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9)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9화(419/505)
419화 비만 캠프 [5]
입소 첫날.
우리는 부푼 꿈을 안고 마차를 보냈다.
대부분은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순순히 끌려왔지만, 입이 방정인 앨프리드로 인해 짐작이라도 하게 된 나, 조지프 그리고 앨프리드의 부모님은 예외였다.
“읍. 읍!”
“이놈이 기어코…… 부모를 읍.”
“지금껏 공짜로 먹고 자지 않았…… 읍.”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에겐 무력이 있으니까.
겉으로 보기엔 패륜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사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도 있지 않나.
우리 부모님도 이번에 보니까 아무래도 업턴에 계실 적보다도 더 삶이 쾌적해진 것도 있는 데다가 나이도 들어서 그런가 군살이 장난이 아니다.
다 빼야 한다, 이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의사 아들이 할 수 있는 최적의 효도가 아닌가 싶다.
“재갈을 물려? 삼강오륜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 부모한테?”
리스턴은 그 꼴을 보고 나를 매도했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마 전생의 부모도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했을 거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동기들 보니까 이 말만큼 의사 자식 속 뒤집어 놓는 말도 없더라고.
그놈의 자연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나이 들면 그저 자연을 느끼고 살면 된다는 말을 하질 않나…….
통제되지 않은 자연이야말로 지금껏,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살인자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다.
우리 부모님이야 19세기 분들이다 보니 그것보다도 더한 자연 탈레반이었는데, 그렇게 나오면 나도 깡패가 되는 거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도 지키지 못하면서 삼강오륜 논하지 마시죠.”
“무슨 소린가. 나는 지금껏 내 팔다리에 칼 한번 댄 적이 없거늘.”
그건 맞다.
리스턴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골로 보냈지만 정작 자신은 단 한 번도 다친 적이 없다.
하지만 다치지 않는다고 해서 신체가 온전히 남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너무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머리털은 소중히 하지 못했죠.”
“으아니…….”
한마디에 리스턴이 고장 났다.
그걸 보고 있자니 좀 미안해져서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니까 그 머리털을 다시 찾아 준 나를 부모 대신으로 생각하시죠.”
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말이 나왔는데, 아무튼, 리스턴이 눈물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는 부모님부터 해서 런던 제일의 유력자들을 드디어 캠프에 입소시키게 되었다.
전에는 막 대해도 별 탈 없던 사람들이었다 보니 대강 가건물에 모아 놓고 조졌지만 이번엔 그럴 수가 없어서, 우리 센터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강당으로 모아 놨다.
“재갈은 풀어 드릴게. 근데 쓸데없이 나불대지 마세요. 여기 이제 왕도 있고 그러니까.”
“하아…… 지옥이라던데, 여기.”
“진짜 지옥이면 제가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왔겠어요?”
“그러고도 남을 놈이라고 하더라.”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강제로 종을 들게 하고 그랬다며.”
“아.”
그것도 사실 운동인데 벌처럼 느껴지긴 했을 거 같다.
전생에 나도 이렇게 살다가는 비명횡사하겠다 싶어서 원내 피티를 신청한 적이 있어서 안다.
얄궂게도 운동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뇌종양에 진단되어 바로 관두긴 했지만…….
하여간 그때 운동하면서 느낀 게 있다.
나는 독립운동 같은 거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거.
아니, 하더라도 말단이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왜?
고문에 약하기 때문이다.
-회원님! 이제 시작했어요!
-으아아…… 뒈질 거 같은데요?
-아니…… 지금 빈 봉이에요! 진짜예요? 진짜? 아니, 진짜네.
전생의 내가 몸이 건강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이상한 일이긴 했다.
건강하게 나온 것도 아닌데 보육원에서 자라서 비쩍 곯았지…….
근데 공부 재능은 있어서 의대 가겠다고 앉아서 공부만 했지.
가고 나서도 장학금 잘리면 곧 나앉게 생긴 몸이다 보니 계속 공부만 하다가 인턴 레지던트를 견뎠다.
이렇게 보면 그만큼 산 것도 용하다.
용한데, 그걸 별개로 치더라도 내 통증에 대한 인내는 참 빈약하다 할 수 있다.
-이토, 이토 히로부미…… 하얼빈! 안중근!
아마 일제 시대 때 순사한테 잡혀갔다면 스쿼트만 시켜도 다 불었을 거다.
그래서 아는 게 없도록 말단만 하거나 아니면 어금니에 청산가리 달고 살았어야 할 거다.
사고로 죽을 위험도 있겠지만 그게 대사를 그르치는 거보다는 나을 테니까.
아무튼, 이해는 간다, 이 말이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악독하게 생각하는 거도…….
하지만 이해가 간다고 해서 내가 섭섭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 있나?
“재갈 남들 앞에서도 차고 싶지 않으면 그냥 있어요.”
“허어…… 자네…… 변했구만.”
“사람은 변하죠.”
“허어.”
“농담입니다, 농담. 다 건강해지라고 하는 거지. 제가 미쳤어요? 국왕 폐하를 괴롭히게?”
“그…… 그렇지?”
“그렇다니까?”
나는 앨프리드의 아버지 어깨를 툭툭 쳐 주고는 강단에 섰다.
말이 강단이지 뭐…… 그냥 작은 교실 앞에 섰다고 보면 된다.
내 지위를 생각하면 너무 초라하다 이 말인데, 학생들이 대단하니 넘어갈 수 있었다.
“환영합니다, 캠프 소장 김태평입니다. 이쪽은 부소장 리스턴 박사…… 인사해야죠?”
“아, 네. 리스턴입니다.”
리스턴은 아직도 머리털 공격에 넋이 나가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건넸다.
다음으로는 블런델과 내 제자들 차례였다.
그중에서도 중심은 역시 앨프리드였다.
“이쪽은 숙련된 조교 앨프리드입니다. 앞으로 이 친구 자세만 잘 따라 하면 됩니다.”
제자들은 다들 비슷한 짬밥이라 누굴 시켜도 비슷할 텐데 굳이 앨프리드를 시키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일단 존 스노는 너무 어리기도 하고 통계 처리를 해야 해서 빠져야 한다.
행정병 포지션이다, 이 말이다.
콜린은…….
이 새끼는 몸치다.
아무리 몸치라고 해도 유격 자세도 못 하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그건 일반인의 시각이고 몸치는 차원이 다르다.
어떻게 잘 아는지는 그냥 넘어가자.
‘조지프는…… 힘이 좋아서 아깝지.’
내 친구 조지프야 뭐 몸치의 반대에 가깝다.
실제로 앨프리드보다 자세도 훨씬 잘 나온다.
하지만 그 힘으로 못하는 이들 조정해 주는 게 훨 낫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사고뭉치 국왕 폐하와 제이미 경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부모님만 해도 자세 안 나온다, 절대로.
요새 보면 걸을 때도 가끔 낑낑거려.
“자, 그럼 일단 설문지부터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하여간, 나는 우선 캠프 전의 상태부터 파악하기 위해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캠프를 통해 입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나 하는 판단이 서서 그랬다.
운동.
다른 말로 하면 신체 활동인데, 인간이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면 된다.
아무래도 신체 활동을 대부분 아웃소싱할 수 있는 현대인에게 훨씬 더 큰 위협이 되겠지만, 19세기 런던이면 벌써 그렇게 사는 인간들이 늘어나는 무렵으로 보인다.
귀족뿐 아니라 부자들은 진짜 그렇다.
기계보다 싼 인간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음…… 평소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하냐고? 당연한 거 아닌가?”
“일단 말로 하지 말고 쓰시면 됩니다.”
“말도 못 해? 나 왕이야.”
“안 피곤하게 해 드린다니까요?”
“하아.”
설문지도 해 본 사람이 잘하는 거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몇 문항도 안 되는 거 하는데 어찌나 말들이 많고 고민이 많은지…….
진짜로 괴롭히고 싶어져 버렸다.
이것이 자꾸 탈주하는 공X준을 보는 김X란의 마음일까?
어디까지나 잘되라는 마음에서 하는 일인데 이렇게 비뚤게 나오면 나도 좀 비뚤어지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
“자, 이제…… 기초 체력 테스트입니다. 조교 하는 거 잘 보고 따라 하시면 됩니다.”
물론 오늘은 메인이 아니다.
테스트 날짜니까.
하여간, 앨프리드는 군대 기초 체력 테스트와 같이 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 펴기를 차례로 보여 주었다.
군대에서 하는 거라 좀 후져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이게 진짜 대단한 테스트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윗몸 일으키기 빼고 턱걸이를 넣는 게 더 나아 보이긴 한데, 철봉이 아직 안 만들어져서 지금은 뺐다.
아무튼, 말 그대로 기초 체력을 보기엔 이만한 것이 없다는 거다.
“테스트는 철저히 개별적으로만 이루어지니까 걱정 마세요.”
다음 기수부터는 공개된 위치에서 할 거다.
그렇게 해야 더 경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애초에 같은 기수는 같은 동네에서 뽑을 작정이다.
그래야 뭔가 더 열심히 하지 않겠어?
하지만 이들은 아무래도 위치 때문에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좀 차이를 두고 있다.
“흐아아…….”
“좀만 더요. 공작님보단 잘해야지.”
“제, 제이미? 몇 개 했는데.”
“11개요.”
“허…….”
물론 우리는 다 보고 있기에 이런 식으로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건 가능했다.
중간중간 거짓말도 좀 쳤다.
적당히 하려는 사람이 있어서 그랬다.
자고로 테스트는 이 악물고 해야 제대로 결과가 나오는 법이라, 수를 좀 쓴 거라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좋아…… 이제 데이터는 나왔고.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하면 되겠습니다.”
“이게 정말 좋아지려나?”
“좋아질 거예요.”
“근데…… 먹는 게 아무래도 좀 평소보다 부실하지 않겠나? 사람이 단 걸 먹어야 기운이 나지.”
“그걸 뒤엎기 위해서 하는 실험 아닙니까.”
“실험……이라.”
리스턴은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식당으로 향하는 인원을 돌아보았다.
통일성을 위해 옷도 다 우리 P.S. 제품으로 입혀 놓아서 그런가 그 대단해 보이던 양반들이 지금은 죄수 같아 보였다.
“그 단어는 절대로…… 저들 앞에서는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안 하죠, 미쳤어요? 어차피 건강해지면 다들 감사해할걸요.”
“그렇기야 할 텐데…….”
“저번에 봤잖아요.”
“그렇긴 했지. 하지만 이 사람들 이거…… 한 달 동안 잘못 붙잡혀 있었다고 하면…….”
“그럴 리가 없죠. 보세요.”
나는 걱정 많은 리스턴을 두고 식당으로 달려갔다.
평소와는 달리 한복 두루마기를 걸친 채였다.
“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 계시는 동안 특별히 제가 직접 달인 탕약을 손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운동하고 하는 게 다 이걸 제대로 소화시키려 하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곤 미리 부하들을 시켜 달인 탕약을 떠서 한 사람씩 나누어 주었다.
아무래도 유력자들만 모아 놓고 있다 보니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금세 나누어 줄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여기서 유일하게 내가 주님 접신자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은 좋아했다.
조선의 내음이 난다고 하면서였다.
‘어머니, 그 약 중국산입니다…….’
나는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은 뒤로 삼킨 채 웃는 낯으로 약을 주었다.
“보약이에요, 보약.”
“이건 효도구나.”
“그럼요. 고향 산천 생각도 나실 겁니다.”
“허어…… 진짜구나. 이게…… 기억이 난다. 과연 조선의 맛이야!”
너무 좋아하면서 오버하시니까 조금은 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