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화(42/505)
42화 이상한 소리가 나 [1]
다소 끔찍한 치료였지만, 의외로 효과가 있어 두통은 극복해 냈다.
“어쩐다?”
“음.”
그렇다고 해서 원장의 압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피를 내는 치료를 했더라면 실신이라도 했을 테고, 그랬으면 많이 아팠을 테니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 죽었대?”
“아…….”
아까 몸부림치던 환자가 결국 돌아가셨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이런 망할.
진짜로 걸어 들어왔다가 죽어 나가는 병원이라니.
그런 걸 꾀병의 수단으로 쓰기엔 좀 끔찍했다.
“어…… 교수님.”
그때, 누군가가 연구실로 들어왔다.
좀 쭈뼛대는 걸 보니 꽤 곤란한 소식을 들고 온 모양이었다.
“왜 그러나.”
“전보가 왔습니다. 그,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고…….”
“뭐?”
꽤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나쁜 소식이었다.
“그럼 할 수 없구만.”
동시에 원장의 압박이 훅 사라지긴 했다.
아무리 원장이 돈과 명예에 눈깔이 휙 돌아갔다 해도, 사람이 죽는다는데 뭘 어쩐단 말인가.
물론 마취는 가능할 테니 다른 의사를 동원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의 명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대다수의 환자들은 리스턴 박사님이 아니면 수술을 안 받겠다며 버텼기에, 원장도 수술을 단념하고야 말았다.
“나중에 얘기하지.”
“네, 원장님.”
로버트 리스턴 박사의 눈은 살짝 충혈되어 있었다.
보통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타까워야 정상이겠지만, 우리 박사님은 이 모습마저도 무서웠다.
가뜩이나 슬픈데 시비를 걸어?
뒤질래?
딱 이럴 분위기랄까?
아마 원장도 말은 저렇게 했지만 쫄아서 달아난 것일 터였다.
“그…….”
“괜찮아. 워낙 연세가 많으셔서…….”
“네. 그, 그래도…… 후회 남지 않게 얼른 가셔요.”
“후회라.”
허나 나는 그 앞에서도 입을 털 수 있었다.
어떻게 가능한가.
이미 의사로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아서 그랬다.
그리고 그 세월이 길다는 건, 그만큼 나쁜 소식도 많이 전했다는 말이었다.
동시에 누군가의 최후를, 그리고 그 최후의 옆을 지키는 이를 바라보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 좋은 말이네. 빨리 가야겠구만.”
“네.”
“내가 없을 때는 시신 들어올 일도 없으니…… 일단은 복습이나 하고 있어. 나 말고 다른 교수님들 말 잘 듣고. 특히 블런델이 좀 툴툴대니까…… 말 잘 들으라고.”
“네, 교수님.”
“형이라고 해도 돼. 아무도 없잖아?”
“아…… 네, 형.”
죽음은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21세기에도 그랬다.
아니, 오히려 21세기에 이르러서야 잘 죽는 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내 고향에서도 그제야 호스피스 병동이 자리 잡지 않았나?
내가 비록 호스피스에서 일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세다 보니 어깨너머로 배웠단 말이지.
“귓가에 대고 말씀 많이 해 주세요. 조선에서는…… 가시는 길을 그렇게 보내 드립니다.”
“그래, 그렇게 하지.”
로버트 리스턴은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아마 잘 모를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이 청각인지 뭔지 알게 뭐란 말인가.
모든 것이 모호한 시대에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무리 정도가 아니라 폭력이었다.
‘아무튼…… 시간이 확 떴네…….’
로버트 박사님은 부리나케 밖으로 향했다.
말은 괜찮다, 연세가 많다 했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이 지척에 다가온 참 아니던가.
사람이 멀쩡하면 그건 그것대로 진짜 이상한 일이었다.
“교수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며?”
“엄청 급히 나가시던데.”
“야, 이런 말 하면 그렇긴 한데…… 우리 자유 아니냐?”
“어…… 그렇긴 하지?”
연구실에서 강의실로 돌아오자마자, 옆으로 다가온 앨프리드와 조지프가 이렇게 말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더니, 이 시대에도 소문만은 빠르게 번졌다.
아까 전보로 받았는데 대체 어떻게 이놈들이 알고 있을까?
“복습 좀 하고…… 놀까?”
“근데 또 놀기엔…… 아까 콜린 놈들. 그놈들 해부 실습실로 가던데.”
“아.”
“괜히 그놈들한테 지기는 싫단 말이지.”
나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고, 둘은 알아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말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
지는 건 안 되지.
특히 콜린 같은 새끼한테는 안 되지.
마취 가스 입증한답시고 이나 뽑히는 새끼한테 지면 안 되지.
‘내가 있는데 지는 게 말이 되냐.’
이 두 놈이야 그냥 오기로 하는 말이겠지만, 난 진짜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계 최고의 의사와 함께 있는데 져?
기껏해야 19세기 놈한테?
진짜 명의도 아니고 의대생한테?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눈치 볼 놈도 없겠다…… 어떻게, 좀 달려?’
로버트 리스턴이 없다.
블런델?
그 인간은 산모 말고는 해부할 생각이 없는 위인이었다.
딱히 해부를 공부할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산모가 어떻게 죽었는지 확인할 생각만 있다, 이 말이었다.
뭐…… 교수란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내 시각에서 보자면야 학생만도 못한 지식으로 깝죽대는 수준이지만, 원래 아는 게 없으면 다 안다고 착각하기도 쉽거든.
‘그래, 좀 달리자.’
나머지 의사들도 해부 실습실에 들락거리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한두 차례야 오긴 할 텐데, 로버트 박사처럼 죽치고 사는 놈은 없었다.
아직까지 수술이 그리 각광받는 시대가 아니고, 따라서 해부학은 임상 학문으로서의 가치보다는 교양 과목처럼 여겨지고 있기에 그랬다.
앞으로는 엄청나게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그렇단 얘기였다.
“자, 그럼 갈까.”
감았던 눈을 뜨니, 두 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스승님의 윤허라도 기다리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조지프야 동기라지만 앨프리드는 선배임에도 그랬다.
실력이 최고다 이건데, 그래서 앨프리드가 마음에 들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콜린 일행이 눈에 띄었다.
뭐하나 싶어서 보니 역시나 개판을 치고 있었다.
딴에는 내가 했던 대로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게 쉽겠니.’
새끼.
살만 째고 갈라야 하는데 근육까지 일부 들어 놨으니 제대로 박리가 될 턱이 있나.
내가 했던 것과는 달리 피가 줄줄 나고, 무엇보다 보기에 썩 좋지가 않았다.
근막 밑에 찢긴 근육이 드러나 있으니 당연했다.
저래서야 뭐가 어떤 근육인지 알 수가 있겠나?
‘나는 알지.’
나처럼 해부학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뭐…… 저 새끼들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고.’
정신 차리고 와서 곁눈질로 배우는 거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뭐가 되었건 시간이 지나면 다 의사가 될 놈들인데, 나중에 환자한테 실습하면서 배우는 것보다는 지금 배우는 게 낫지 않겠나?
하지만 또 지랄할 게 뻔한데 가서 배우라고 하기는 좀 그랬다.
“자. 아래팔로 가기 전에, 근육 먼저 보자고.”
나는 칼 대신 핀셋을 들었다.
그러곤 일단 이두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그 끝을 따라 쭈욱 그었다.
“자, 근육은 어깨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붙어.”
“어깨 쪽이 시작점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
당연한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참신한 질문이 따라 나왔다.
물론 대처는 가능했다.
“자, 봐 봐. 아래에서 시작했다고 치면, 이걸 기준으로 움직여야 하잖아.”
“음.”
“그럼 팔이 몸을 당기는 방향으로 수축될 거 아니야.”
“아…….”
“이상하지? 그러니까 여기서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지.”
“근데 넌 이런 걸 대체 어떻게…….”
“나 로버트 박사님이랑 친하잖아. 그리고 책도 좀 봤지. 괜히 해부학 천재가 아니라고. 배우지 않아도 어떤 건 그냥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로버트 박사님이 있다면 이따위로 얼렁뚱땅 넘어가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없잖아?
그 사람이 없는 동안 속성으로 가르치기로 했다.
다행한 것은 둘 다 나를 진짜 천재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긴…… 개구리 해부도 처음부터 잘했지.”
“나 치료도 해 주고.”
“마취제도…….”
“해부도 그렇고.”
해서 대강 넘어갔다.
“그러니까 이 근육은 팔을 굽히는 근육인 거지. 이 밑에 있는 근육도 비슷한 역할이긴 하지만, 크기도 작고…… 길이도 짧지? 메인은 이놈인 거야.”
“오…….”
“그에 비해 뒤는 어때? 대가리 세 개 달린 이 근육.”
“얘는…… 음.”
조지프는 눈을 끔뻑이면서 근육의 시작 부분부터 끝나는 부분을 손으로 훑었다.
“펴지나?”
“그렇지. 팔이 펴지지.”
“아.”
“당연하겠지만 해부학도 과학이야. 근육의 움직임은 다 당연한 거야.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만 알면 된다고.”
그렇게 나는 삼두와 이두를 가르친 후, 칼을 집어 들었다.
이제 아래 팔, 즉 팔뚝을 해부할 차례였다.
지이익.
아무래도 전보다 시신이 살짝 부패가 되어서 그런가 매끈하게 잘리는 느낌이 없었다.
피하지방에 있던 균이 자랐는지 어쨌는지 살짝 농도 있었다.
당연히 근육 색도 거무죽죽해져 있었다.
이런 망할.
‘포르말린이…… 이 시대에 있었으려나……?’
나중에라도 꼭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일단 칼을 움직였다.
내일이 되면 더 썩을 테니, 오늘 최대한 많은 걸 봐야 하지 않겠나.
“여기는 위보다 더 복잡할 거야.”
“왜?”
“잘 봐. 손가락을 굽히고 펴야 하잖아. 오므렸다가 벌리기도 해야 하고. 또 손목도 움직여야 하지? 그럼 그만큼 근육도 많고 복잡하겠지.”
“아…… 그렇겠네. 운동이 복잡하면 근육도 복잡하겠구나.”
“그럴 수밖에 없지.”
“오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최대한 집중하고 있었다.
왜냐.
여기는 복잡하기만 한 게 아니거든.
중요한 곳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여기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다치면 안 될 구조가 너무 많아.’
해서 신중하게 갈라 나갔다.
그 결과, 이미 부패가 시작되어서 박리가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온전해 보이는 근육을 얘들에게 보여 줄 수 있었다.
“오…….”
“이건 손목만 굽히겠구나.”
“이건 손가락.”
“어……? 이상한데? 손가락 굽히는 근육 머리가 좀 붙어 있는 느낌이야.”
둘은 당연히 신났다.
이런 걸 대체 어디서 볼 수 있었겠나.
“자, 이게 위팔에 있던 동맥인데…… 내려오면서 두 개로 갈라진 모양이야. 하나는 엄지 쪽, 하나는 약지 쪽으로 가네. 안을 보면 어떻게 되나…… 오, 만나네.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일단 손에는 피가 간다는 뜻인가?”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 머리 아프다고 해서 병원 보냈더니 죽여? 그러고 우리 허락도 없이 여기로 보내? 이것들 순 미친놈들 아니야?”
물론 그것만 어려운 건 아니었다.
유족들이 왔다.
화를 내면서.
‘와…… 성인군자네.’
나 같았으면 벌써 제멜인지 나발인지부터 찔렀을 텐데.
‘미친놈이 사람 죽이고 말도 없이 실습실로 보낸 거야?’
와…….
그야말로 와 소리가 나왔다.
여하간에 유족들은 시신을 찾아 달구지에 싣고는 무덤으로 향했다.
발이 살짝 나와 있어서 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그런가?
‘방금 움직인 거 같은데…… 착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