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6화(416/505)
416화 비만 캠프 [2]
부하들의 말에 따르면 간밤에 병실이 좀 부산스러웠다고 한다.
배가 고프면 원래 잠이 잘 안 오지 않나.
뭐라도 찾게 되기 마련이다.
아마 저들 집에 가면 지하 창고 아니라 서재만 가도 설탕 과자나 절임류 음식들이 꽤 있긴 할 거다.
아, 냉장고는 안 뒤지나 싶을 수도 있는데 냉장고는 없다.
안 그래도 맛대가리 없는 영국 음식에 신선한 재료도 이용이 어렵다는 얘기다.
‘갑자기 화가 더 나네?’
야식 찾는 게 꼭 뚱뚱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나.
나 또한 몇 번인가 경험이 있다.
원래 못 참는 날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거든.
근데 이 망할 놈의 세상에서는 그런 것도 못 한다.
“평, 어디 가나?”
“병실요. 환자 봐야지.”
“그런 얼굴로……? 나는 사람 죽이러 가는 줄 알았네.”
“죽이긴 할 겁니다. 죽이고 다시 태어나게 해야죠.”
“무슨…… 무슨 소린가.”
내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켜 뛰어나가자 리스턴이 불안한 얼굴로 뒤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번엔 제자들을 시켜 병실에 있던 환자들을 강당으로 불러 모았다.
강당에 있는 살인 기계 아니, 러닝머신은 어제보다 조금 개량이 되어 있었다.
천장에 밧줄도 달리고 쓸데없이 무게를 늘리기 위해 달아 둔 것들도 조금 뺐다.
다 빼진 않았는데 너무 쉬워지면 운동이 안 될 거 같아서였다.
“준비됐군.”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습니다요.”
아무래도 내가 더 가까운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몸도 가벼웠기 때문에 훨씬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와서 보니 어제 우리 평신 그룹 장인들에게 맡기고 떠났던 팔각모가 두 개 완성되어 배달이 되어 있었다.
만든 장인이 손수 배달했는데 그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좋은데?”
“네. 이런 주문은 처음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이거 쓰고 이제 수술하시는 건가요?”
“수술이라. 인체 개조를 할 생각이니, 비슷하겠군그래.”
“네? 인체 개조요?”
“온 김에 좀 보고 가지. 아니, 아니야.”
나는 팔각모를 들여다보다가 머리에 푹 썼다.
확실히 우리 장인들 솜씨가 썩 괜찮은 편이라 모양도 모양인데 착용감도 좋다.
무엇보다…… 챙이 길어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다.
그 말은 곧 다른 사람들에게 내 눈이 절대로 안 보일 거란 말도 된다.
나는 그 상태로 장인에게 다가가 그의 뱃살을 잡았다.
물컹한 것이 꽤나 살집이 있었더랬다.
“어…….”
“요새 잘 먹나 보네. 하긴 우리가 잘해 주지.”
“그……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나는 그의 말에 바로 답하는 대신 눈을 감고 군의관 후보생 시절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군의관이라고 하면 무조건 땡보만 떠올릴 텐데…….
임관 후에는 몰라도 임관하기 전에는 그냥 똑같은 장교 후보생이다.
괴산 군사 학교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한다는 건데, 문제는 대학병원에서 길게는 5년 짧게는 4년 혹사당하고 왔다 보니 큰 걸음만 해도 숨이 차다는 거다.
그럼 좀 융통성 있게 해 줘야 하는데 군대라는 조직은 사실 융통성이 있으면 안 되는 조직 아닌가.
그렇다 보니 모든 훈련을 다 하게 되는데 그러다 다쳐서 퇴소하는 인원이 매년 몇 명씩 나올 정도다.
훈련이 유독 혹독해서라기보다 그냥 나이 들고 병든 몸이다 보니 어이없게 다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아무튼, 그 여러 훈련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게 있다면 유격이다.
-아버지의 어깨는 내가 멘 군장보다 무겁다!
이 문구도 잊기 어렵긴 하다.
나야 뭐 홀몸이었지만 같이 간 동기 녀석은 애가 둘이었는데, 훈련 나갈 때마다 보이는 저 문구를 보면서 툴툴거려서 그렇다.
그렇게 무서운 아버지의 어깨에 군장까지 메라고 하는 건 대체 무슨 경우냐고 하면서였는데…….
“엎드려.”
“네?”
팔각모의 위력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이 눈알이 안 보이니까 되게 무섭더라고.
게다가 누구 하나 실수하면 연대 책임으로 다들 더 고생을 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평소 뺀질거리던 놈들도 동기 눈치가 보여서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8번 피티였나?
그거 하다가 진짜 뒈질 뻔했던 기억도 있다.
“말이 어렵나. 앞으로 취침.”
“네?”
“뒤로 취침.”
“아니…… 제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지금의 나는 어떻게 봐도 당시 조교들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다.
솔직히 후보생 입장에서는 조교라고 해 봐야 열 살은 어린 데다가 병장이라 해도 대위보단 훨씬 낮아서 딱 훈련받는 기간만 빼면 내 인생을 어찌할 수는 없는 애들 아닌가.
반면에 나는 어떤가.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만약 내가 이 친구를 뭐 되게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럼 당장이라도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지록위마의 고사처럼 내가 이제부터 ‘이 사람은 성기다’라고 하면 다들 인간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성기가 있네 하게 된다, 이 말이다.
그렇다 보니 장인 아저씨도 내 지시에 따라 구르고 있었다.
벌써 땀이 뻘뻘 나는 걸 보니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좋아…… 적당히 강도 조절해서 계단도 태우고 유격 훈련도 하자.’
나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장인을 일으켜 세우고, 병실 번호를 알려 주었다.
내가 손잡아 줄 때만 해도 이제 집에 가나 보다 했던 장인은 얼굴에 물음표를 띠고 있었다.
“이건 왜…….”
물음표만 띤 것은 아니고, 당연히 두려움도 뒤섞여 있었다.
어렵게 묻는다는 게 다 느껴질 정도였는데 아쉽게도 그의 바람과는 다른 말을 해야만 했다.
훌륭한 표본이지 않나.
다른 환자들은 다들 어디 기업 사장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여기처럼 가둬 두고 관리하기가 어려울 텐데, 이 사람은 내 직원이다.
심지어 우리 기업은 돈도 많이 주고 일도 썩 편한 편인데 심지어 일하다 죽을 위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뭐 19세기다 보니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종류의 위험은 얼마든지 산재하겠지만.
“축하하네. 당첨이야. 자네도 이제…… 캠프에 합류하게.”
“캠프요?”
“살 쫙 빼서 멋진 남자로 만들어 주지. 아내에게 사랑받게 해 주겠다, 이 말이야.”
“저는 아내가 없는데요…… 작년에 죽었습니다.”
“그럼 새장가 들게 해 주겠네.”
“지금도 줄을 서는데…… 평신에 들어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나가는 건 생각보다 쉬운데, 해 보겠나?”
“아니…… 아닙니다.”
꼭 좋게 말하면 안 듣는 친구들이 있다.
장인 아저씨는 안 좋은 얘기를 듣고 나서야 바짝 긴장한 얼굴이 되어 배정받은 번호로 향했다.
아 병실로 향했다는 건 아니다.
팔각모를 떠올렸을 때 이미 강당 바닥에 병실마다 번호를 배정해 그려 놨거든.
“자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잘 보고 배워요. 저 없을 때는 형님이 캠프 책임자입니다.”
“책임자? 아, 이게 그 모자구만. 생각보다 멋진데?”
“그거 써 봐요.”
“이렇게?”
“어우.”
장인 혼자 멋모르고 서 있는 동안 나는 방금 도착한 리스턴에게 모자를 씌워 보았다.
눈이 보여도 무서운 사람인데 눈이 안 보이니까 진짜로 무서워 보였다.
거의 무슨 붉은 지옥에서 온 장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뒤로 취침이라고 말해 봐요.”
“뒤로 취침.”
“어우.”
거기에 목소리도 무섭다 보니 나도 모르게 뒤로 누울 뻔했다.
전생이면 몰라도 현생의 나는 정신적으로 강한 인간인데도 그렇다.
심지어 상대가 리스턴이라는 걸 아는데도 위압 스킬이라도 있는 것인지 뭔지…….
‘엄청 성공적이겠는데?’
지금 여기 갇혀 있는 사람들이 나갈 때 대체 어떤 모습이 될는지 벌써 기대가 된다.
뭐…….
급하게 뺀 살은 급하게 다시 찐다는 말도 있긴 한데, 요요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공포라고 생각한다.
미친놈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의사들이 살 빼라고 했을 때 빼는 환자 비율이 1% 내외거든?
아, 삭센다랑 위고비가 나와서 그 비율이 팍 올라가긴 했는데 의지만으로는 저렇다는 얘기다.
‘근데…… 살찌면 죽을 수도 있는 병에 걸렸다? 그때는 귀신같이 빼는 분들이 늘지.’
고혈압, 당뇨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뇌출혈이나 경색 같은 질환…….
요새는 응급 의료 체계가 그래도 꽤 개선이 되기도 했고, 기술도 좋아져서 발견만 일찍하면 남들이 볼 때는 합병증이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낫는 경우도 꽤 있거든?
그런 분들이 근데 살이 다시 찌게 되면 이미 합병증이 하나 생긴 상황이다 보니 또 생길 확률이 남들보다 훨씬 높다.
악담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데, 그렇게 교육을 하면 참 유지들을 잘하신다.
“다 왔나.”
한번 아파 본 사람은 그 아픔에 대한 공포, 더 나아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생활 습관 개선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 내가 이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공포는 조금 다른 종류긴 하다.
일단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렇게 잘 먹히지 않는 시대라서 그렇기도 하다.
애초에 죽음이 만연한 곳인데 뭐가 그리 무섭겠나.
‘이렇게 살다 죽을래유’라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 세상이다, 이 말이다.
“대답이 작다. 다 왔나.”
“네, 네!”
하지만…….
맞는 건 어느 시대나 두렵기 마련이다.
-정말 이렇게 강압적으로 해도 되나……?
-경찰이랑 말도 다 해 놨어요. 건강하게 만들려고 하는 거라니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생업이 있는 사람들인데…….
-생업은 유지하게 하잖아요?
-그건…… 뭐. 그래도 잘못도 없는데 괴롭히라는 게.
-누가 그냥 괴롭힌대? 건강 하라고 하는 거지. 애들 말 잘 들으라고 때리는 거랑 뭔 차이가 있어요, 이게.
-아하. 그런 거구만.
다행히 우리의 무기 리스턴은 설득이 된 마당이다.
논리가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이 시대에 애 제일 많이 패는 존재가 바로 애 부모다.
‘에이, 서양은 다르다던데요?’라고 하는 사람은 역사책 다시 보기 바란다.
너무 딱딱하게 느껴지면 19세기를 다룬 소설만 봐도 된다.
진짜로 패면 말을 잘 듣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살던 시대가 여기 있다.
그리고 그걸 진심으로 사랑의 매라고 믿는 거 같은데…… 그 매에 맞고 병원에 오는 아이들이 꽤 많다는 것이 놀랍다.
‘인식 개선이 쉬운 거였으면 벌써 내가 했겠지만…….’
역부족이다.
구라 마스터인 나조차 안 돼.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그 인식을 이용하면 된다.
뭐가 되었건 좋은 쪽으로.
“숙련된 조교 앞으로.”
“하.”
“하?”
“네!”
이를 위해 자기 한 몸을 내려놓고 희생에 나선 사람도 있다.
그의 이름은 앨프리드.
우리 일행의 영원한 실습 대상.
좀 힘들 수도 있겠지만 도움이 된다고 했더니, 그동안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돌아오는 질문이 이랬다.
-소변줄 꼽는 건 아니지……?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기쁜 마음으로 나섰다.
그랬던 앨프리드도 8번에서는 좀 무너지긴 했지만, 어차피 자세만 보여 주면 되는 거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앞으로 취침!”
“으아…….”
“뒤로 취침!”
“으아…….”
그의 움직임에 따라 병실 환자들도 덩달아 이리 눕고 저리 눕고 난리도 아니게 되었다.
“와…….”
그렇게 많이 시킨 것도 아닌데 강당엔 사람 땀으로 이루어진 스모그가 끼기 시작했다.
장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