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6화(426/505)
426화 응급 [1]
응급이라는 말은 어디서 써도 짜증 나는 말이다.
꼭 병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긴급 대신 응급을 쓰면 뭔가 기분이 더 X같아지는 마법 같은 단어 아닌가.
하지만 역시 근본은 병원이다.
병원에서 응급이라는 말은…….
‘와 기분 안 좋아.’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은 그것이 꼭 내 목숨이 아니더라도 개같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병원은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밖에서 보기엔 그런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진짜다.
하지만 상황이 뭐 피해진다고 피해지면 그게 응급인가?
결국, 응급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제일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다그닥.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최대한 빨리 대처하는 거다.
그런 생각을 마차에 탄 채로 하고 있으려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빨리 대처하는 건 제외하자.’
응급에 있어 제일 중요한 걸 빼고 생각해야 한다니.
이거야 원, 차포 떼고 장기를 둬도 이것보단 쉬울 거 같다.
심지어 상대인 질환은 우리 쪽에 차포 두 개씩 더 두고 두는 21세기 현대 의학식 장기에도 쉽사리 져 주지 않는 강자란 말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에 최대한 집중하는 게 맞겠지.’
아마 이전의 나, 그러니까 나약한 21세기인이었던 시절의 나였다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포기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김태평은 강하다.
어쩌면 제일 강할 수도 있다.
‘죽으면 그 환자가 약한 거야.’
모든 것을 확률에 기대야 하는 불완전한 학문인 의학에 있어 어쩌면 유일한 진리일 수도 있는 말을 떠올리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이게 맞다.
이게 맞지.
‘후우.’
제이미 경은 어떨까.
이미 약해져 있으니…….
어쩌면 이번 고비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의사인 주제에 환자 보기도 전에 이별할 각오부터 하고 있는 것이 좀 그렇긴 한데, 어쩔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평, 자네가 이럴 때도 있나. 내리세. 도착했어.”
“아, 네. 형님.”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으려니 어느새 제이미 경의 저택이었다.
그의 힘과 재력 그리고 공작 위에 걸맞게 지어진 멋들어진 저택이었다.
한때 이 저택의 벽을 저주받은 녹색으로 덕지덕지 칠했던 적도 있긴 하지만, 그 누구도 죽고 싶어 하진 않는 법이기에 지금은 그냥 평범한 색이었다.
그래 봐야 비소가 납이 된 것일 뿐이지만 납까지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시대였기 때문에 ‘납’득해야만 했다.
“어디 계시지?”
“아, 이쪽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여간, 우리는 로비에서부터 집사인지 뭔지 모를 사람에게 이끌려 2층에 위치한 제이미 경의 침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얼굴만 봐서는 위독한 게 맞나 싶은 제이미 경이 있었다.
당뇨 치료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고 최근에 운동까지 시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더 가까이 가자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알아보시겠어요?”
“으…….”
일단 의식이 또렷하지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떠오르는 질환이나 상황이 수십 가지가 되다 보니 오히려 머리가 아파져 올 지경이었다.
나이나 기저질환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모든 것이 가능한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뇌출혈이나 경색…… 혹은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부전…….’
그중에 가장 심각한 것들을 떠올려 본다면 이런 것이 있을 터였다.
원래대로라면 이 질환에 대한 치료를 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머리 열어?
뭐 안 열어 본 건 아니다.
개두술은 수천 년도 더 된 수술이기도 하고, 끔찍해 보이는 것에 비해 안전하기도 하다.
‘근데 열면 뭐 해?’
하지만 단순히 머리 까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저번처럼 바깥쪽 출혈이라면야 살겠지만…….
제이미 경은 만약 출혈이라 해도 그런 쪽은 아닐 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랑 같이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된 걸 보면 진행이 빠르지 않나.
경막외출혈은 이보다 훨씬 느린 게 보통이다.
우선 외상이 있어야 하고.
허나 제이미 경은 많이 드문드문해진 머리털 사이로 보이는 머리 쪽에 아무런 외상 흔적이 없다.
‘일단 아니라고 치고 넘어가자.’
지나치게 희망 회로만 돌리고 있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19세기에서는 아직도 가장 유효한 치료가 기도다.
괜히 치료하겠답시고 설치다가 괜히 환자만 더 끔찍하게 죽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렇다.
물론 나나 우리 일행은 좀 다르긴 하지만…….
태반은 내가 환자 선택을 잘한 덕이기도 하다.
안 될 거 같으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거다.
‘심장……? 아니길 바라야지.’
같은 이유로 심장도 넘어갔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심장을? 싶겠지만…….
그래서 개흉할 건가?
가슴 여는 수술은 21세기에서도 큰 수술에 속하는 수술이다.
그냥 열었다 닫는 것만 해도 환자가 죽어 나갈 확률이 있는데, 그 와중에 관상동맥을 만지작거린다?
괜히 흉부외과 전문의가 본격적인 심장 수술 집도하려면 전문의 따고도 따로 몇 년을 더 수련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는 게 아니다.
진짜로…… 더럽게 어려운 수술이다.
나도 꽤나 오랜 기간 수련을 받은 외과 의사지만 어쭙잖게 건드렸다가는 그저 얌전히 죽을 수 있던 사람을 가슴 열고 죽게 만들 뿐일 거다.
‘다른 원인이었으면…….’
이러한 연유로 인해 나는 기도를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제이미 경에게서 풍겨 오는 냄새가 퍽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이나 신장이 망가져서 나는 냄새랑은 좀 달랐다.
이건…….
‘균……?’
균에 감염이 되면 나는 냄새다.
그중에서도 스타필로코커스라는 놈들이 이런 냄새를 잘 풍기는데, 뇌나 심장보다는 감염이 아무래도 더 만만한 편이다 보니 슬쩍 마음이 풀어졌다.
그러곤 이놈의 냄새가 대체 어디서 나는 건지 알아내기 위해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평?”
“뭐 하는…… 뭐 하는 건가?”
“가만…… 혹시 이거 주술인 건가?”
“아…….”
옆에 있던 일행들도 덩달아 심각한 얼굴을 하곤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방금 벌어진 대화로 유추해 보건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아닐 거 같다.
그래도 냄새 맡는 거 자체는 나랑 다를 게 없다 보니 슬슬 뭔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응?”
“으음.”
“아이구.”
온몸에 대고 킁킁거리던 전원이, 그러니까 나를 포함한 의료진 전원이 공작님의 구강 쪽에서 멈추어 서게 되었다.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고약한 냄새가 우리 공작님 입에서 나고 있었다.
참…….
“잠깐만. 공작님 양치한 지 얼마나 됐죠?”
해서 나는 옆에 있던 시종에게 물었고, 시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양치라는 개념 자체가 낯선 모양이었다.
‘아니…… 이 양반 설마…….’
제이미 경은 인간이 좀 모자라지만, 아무튼, 우리 일행이지 않나.
심지어 힘도 있고 재력도 있는 양반이다 보니 내 요주의 관리 대상 중 하나였다.
해서 우리 병원 오면 직접 양치 지도도 하고 심지어 성수가 아닌 진짜 불소수로 가글도 시켜 주고 했는데…….
집에선 안 했던 모양이다.
“양치 안 했죠?”
“아…… 양치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시종이 얼버무리고 있었다.
별 소용은 없었다.
내 눈치가 100단이니까.
그게 아니었으면 대체 어떻게 이 시대에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겠냐.
나보다 잘난 놈 쑤시고 해서…….
아니, 그건 아니고.
“장갑 좀 줘 봐.”
“어, 네.”
뭐, 지금 중요한 건 죄 없는 시종을 압박하는 게 아니지 않나.
심장이나 뇌보단 낫다고 해도 이대로 두었다간 오늘 어쩌면 내일 정도에 죽을 것이 뻔한 상황이다.
해서 나는 조지프에게 장갑을 받아다가 제이미 경의 입을 벌렸다.
“어우.”
“야…….”
“미친…….”
그러자 아까보다 더 심각한 냄새가 방 안 전체를 메우기 시작했다.
충직한 얼굴로 버티던 시종이 몰래 창문을 열었을 정도였다.
솔직히 나도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지 않나.
의사는 좋든 싫든 환자가 가진 문제를 직면해야 하는 법이었다.
“불.”
“태우게?”
“아니, 등불.”
“아.”
미친 소리 하는 놈들도 있긴 하지만, 하여간, 나는 등불을 들이대고 냄새나는 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구강에 염증이 생긴 정도가 아니라 숫제 농이 잡혔는지 입이 일단 크게 벌어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제이미 경의 의식이 흐려서 망정이지 멀쩡했으면 지금쯤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을 거다.
“으, 으.”
신음 흘리고 있는 걸 보면 아프긴 한 모양인데, 어쩔 수가 없다.
그러게 누가 이 안 닦으래?
“오, 저기.”
다행히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병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금니인지 사랑니인지가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부어 있었다.
살짝 눌러보니 몰캉한 게 농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흠.”
일단 째야 한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환자의 의식이 문제였다.
보통 사람은 목 뒤로 뭐가 넘어가면 뱉잖아?
하지만 의식이 없는 사람은 그럴 수가 없다.
그냥 삼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기도로 넘어가게 된다면……?
‘사레 걸려서 기침이라도 하면 좋은데…… 그러진 않겠지.’
사레 걸리는 게 평소엔 불편하겠지만 사실 그것만큼 강력한 방어 기제도 없다.
흡인성 폐렴을 방지하는 장치거든.
젊은 사람도 폐렴에 걸리면 골로 가는 시대에 노인이…… 그것도 일반적인 폐렴도 아닌 흡인성 폐렴에 걸린다?
죽는다, 진짜로.
“의식부터 깨워야겠는데.”
“어떻게?”
“아, 통증을 줄까.”
일단 깨워야 했다.
리스턴이 상당히 직관적인 방법을 제시했지만, 탈락시켰다.
저게 맞을 때도 있지만…….
패혈증으로 인한 저혈압이 강력히 의심될 때는 그냥 고문이나 다를 바 없다.
그것도 별 의미 없이 신체만 망가뜨릴 뿐인 고문이니 배제하는 게 맞다.
“아니, 혈압부터 재 보지.”
“혈압……?”
“그놈의 혈압은 왜 자꾸…….”
혈압 재자는 말에 의사들이 반발하는 거, 이거 꽤 열받는 모습이지만…….
좋게 생각하면 이때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말만 저렇게 할 뿐이고 안 재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잘 잰다, 이제.
“어……? 혈압이 낮은데?”
“낮을수록 건강한 거 아닌가?”
제이미 경의 혈압은 80에 40.
무척 낮지만, 이만큼 나오는 것도 기적이다.
엄청난 건강체라는 얘기 아니겠나.
이 시대에 지금 나이까지 괜히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이 말이다.
심지어 그냥 곱게 늙은 것도 아니고 별짓 다 했는데도 살았으니 말 다 한 셈이지.
“너무 낮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너무 낮다니. 그런 생각은 안 드네.”
“그런 개념도 있나? 높을수록 안 좋다며.”
아무튼, 정상 혈압 개념을 지금 당장 이해시키는 건 무리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우리야 이해하기 전에 고혈압, 저혈압을 외워 버렸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만 정상 혈압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혈압이 낮네 높네 하는 게 의미가 있겠나?
“으어…….”
해서 나는 또 접신했다.
“나는 길이요 빛이요 생명이라…… 환자에게 수액을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