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5)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5화(415/505)
415화 비만 캠프 [1]
우리의 환자들은 맛보기용 운동을 한 후, 본격적인 계량에 들어갔다.
일단 키와 무게부터 쟀는데 실제로 잰 것은 인치와 파운드지만 그렇게 말하면 헷갈리니까 센티와 킬로그램으로 치환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해 놓고 보니 대부분 키가 160에서 170 초반이었고 몸무게는 80에서 90이었다.
100킬로 넘게 보였던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키가 작아서 그렇게 보인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까지 많이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나보다 무거운 사람도 하나 있군그래.”
그중에 하나가 98킬로로 아쉽게 0.1톤이 안 되었는데 리스턴도 놀랄 정도였다.
리스턴이 95킬로 정도 되니 아마 자기보다 객관적으로 무거운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긴 할 터였다.
21세기가 되어서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 다른 말로 하면 정크 푸드가 풍부해지면 그 두 배, 세 배 되는 사람들도 서양에서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지만 지금은 진짜 거구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마 조선에 데려다 놓으면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토론을 하느라 당파 싸움도 멈출 거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희귀한 존재였다.
“그러게요.”
“근데 그렇게 무거우면 실제로 오래 못 사는 건 맞나?”
그렇다 보니 연구라는 것이 아예 안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시기 사람들이 비만 인구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보는 건 순전히 보기 싫어서이지 그의 건강을 염려해서는 아니란 얘기다.
그 인식이 마음에 걸리지만, 어쩌겠나.
혐오의 감정은 21세기에도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데.
무엇보다 나는 의료 전문가이지 그런 사회 현상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거다.
“네, 딱 봐도 그래 보이지 않아요? 일단 걷기만 해도 숨이 차잖아요.”
“그렇긴 한데…… 숨은 노인들도 차던데. 그들은 오래 살았잖아.”
“오래 살아서 찬 거죠. 젊을 때는 쌩쌩했을걸요.”
“그런가. 하긴, 보통은 그렇지.”
노화에 대한 연구도 전혀 진행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명백히 노화에 의해 발생하는 증상은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은 오히려 노화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 여겨 치료를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거기까지 넘어가면 또 머리가 아파 오니 일단 비만에만 집중하는 게 좋겠다.
“아마 모르긴 해도…… 심장도 안 좋고 할 거예요. 일단 다들 당뇨도 있고.”
“그거 신기하더군. 보통 당뇨 환자들은 말랐던데.”
“그…….”
당뇨에 대해 아는 것이 솔직히 그리 많은 것은 아니긴 하다.
외상외과 하면서 당뇨를 심도 있게 공부할 일이 뭐가 있겠냐.
물론 당뇨가 있으면 상처가 잘 낫지도 않고 감염도 잘 생기기 때문에 외상 치료하는 입장에서 실로 뭣 같긴 하다.
왜 이 환자는 하필 당뇨 같은 몹쓸 병이 있는데 몸까지 다쳐 가지고 이렇게 고생하고 또 나도 이렇게 고생시키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수술을 잘한 다음에 걱정할 일이긴 한데, 예후가 당뇨 치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도 있었다.
그럼 너도 좀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대학병원은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내분비내과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 말이다.
‘비만은 당뇨의 위험 요인이고…… 체중 감소는 당뇨의 흔한 증상 중 하나지.’
그래도 이 정도는 안다.
학생 때 배우기도 했고 내가 죽기 전에는 인터넷 기사도 나름 잘 나왔다.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적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대가 왔는데, 우리나라 여건상 대학 가고 나서야 고민하게 되는 것이 현실인 만큼 의대에 오고 나서야 ‘아, 내 꿈이 기자였는가 보네’ 하고 의학 전문 기자가 되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그렇다.
의사인데 기자인 친구들이 의학 기사를 내니 아무래도 전보다 퀄리티가 좋지 않겠나?
그렇다고 그걸 보고 치료나 진단에 참고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나 같은 타 과 의사들이 상식으로 보기에는 충분히 좋다.
‘이런 걸 설명하기는 어렵지…… 아무래도.’
어떻게 아냐고 하면 그냥 다 안다고 해도 대강 넘어가기는 하겠지만…….
평소에 너무 남발하다가 정작 중요한 데에서 ‘지겨워져서 그러니까 어떻게 다 아냐고’ 하면 곤란해지지 않겠나?
매번 주님 접신설 및 조선 핑계 대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비만과 당뇨에 연관성이 있긴 할 겁니다. 부자들이 잘 걸리는 병인데, 부자들이 보통 저 정도는 아니더라도 살집이 있잖아요.”
“그것도 그렇구만. 흐음…… 근데 췌장액. 그 우리가 뭐라고 하기로 했지?”
“인슐린이요.”
“그게 이해가 안 되네. 뚱뚱한 거랑 인슐린이 부족해지는 거랑 대체 뭔 상관이 있다는 걸까?”
“그건…….”
지속적인 고혈당에 대한 노출이 있으면 소위 말해 췌장이 뻗어 버리게 된다.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진다는 건데…… 이와는 별개로 고혈당 때문에 인슐린이 한동안 높게 유지되는 기간도 있을 테니 인슐린이 작용해야 할 기관들도 그 때문에 인슐린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게 된다.
양쪽에서 망가지게 된다, 이 말인데…….
그래서 당뇨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을 하는 거다.
또 초기라 해도 인슐린 주사가 필요할 거 같으면 과감하게 찔러 넣는 게 좋다.
그래야 췌장이 완전히 뻗어 버리기 전에, 또 기관의 인슐린 감수성이 망가지기 전에 사태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이런 얘기는…… 주님이 알려 주셨다고 해도 좀 이상하지?’
생리학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시기 의학이라고 해서 팔다리에 칼질하는 게 다는 아니라는 거다.
나름대로 화학의 발전도 폭발적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말인데…….
아쉽게도 아직 내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거 같다.
일단 방향성이 문제다.
‘진짜 전쟁이라도 나야 의학이 팍 발전하긴 할 거야.’
현대 의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전쟁이 의학을 발전시킨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평생 사람을 고치기 위한 삶을 살기고 작정한 사람에게 니들 지식 그거 사람 죽이다가 발견한 게 많다고 하는데 기분이 좋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이상한 일 아니겠나.
하지만…….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건 그만큼 아군 군의관들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무엇보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국가의 힘이 온통 거기에 쏠리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평소에 비해 실로 엄청난 돈과 인력이 의학 분야에도 쏠리게 될 수밖에 없다.
“뭐…… 그거야 차차 우리가 밝혀 봐야죠. 우리가 아니더라도 후대에 밝혀질 수도 있는 일이고요.”
“느긋해서 좋구만. 지금 당장 밝혀야 빨리빨리 예방도 하고 치료도 할 거 아닌가. 어차피 인체 실험을 할 거 아닌가? 이 사람들로 해 보지 그래.”
어떻게 보면 지금도 전쟁 상태랑 다름없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아무 죄도 없이 그냥 뚱뚱하다는 이유로 끌려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보자니…….
“아니, 죄인이 아니잖아요.”
“예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일세.”
“미친……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옵니까. 게다가 저 사람들은 신도라고요.”
“그건 그렇긴 한데…… 실험하려고 가둬 둔 거 아닌가?”
“그런 종류의 실험은 아니에요. 나갈 때 저 사람들 다 절할 겁니다.”
“흐음…… 그러려나.”
“일단 할 건 다 한 거죠?”
“그럼, 누구 말인데 안 하겠어.”
내 말에 리스턴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자들과 우리 센터 공인 소믈리에 몇 명이 들어왔다.
소믈리에들은 은근히 뿌듯해하고 있었다.
맨날 같은 환자들만 보다가, 그러니까 이미 인슐린을 맞아 맛이 씁쓸해진 소변만 맛보다가 날 것 그대로의 소변 맛을 봐서 그런 모양이었다.
다들 원래부터 저런 인간들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단 소변이 아니면 안 되는 몸들이 된 듯했다.
사람은 과연 적응의 동물이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제 나름 체계화된 기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혈압이야 이미 여러 과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해서 거의 정확한 수치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조수들도 이걸 대체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시키는 것이다 보니 모든 환자에게 시행하게 되면서 익숙해져 꽤 질이 좋았다.
문제는 당뇨 쪽이었는데, 여러 소믈리에들에게 같은 소변을 맛보게 하는 등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 스케일을 만들 수 있었다.
‘매우 담, 담, 보통, 씀, 매우 씀. 캬……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대단하다.’
주관적인 스케일이지만, 적어도 여기 모인 소믈리에들끼리는 객관적으로 통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같은 소변을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서 같은 결괏값이 나올 때까지 거의 수백 번을 시행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누가 안 나오거나 이미 소변 맛을 봐서 혀가 피로한 상태에서도 걱정 없이 쫙쫙 검사를 할 수 있다.
“살이 빠졌을 때 혈압과 당뇨 수치도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요. 운동을 시키면서 수행 능력이 올라가는지도 보고요.”
“음…… 과연 이게 될런가 모르겠네. 벌써 배고프다고 아우성들일세.”
“고기로 먹였는데 벌써?”
“안 들리나? 잘 들어 봐.”
“아…… 그렇네.”
병동 하나를 통으로 쓰고 있는 우리 환자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 보니 불만이 그득해 보였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잘못한 일도 없이 여기 끌려왔으니까.
다들 은퇴자들도 아니다 보니 일은 어찌하냐는 말도 지속적으로 들려왔다.
“일은 사람들이 여기로 와서 결재받기로 했어요. 여러분들 사장이잖아.”
“저희가 없으면 사업장이 어찌 돌아갈는지…….”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웠다고 했는데도 역시나 생업에 대한 걱정은 덜어 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때 리스턴이 나섰다.
언제 봐도 듬직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 그건 걱정 말게. 내가 빵꾸 나면 죽인다고 했으니.”
“아…….”
“그렇다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했다.
확실히 리스턴의 협박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상상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뭐 신분이 아주 높은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 시기 노동자들은 사실상 도시의 노예 신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실제로 죽일지 안 죽일지는 모르겠는 상황이라 해도 눈앞에서 이런 인간이 죽이네 살리네 하면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배가 너무 고픕니다.”
“진짜…… 뱃가죽이 등에…….”
“양심이 있나? 그 뱃가죽이 등에 닿으려면 칼질이라도 해야겠는데.”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정말 죽겠습니다.”
“뭐…… 이건 내가 할 말이 아닌 거 같군.”
리스턴은 무력캐이기 때문에 말로 하는 건 내게 넘기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왜 식이 제한을 이렇게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니 이게 맞았다.
“여러분.”
나는 그들 앞에 서서 말했다.
“여기서 부부 생활 잘 된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으음.”
애초에 리스턴에게 마누라부터 만나 보고 데려오라 했으니 있을 리가 없다.
“거기 손 든 사람. 내가 누군지 알고 거짓을 고하는 겁니까. 다 보여요.”
“아.”
물론 거짓말을 할 수도 있긴 했다.
체면이 중요한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체면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리스턴 못지않게 무서운 사람이다.
살그머니 손 들던 사람이 손을 내렸다.
“내 말대로만 하면 퇴소할 때 다시 남자구실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을 약속드리죠. 뿐만 아니라, 계단 오르내리는 거,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한 거,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비용도 무료예요. 다시 올 기회가 아닙니다. 놓치면 안 돼요. 어차피 놓칠 방법도 없긴 하겠지만, 좋게 갑시다. 우리 힘쓰게 하지 말고.”
말이 길어지자 조용해졌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내 진심을 전할 수 있었다.
다들 이해해 주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