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3)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3화(423/505)
423화 앰뷸런스 [3]
마차 천장에 리스턴칼을 매단 마차를 필두로 해서 줄줄이 다른 마차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런던 시민들은 그 마차를 사이에 두고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사삭 비켜서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스턴칼만 해도 어마어마한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그 뒤로 오는 마차에 실린 환자들 또한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보이고 있어서 그랬다.
일단 복장들이 다들 레드 코트, 즉 대영제국 군복이었다.
그 말은 곧 세계 최강 대국(프랑스를 제외하면) 영국군이라는 얘기가 되는데 그런 이들이 이렇게 다쳐서 왔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나.
“이게 무슨…….”
“리스턴이 저랬나?”
“그 사람은 런던 제일검인데 왜 그랬겠어.”
“하지만 저 사람들 팔다리를 봐…….”
“어……? 다들……?”
“이거 설마 반란인가?”
여럿이 수군거리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는 참 어이없는 대화도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아주 틀린 소리는 또 아니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저 사람들 팔다리 자른 게 리스턴이긴 하잖아?
게다가…….
‘이대로 런던을 접수하는 것도 꿈은 아닐 수도 있지.’
지금 영국 수뇌부는 다 내 손아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한 가건물에 갇혀 있는데, 안에도 당연히 총으로 무장한 레드 코트들이 몇 있지만 그 정도는 리스턴까지 갈 것도 없이 내 주술 한 방이면 끝이다.
실제로 주술을 부리겠다는 건 아니고 그런 시늉만 해도 다들 총 집어 던질 거다, 이 말이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지금도 슬슬 라스푸틴에 준하는 인물이 되어 가고 있는 거 같다.
-지금 윌리엄 4세는 시체고 티에피영이 그 시신을 부리는 거라더라.
-심지어 런던 제일검 리스턴도 머리털 대신 바늘이 꽂혀서 티에피영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더라.
-제이미 경은 숫제 티에피영을 숭배하는 인간이라더라.
어디 멀리 갈 것도 없이 동네 술집 조금만 뒤지면 이딴 얘기를 아주 진지한 얼굴로 떠들어 대고 있는 술꾼 한두 명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빈민가 놈들도 아니고 배울 만큼 배운 놈들도 그러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라스푸틴도 사실…… 황실의 혈우병 환자들을 고쳐 주겠답시고 접근했다는 점이다.
‘의사’를 사칭했다는 건데…….
나야 의사가 맞지만 역사가들이 볼 때는 충분히 의사를 사칭한 주술사이지 않을까?
“미친놈들아! 이건 사고야! 우리가 살린 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창밖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으아아아.”
“사고 당한다!”
“살림 당한다……!”
다들 공포에 질린 채 도망가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리스턴칼 매단 시뻘건 마차에 타고 있으니 뭘 외친다고 해도 무섭게만 들릴 테지.
“뭐, 내가 자른 건 맞지 않나.”
해서 상심한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화를 잘 낼 거 같이 생긴 사람이 이해를 해 주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하하…… 나중에 풀면 된다네. 나는 기억력이 좋아.”
“아.”
이제 보니 이해를 해 준 건 아니고 그냥 언제든지 되갚아 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강자의 여유랄까.
나도 이런 것을 배워야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기억력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 보니 보완할 점이 필요했다.
‘화가를 데리고 다녀야겠네.’
몽타주가 있으면 복수하기 좋을 거 같았다.
얼굴을 알아봐야 이 넓고 복잡한 런던 바닥에서 무슨 수로 알아낼까 싶겠지만, 뒷골목을 꽉 잡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도 내 말 한마디면 껌뻑 죽을 놈이 한둘이 아니다, 이 말이다.
“근데 저기 있는 사람들은 저거 살릴 수 있어서 데리고 가는 건가?”
아, 우리 마차 뒤로 따라오는 마차는 총 세 대다.
시신이 실린 마차는 일단 거기에 두었다.
무작정 끌고 오기엔 너무 무겁기도 했거니와 좀 끔찍해서 그랬다.
게다가 지금 런던 상황에서 저만한 시신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건 보건 위생상으로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영안실이 있길 하나 뭐가 있길 하나…….
군인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없다.
“해 봐야죠.”
해서 리스턴이 말하는 마차는 시신 마차는 아니다.
그러니까 주술로 시신을 되살릴 수 있냐는 물음은 아니라는 거다.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런던 바닥뿐만 아니라 내 일행이나 제자 중에서도 그렇게 믿고 있는 놈들이 있으니까.
아무튼, 나는 지금 따라오고 있는 마차에 실린 이들을 떠올렸다.
다른 마차는 과적 상태지만 거긴 아니다.
기껏해야 셋만 있다.
“앨프리드, 조지프, 콜린이 제대로 보고 있을까?”
“그건…… 자신 없는데, 어차피 이럴 때 아니면 저런 중환자를 보는 것도 어려워요.”
“목에 구멍이 났으니 뭐…… 숨이나 불어 넣어 줘야지.”
“그게 핵심이죠. 제가 있어도 지금은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붉은 쪽지 붙은 사람들인데…….
리스턴의 말대로 기관절개술을 해서 목으로 숨을 쉬고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그냥 두면 숨을 쉴 수 없으니까.
하나는 턱뼈가 부러졌고, 하나는 코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피가 뒤로 줄줄 넘어가고 있다.
또 다른 한 명은 가슴으로 떨어진 것인지 뭔지 폐 한쪽에 호흡음이 없어서 기흉으로 진단했다.
‘셋 다 죽어도 이상할 게 없지.’
21세기였다면 아마 다들 살 거다.
21세기였어도 죽을 사람들은 애초에 포기했거든.
하지만 여긴 19세기, 죽음이 도처에, 그것도 시시각각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꼭 그런 시각으로 보지 않아도 끔찍해 보이는 것이 런던 전경이다.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회색빛이 감도는 도시는 자세히 뜯어보면 나름 이쁘게 지어 놓은 건물도 전반적으로 음울해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 경관을 보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튀어 나왔다.
“그나저나 불도 나지 이런 사고도 있지…… 요새 말도 아니네요.”
“음. 그렇지. 사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언제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할 일은 아니야.”
“그렇긴 해요.”
“무슨 수를 내긴 해야 할 텐데…….”
리스턴의 얼굴엔 그야말로 걱정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무슨 수를 굳이 묻지는 않았다.
X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뻔해서 그랬다.
‘기껏해야 내쫓을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누누이 말하지만 지금 영국에서 빈민은 사람이 아니다.
정당한 법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가축만큼의 보호만 받아도 다행일 지경인데…….
뭐 일반적인 런던 시민들에 비하면 그래도 리스턴은 의사다 보니 조금이나마 나은 편이긴 하지만 저 입에서 나올 게 그렇게까지 인도적일 거 같진 않다.
해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일단 이 앰뷸런스를 좀 더 개선하긴 해야겠어요.”
“이거?”
“오늘 느끼지 않았어요? 이거 아니었으면…… 아마 훨씬 많이 죽었을걸요.”
“그건…… 확실히 그렇긴 하지. 흐음…….”
내 기대만큼은 못 살리긴 했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내 기대가 21세기식 보정을 받고 있어서 그런 것일 뿐이다.
19세기식 사고를 해 보자면…….
네? 다리가 무너졌는데 산 사람이 있습니까? 따위의 답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는 다치면 보통 죽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제대로 된 구조 활동도 불가능하기에 그렇다.
일단 심폐소생술 교육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히 중세는 넘어왔기 때문에 그걸 금기시하지는 않지만…….
법적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아직 사람들의 인식은 중세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다 보니 꺼리는 게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라는 게 발전할 수 있겠나.
-아…… 익사하면 발목 묶어서 나무에 매달아 둡니다.
-아니면 뭐…… 말 등에 태워서 굴리거나요. 떨어지면 하는 수 없는 일이죠. 이미 죽었으니.
혹시 하는 기대는 조사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처음엔 무슨 벌칙 같은 건가 싶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걸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 시기에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
보통은 그 전에 가기 때문이다.
또 익사 사고도 보기 어려운데, 템스강에 빠지게 되면 익사가 아니라 질식사가 되었건 중독사가 되었건 간에 뭔가 다른 이유로 가기 때문이다.
해서 문헌이나 구전 혹은 그림을 통해 배웠다.
‘아니, 그렇게 하면 확실히…… 익사 사고에서는 살아날 수도 있겠어.’
아마 여기 떨어진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였다면 이 미친 새끼들하고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나도 이젠 어엿한 19세기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의도 또한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보니 이런 생각도 가능하게 되었다.
거꾸로 매달면 기도에 차오른 물이 튀어나올 거 아닌가.
누르는 힘이 없으니 대개는 안 나오겠지만.
또 심장이 멈춘 상태라면 절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높은 확률로 되살아나긴 어려울 거긴 했다.
‘뭐…… 다 부족하지만 응급처치가 진짜 어렵지.’
이런 상황에서 앰뷸런스를 운용하자는 내가 미친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친 세상에서는 미쳐야 뭔가 할 수 있는 법이다.
“문제는 우리가 매번 갈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거야 당연하지. 오늘만 해도…… 우리 없어서 병원 마비되었을걸.”
당뇨는 이제 어느 정도 자동화되어서 주사를 놓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
소믈리에부터 해서 주사 치료까지 다들 믿을 수 있는 인력이 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술적 처치는 아직 어렵다.
특히 원장님이 창안해 내신 인두 소작술은 아직 나나 리스턴 외에는 사용하면 안 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혈 또는 조직을 들러붙게 하는 용도로 써야 하는데 어찌 된 게 절대다수의 의사들은 그걸로 환자 입을 열게 만들고 있거든.
-으아아아! 다 불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마취를 해 놓고 하는데도 어느샌가 깨서 이러고 있다고 들었다.
무리도 아니긴 하다.
우리가 하는 마취가 21세기에서 하는 마취는 아니잖아.
물론 아예 과하게 가스를 틀어 두면 미동도 안 하게 만들 수 있긴 한데, 그랬다간 태반이 영원히 미동도 못 하게 되기 때문에 적당한 용량만 튼다.
그러다 보니 다른 수술을 할 때도 얼마간 깰 때가 있는데, 대개 장기 감각은 둔하니까 넘어가는 거라고 보면 된다.
헌데 그런 상황에서 막 지진다?
그건…… 고문이다, 그냥.
“구조대원을 뽑고 가르치면 어떨까요?”
“음…… 대학생들이 이 힘든 일을 하려고 할까?”
“꼭 대학생들 아니더라도요.”
“학생이 아닌데 뭘 배울 수 있겠나. 게다가 구조라는 게 오늘 보니 일정 부분 의학이던데…… 그냥 학생들한테 시키면 어때?”
해서 공백을 메워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
제아무리 의사에 대한 대우가 개판인 시대라 해도 학자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그렇다.
거기에 더해 학생을 무슨 소모품 대우하는 문화도 있다.
이거야 뭐 21세기 대학원에서도 유구한 전통을 지키기 위해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일단 제가 더 생각해 볼게요.”
“그래. 그동안에는 학생들 시키자고. 현장도 좀 보고 해야 애들이 배우지?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애들이랑 다른 파트 애들이랑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네.”
“음.”
듣다 보니 또 리스턴 말이 그럴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학생은 돈을 내는 사람들이지 돈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네.”
“오.”
아니, 맞는 거 같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