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4)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4화(424/505)
424화 앰뷸런스 [4]
구급 시스템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사고 수습이 우선이었다.
전생에 살던 대한민국에서도 참사라고 할 만한 사고가 꽤 있었다 보니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삼풍 백화점부터 해서 성수 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 등등…….
그때마다 한국에서는 늘 책임자부터 찾아서 조지곤 했다.
그게 불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잘못한 놈에게 벌을 주지 않으면 다른 놈들이 뭔 생각을 하겠나.
일벌백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건데…….
‘더 중요한 건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파악하고 앞으로는 적어도 같은 참사가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거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게 쉬웠으면 반복적인 참사가 일어났을 리가 없다.
하지만 뭐…….
“그렇게 해 주십쇼, 폐하.”
“어…… 그러지. 내 철저히 진상 조사에 나서겠네. 우선 현장에 있던 군인들하고 다리 만든 놈들 다 불러와.”
엄밀히 말하면 내가 할 일은 아니다.
한 사람이 다 할 수 있으면 전문가라는 존재가 왜 있겠어.
각기 자기 분야에 있어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괜히 이놈 저놈이 붙어서 한마디씩 보태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해서 나는 폐하께 무거운 짐을 던져 놓고는 다시 환자를 보러 갔다.
“흠.”
셋 다 정말이지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같으면 이미 저승으로 떠났을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목에 구멍 안 뚫어 놨으면 죽었다, 진짜로.
“헥헥.”
“헉헉.”
아, 참고로 이 신음은 환자들이 내는 건 아니다.
나의 애제자들이 내고 있는 거다.
벤틸레이터…… 먹고 뒈지래도 없는 시대 아닌가.
모두 수동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풀무질을 하고 있다.
그나마 전보다는 나아진 거다.
그때는 직접 철에 대고 불었어.
문제는 마냥 나아졌지? 하고 말하는 것도 쉬운 상황은 아니라는 데 있다.
‘어차피 이 수술은 내가 해야 해.’
콜린이나 조지프는 아직 여물지 못했다.
녀석들이 메스 쥐고 진짜 수술에 나서려면 1, 2년은 걸릴 거다.
리스턴이야 꽤 대단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19세기식 외과 지식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가르친 부분에 한해서 또 그의 초월적인 직관으로 인해 파악한 일부 부분에 있어서는 썩 괜찮은 편이지만 이런 식의 다발성 외상 환자를 다루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안타까운 건 내가 분신술을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말은 곧 우리 제자들 중 운 나쁜 녀석은 내가 마지막 수술을 끝낼 때까지 내내 풀무질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말이다.
“좀만 고생하자. 일단…… 음. 선배부터 하죠.”
“아, 안 돼.”
“왜…….”
장유유서라는 말도 있잖나.
해서 나는 앨프리드를 골랐고, 당연하다는 듯 조지프와 콜린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선배가 제일 약하잖아. 자꾸 까먹는 모양인데 벌써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고.”
“그런 사람한테 소변줄도 꼽았나…….”
“아아…… 저는 이도 뽑았는데요.”
구라 마스터 평의 말이 잘 통하질 않았다.
사실 그럴 만한 상황이긴 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우리 마차를 보자마자 기겁하면서 길을 비켜 주었다고 해도 절대적인 거리가 있고, 마차의 속도도 우리 생각만큼 빠른 게 아니다 보니 벌써 한 시간도 넘게 저 짓을 하고 있거든.
하지만 어쩌겠나.
사람 살리려면 얼마간 희생을 해야 하는 법…….
“잡아 왔네.”
“아.”
리스턴이 바로 해결을 해 주었다.
생각을 해 보니까 그 희생, 꼭 우리가 할 필요는 없었다는 걸 깨우쳐 주면서였다.
그의 손에 붙잡혀 온 이들은 모두 우리 학생이었다.
내 담당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 담당이다 보니 그 교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어쩌겠어.
힘센 사람이 갑이지.
“좋아. 돌아가면서 하면 아무래도 좋지. 이거 본 적은 있지?”
“네, 네!”
학생들도 힘센 사람 무서운 줄은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풀무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장은 우리 제자들보다도 더 나을 거 같기도 했다.
요새 얘네가 나랑 너무 친해졌는지 군기가 빠졌거든.
언제 한번 특훈을 하긴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 사람 괴롭히는 방법이야 여러 개 안다.
안타깝게도 내가 좀 당해 봤거든.
의대고 병원이고 다 좀 빡센 곳이라.
“자, 그럼 수술을 해 보실까.”
물론 나는 환자가 늘 최우선인 좋은 의사다 보니 일단은 수술실로 향했다.
리스턴 덕에 팀 완전체를 이끌고서였다.
아, 스노는 빠졌다.
걘 내가 내과 의사로 키울 생각이거든.
그래서 끌려온 놈들과 함께 수술 예정인 환자들 상태를 살피도록 시켰다.
내과 의사들은 스스로 어떤 의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외과 의사인 내가 볼 때 내과의 가장 큰 의의는 우리가 제대로 수술할 때까지 환자 버티게 해 주는 것에 있다 보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어떻게든 숨만 붙여 놓으라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
나는 즐거웠던 대화를 추억하면서, 앨프리드에게 손짓했다.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보니 가스는 틀어야 하지 않겠나.
“네!”
뭐가 되었건 풀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앨프리드는 상당히 밝은 얼굴로 가스 밸브를 끼리릭 돌렸다.
나름 중환자용 농도도 연구가 되어 있는 지금이기에 녀석은 평소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밸브를 조정하고 있었다.
슈우욱.
가스가 새어 나오는 사이, 조지프는 평소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환자의 환부를 소독하고 있었다.
이미 여기까지 오면서 나름 물은 뿌려 둔 상황이었지만 다시 말하면 그 이상의 소독은 못 한 참이었기 때문에 꽤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살 수 있으려나…….’
물론 머릿속으로는 계속 이 생각이 들긴 했다.
코와 함께 입안도 뭉개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걸 대체 어찌한단 말인가.
하지만 각이 안 보인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안 될 일이다.
내가 당연하다는 듯 누리고 살았던 21세기의 현대 의학이 그냥 꽁으로 탄생했겠어?
다 지금처럼 답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조차 최선을 다했던 선배들 덕이라고 보면 된다.
무엇보다 나는 원래대로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일단 석션.”
“후.”
내 말에 고무관을 들고 서 있던 리스턴이 한숨을 쉬더니 환자의 피를 빨아들였다.
무작정 입으로 들어가게 만든 건 아니다.
나름 중간에 필터가 있어서 피가 들어가진 않는다.
물론 힘 조절이 안 되면 들어갈 수도 있는데, 리스턴은 무림 고수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 옳지. 보인다. 어…… 아이고. 이건.”
“왜. 죽겠나? 환자 죽을 거 같은데 이런 걸 시켰어?”
“아니, 죽을 거 같진 않은데…… 아니, 죽을 거 같긴 한데 살더라도 쉽지 않겠네요.”
“어떤데. 아이구, 이런 망할.”
피가 제거된 환부, 즉 얼굴 부분이 드러나자 나뿐만 아니라 리스턴, 그 외 거의 모두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코 한쪽이 뭉개져 있었으니까.
그쪽에서 나는 피가 뒤로 넘어가다 보니 숨도 막히고 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냥 코 뒤가 좀 망가져 있기를 바라 왔던 참이었으니 기대가 무너졌다고 할 수 있었다.
‘뭐……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21세기였으면 나름대로 얼굴 외양도 살려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짓 시도했다가는 프랑켄슈타인이 된다.
가뜩이나 최근에 작가가 자기 실명 밝히고 재출간해서 화제인데…….
내가 그 소설 보고 영감을 얻어서 실제 사람을 가지고 그런 짓을 했다는 소문이 돌면 어쩐단 말인가.
“펜치.”
“여기.”
해서 나는 외양 개선을 포기한 채 무너진 얼굴 그대로 들이 파기 시작했다.
이미 뼈가 다 부러진 데다가 애초에 얼굴 안쪽 내측 뼈는 얇다 보니 펜치만으로도 제거하기가 수월했다.
물론 중간중간 피가 무섭도록 빠르게 차올랐기 때문에 시야가 자꾸 가려졌지만 내게는 리스턴이 있어서 괜찮았다.
그는 정말이지 놀라운 솜씨로 석션을 해낸 덕분에 나는 곧 부러진 뼈에 잘린 것인지 아니면 그냥 충격에 끊어진 것인지 알기 어려운, 지금은 그저 달랑거리고 있을 뿐인 상악동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실.”
“여기.”
“아, 그 전에. 인두.”
“아…… 네. 잠시만요.”
동맥 외에도 주변으로 정맥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자잘한 혈관들이 다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차라리 동맥에서 나는 피가 적어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상상과 다르겠지만 동맥은 혈관벽이 근육으로 되어 있어서 뿜어 댈 때는 팍팍 뿜지만, 또 한번 멎으면 한동안 멎어있기도 해서 그랬다.
뭐…… 그렇다고 그냥 두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환자가 죽긴 하겠지만.
“후. 이게 최선인 거지?”
“네. 그게 최선이래요.”
하여간 나는 원장님의 아이디어로 인해 수술방에 구비하게 된 작은 화로를 이용해 달군 쇳덩이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것은 소작기라 하기엔 너무 크고 거칠어서 그랬다.
이걸…….
이걸로 사람 살을, 그것도 안쪽 점막을 지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치지지직.
“어어, 환자 움직입니다.”
“잡아! 가스 더 틀고!”
“어어, 네!”
희한하게 뼈 부러뜨리고 별 지랄 다 할 때는 가만히 있던 환자들이 이것만 대면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화상이라는 게 진짜로 심각한 부상이기는 한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입힌 손상이 그러하거나.
이걸 점점 더 개선시켜서 21세기에는 피부 절개 말고는 이걸로 절개도 하고 절제도 하고 지혈도 다 하게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각해 보이는 화상이 눈앞에 있었다.
다름 아닌 내가 직접 만든 손상이었다.
“일단 피는 안 나. 이제 실.”
“네.”
죽어서 안 나는 건지 아니면 살려고 안 나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을 간신히 뒤로 하고 나는 동맥을 실로 묶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워낙 좁고 어두워서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피가 다 멎은 건지도 확실치 않을 정도다.
그나마 안과 의사에게 힌트를 얻어 어지간한 수술을 앉혀서 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등불을 대 본다고 하더라도 하나도 안 보였을 거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을 여기서 체험한다.
“휴. 대강 끝났네.”
“이렇게 끝이라고?”
“네.”
“아, 환자가 죽었다고?”
이 상황에서 상악동맥 결찰까지 끝마칠 수 있는 의사가 몇이나 될까.
아마 우리 교수님 모시고 와도 당장은 안 될 거다.
헌데 이걸 보고 죽었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 얼굴을 다시 보니까 좀 그렇게 보일 거 같기도 했다.
코는 여전히 무너져 있고, 뼈가 없어서 옆으로 구멍까지 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는 피부를 당겨서 꿰매면 대강 볼만하게 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다행이라고 하긴 어렵겠지만 코를 지탱하던 뼈도 일부 사라져서 당겨 꿰매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됐다.”
“됐다고?”
“됐잖아요. 구멍 없어졌잖아.”
“콧구멍도 하나가 사라졌는데……?”
“얼굴에 구멍 달고 사는 거보다는 낫지.”
“자네…… 혹시 프랑켄슈타인 감명 깊게 봤나?”
돌아온 대답은 내 예상과 크게 틀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