻이었다.
아무튼, 우리 환자들은 미리 죽어 나간 죄수들 덕에 훨씬 편안하게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흐아악.”
“히익.”
그래 봐야 체력은 금세 닳고 있었다.
이 시기 도시인들이 대개 이렇긴 했다.
물론 어린 시절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거부터가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났다는 반증이다 보니 21세기의 운동 안 하는 도시인들보다는 강할 수도 있다.
아니, 아닌가?
먹는 게 아무래도 좀 다르긴 할 거다.
‘뭐…… 깨끗한 게 거의 없잖아?’
뭘 먹어도 ‘이걸 먹어도 되는 건가’ 하는 걱정이 드는 세상이다 보니 인간이 더 강할지 아니면 환경이 더 유해할지 헷갈린다.
아무튼, 이런 거 저런 거 다 빼고 보면 21세기의 평범한 도시인들에 비하면 훨씬 약하다고 봐야 한다.
상식이 부족한 시대라 그렇다.
일단 운동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한다.
물론 21세기에는 작은 움직임 하나도 기계에 아웃소싱하고 있긴 한데…….
지금 내 앞에 계시는 분들은 그래도 런던에서 나름대로 방귀깨나 뀌는 분들이다 보니 사람에게 아웃소싱하고 있으시다.
“흐아아아…….”
“주…… 죽겠…….”
그런 상황에서 인류가 개발한 가장 효율적인 운동인 헬스도 안 하고 있으니 뭐 어쩌겠나.
그나마 음식이라도 다양하거나 혹은 영상제를 먹을 수 있다면 좀 나을 거다.
병원에서 제대로 된 약을 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고.
깨끗이 씻을 수 있어도 좋겠지만, 그것도 잘 안되는 세상이다.
“와…….”
생각해 보니까 진짜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 시대에 70, 80 넘어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하필이면 내가 전생에 대학병원에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세상엔 생각보다 요절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네모반듯한 바닥을, 심지어 밤에도 밝은 거리를 나다니며 날씨가 궂으면 밖에 거의 안 나가도 되는 삶을 살고, 조금만 신경 쓰면 영양분 챙겨서 먹을 수 있고, 도시인이라면 지천에 헬스장이 깔려 있으며 시골이라 해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시설이 어딘가에는 있는 시대에도 그랬는데 여긴…….
“그렇게 보기 좋나. 저 사람들은 죄인이 아닐세, 평.”
“아, 그런 말이 아니라.”
“근데 왜 이렇게 좋아해.”
“좋아한 게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좋은 게 있긴 하네요.”
“뭔 소린지 당최…….”
아무튼, 운동하는 걸 보다 보니 저 기계의 장점을 하나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저게 자기는 움직이기 싫어도 누군가가 돌리고 있으면 무조건 같이 돌려야 하네요. 안 그러면 떨어지니까.”
“어…… 그렇지. 그래서 못 돌리게 되면 떨어지는 거 아닌가.”
“아, 하긴. 그런가.”
“이제 슬슬 멈추는 게 좋겠네. 거기보다는 낮긴 한데 저 높이라도 떨어지면 많이 다쳐. 팔이나 다리라도 부러지면 골치 아파지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골절 치료가 아직도 어려운 세상이다.
나름대로 견인을 해 보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아주 명확하다.
일단 내가 정형외과가 아니라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엑스레이가 없다는 거다.
엑스레이…….
그거 진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어? 아무 동네 병원이나 들어가도 보통 있는 기계였다 보니 소중한 줄도 몰랐는데 여기 와서 보니 엑스레이가 진짜 혁신이다.
세상에 몸을 째지 않고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니!
“자, 그럼 그만!”
“어…… 어어.”
“어 저거 왜 저래?”
“그만한다고 멈출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 않나!”
“이런 시발.”
잠시 소동이 일었다.
그만하랬다고 발 멈췄던 사람이 기계가 계속 돌자 넘어질 뻔해서 그랬다.
실제로 넘어진 사람도 있긴 했는데, 다행히 리스턴이 받아 주었다.
나머지도 거의 다 리스턴이 내려 주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100킬로는 족히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니 이건 힘든지 땀을 몇 방울 흘리고 있었다.
“차라리 때려눕히는 게 낫지.”
리스턴이 섬뜩한 소리를 하는 동안, 방금 위에 올라갔다 내려온 이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불러 세웠다.
“뭐 하는 거지?”
궁금해서였다.
그러자 상대는 나를 어려워하면서도 어느 정도 당당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그…… 집에 가려고요. 이제 다 한 거…… 아닙니까?”
아닌 게 아니라 땀을 워낙 많이 흘리고 있어서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긴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여기 끌려와서 한참 기다리다가 이제 10분 정도 계단 탄 것이 다였다.
그게 일반적인 계단이 아니고 많이 무겁고, 타면 탈수록 빨라져서 꽤 힘든 계단이라는 게 문제긴 했지만.
아무튼 한 게 없다, 이 말이었다.
무엇보다 살을 빼려면 어느 정도…… 환경의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뭘 모르나 본데. 동작 그만.”
내 말에 다들 하던 것을 멈추었다.
리스턴도 얼굴에 ‘?’을 띄운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까 팔다리 자르러 가서 내 계획을 미처 말해 주지 못했으니.
하지만 이미 내 계획을 들어 알고 있는 제자들은 입구 쪽을 막아선 후였다.
“니들 납치된 거야.”
“네?”
“아니…….”
나는 웅성거리는 이들을 애써 무시한 채 존 스노를 불렀다.
그러자 존 스노는 커다란 면을 쫙 펴서 벽면에 걸었다.
거기엔 미리 시커먼 숯으로 써 놓은 지침들이 있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대개 중소기업 사장 같은 분들이다 보니 글을 알아서 그게 참 편했다.
“이게, 대체.”
“앞으로 한 달간 여러분들은 여기서 생활합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자기 전. 이렇게 네 번 20분씩 계단을 탈 거예요. 물론 밥도 줍니다. 우리가 정성 들여 조리한 것으로 말이죠.”
원래는 기계를 개량해서 만들어 팔려고 했다.
하지만 전구도 없는 세상에 러닝머신을 만들 수 있겠나?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여길 작은 교도소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죄수들도 아닌데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단식원도 교도소다.
가둬 놓고 밥도 마음대로 못 먹게 하는데 그게 교도소지 뭐.
좀 더 좋게 말하고 싶으면 훈련소라고 해도 좋은데, 훈련소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나 때는’이라는 말 별로 안 좋아하는데, 미친놈들이 시설이 있는데 찬물로 샤워를 시키더라고.
나 나가면 대위라 사실 같은 계급이고 2월이라 추워 뒈지겠는데도 그랬다.
무엇보다 뭘 잘못한 게 아니라 그냥 의무라서 온 건데 대우가 그랬다는 게 열이 받는다.
“하아…….”
암 걸릴 줄 알았으면 무조건 뺐을 텐데, 화가 치밀어 오른다.
“평? 왜 그러나?”
“모자…… 하나만 만듭시다.”
“응?”
“원래 사람 뭐 시킬 때 효과적인 모자가 있어요. 조선에서는 그렇게 합니다.”
“갓? 갓 말하는 건가?”
“아뇨. 팔각모라고 합니다.”
“있어 보이는 이름이구만. 나도 하나만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