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2)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2화(422/505)
422화 앰뷸런스 [2]
“다들 동작 그만!”
더 놔두다간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 전원 사망하게 생겼다.
누가 그랬던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이건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원래 좋은 뜻으로 한 일이 다 좋은 결과를 내는 건 아니지 않나.
다른 건 몰라도 의학의 역사는 실로 그렇다고 본다.
“어엇.”
“왜, 왜요?”
자랑인데, 지금 나의 권위는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런던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의사인 데다가 마차까지 저렇게 끌고 오지 않았나.
앰뷸런스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지금 저 안에 차곡차곡 실리고 있는 시신과 사람들을 보면 고맙긴 할 터였다.
심지어…….
놀랍게도 앰뷸런스라는 명칭은 없었지만 내 전에도 이런 식으로 마차를 운용했던 적이 있다고 하니, 아예 낯설지만은 않을 거다.
‘콜레라 마차…….’
물론 그땐 그렇게까지 고맙진 않았을 거 같다.
이름에서 딱 느낌이 올 텐데, 아무래도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병이 콜레라다 보니 그렇게 발생한 환자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병원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마차라서 그렇다.
전염병인데 한꺼번에 사람들을 모아 두면 어찌 되겠나.
콜레라가 아닌데 오진되어 누워 있던 사람은 당연히 걸려서 죽었을 거다.
그렇다고 아예 모아 두고 방치했던 건 아니긴 한데…… 차라리 방치했다면 좋을 거 같다.
아편 먹이고 물 제한하고 해서 다른 별명이 시신 마차였으니.
치료하던 사람들마저 딱히 보호장구도 없이 균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마차 위에 있었기 때문에 죽어 나갔다.
‘우린 다르지.’
일단 마차 소재부터 다르다.
바닥재 마감을 균이 자라기 쉬운 목재가 아니라 고무 장판으로 했다.
-납이 있잖아. 방수도 되고, 녹도 안 슬고. 모양 만들기도 좋고. 고무는 이거 약간 바닥이랑 들뜨는데?
리스턴은 아예 납으로 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함으로써 내 속을 뒤집어 놓음과 동시에 골 아프게 만들었지만 마부가 납은 무거워서 말이 다 뒈질 거라고 해서 간신히 넘어갈 수 있었다.
“다들 내 지시에 따라 구조하자고! 일단 내 뒤로 모여!”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큰 차이는 아직 ‘내가 있는가 없는가’일 수밖에 없다.
내 말에 다들 일단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모였다.
나는 그 사이에 차분히 선 채 병사들의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운 나쁘게 바닥에 깔린 이들은 이미 가망이 없었다.
그에 비해 위에 얽혀 있는 이들은 상태가 그나마 나았는데, 그중에서도 머리나 흉부, 복부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떨어진 이들은 어디에 낑기거나 다친 부위에 힘이 안 들어가서 스스로 못 나오는 것이지 일단 꺼내 놓기만 하면 살 거 같았다.
‘좋아…… 대강의 분류는 끝났어.’
우선 구조 대상이 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21세기였다면 후속 조치를 믿고 좀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긴…….
나 말고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수비를 믿을 수 없는 투수처럼 말이다.
“자 나 하는 거 보고 잘 따라 해!”
원래 같으면 현장 출동도 거의 안 한다.
누누이 말하지만 구조의 스페셜리스트들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처럼 대형 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의료진들도 출동하지만, 이때도 이미 구조가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처치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람 손이 너무 모자란다면야 같이 구조를 하기도 하는데 대개는 방해만 된다.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의사들이 진료실이나 연구실 또는 수술방에 처박혀 있다 보니 몸 쓰는 데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다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군대 훈련소 가잖아?
가관이다.
밥 먹으러 가다가 발목 부러지고 그래.
‘후.’
이런저런 연유로 열외 인생을 살아왔었지만 여기서는 뒤가 없다 보니 내가 나서야 했다.
“하면서 설명할게. 이 환자들 기본적으로 저 위에서 떨어진 거지?”
“네.”
나는 우선 제일 구조하기 쉬워 보이는 사람부터 빼내기 시작했다.
딱 봐도 발목 어딘가가 상한 것으로 보였는데 의식이 있었다.
“으…… 피영시인…… 가, 감사…….”
“일단 숨만 제대로 쉬고 있어요. 아무튼, 낙상이란 말이야.”
“네.”
떨어지면서 굴러서 다친 거 같은데 지금은 다른 시신들 밑에 다리가 깔려 있었다.
시신을 치워야 한다는 건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서 조지프 등을 동원했다.
물론 입은 떠들면서였다.
“떨어질 때 어디 한군데만 다치나?”
“아…… 그건 아닙니다.”
외상 환자에 대한 구조나 처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다발성 부상에 대한 이해다.
자 이제부터 내가 너 팔 쳐서 부러뜨릴 거야? 와 같은 상황이 아닌 이상 팔만 다치는 외상 환자가 어딨나.
인턴들이 흔히들 하는 실수가 교통사고 환자를 볼 때 그 사람이 아프다고 하는 부위만 보는 거다.
본인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심각한 부상이 영 엉뚱한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둬야 한다.
“그래, 가령 이 환자를 보자. 지금은 발목만 다친 것처럼 보이지만…… 떨어지면서 배나 머리 등이 부딪쳤을 수 있지? 그럼 어떡해야 해?”
“거기도 치료를 합니다!”
조지프의 말에 나는 간신히 한숨을 참았다.
강의 시간이었다면 가차 없었겠지만 지금은 현장이라 그렇다.
무엇보다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환자가 있다.
환자들이란 어쩔 수 없이 현 상황에서만큼은 가장 연약한 존재들이고, 당연히 배려가 필요하다.
지금도 아프고 불안할 텐데…….
무엇보다 그걸 해결시켜 줄 수 있는 약도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 저 위에서 해야지. 일단 지금은 다친 부위가 더 다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지.”
“그럼 빨리 빼…….”
근데 그게 쉽지가 않다.
조지프는 바람보다 빠르게 자기 뒤통수를 후린 나를 바라보고 있고, 다른 모두는 그런 우리를 모른 척하고 있다.
다들 기회를 준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그냥 말을 이어 나갔다.
“다쳤는데 빨리 빼면 안 되지. 이거나 잘 들어 봐.”
“아, 네.”
조지프는 힘이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내가 할 때는 꿈쩍도 안 하던 시신 더미가 조금 위로 들렸다.
아마 리스턴이었다면 한 손으로 밀어젖혔을 거란 생각과 함께 잠시 아쉬워졌지만…….
구조 요원으로 쓰기엔 그의 절단술이 너무 아깝다.
이 환자도 그렇다.
“어이구.”
시신 더미에 깔려 있던 발목만 조금 분질러지고 만 게 아니라 아예 정강이뼈가 부서진 채로 살을 뚫고 나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방법이 없다.
잘라야지.
“으, 으아아아!”
나야 차분하게 말했지만 환자는 자기 다리다 보니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어어.”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해진 군인 동료들과 조지프가 성급히 나서려는 것을 말렸다.
“일단! 흔들리지 않게 들고 온 들것 위로 옮겨야지!”
“아…….”
“머리나 이런데 우리가 아직 모르는 부상이 있는데 막 하다가 더 다치면 어쩌려고!”
“으아아아!”
이미 환자는 패닉에 빠진 상태다 보니 거기서 더 몸까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아서 소리까지 질렀다.
하여간, 나는 머리를 잡고 조지프가 양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다른 병사는 다리 쪽을 들어서 최대한 빨리 들것으로 옮겼다.
그러곤 들것에 달린 밧줄로 환자의 몸통을 묶었다.
“으, 아, 아파!”
그렇지 않아도 비탈길을 올라가야 해서 떨어질 위험이 있는데 이렇게 난동까지 부리면 더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올라가니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서 자르라고 해.”
“아, 안 돼! 내 다리!”
“그리고…… 상태 보다가 블런델 오면 수혈하라고 하고.”
“네!”
나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아까 리스턴에게 말해 놨듯 들고 내려온 쪽지 중 붉은색 쪽지에 대강 갈겨 써서 환자의 가슴팍에 끼워 놨다.
붉은색 낼 만한 염료가 아직 없어서 수은으로 만들었다는데…….
물감을 직접 다루는 게 아니라면 중독까지 가진 않을 거 같아서 그냥 쓰고 있다.
색을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알아보니까 거의 모든 물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물감이 중금속이더라고.
그러니까 그냥 이건 이 시대에 태어난 업보라고 보면 될 거 같다.
“자, 다음…… 음.”
나는 그렇게 환자 상태에 따라 녹색과 붉은색 쪽지를 이용해 분류를 해 준 후 위로 보냈다.
원래는 검정과 노랑도 있어야겠지만 지금은 별 의미가 없을 거 같아 관두었다.
노랑이랑 붉은 거랑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솔직히 찰과상으로도 죽을 수 있는 시대인데 뭔 놈의 지연 응급이란 말인가.
하여간 그렇게 두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 밑에는 시신과 정말로 곧 시신이 될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숫자는 대략 30여 구 정도 되었다.
자력으로 이미 탈출했던 사람들 100여 명을 제외하면, 대략 70명가량을 구조했다는 얘기였다.
‘시발…… 진짜 개힘드네…….’
물론 70명을 다 우리가 구조했다는 얘긴 아니다.
경한 환자들은 아주 약간의 도움만으로 낑겨 있던 곳에서 빠져나와서 스스로 위로 향했다.
들것으로 옮겨야 했던 환자는 대략 20명 정도였다고 보면 된다.
사실 그것도 너무 많은 거다.
19세기는 아직 자동차가 없으니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이런 대형 재난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다리가 무너질 줄이야.
‘정말 한 치 앞도 알기 어려운 시대로구만.’
나는 간신히 지친 몸을 달랜 채, 병든 수캐처럼 헉헉대며 다시 위로 올라왔다.
“아.”
그런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또 하나의 지옥도였다.
‘그러고 보니 거의 다 절단 환자였지…….’
예전과는 달리 나름대로 청결과 위생에 대한 개념이 잡힌 리스턴이다 보니 자른 다리나 팔을 한쪽으로 모아두긴 했다.
그러나 옮기다 떨어진 건지 뭔지 모를 팔다리들이 바닥 이쪽저쪽에 떨어져 있기도 했고, 그 과정에 이리저리 흩뿌려진 피와 고통에 울부짖는 환자들까지…….
“어, 왔나! 거의 다 살렸네!”
그 와중에 옷 갈아입거나 씻을 틈이 있었겠나?
리스턴은 말 그대로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가리키고 있는 마차에는 울부짖기는 할지언정 여전히 살아 있는 환자들이 모여 있었다.
안색이 파리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블런델이 급조한 빈민들을 이용해 수혈을 시도하고 있었다.
“아, 왔나! 역시 자네야! 생각보다 많이 살겠어!”
수혈도 너무 부리나케 하다 보니 힘든지 블런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피 웅덩이 사이로 난 바퀴 자국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미 마차 두 대는 출발한 모양인데 열 명도 넘게 살리긴 한 거 같았다.
그 말은 곧 우리가 구조했다고 믿은 이들 중에 죽은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들은 다른 마차 위에 쌓여 있었는데 말 두 마리 가지고 이동할 수 있는 무게는 아닌 거 같았다.
전생 포함해서 이만한 죽음을 한 번에 목도하게 된 것은…….
그리고 이렇게까지 끔찍한 현장을 보게 된 것은 처음이다 보니 말 그대로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