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7)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7화(427/505)
427화 응급 [2]
뭐든지 하다 보면 느는 법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게 진짜 그렇다.
수술도 그래.
이런 말 하면 대단히 건방져 보일 거라는 거 다 알지만…….
1년 차 때 봤던 교수님 수술이랑 4년 차 때랑 군대 갔다 와서 펠로우 때 봤던 수술이랑 다 다르더라니까.
똥손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큰 병원에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 명의가 되는 세상이다 보니 환자가 막 몰려오거든? 그렇게 몰려오는 환자들 다 보다 보면 수술이 늘 수밖에 없다.
이런 소리를 왜 하냐, 지금 난데없이.
“어어…….”
“수액, 수액!”
“주님 말씀이시다!”
접신도 이게 하다 보면 는단 말이다.
보다 그럴싸하게 해 보려고 거울 보고 연습한 보람이 있다.
게다가 지금 누워 있는 사람이 누군가.
다름 아닌 제이미 경이다.
‘경’자가 붙으면 떡하니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 양반은 공작이다.
21세기에서야 공작하면 새밖에 떠오르는게 없겠지만 이 시기 공작이라고 하면 정말이지 그 권세가…… 어마어마하다고 보면 된다.
“맡겨 주십쇼!”
그렇다 보니 VIP 대우가 말도 못한 상황인데, 다행히 우리팀은 상당히 숙련된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단 조지프라는 소독에 미친 놈이 있어서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나조차 믿을 수 있을 만큼 강박적으로 소독과 멸균에 진심이다 보니 수액이라는, 직접 몸 안에 주입해야 하는 물조차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다.
푹.
심지어 꼼꼼하다 보니 주사도 잘 놓는데, 제이미 같은 노인의 혈관도 잡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솔직히 나도 자신 없다.
그냥 노인이 아니라…….
오랜 세월 당뇨에 불알도 잘라서 쇠약해진 노인이거든.
그렇다 보니 혈관도 얇아서 안 그래도 후진 우리 주삿바늘은 잘못 찔렀다가는 박살이 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조지프는 내가 괜히 안과 의사 시키려는 게 아니라, 제법 꼼꼼한 편이다 보니 잘만 하는 편이었다.
졸졸졸.
그렇게 수액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피는 아니다 보니 혈압이 팍 뜨진 않았다.
농담조로 피만 한 승압제도 없다고 하는데, 진짜 그렇긴 하다.
그렇다면 왜 피를 안 주고 있나.
피를 구하기 어려워서?
아니다.
-공작님 위험하신데 피 주머니 하실 분?
이러면 아마 줄을 설 거다.
하지만 그 피가 정말 안전한가?
알 수가 없다.
이미 패혈증에 빠진 양반한테 아무 피나 줄 수야 없지 않겠나.
그렇다면 줄 수 있는 피는 어린아이의 피로 한정될 텐데, 그나마도 총각, 처녀로 한정해야만 했다.
-아, 처녀, 총각만 됩니다!
이 말…….
이게 사실 되게 의학적인 계산하에서 나오는 말이거든?
성병이 창궐하는 시대다 보니 성병이 아예 없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을 거 같잖아?
다른 좋은 생각이 있으면…….
‘아.’
유태인……?
그래, 유태인들은 아직도 그들 나름의 관습을 지키고 살고 있잖아.
거기 엄청…… 엄격하다 보니 여전히 부부간을 제외하면 거의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확실히 성병, 특히 매독 유병률이 낮은데…….
이 때문에 한때 포경이 성병을 예방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이 통해서 런던 바닥이 다 뒤집어졌으니 참 엉망진창 유태인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이 김태평, 이용할 수 있으면 누구라 해도 괘념치 않는 사람이지 않은가.
“혈압이…… 흠.”
“지금도 주님이신가?”
“아니, 눈이 돌아왔잖아.”
“아, 저는 김태평입니다.”
“그, 그렇군.”
“금방 가셨네.”
나로 돌아와 혈압을 재 보니, 수액이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올라가고 있질 못했다.
이렇게 되면 결국엔 혈액이 필요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가 된다.
여러 위험부담이 있는 건 여전하지만 어쩌겠나.
당장 숨 붙여 놓는 게 최우선일 터였다.
해서 나는 여러 오해를 살 만한 여지가 있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최선일 명을 내렸다.
“피가 필요할 거 같은데.”
그 전에 혼자 중얼거렸더니 블런델이 성급하게 나섰다.
“나라도 드리겠네! 안 되더라도 뭐…… 공작님이라고 하면 줄 설 거야.”
“아니, 안 됩니다.”
안타깝게도 블런델은 안 된다.
이 분은 참으로 여러가지 병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성병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그렇다.
심지어 최근에 설사도 했는데 그런 놈 피를 어떻게 받는단 말인가.
제이미 경처럼 쇠약해진 상태에서 균 섞인 피를 받는다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나.
제아무리 19세기인들이 강인하다고 한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조건이 있어요.”
“조건은 알고 있네. 미리 섞어서 되는지 안 되는지 보면 될 일 아닌가.”
“아니, 그건 기본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야죠.”
“더 나아가……?”
증상이 없는데 미아즈마가 있을 수 있단 개념이 생기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발전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 이해시킬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보균자 개념이야 생기긴 했지만, 장티푸스는 바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균이다 보니 약간의 오해가 생기지 않았나.
그 외에도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사람을 조지려 드는 균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알게 되려면, 내 생각에 100년은 더 걸릴 게 분명하다.
“깨끗한 피를 받아야죠.”
“우리 다 깨끗하네. 미아즈마는 없어.”
“그래, 자네 모르나? 최근엔 지침 중에 기침, 가래 있는 놈들은 다 안 된다고.”
물론 이전보다 진보를 하긴 했다.
딱 들으면 알겠지만 어떤 증상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아즈마, 즉 병원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잖아.
뭐…….
‘반드시 그런 건 아니긴 한데…….’
병원균 없이 기침 가래 생길 수 있는 질환 중에 알러지도 있고, 천식도 있고 그 외에 숱하게 많은 자가면역질환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청결한 뇌에 너무 많은 정보를 쑤셔 넣는 건 위험한 일이다.
과하게 밀어 넣다 보면 이게 터질 수가 있어요.
괜히 2, 3까지 다 이해시키려다가 아예 1도 이해 못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보다 더 순결한 피가 필요해요.”
“뭔…….”
“뭔 말이야, 이게.”
해서 나는 설명보다는 그냥 강압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로 결심한 참이었다.
“처녀, 총각들의 피가 필요합니다. 거짓말할 수도 있으니 아예 어린 친구들로 불러와요.”
“무슨…….”
“이게 뭔 마녀같은 얘기인가. 처녀, 총각들의 피라니.”
블런델과 리스턴은 역시나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답게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출 수도 없었다.
한술 더 떠야만 했다는 얘기다.
“아예 유태인 청소년이면 더 좋아요.”
“어허! 방금 순결한 사람의 피라고 했으면서 유태인이라니……?”
“자네 설마 유태…… 아닌데. 노란데.”
이 시기에 팽배해 있는 반유대 정서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동자승 피를 뽑아오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안 그래도 동양인은 사람 취급 안 하는 시대잖아.
19세기 아니라 20세기에도 그렇다고 보면 된다.
왜 진짜 큰 적이었던 나치에는 원폭을 안 떨어뜨리고 일본에 떨어뜨렸겠어.
시기가 미묘했다는 설도 있지만, 아무래도 동양인 즉 황인과 백인의 가치가 서로 동등하지 않다고 봤으니 가능했던 일일 터였다.
‘내 말 한마디에…… 동양인 사냥이 벌어진다?’
그것도 스님 사냥이……?
아마 나는 만고에 남을 악인이 될 거다.
그에 비하면 유태인 측이 낫다.
아, 유태인을 사냥하겠다는 건 아니다.
“유태인 협회나 뭐가 있으면 거기에 몰래 의뢰하세요. 우리가 직접 찾아 나서면 진짜 인종 사냥이 될 테니까.”
“의뢰한다고…… 응할까? 말마따나 지들 애 팔아먹으라는 건데……?”
“유태인이잖아. 될걸?”
유태인이 유럽에서 왜 이렇게 미움을 받을까?
일단 이교도라 그렇다.
유대교나 기독교나 같은 하나님 믿는 거니까 비슷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오히려 비슷해서 더 미워하는 거다.
특히 유태인들은 기독교의 메시아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이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더 그렇다.
‘거기에 고리대금업을 독점했지.’
이렇게 말하면 좀 억울하긴 할 거다.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중세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은행업이 불법이라 이교도인 유태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하게 된 것일 뿐이니까.
심지어 이들에게는 땅도 주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디아스포라로 떠돌던 지난 수천 년을 반강제적으로 도시인들로 살아오게 된 것이다.
그게 역배가 된 것은 산업 혁명 이후라고 보면 된다.
몰락하는 농촌을 이제 막 떠나온 기독교 유럽인들과 이미 도시인으로 정착한 지 수천 년이 된 유태인들하고 상대가 되겠나?
자본력부터 차이가 나지만 그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인 게 바로 인식이다.
중세인과 도시인은 숫제 인종이 다르다 해도 좋을 정도니.
“계약의 개념으로 설명하죠. 공작님이잖아요. 유태인이 살렸다는 말이 번지면…… 아무래도 유리해질걸요.”
“하기사…… 그쪽에서 싫어하진 않겠네.”
“근데 처녀, 총각의 피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걸 좋아할까?”
“잘 둘러대야죠. 뭣하면 그냥 모아 놓기만 하라고 하세요. 제가 가서.”
“납치?”
“그거야 쉬운 일이지.”
뭐가 되었건 간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로 했다.
다행한 일은 그사이 시간을 벌긴 했다는 점이었다.
수액이라는 게 만사형통까지는 아니더라도 연명은 되거든.
길어 봐야 하루, 이틀이겠지만…….
감히 공작 각하가 쓰러졌다는데 사람 모으는 데 있어서 하루도 길다.
아마 한두 시간이면…….
“뭐야, 이거.”
그건 내 오산이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공작님 집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심지어 그냥 애들도 많았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애는, 정말 애다.
“이 미친놈들이 두세 살짜리들을 데리고 오면 어떡해? 피 주머니로 만들 거라니까?”
“순결한 건 애기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쟤네들 피 주머니로 만들면 죽어…… 그리고 부모들이 동의를 한 거야? 다 잡아 온 거 아니야?”
“뒤에 서 있는 애들 우리 부하 아닙니다.”
항변하는 부하의 말을 듣고 잘 살펴보니 애들 손 붙잡고 선 사람들 얼굴이 애랑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시발…….’
하긴, 여기 19세기였다.
그것도 저들이 거주하는 곳은 이스트엔드…….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끔찍한 빈민가.
가뜩이나 즐길 만한 것이 없는 데다가 희망도 없다시피 한 빈민가에서 섹스만 한 오락거리가 있겠나?
비단 부부 사이가 아니라 해도 섹스란 유일무이한 오락거리를 즐기게 되기 마련이었고 그 부산물로 태어나는 인간의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에 이른 지 오래였다.
아동 학대라는 말이 너무 낭만적으로 들릴 지경이라고 하면 느낌이 오겠나?
“좀 사는 놈들은 지원 안 해요?”
“아, 생각을 못 했네. 피는 가난한 사람들이 파는 거니까.”
저 상황에서 내가 애들은 가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가긴 갈 거다.
가서 맞겠지.
돈이라도 좀 쥐여다가 보내는 게 맞다.
대신 아무도 쓰진 못할 거 같다.
“유태…… 유태인들은?”
“그쪽도 모이고 있다고 하는데.”
“그럼 그쪽으로 가죠. 거긴 그래도 좀 사는 놈들이 태반이잖아.”
“그렇긴 하지. 애초에 협회에 연락했으니…… 좀 사는 정도가 아닐걸?”
어쩔 수 없이 유태인들에게 향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샤일록의 복수라 할 수도 있겠다.
이번엔 이쪽에서 피만 뽑아내게 되었으니.
셰익스피어가 봤다면 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을 거 같은데…….
한참 전에 돌아가셔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