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8)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8화(418/505)
418화 비만 캠프 [4]
내가 살다 살다 영국 국왕에게 시발놈이라는 욕을 들어 처먹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세상에…….
뭔 잘못이라도 했으면 또 모르겠는데…….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게 해 주겠다고 하는데 욕을 하다니.
저게 뭔 뜻인지는 알고 하는 건가 모르겠다.
‘21세기엔 어디 가서 함부로 시발 시발 하면 다 알아듣는다고 조심하라고 하면서 어른들이 약간 뿌듯해했었지? 이것도 한류라고.’
특히 교수님들 중에서는 당황스러운 모습까지 보이는 분들도 계실 지경이었다.
아주 젊은 교수라고 해 봐야 일본 만화가 강제 지배한 세월을 살던 사람들이고 그 전 세대는 말할 것도 없거든.
말로는 우리 것이 제일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미제, 일제 사고 했던 것이 그 세대인데 21세기에는 그 말이 아니라 그냥 진짜로 우리 것이 제일인 시대가 왔으니 얼마나 놀랍고 그렇겠어.
하루아침에 개발 도상국 시민에서 선진국 시민이 된 거 같다고 하셨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전에도 이미 태화니 칠성이니 하는 거대 기업이 있는 나라라 선진국이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체감을 하기엔 역시 문화만 한 것이 없긴 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김태평이…… 벌써 우리 조선의 자부심을 높이 끌어올린 것인가.’
생각해 보니 소프트 파워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언어다.
사람들이 외국어 배울 때 제일 빨리 배우는 것이 욕이라는 말도 있고.
그 말은 우리 국왕께서 솔선수범해서 조선어를 배우고 있다는 건데…… 이 양반이 영국 국왕이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진짜 대단한 거다.
‘후세의 평가는 별로 걱정할 일이 없을지도.’
영국에서야 이리저리 욕을 하겠지만, 인종적인 이유가 있을 테니 무시해도 좋지 않겠나.
나는 어디까지나 내 나라 조선 아니, 대한민국의 평가만 보고 살면 될 거 같다.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나. 왕께 욕먹어서 그러나?”
“아…… 그게 좀 충격적이긴 했죠.”
“나도 놀라긴 했네. 귀족이 욕하는 것도 보기 힘든 일인데 세상에 왕이 시발이라니.”
“뜻을 잘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어감이라는 게 있지 않나. 딱 들어도 쌍욕인데.”
“그래요? 영국인이 들어도?”
“당연하지. 면전에 대놓고 시발놈아 하면 누구라도 주먹 날릴걸.”
“그렇군…….”
하긴 욕은 어떻게 들어도 욕 같긴 하다.
뉘앙스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는 리스턴과의 잡담을 멈추고 다시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제이미 경과 같이 우리 병원 지분을 갖고 있는 유력자들이 주로 들어오는 회의실인데 오늘은 병원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제이미 경이나 뭐나 다들 이번엔 참가자로 오게 되어서 그렇다.
“아무튼, 저번처럼은 못 할 거야.”
최소 원장님 사모님이다.
그 외에 우리들 부모님들도 계시고…….
병원 사람 관계자를 제외하면 백작님이 제일 밑일 지경이다.
근데 중소기업 사장들처럼 굴리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사람 차별하는 거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차별 맞거든.
‘이 시대는 위아래가 아주 명확한 시대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는 생각을 슬금슬금 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층에 따른 분류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유럽은 21세기에도 상류층은 완전히 구분된 삶을 살아가잖아?
심지어 영국식 영어는 계층에 따라 쓰는 단어도 다르다.
지들끼리만 쓰는 단어가 있다 이건데 심지어 계층에 따라 직업도 달라진다고 들었다.
그런 거 보면 그래도 대한민국은 아직 젊은 나라라 그런가 계층 고착화가 그렇게까지 심했던 건 아닌 거 같단 생각이 든다.
나도 의사가 되긴 했으니까 뭐…… 말 다 한 셈 아니겠어?
동기 중에 나처럼 형편이 어려웠던 놈은 없지만, 그래도 다 잘사는 집안 출신도 아니긴 했고.
“일단 숙소가 제일 문젠데…… 침구류는 바꿨지?”
“네. 나름 고급 물품으로 싹 바꿔 놨습니다.”
“좋아. 어차피 힘들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겠지만 너무 후지면 안 되니까.”
아무튼, 이 때문에 원래는 교외에 이미 마련해 둔 시설…….
항노화 센터로 갈까 했는데 러닝머신 옮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 그냥 두기로 했다.
게다가 거긴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조리하기도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기껏해야 직원 식당 정도만 있는데 어찌 환자들을 다 먹일 수 있겠어.
뭐…….
부족하면 ‘단식 프로그램입니다’ 하고 퉁치고 넘어가도 되기야 하겠지만, 내가 또 그렇게까지 악독한 인간은 못 된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이다.
“먹을 거는 어떻게 할까요? 입이 다들 고급일 텐데요.”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양분이 중요한 거니까, 그건 원래대로 하지.”
“아…… 근데 그게…… 될까요?”
“어차피 가둘 건데 뭔 상관이야.”
“왕…… 폐하께서도 오시는데.”
“폐하랑은 얘기가 잘됐어. 솔선수범하실 거야. 그럼 다른 사람들도 잘 따르겠지.”
“어, 어떻게요?”
나는 욕 먹고 난 후를 떠올렸다.
아무리 내가 조선 주술사로 통하고 있다 한들 설마하니 협박만으로 왕을 설득할 수 있었겠나.
당연히 이번 캠프의 효용성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일단 탕약을 중간중간 드릴 거야.”
“이거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홍삼 한번 먹였다가, 탕약 달였다가 할 거니까 상관없지. 그리고 뭐…… 색만 우러나지 실제로는 맹탕이야.”
“그런 말을 너무 당당하게…… 아니, 그만두지. 왕 앞에서도 했던 말이니까.”
리스턴이 잠시 내 설명에 훼방을 놓으려다가 관뒀다.
그가 말한 대로 왕 앞에서 한 말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맹탕이라는 말은 안 했다.
용량을 조금 줄였다고만 했다.
“이번에 하는 운동을 하면 홍삼과 탕약에 들어가는 약재의 효과를 완전히 소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했어. 그럼 정말로 어? 다시 강해질 거라고 했지.”
“그…… 약재 소화라는 말은 저번에 없지 않았나……?”
원장님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해 왔다.
원래 사업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피보팅하는 것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스타트업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래에서 온 내가 이해를 해 줘야 한다, 이 말이었다.
“생각을 해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렇게 말을 해야 열심히 하죠.”
“아…….”
“그리고, 왜 들어와 있지? 원장님은 대상자잖아.”
“난 그 전에 원장…… 어, 어! 이거 놔!”
이해를 해 주겠다고 했지 봐준다는 말은 안 했다.
원장님은 조지프와 리스턴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쫓겨났다.
그렇다고 해서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랬다가 런던 밖으로 도망치면 잡으러 가야 하잖아.
피차 번거로워지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야, 나 원장이야!”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봐야 별 소용은 없다.
원래 병원이야 원장님 말에 권위가 있겠지만 여긴 우리 센터라 그렇다.
돌아다니는 애들 중 태반이 갱단 애들인데 귓등으로라도 들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아까 어디까지…… 아 맹탕까지 했지. 그래, 그렇게 소화가 되면 다시 강해진다고 하니까 좋아하시더라고.”
“그럼 저…… 징벌 기계는 어찌하실 겁니까?”
“징벌? 아 러닝머신?”
“아, 네. 달리지는 못하지만…….”
그사이에 좀 더 개량을 해 보려고 했었더랬다.
실제로 내가 보았던 러닝머신 형태로 만들어 보려고 했다는 건데, 그건 아직 시기상조인 듯했다.
아유, 될 일이 아니야.
너무 어렵다.
해서 그냥 좀 더 부드럽고, 좀 더 안전한 계단 타기로 만들었다.
위에 줄도 더 튼튼하고 잡기 좋게 만들고 더 가볍게도 만들고 기름칠도 했다, 이 말이다.
물론 워낙에 중요한 사람들이 타야 하다 보니 별개의 안전장치도 더했다.
혹 떨어지더라도 너무 크게 다치지 않게 그물을 달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한 거 같은데, 어때.”
“그…… 그런 거 같긴 합니다.”
내 말에 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충신이라서 저렇기도 하고 또 실제로 저번 캠프 참가자들의 결과가 워낙에 좋아서 그렇기도 하다.
일단 옷 사이즈가 다 바뀌어서 나갔다.
몇몇은 불만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우리가 주최한 설문 조사에서 다시 하긴 싫은 경험일지라도 인생에 한 번은 필요했던 경험이라고 답변을 남겨 주었다.
사실 불만이 있던 친구들도 리스턴과 함께 그들의 집에 가서 이것저것을 묻고 또 가족들에게도 한번 들어올 것을 권유하고 했더니 말을 바꾸었다.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오.”
그렇게 슬슬 회의를 끝내려고 했는데, 우리의 똘똘이 존 스노가 손을 들었다.
의외의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외국은 자유롭네 어쩌네 하는 것도 다 나중 일이라 그렇다.
19세기 런던은 숨 막힐 정도로 보수적인 사회고, 또 동시에 질문을 잘 허용하지 않는 사회이기도 하다.
나만 해도 쓸데없이 질문하는 놈은 대가리를 후려치는 편이 되었다.
의학적인 얘기를 꺼내면 거의 99% 쓸데없는 걸 넘어 잔인무도한 얘기가 되니 그럴 수밖에 없는데, 존 스노 정도로 똑똑하다면 예외로 두어도 될 거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혈압은 왜 재시는 겁니까? 도통 모르겠어서…….”
해서 시켰더니, 내 입장에서는 하등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그냥 하라면 할 것이지…….
어?
일일이 내가 다 어떻게 설명을 하냐고.
“그래, 그건 나도 궁금하네.”
“그냥 재고 싶어서 아닐까요? 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답을 해 주긴 해야 할 거 같았다.
리스턴에 블런델에 아니, 일일이 짚어 주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대다수가 궁금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혈압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는 시대이긴 하다.
혈당은 단 소변으로 딱 보이는 데다가 단 소변을 보기 시작하면 확 사람이 아파지고 죽는 게 보이는 데 반해 혈압은 그렇지가 않지 않나.
일단 혈압을 재기 시작한 게 나다 보니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실제로 고혈압이 문제라는 걸 알게 된 것이 1950년대 이후이니 뭐라 할 일도 아니다.
세상에 미국 대통령이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죽었다니까?
주치의가 이비인후과 의사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 하여간.
“일단 제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인해서 재는 겁니다.”
공식적인 말이니까 예의를 갖추어서 말했다.
구라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오직 나만이 답을 알고 있잖아.
“하지만 단지 궁금해서 재는 건 아니고 가설이 있어요.”
“가설……?”
“제가 봤을 때는 고혈압이 건강에 좋지 않을 거 같아서요.”
“왜? 그냥 혈액을 보내기 위해 압력이 올라가는 거 아닌가? 오히려 억지로 낮추게 되면 피가 온몸을 돌지 못할 수도 있네.”
상식적인 현대인이 보기엔 가당찮은 주장이겠지만 놀랍게도 저 생각이 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간다.
내가 이러는 건 그걸 미리 깨기 위함이다.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일단 이런 캠프가 건강을 개선한다는 건 동의하시죠?”
“아…… 그거야 뭐…….”
“부정하기 어렵지.”
리스턴과 블런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러 지표들이 긍정적으로 변했는데 혈압도 떨어졌어요.”
“그랬나?”
“어…… 그래?”
“네. 그 말은 곧 혈압이 낮은 게 건강한 상태란 뜻 아니겠습니까?”
“오…… 일리가 있구만.”
“하지만 한 번만으로는…….”
“그래서 이번에도 잴 겁니다. 결과가 반복되면 상식이 되는 거죠. 인정합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우리는 과학자니까.”
“그래, 지식인으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