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1)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1화(421/505)
421화 앰뷸런스 [1]
마차라고 하면 거대한 차를 떠올리기 마련일 거다.
실제로 일반적인 차보다 크긴 하다.
말이 더 힘이 세서는 결코 아니고, 그냥 나무로 만들어서 덜 무거워서 그렇다.
그 말은 곧 너무 많은 짐을 싣게 되면 말도 힘들고, 녀석이 뻗게 되면 결국엔 주인도 다들 힘들어지게 된다는 걸 뜻한다.
“이게 될까?”
“여긴 사람 마부만 탈 텐데.”
“그래 뭐…… 근데 빈 마차들은 왜 가나?”
“급한 환자 있으면 끌고 오든지, 아니면 저 위에서 처치하려고요.”
“그런 식으로 하면 연습이 되겠나? 언제고 맨바닥에서 처리할 일이 있을 텐데.”
“제가 형님 머리도 바닥에서 했으면 좋겠습니까?”
“으아.”
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방금 머리 공격에 눈앞이 캄캄해진 리스턴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이건 좀’이라고 했던 일이었다.
21세기였으면 사람 살리는 일에 돈이 문제냐는 말이 통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돈이면 인마 내가 훨씬 더 중한 일에 쓸 수 있다는 말만 나온다.
사실상 사람 생명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시절이 아니란 얘기다.
당연한 얘기긴 하다.
소중하게 여겼으면 런던이 이 모양 이 꼴이 아니지.
다그닥.
하지만 나는 이미 조선 주술사의 자리를 공고히 한 지 오래인 데다가 돈이 전부인 시대이니만큼 내가 내 돈 쓴다는데 뭐라 할 사람도 없다 보니 별문제 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차를 무려 6대를 끌고 사고가 난 지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만한 행차는 켄싱턴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이나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들 옆으로 비켜섰다.
심지어 선두에는 리스턴칼을 지붕 위에 맨 앰뷸런스가 서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앞길을 막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두두두두.
말이란 동물은 신기하게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나는 동물이라 그런가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물론 이때 정신 못 차리고 더 몰아붙이면 금세 지쳐서 나뒹굴게 되긴 한다.
인간이 괜히 노동에 말 대신 소를 쓴 게 아니라는 걸 여기 와서 알았다.
지구력이 확실히 달린다.
말을 쓰느니 그냥 교도소에 넘쳐나는 죄수들을 써먹는 것이 훨씬 나을 거다, 이 말이다.
“워, 워.”
하지만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위치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데에는 역시 말만 한 동물이 없긴 하다.
우리는 금세 런던 교외에 위치한 이름도 모르겠는…….
이제는 무너져 내린 다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군부대는 21세기에도 항상 구석탱이에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보니 오가는 사람도 군인 외에는 거의 없는 곳이었다.
‘뭔…… 계략에 당했나?’
나는 우선 마차에서 내려 사고 지점을 내려다보았다.
목재로 지은, 그렇다 해서 흔들다리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 다리의 잔해와 함께 여전히 군인들 수십 명이 넘게 가파른 계곡 사이에 떨어져 있었다.
그중엔 딱 봐도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이쯤 되면 존 스노가 감히 국왕이 포함된 여러 유력자들의 캠프에 들이닥쳤던 것도 이해가 간다.
“하필 행군 인원이 딱 중간에 있을 때 무너진 모양인데…… 이거 어쩐다?”
리스턴은 그의 뛰어난 직관으로 무너졌을 당시를 떠올리더니만 바로 내려가려다 멈추어 섰다.
다리가 엄청 긴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게 쉬워 보이진 않아서 그랬다.
게다가 그냥 내려가는 게 목적이 아니지 않나.
가서 처치를 하든 아니면 떨어진 사람을 데리고 올라오든지 해야 했다.
어쩐지 끊어진 다리를 두고 양옆으로 군인들이 그래도 몇백은 됨직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려가서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몇 없다 했다.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아, 저기!”
그때 조지프가 그나마 군인들이 오르내리고 있는 샛길 하나를 발견했다.
말 그대로 샛길이다 보니 딱 사람 하나가 오르내리면 그만인 길이었다.
“사고가 난 지는 얼마나 됐지?”
이미 환자인지 시신인지 모를 것을 둘러메고 올라오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우선 옆에 있던 아무 장교를 붙잡고 물었다.
상대는 이 노랭이는 누군가 하다가, 리스턴의 기괴한 머리통을 확인하자마자 끼약 하더니 내게 사과부터 했다.
“모, 몰라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건 괜찮고. 얼마나 됐지?”
“아직 한 시간은 안 됐을 겁니다. 근데 이게…… 구조할 만한 길이 저기뿐이라…… 인원은 많은데…….”
“한 시간이라. 음.”
한 시간은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긴 하다.
막말로 게임하다 보면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가는 시간이기도 하잖아.
하지만 응급 상황에서 한 시간은 종종 영겁에 비유되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이 경우에는 이미 3분지 1 정도는 사망했다고 봐야 할 터였다.
지금 당장 죽은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건 아니고, 앞으로 죽을 사람이 그렇다는 얘기다.
다리가 무너진 마당에 다행이니 어쩌니 하는 것이 좀 우습긴 한데, 다행히 그렇게 높은 곳은 아니라 그런 거다.
“일단 저 사람들 올라오면 한번 보고 우리가 내려가죠.”
“어, 그러지.”
“형님은 그냥 바로 수술해야 할 수도 있어요.”
“아…… 그래. 근데 자네가 직접 내려갈 필요가 있나? 이 친구들한테 계속 구조하라고 하는 게 나을 텐데?”
리스턴의 말이 어찌 보면 맞긴 하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구조의 스페셜리스트는 아니니까.
애초에 그런 쪽으로 훈련받은 적도 없다.
아, 군대 가서 ‘살려야 한다!’ 외치면서 받은 적이 있긴 한데…….
그냥 평지에서 쓰러진 인형을 들것에 싣고 뛰는 걸 현실에 적용하는 건 많이 어려운 일이다.
실전 같은 훈련이라는 포스터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에 비해 119 대원들은 대단하지.’
그 사람들은 정말로 구조의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다.
일단 체력부터가 어지간한 성인 남성은 혼자서 어깨에 지고 구해 올 수 있을 정도로 좋다.
그냥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정말로 데리고 나오더라고.
그뿐만 아니라 각종 험지에서 기동하는 법도 익히고, 응급처치에 대해서도 배우고 훈련받는 만큼 현장에서 가장 믿음직한 동료들이라 할 수 있다.
‘얘들은 119가 아니라는 게 문제야.’
19세기엔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의사들조차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가만 냅두면 내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골로 보낼 확률이 90% 이상에 수렴할 정도이니 일반 군인들은 어떻겠나.
지금도 끌고 올라오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면 참…….
아니, 들것도 없이 그냥 팔다리 한 짝씩 잡고 올라오면 어쩐단 말인가.
등이 바닥에 쓸리니까 지저분해지네 어쩌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저 이송 때문에 환자의 척추와 경추 부상은 끝장이 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뇨. 제가 내려갈게요. 조지프, 네가 와.”
“어, 나? 난 수술…….”
“아니, 네가 같이 가야 해. 그리고…… 거기 손 남으면 오시죠들.”
“아, 네. 영광입니다.”
해서 내가 내려가야만 했다.
다행히 마차에 싣고 온 들것이 무려 10개도 넘어서 부족할 일은 없을 거 같았다.
아무튼, 나는 일단 지금 끌려온 환자들부터 살폈다.
하나는 이미 시신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사람 살리려면 우리가 다 달라붙어도 1시간은 더 걸려.’
곧 죽을 거 같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기는 좀 그랬기 때문에, 일단 나는 칼로 목부터 그었다.
그러곤 역시나 앰뷸런스 안에 있던 철로 된 관을 쑤셔 박았다.
이렇게 하면 이송할 때까지 숨은 붙어 있을 터였다.
그 뒤는 병원에 있는 의사에게 달렸는데…….
‘미리 명복을 빕니다.’
나는 잠시 기도를 한 후, 나머지 환자들을 살폈다.
골절이 생긴 환자도 있고, 그냥 타박상에 그친 사람도 있었다.
“여긴 저기서 대기. 여긴 저쪽으로.”
빈 마차는 총 네 대였다.
하나는 시신, 하나는 급히 이송, 하나는 이따 후송, 하나는 일단 휴식용으로 쓰기로 했다.
내 나름대로 환자 분류를 했다는 건데 직관이 뛰어난 리스턴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붉은 판 붙은 마차에 있는 환자들도 죽는 건가?”
아직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을 안 한 상태인데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확실히 19세기 사람들이라고 해서 딱히 지능 차이가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단지 축적한 지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지만 그 지식의 차이가 결국,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만들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네, 아무래도요. 하지만 살 수도 있어요. 병원에서 제대로 처치만 하면.”
“처치를…… 우리도 없는데 할 수 있나……?”
“그래서 평소에 강좌를 여는 건데 아직 듣는 놈이 적으니, 하는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원장님은 남았으니까 좀 낫긴 할 거예요.”
“그래, 원장님은 뭐…… 아무튼, 나는 그럼 뭘 하지?”
리스턴은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였다.
골절된 사람을 처치할 수는 있겠지만, 말 그대로 처치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보니 일단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
안된 말이지만 아직까지 리스턴은 절단용 기계라고 생각하는 게 옳았으니.
“일단 위에서 대기해요. 제가 밑에서 필요해 보이는 처치를 종이에 적어서 올릴 테니까.”
“아하. 그거 좋구만.”
나는 그렇게 대강의 교통 정리를 끝내고는 밑으로 향했다.
등에 멘 배낭에는 나름의 응급처치 도구가 들어 있었는데,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쓸 일이 없었으면 하게 되었다.
위에서 볼 때는 그냥 가파른 길이구나 했던 곳이 완전히 흙바닥이라 그랬다.
어찌나 먼지가 뭉게뭉게 오르는지, 여기서 처치하는 건 아무리 내가 한다고 해도 처치가 될 거 같았다.
환자 ‘처치!’라니…….
“조지프.”
“응.”
“일단 숨 붙은 사람부터 찾아. 죽은 사람은 신경 쓸 거 없어.”
“어…… 그, 그래?”
“그래. 일단 살릴 수 있는 사람부터 살려야지.”
“아, 알았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조지프와 같이 내려온 병사들을 절벽에 풀었다.
나 또한 비탈길에서 가까운 사람들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밑에 깔린 사람들은 떨어질 때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을 뿐만 아니라, 위에서 누르는 힘도 있어서 살리긴 어려울 거 같았다.
무엇보다 구조하려면 일단 위에 사람들부터 빼내야 할 터였다.
“여깄다! 숨 쉰다!”
“당겨!”
“당겨!”
문제는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란 점이었다.
“잠깐! 내가 보기 전에는 당기지…… 아.”
“아, 숨 안 쉰다.”
환자는 그냥 막 다루면 안 된다.
특히 부상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아까도 그러더니…… 왜 더 버티지 못하고…….”
“왜들 이렇게 약한가.”
내가 봤을 땐, 아마 목에 문제가 있는 상태였을 텐데 빼내겠답시고 거길 잡아당겼기 때문에 바로 간 거다.
하지만 조지프를 비롯한 모두는 그냥 운이 없어서 또는 약해서 간 걸로 여기고 있다.
사실 최근에 비만 캠프를 진행하면서 건방진 생각, 그러니까 이제 19세기 의학도 꽤나 올라온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반성한다.
아직…… 멀었다.
그게 어느 분야가 되었건 간에 자세히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부족하기만 한 곳이 바로 여기 19세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