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7)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7화(417/505)
417화 비만 캠프 [3]
정확히 말하면 스모그라기보다는 대부분 수증기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이룬 기상 현상이라고 보면 되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닐 거다.
요는 이렇게까지 땀이 많이 날 정도로 격렬하게 운동하고 있다는 건데…….
이렇게만 하는 게 아니라 공복에 러닝머신도 태웠다.
-차라리…….
-죽여…….
-저주…… 저주를 걸어, 그냥.
말은 그렇게 하지만 뒤에서 때리는 시늉만 해도 헉헉대며 걷는 것을 보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몇 대 맞은 사람도 있는데 당연하겠지만 교도소에서처럼 채찍질을 하진 않았다.
그냥 꿀밤 몇 대 때렸을 뿐이다.
물론 그게 리스턴이었다는 게 문제긴 했다.
아주 그냥 아파서 울부짖더라고.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군그래.”
때린 사람도 찜찜해서 날 찾아와 하소연했을 정도로 처연하게 울었더랬다.
생각해 보니 리스턴도 본인이 봤을 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을 때린 건 처음이라고 했으니 뭐…… 찝찝하긴 했을 거다.
그때마다 나는 리스턴을 격려했다.
흔들리지 말라고.
이게 맞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긴가민가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열흘이 채 지나기 전에 하나둘 회심하는 이들이 있었다.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제일 먼저 진심으로 감복한 놈은 존 스노였다.
역시 통계에 강한 놈이라 그런지 수치가 변하는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허리둘레와 무게가 조금씩이라도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살이라는 게 이렇게 강제적으로도 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얼굴로 내게 다시 한번 존경을 표했다.
-이게…… 진짜 되는군.
그에 비해 리스턴은 조금 늦었다.
아무래도 숫자보다는 직관에 의존하는 사람이라 그럴 터였다.
별 상관은 없었다.
직관이 아주 뛰어나면, 학문적인 영역에 다다르기 마련이거든.
19세기라 하는 소리가 아니라, 21세기 병원에서도 촉이 좋네 나쁘네 하는 말을 다들 쓰거든.
하여간, 리스턴이 놀랐던 포인트는 같은 강도의 벌 아니, 훈련을 시켰을 때 힘들어하는 정도가 확실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계단 오르는 것도 힘들어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조금이라도 빨리 자려고 뛰어 다니고 있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렇다니까요? 내가 그랬잖아요. 이거 무조건 된다고.”
“허어…….”
“뭐 좀 혹독하게 하긴 했지만, 이렇게 안 하면 우리 자랑스러운 영국인들이 들어 처먹습니까?”
“아니긴 하지.”
그리고 대망의 퇴소 전날, 그러니까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쯤 우리는 마지막으로 검사한 결괏값을 마주할 수 있었다.
검사하던 날처럼 혈압도 재고 무게도 재고 당뇨에 대한 검사도 하고 허리둘레도 재고 다 했다.
몇 가지 못 한 것도 있는데 달리기 속도와 같은 수행 능력에 대한 검사다.
나라고 뭐 전생에 다 해 본 것은 아니지 않나.
특히 다이어트는…… 애초에 마르게 태어난 몸인 데다가 보육원 시절에는 양껏 먹을 수 있는 날도 적었고, 돈 벌기 시작한 후에도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에 나랑은 거리가 아주 먼 단어였더랬다.
이런저런 다이어트법이 유행하지만 사실 유전이 제일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할 텐데 나는 둘 다 거리가 있었다, 이 말이다.
‘다음 입소자들은 전후로 이 테스트도 해야겠어.’
뭐, 느낌만으로도 좋아졌다는 걸 알 수는 있다.
실제로 환자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몸이 가벼워졌다고.
허나 나는 과학자고 이것도 일종의 실험이지 않나.
실험의 결괏값은 숫자로 써야 하는 법이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당뇨가 좋아질 줄이야.”
블런델은 단맛에서 보통으로 변화한 결괏값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사실 쓴맛 이하로 내려가야 정상 수치가 되는 거 같긴 한데, 약도 안 쓰고 살만 뺐는데도 이렇게 되었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보면 되었다.
뭐 딱 이 사람들만 생각했다면 당연히 미리 인슐린을 찔러 넣어 주는 것이 좋았을 거다.
하지만…….
누누이 말해 왔듯이 내 양어깨 위에는 이 나라의, 더 나아가 온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
남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 값이 반드시 필요했다.
“거봐요. 뚱뚱한 것과 당뇨는 연관성이 있다니까요.”
“이걸 대체 어떻게 알았나?”
“조선에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죠.”
“조선…… 또 조선인가?”
블런델은 지겹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지금까지 나라를 숨 쉬듯 팔아 왔기 때문에 납득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납득한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에헤이.”
나는 버럭 화를 내면서 말을 이었다.
실제로 이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당뇨를 조선에서는 부자병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부자들이 주로 걸려서 그런데, 자고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살집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어…… 그렇긴 하지. 정말인가? 그걸 그렇게?”
“그럼요. 조선이 얼마나 현명한 군자의 나라인데 이것도 모를라고요.”
“허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다 주님께서 접신 아니, 현몽하시어 알려 주신 건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아, 알겠네.”
“아무튼, 이번 실험으로 증명된 것이 두 개 있군요.”
나는 말을 하다 말고 강당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허리 사이즈가 적어도 3, 4인치씩은 줄어든 나의 자랑스러운 환자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죽을 거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더니만 지금은 나름 뿌듯해 하고 있었다.
외양도 외양이겠지만 일단 몸이 가벼워졌으니 표정이 좋아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여기저기 아프고 쑤시다가 그런 것들이 싹 사라졌으니 어찌 좋지 않을까.
-드디어 나갈 수 있겠구만…….
-뒈지는 줄 알았어, 정말.
이상한 말이 들리긴 하는데,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어디에나 비뚤어진 놈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이름이…….’
물론 무시한다고 해서 용서할 생각은 없다.
나중에 어떻게든 마음가짐을 고쳐 주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을 두 개 폈다.
“하나는 이렇게 하면 살이 빠진다는 거죠. 공작님, 국왕 폐하…… 한 달씩 스케줄 빼놓으라고 전달합시다.”
“아니…….”
“또 하나는 살을 빼면 건강해진다는 겁니다. 당뇨도 줄고, 무엇보다 운동 수행 능력도 올라가잖아요.”
“그…… 그렇긴 한데.”
“이렇게 좋은 걸 높으신 분들께 추천하지 않는 자, 지금부터 역적으로 정의합니다.”
“역적이라니…….”
높은 사람에게만 약한 리스턴이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원장님이나 블런델도 어버버하고 있었다.
이래서 나이 든 사람들은 안 된다.
잃을 게 많아졌다는 생각 때문일까?
작은 용기도 내지 못해.
“저는 윌리엄 4세가 좋습니다. 오래 사시면 좋겠어요.”
“나도 그래. 일단 우리 아빠부터 끌고 와야겠다.”
“아…… 나도!”
“오.”
그에 비해 어린 놈들은 어떤가.
용기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도 넘쳐 흐른다.
나도 이 생각은 못 했는데…….
“그럼 다음 캠프 주제는 결정됐구만. 효도다.”
“와…… 이것도 설마 공짜로?”
나는 잠시 방정맞은 입을 놀리고 있는 앨프리드를 노려보다가, 그가 지금껏 내내 개고생해 왔다는 걸 떠올린 다음에야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앨프리드…….
내 은인이지 않나.
물론 나도 목숨을 무려 두 번이나 살려 주었으니 어떻게 보면 내가 더 큰 은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군자는 쩨쩨하게 굴지 않는 법이다.
“하는 수 없지. 다음번까지 무료로 하자구.”
“와아!”
앨프리드는 방금 전에도 조교 노릇 하느라 옷에 흙을 묻히고 있는 주제에 속없이 좋아하고 있었다.
선배가 이러고 있는데 다른 이들이야 어떻겠나.
다들 꺄륵 웃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효자다.
“그…….”
그때 원장님이 내게 다가왔다.
내가 알기로 양친이 모두 돌아가시고 없는데 왜 이럴까 싶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예토전생 시켜 줄 재주는 없다 보니 좀 곤란하겠다 싶었다.
‘정 원하면 굿이라도 하지, 뭐.’
물론 속으로는 내 구라 마스터의 영혼이 자동으로 해결책을 내놓고 있긴 했다.
“우리 마누라도 좀.”
“아.”
다행히 그건 아니라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선이 아래로 향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원장님도 나잇살이 꽤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나이는 먹었지, 근데 고생 안 한지도 오래 되었지 않나.
생활 체육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는 시대고 또 몸을 굳이 움직여야 한다는 상식조차 없는 시대다 보니 그저 나잇살이라고 퉁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꽤나 살이 붙어 있었다.
“나는 왜……?”
“원장님도 하시죠. 공짜로.”
“아니, 나는 됐네.”
“사모님은 시키면서 왜 원장님은 안 하세요. 우리 부모님도 하실 거라니까요?”
“그래도…… 자네는 안 할 거잖아.”
“나요? 나도 뚱뚱해지면 할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안 할 거 아닌가.”
“하하, 당연하죠. 근데 원장님은 해야 합니다. 형님?”
“알았네.”
“으아아.”
나는 원장님을 강제로 끌고 간 후에야 비로소 나의 자랑스러운 퇴소자들 앞에 섰다.
처음 끌려 올 때만 해도 살찐 양처럼 순둥이 같은 눈을 하고 있더니만 이젠 무슨 전사들 같다.
아직 전사가 되려면 좀 더 단련을 해야겠지만 나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더 붙잡아 두기는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말이다.
“제군들.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십쇼.”
아쉬움을 애써 삼키면서 말을 이었다.
“아마 처음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안 날 만큼 많이 변했을 겁니다. 더 강해졌고, 더 건강해졌을 거예요. 무엇보다 수명도 더 늘었을 겁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바라는 바가 있다면 앞으로도 여기서 익힌 습관을 지켜 나가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다들 표정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간 하도 맞고 혼나서 그런가 답은 잘했다.
‘네’라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전생의 나였다면 그래도 하는 수 없지 하고 넘어가겠지만…….
지금의 나는 강하다.
“스스로 하는 건 힘들 테니, 사람을 붙일 겁니다. 이미 여러분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적어도 둘씩 프락치를 심어 두었어요.”
“미친…….”
“어떻게 그런 악독한…….”
“알아서 잘 처신하세요. 좀 불었다 싶으면 예고도 없이 다시 잡아 올 겁니다. 그리고 그때는 무료가 아닐 거예요.”
“돈까지 받겠다고……?”
“이게 납치가 아니고 달리…….”
“그럼 건승을 빕니다.”
나는 그렇게 감동스러운 연설을 마치고 궁으로 향했다.
청개구리 같은 우리 국왕께서는 당연하다는 듯 싫다고 했지만, 나도 이제 귀족이지 않나.
정치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켄트 공작부인은 옵니다. 폐하보다 오래 살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이런 시발놈.”
“그런 상스러운 말은 또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아무튼, 안 오실 거예요?”
“가야지……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