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0)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0화(420/505)
420화 비만 캠프 [6]
캠프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의외로 러닝머신 반응이 꽤 좋았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높으신 양반들이 언제 지들끼리 이렇게 땀 흘려 가며 화합의 장을 이루어 봤겠나.
“흐아아…….”
“주, 죽겠다…….”
“안 되네! 폴! 나보다 일찍 죽는 건 허할 수 없어!”
“폐, 폐하……!”
괜히 군대에서 합동 훈련을 시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똑같이 힘을 줘야 그나마 편하게 굴릴 수 있는 게 이 우악스러운 형태의 러닝머신이다 보니 누가 넘어지거나 포기할 거 같으면 죽으라고 격려를 해 대었다.
그나마 폴 카펠 백작과 폐하는 나름 친한 사이지만 대놓고 정적인 사람들까지 저 위에서만큼은…….
“이보게 기둥서방! 쓰러지지 마!”
“폐…… 폐하…….”
“그렇게 약해서 어디 켄트 공작 부인을 만족시킬 수 있겠나!”
“히, 힘을 내겠습니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할까?
친구 같은 말랑말랑한 사이가 된 건 아니긴 하다.
그보다는 좀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 거 같은데 좀처럼 떠오르지가 않는다.
“전우가 되었군그래.”
그때 리스턴이 적절한 단어를 말해 주었다.
“아. 전우. 맞네요.”
그래, 전우였다.
내가 뭐 전쟁통을 겪어 본 건 아니긴 하다.
군대야 3년도 넘게 다녀왔지만 사실 나는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군인이라기보다는 의사로서 복무했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10주 동안의 군사 훈련은 받았는데, 그때 같은 분대였던 녀석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묘해진다.
나이 어릴 때 만나는 친구들도 다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운데 서른 넘어 만난 사람들하고 어찌 다 잘 맞을 수가 있겠나.
무엇보다 대학병원에서는 그래도 4년 차 치프로서 권세를 부리던 입장에서 갑자기 졸병이 되었으니 다들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받을 때는 다들 격려하고 위로하고 그랬다.
“저런다고 뭐…… 켄트 공작 부인이 섭정을 포기하진 않겠죠?”
“자네…… 머릿속에 꽃만 들었나? 말이 되나?”
“하긴.”
나와 리스턴은 그 꼴을 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예전의 우리였다면 아마 말랑한 생각을 이어 나갈 수도 있었을 터였다.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니까.
심지어 나는 내가 즐겨 보았던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속 중세 느낌이 세게 남아 있었다 보니 충의에 대한 믿음도 있었더랬다.
근데 막상 내가 유력자가 되고 그 한복판은 아니더라도 한 발짝 정도 떨어진 곳에서 구경을 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여긴 마굴이다, 마굴.
“으아아…… 나는…… 이제…….”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다.
진짜 속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모자란 공작, 스스로 고환 자른 자 제이미 경이 그렇다.
아편 전쟁을 기획한 사람 중 하나라는 말이 있는 만큼 음험하기 이를 데 없기는 할 텐데…….
적어도 우리 앞에서만큼은 그냥 좀…….
“나는 틀렸…….”
“엄살 피우시지 말고요. 이제 올라갔는데, 무슨. 폐하는 지금 두 사이클 쨉니다.”
“저, 저 사람은 탕약 소화시킨답시고 저러는 거고…….”
“실제로 탕약 소화가 잘되어서 이제 두 사이클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실력이 제일 안 늘었어요. 이러다 제일 먼저 가게 생기셨습니다.”
“하아. 시발…….”
이미 조지프에게도 저런 대우를 받을 정도로 허당이다.
전체적인 훈육을 맡고 있는 게 조지프이다 보니 다들 여기서만큼은 한 수 접어 주고 있다고는 해도 저렇게까지 막 대하는 건 제이미 경뿐이라는 걸 보면 그가 평소에 얼마나 흐물거리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저게 허허실실이라면야 진짜 무서운 사람이겠지만…….
잘려 나간 고환과 코카인을 떠올릴 때면 그냥 운 좋게 일이 풀려서 저기까지 된 게 아닌가 싶다.
제일 대운은 상속받은 것일 거다.
지위도 부도 물려받는 게 가장 빠르고 위력이 있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니까.
“그, 그래. 자네도 빨리 굴리게!”
“아,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윌리엄 4세에 비할 바는 아니다.
왕이다, 왕.
비록 영국 왕이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왕이라는 상징성은 어마어마하지 않나.
실제로 저 사람 눈 밖에 나 버리면 영국에서 정치하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 된다 할 수 있다.
물론 평소 성품이나 성격을 보면 역풍 맞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긴 하지만…….
“으…… 헌데 폐하…… 저는 이제…… 틀…….”
“안 돼! 나보다 먼저 죽는 건 허하지 않아!”
아, 격려가 선을 넘었다.
해서 내가 나섰다.
“폐하. 아무래도 제이미 경이 먼저 가긴 할 겁니다.”
열 살은 더 많이 먹었는데, 뭘 허하지 않는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지금 제이미 경 건강을 보면 내일 당장 간다고 해도 이상할 일이 없는데, 저대로면 우리 폐하도 오늘내일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안 된다.
-자네…… 자네가 그거 찔렀다며?
어제 헥헥대던 켄트 공작 부인의 기둥서방, 존 콘로이가 해 준 말이다.
폐하를 꼬시기 위한 방편으로 불렀던 건데 이제 보니 잘 불렀다 싶다.
다 알고 있었을 줄이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물론 모르쇠를 쳤지만 별 소용은 없었던 거 같다.
-하하…… 왕이 시키든가? 우리 오래 못 살게?
오히려 역효과가 났는데, 그래도 괜찮을 거 같긴 했다.
-웃기지 말게. 공작가의 힘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닌가? 우리…… 둘만이라도 알아서 수혈받을 테니, 건들지 말게.
계속해서 수혈을 받겠다고 해서 그랬다.
알아서 일찍 가시겠다는 소리 아닌가.
사실 아무리 운동하고 영양분 조절해도 약도 없는 병에 걸리면 먼저 가게 되는 법이다.
의사로서 그 이상의 병도 해결 가능하다고 하는 건 무리수다.
-그…… 알겠습니다. 건들지 않겠습니다.
-그래. 말이 통하는 상대니 다행이구만.
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최대한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내가 그렇게 정적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는데 왕이라는 사람은 부정 타게시리 저런 소리나 하고 있고…….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나는 갈 거라니.”
내 말에 방금 전까지 헥헥대던 제이미 경이 또박또박 불만을 토로했다.
저 사람이 저렇다.
하나부터 열까지 뺀질대.
옳게 된 사람은 절대로 저러면 안 되는 거다.
쉬운 길만 찾다 보면 결국에는 고환을 자르는 불상사가 나게 된다, 이 말이다.
“양심 있어요? 일흔도 넘은 분이 그럼…… 왕보다 늦게 가시려고? 이거…… 불충한 말씀 같은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자네가 갈 거라고 하면 그게 그렇게만 들리지 않는단 말이야.”
“그럼 말을 바꾸죠.”
“그건 안 되지! 나보고 죽으란 말인가!”
이번에는 왕이 난리다.
처음에는 러닝머신 10분 태워도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더니 이젠 체력이 좋아져서 그런가 20분째 타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너무 건강해졌다, 이건데…….
저러다 또 너무 오래 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드는 게 사실이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이야말로 영국의 최전성기인데 그게 좀 흐려질 거 아닌가.
나랑 친한 사람이라 좀 미안해지긴 하지만 아무래도 윌리엄 4세와 빅토리아 여왕을 비교하면 여러모로 윌리엄 4세 쪽이 처지는 것이 사실이라 그렇다.
“아뇨, 아뇨. 두 분 다 10년은 족히 더 사실 테니 걱정 마세요.”
“아, 예언인가.”
“믿겠네, 주님. 감사합니다.”
저런 반응도 걱정스럽긴 한데…….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하는 게 옳은 거 같다.
당장 어?
나부터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이 세상 아니겠나.
21세기에도 그랬지만 19세기는 진짜로 그렇다.
죽음이 도처에 깔려 있다…… 이 말이다.
‘지금 막 어디서 대형 재난이 발생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불만 해도 그렇지 않나.
천만다행으로 사상자는 거의 없었지만, 그거 진짜 옆으로 조금만 번졌으면 바로 주택가고 그랬으면 대재앙이다.
17세기에 있었다는 런던 대화재가 아직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기록상으로는 6명만 사망했다고 되어 있지만…….
당시 집을 잃었던 사람들만 해도 7만 명인데 6명이 말이 되나 싶다.
아마…… 지금도 그렇듯이 빈민들은 사람으로 안 쳐 줬을 가능성이 높을 거다.
쾅.
뭐가 되었건 우리 입소자들은 다들 건강이 증진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속으로 영 좋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문 열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놀라는 게 맞긴 했다.
이 시간에 여기서 왕 포함 귀족들 그리고 런던 실세들인 우리 부모님들이 운동하는 거 모르는 놈이 없는데 누가 감히 그냥 문을 열겠어.
“뭐야. 잉?”
웬 미친놈인가 하고 보니까 존 스노다.
자료 정리하라고 보내 놨던 놈이 얼굴이 하얘져서 왔다.
설마 약간 조작했던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을 거다.
놈은 내 제자고 나는 좋은 뜻으로 한 거…….
“큰일 났습니다! 다리가!”
“다리?”
뭔 다리?
아, 한국어로 하면 다리가 헷갈리는 단어가 맞는데 영어로는 아니다.
지금 말하는 다리는 브리지인데 강 건널 때 쓰이는 통로다.
“다리가 무너져서…… 지금 군인들이……!”
“군인들이……? 아니, 뭔 다리가…….”
훈련은 중지되었다.
사람들이, 심지어 대영제국을 지키는 군인들이 다쳤다고 하는데 뭔 비만 캠프란 말인가.
당장 회의를 소집하고 구조 요원들을 보내야 할 텐데, 다행히 내가 이미 이 자리에 영국의 주요 인물들을 다 모아 놓은 상태였다.
심지어 여긴 병원이었고, 런던 최고의 의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절묘하다, 이 말이다.
‘상태창!’
이게 우연일 리는 없고, 신의 섭리라는 생각에 상태창을 외쳐 보았다.
이만큼 나를 도울 거면 상태창 정도는 이제 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그랬는데 주기는 개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냥 하얗게 질린 존 스노만 있을 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가.”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아까까지만 해도 주님께 감사드리네 어쩌네 하고 있던 폐하였다.
뭐니 뭐니 해도 왕은 왕이다.
표정은 좀 짜증이 섞여 있지만 힘들어서 그런 것이지 귀찮아서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무튼, 존 스노는 똘똘이답게 전해 들었을 것이 뻔한 이야기를 실감 나게 풀어 제꼈다.
“이게 말이 되나.”
요는 이랬다.
생각보다 빨리 골로 가 버린 청나라 때문인지 뭔지 역사보다 빠르게 그레이트 게임에 돌입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최근 맨체스터 근교에 있던 부대를 런던으로 옮겨 훈련 중이다.
이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런던은 나도 있고 리스턴도 있고 블런델이 운영하는 수혈 센터도 있다 보니 훈련하다 다쳐도 빨리빨리 대응이 되기 때문에 격렬한 훈련을 하려면 이 근처가 최고기 때문이다.
“다리가 행군하다가 무너졌다고……?”
“네.”
헌데 그 중 우리의 자랑스러운 레드 코트 1개 대대가 훈련을 마치고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가 출렁거리다가 무너졌다고 한다.
그나마 런던 브리지처럼 큰 다리는 아니긴 한데 그래서 더 문제다.
석조가 아니다, 그 다리.
“빨리 가게.”
“네, 폐하. 알아서 정리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 빨리 가서 내 백성들을 살리게!”
“네!”
해서 우리는 난데없이 출동을 하게 되었다.
불 난 이후 나름대로 준비한 앰뷸런스 용도의 마차를 타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