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5)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5화(425/505)
425화 앰뷸런스 [5]
데려왔던 세 명의 환자 중 하나는 수술 전에 사망했다.
다른 하나도 수술을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긴 어려울 거 같았다.
다만 처음에 수술한 사람만큼은 살 거 같아 다행이다.
뭐…….
몰골을 보면 아무래도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진 않긴 한데…….
‘다시 레드 코트 못 입게 되면 내가 취직시켜 줘야지.’
괜찮다.
양지의 직업만 직업인 것은 아니니까.
외모란 결국,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멀리 갈 것도 없이 리스턴을 보면 알 수 있다.
빈말로도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는 얼굴이지만, 적어도 뒷골목에 서식하는 사내들에게는 세상 제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딱 보는 순간 저절로 오금이 저리고 고개가 숙어지는 얼굴이라니…….
아마 무림에 태어났다면 대번에 대마두가 되었을 것이고,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전국구 조폭 정도가 리스턴이 고를 수 있는 악인 중 최하위에 속했을 거다.
“대단하구만.”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레드 딱지를 붙였던 환자 중 생존율이 고작해야 33%에 불과하단 뜻이었다.
그나마 살아난 사람도 온전한 것은 아니니 21세기였으면 대단하단 평가는커녕 고소나 안 당하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설마 자기 구해 주려고 애쓴 사람을 고소하는 사람도 있냐는 말을 한다면 전국의 외상외과 의사들에게 날아온 소장을 보여 주겠다.
나도 당한 적이 있는데 CPR 해서 겨우 살려 냈더니 갈비뼈 골절됐다는 게 나의 죄명이었다.
그 때문에 법원에 몇 번이나 오가야 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환장하는 건 내가 그나마 나은 거라는 거다.
선배 하나는 도의적인 책임으로 배상금을 내라는 판결을 받고 현타가 왔는지 지금은 강남 피부과에서 일반의 자격으로 일하고 있다.
“그렇죠? 평이 아니었으면 사망자가 두 배는 늘었을 겁니다.”
“그것도 그런데, 이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린 거지?”
“뭐…… 별짓 다 했죠.”
“주술?”
“아니, 그건 아니고 수술.”
“주술 같은 수술이로구만그래.”
물론 그런 걸 감안한다 해도 19세기가 21세기보다 나을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 21세기 대한민국은 실로 여러 분야에서 과도기에 있는 상태였다.
불과 60, 70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도약한 나라지 않나.
나처럼 둔감한 사람조차 한강의 기적 얘기를 들으면 국뽕이 거하게 들이찰 정도인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성과가 아무 부작용 없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하기도 뭣하다.
기형적으로 보일 만큼이나 성과 중심적으로 만들어져 있던 사회 구조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아마 욕심일 거다.
하필 그게 내 세대에 벌어졌다는 것이 좀 그랬긴 한데, 뭐 어쩌겠어.
나는 이미 19세기로 왔는데.
“뭐, 그렇게도 볼 수 있죠. 확실히…… 태평의 수술은 상식 밖에 있어요.”
“주님의 은총이지. 그런 인물이 우리 대영제국에 있으니.”
하여간, 다시 돌아와서 나는 리스턴과 원장님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하게 죽어 나간 사고 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뭐가 되었건 사람들이 살아났다는 것에 놀라서 그랬다.
‘아휴.’
물론 대형 재난은 21세기에서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긴 하다.
왜냐면 대형 재난을 상정하고 병원이나 119를 만들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거든.
공공기관 혹은 그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딱히 의료기관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발생한 지점으로 여유 역량을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보니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게 되는 거다, 이 말인데…….
여긴 여유 역량이고 나발이고 그냥 역량 자체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런 와중에 솔직히 내 힘만으로 사람들을 이만큼이나 살렸으니, 같은 병원에 있는 이 둘이 뿌듯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외상외과팀이 있었으면…….’
사실 어떻게 보면 내가 이상한 거다.
사비 털어서 사람 살려 놓고 울적한 상황이니.
하지만 지식의 저주라고나 할까.
내가 속해 있던 팀의 능력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보니 이게 참 그렇다.
백강혁까지 가면 진짜로 한숨만 나올 것이고, 그냥 평균보다 좀 더 나은 수준의 우리 팀만 가도 비교가 어렵다.
아마 설비가 같았다 해도 두 배, 어쩌면 세 배는 살렸을 거다.
“그나저나 사고는 왜 난 겁니까?”
사람이 이렇게 침울해 있으면 말이라도 걸어 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리스턴이나 원장님이나 T발놈들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섭섭하진 않다.
솔직히 나도 티발놈이거든.
오히려 티발놈, 티발놈 하는 애들 보면 그렇게 따지면 지는 프징징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들 정도다.
아무튼, 나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궁금하던 참이었기에 귀를 기울였다.
‘보나 마나 부실 공사 아닌가?’
답은 정해져 있는 상황이긴 했다.
어?
철근 콘크리트도 지어도 부실하게 지으면 무너지잖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삼풍이 그랬고, 성수 대교가 그랬다.
근데 뭐 목조로 지은 나무면 더더욱 그렇지.
“아…… 그게 말이야. 이건 우리들끼리 얘긴데.”
허나 세상일이라는 게 꼭 정답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특히 힘 있는 사람들과 엮인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번에도 그랬는지 원장님은 우리밖에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주변을 둘러보고는 아까보다 확연히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다리 건설을 꽤 높은 사람이 수주를 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건설했던 사람들은 그냥 다 풀려났네.”
“아니, 그럼 죄지은 사람이 없다는 겁니까?”
“그렇게라도 됐으면 차라리 낫지.”
“네에……?”
다리 지은 사람이 죄가 없다고 풀려났다면 사실상 이 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거라고 보기로 했단 얘기 아닌가?
헌데 죄지은 사람이 있다고 하니 그게 좀 이상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묻게 되었다.
리스턴도 못내 궁금했는지 귀를 잔뜩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들려온 것은 제대로 된 답이 아닌 원장님의 한숨이었다.
그 바람에 뜨끈한 바람이 불어와서 기분이 언짢아졌지만 궁금해서 참기로 했다.
다행히 내가 손수 만든 성수와 죽염으로 양치는 하고 있는지 이전처럼 냄새가 심하진 않아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지휘관이 처벌을 받을 거라는군.”
“지휘관이요?”
“그래.”
“아니…… 지휘관은 왜……?”
다리가 있어서 건너간 건데 벌을 받아?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무고한 사람이 어딨겠나 싶어서 바라보고 있자니 원장님도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게 말일세. 딱 봐도 약해 보이는 다리를 발맞춰서 걸었으니 무너졌다는 말이 있다더구만.”
“무슨…… 그게 뭔 개소리예요?”
“근데 일리가 있긴 하네.”
“네?”
일리가 있긴 개뿔이 있나.
발맞춰서 걷는다고 무너지는 다리면 애초에 무너질 다리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원장님이 프랑스 출신 지식인층, 즉 위그노들 특유의 건방진 표정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 다리, 원래 현수교였지?”
“현수교?”
“아, 참. 자네는 의학 말고는 무식하지.”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맞잖아. 현수교가 뭐야, 그럼.”
“모르죠.”
하여간, 배운 놈들은 이게 문제다.
먹물기를 도무지 뺄 줄을 몰라.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잠시만 틈이 있으면 바로 잘난 척하려고 애를 쓴다.
물론 모르는 건 또 사실이다 보니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
“교각에서 팽팽히 늘어뜨린 케이블로 상판을 지탱하는 다리를 현수교라고 하네. 가서 밧줄 같은 거 보지 않았어?”
“아…… 그러고 보니.”
“그래. 거기가 전형적인 현수교였다는군그래.”
“근데, 그게 뭐요?”
“현수교가 그 밧줄로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뭐겠나.”
“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케이블이 튼튼해서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객관식에 강한 내 두뇌가 경고음을 보내 왔다.
아니라고.
솔직히 찍기로 의대 간 것도 있기 때문에 나는 내 감을 신뢰하는 편이다 보니 가만히 있었다.
“외부에서 오는 충격을 다리 자체의 진동으로 상쇄하는 걸세. 근데 그 위에서 발을 맞춰 구르면 어찌 되겠나.”
“상쇄하는 거 아니에요?”
“이것 참, 쯧.”
“혀까지 찰 일은 아니지 않아요?”
“발을 구르는 것 자체가 외부의 충격인 동시에 다리 자체를 진동시키지 않나.”
“아…… 오. 그럼?”
“다리가 무너지게 된다, 이 말일세. 실제로 그 다리 꽤 오래된 다리고 200명 아니라 더한 사람들도 잘만 걸어 다녔다고 하네. 그렇게 생각하면 지휘관 잘못이기도 하지.”
“그…… 근데 저도 모르는 사실을 일개 지휘관이 알 거라 생각하는 건 좀 지나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처벌은 가벼울 거라는 얘기가 있어. 대신 이제 레드 코트들은 다리 위에서는 구령에 맞춰 걷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게 됐다네.”
이…….
이 폭력적인 방식의 해결법
어디서 많이 본 거 같다.
너 이럴 거 같으면 그냥 다 하지 마!
뭐…… 내 알 바는 아니긴 하다.
레드 코트들이 다리 위에서만큼은 오합지졸로 보이게 되었건 말건 뭔 상관이란 말인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앰뷸런스 제도의 정착이다.
국회를 움직일 필요는 없다.
세금 쓰는 데 그 누구보다 인색한 양반들이 고작해야 사람 생명 좀 살리겠답시고 돈을 쓰겠어?
“하여간, 그거 하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네.”
“그래요? 월마다 돈을 내야 한다는데도?”
“물론이지. 이번 일이 얄궂게도 홍보가 됐거든.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사업체에 다들 해 달라고 난리야.”
“좋군요. 근데…… 이건 개인도 사용할 수 있는데?”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사설 앰뷸런스부터 운영해 보기로 했다.
돈을 내면 우리가 그 사업체나 집에 한해서 출동을 해 주는 방식이다.
전화 따위 없는 시대다 보니 바로 출동하는 건 무리겠지만, 어차피 이 사람들이 바라는 게 무슨 전원 구조는 아니지 않나.
그냥 다 죽을 텐데 그중에서 몇 명 살리는 거만으로도 돈값 하겠다고 판단하면 돈을 내는 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수는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번 일도 있고 또 내 명성도 있다 보니 꽤 많이들 돈을 내고 있다.
“그, 그래? 근데 영 좋지 못한 소문도 있는데…… 사실은 아니지?”
“뭔 소문이요?”
“가입 안 하면 불을 지르겠다든가…… 저주를 내리겠다든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제가 미쳤어요?”
“소문이지, 소문. 워낙 자네가 응? 사람을 살리긴 하는데 좀 막무가내니까 말이야.”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나저나 개인 가입은 거의 없다, 이 말이죠?”
“그렇지 뭐…… 집에서 막 죽어 나갈 일은 없지 않나.”
흠.
아무래도 이 사람들 앰뷸런스의 효용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다.
그럴 만도 하긴 했다.
대형 재난에서 쓰이는 것만 봤으니.
뭐, 괜찮다.
개인적으로 쓸 사람이 생기면 되니까.
“자네…… 왜 그렇게 웃나. 설마 저주라도 내릴…….”
“큰…… 큰일 났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우연찮게 밖에 있던 조지프가 뛰어 들어왔다.
사색이 된 채였다.
“제, 제이미 경이 위독하다고!”
원장님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