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8)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8화(428/505)
428화 응급 [3]
“혈압 90 넘어가면, 그냥 째 버려.”
“어…… 네.”
“그전에는 째지 말고. 그러다 넘어간다.”
“넘어가면…….”
“알잖아? 심장 눌러.”
“그거 근데 100% 돌아오는 게 아니던데요?”
일단 유태인들이 모인 곳에는 나랑 리스턴이 가기로 했다.
옛날이야 감히 유태인들이 사람 오라 가라 할 수 없었겠지만, 이젠 세상이 뒤바뀌지 않았나.
뭐 공권력을 동원하면 나라도 뭣도 없는 것들이니만큼 방법이 없겠지만…….
모은 돈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시대가 열렸다 보니 가야 했다.
그것도 꽤 높은 사람들이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 제이미 경을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똘똘이 존 스노와 조지프 그리고 앨프리드에 더해 수혈 마스터 블런델까지 남겼다.
“100%는 아니지. 근데 어차피 우리 제이미 경…… 지금 넘어갈락 말락이야.”
“그런 말을 의사가 해도 되는 거예요?”
아이구, 우리 존 스노.
아직도 순진한 구석이 있다.
의사야말로 환자의 상태에 대해 가장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는 사람 아닌가.
“우리 아니면 누가 해.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거랑 모르고 있는 건 차원이 다른 거야.”
“그렇긴 한데…….”
“아, 블런델 형님.”
가르칠 것이 구만리는 남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진짜로 환자가 넘어갈락 말락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냥 티칭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나는 블런델을 불렀다.
안 그래도 수혈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던 참이다 보니 그는 신바람이 나서 달려왔다.
“어어. 이제 넣어?”
“아직은…… 넣지 말고요. 혈압이 60 밑으로 떨어지면 그때는 어쩔 수 없어요. 피 들어가야 됩니다.”
“어어. 그럼 내 피라도…….”
“아니, 형님은 안 되고. 정 뭣하면 리스트를 드릴게요.”
“이게…… 뭔가?”
“지금 당장 잡아 올 수 있는 우리 학생들이죠.”
“아.”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의대생 시절을 떠올렸다.
돈 내고 배우는 입장인데 어째 을 중의 을이었다.
교수님들도 말은 니들은 돈 내고 배우는 거니까 배려를 해야지 하면서 배려를 안 했다.
아니, 배려를 안 하는 정도가 아니고 참 잘도 부려 먹었다.
사람 살리는 길이라고 하면서 일 시키면 안 들을 수도 없었다.
“제이미 경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하면 알아서 올 거예요.”
“어…… 근데 내 알기로 우리 학생들이 이보단 많은데?”
그중에서도 마법의 주문이 뭔지 아나?
“그렇죠. 제가 나름대로 파악한 건데…… 얘들은 모쏠이에요.”
“그게 뭔가?”
“총각이라는 거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성병에 걸린 적이 없을 거 아니에요. 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걸려. 매독 미아즈마가 없을 거란 말입니다.”
“아, 아하. 아…… 아까 그게 그럼 주술이 아니라 이런 뜻이었구만그래?”
너만 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너 아니면 안 된다는 말도 좋다.
어떻게 아냐고?
나도 이 말에 넘어가서 골수 기증을 해 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환자만큼은 너 아니면 못 살린다는 말…….
솔직히 말해서 이 말 듣고도 뽕이 안 차면 그놈은 의사 하면 안 된다고 본다.
“네, 그러니까…… 80 밑으로 가는데 경향성이 아무리 봐도 계속 떨어질 거 같다 싶으면 잡아 와요.”
“알았어. 근데 누굴 시키지?”
“시킬 놈이야 여기가 공작가인데 쌔고 쌨죠.”
“아, 하기야 그렇구만. 알았네.”
근데 그 대상이 공작님이다?
없던 사명감도 튀어나올 것이 분명했다.
진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사명감보다는 부채 의식이나 욕심이니까.
다그닥.
아무튼, 내 개똥철학은 뒤로 한 채 우리는 유태인 회관으로 향했다.
옛날에는 이렇게 모여 있으면 불밖에 더 날 일이 없을 거 같았던 건물이지만, 이젠 꽤나 힘 있는 이들의 공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영국에서는 그렇다.
“여기가 로스차일드 영국 지부라고요?”
“그래, 대단한 놈들이야. 엄청 부자라더라고.”
“부자……겠죠.”
지금은 지부다.
본가는 독일에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르면 오히려 영국 지부가 본가가 된다.
이유야 뭐 딱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독일은 불과 100년 뒤에 짝불알 화가 지망생이 정권을 잡고 희대의 미친 대학살을 저지르게 되지 않나.
그 와중에 유서 깊은 유태인 재벌 가문이 멀쩡하기를 바라는 건 망상에 가까운 일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 봐야 유태인이야. 들어가세.”
“아, 네.”
21세기 음모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뽑아 보라고 하면 아무래도 프리메이슨이 있을 거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로스차일드이고.
뭐 음모론을 음모론으로만 소비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진위를 감별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 입에 공공연히 입에 오를 만큼이나 대단한 집안에 발을 디디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래도 긴장도 되고 그랬는데 리스턴은 일개 유태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지 별 망설임도 없이 뚜벅뚜벅 들어가고 있었다.
여차하면 다 베어 버릴 수도 있단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오셨습니까.”
하여간, 안으로 들어서자 전형적인 유태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인사를 건넸다.
나도 뭐 전형적인 동양인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보니 그리 놀라는 기색 없이 화답할 수 있었다.
“그…… 급한 일이라 하여 이렇게 모아 놓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안쪽으로 향하자, 청소년으로 보이는 이들이 죽 모여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 나를 마중 나왔던 이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질문을 이어 나갔다.
“어찌…… 어찌하실 셈이신지…….”
아무래도 뭔가 나쁜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뭐…….
그럴 수 있긴 하다.
이 사람들은 유태인들이니까.
유태인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들이라면 충분히 피해의식이 있을 수 있단 얘기다.
중세로부터 뭔 일만 생기면 유태인 패는 게 유구한 전통 아닌가.
괜히 이들이 시오니스트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 와중에 영국과 프랑스가 또 ‘그들’하는 바람에 21세기에까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걸 생각하면 뭐…….
영국인 앞에서 유독 부들부들 떠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 별 건 아니고. 피가 좀 필요해서요.”
해서 나는 다 이해한다는 얼굴을 한 채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러자 어쩐 일인지 서 있던 친구 중 하나가 기절했다.
기절을 해?
사람이 그냥 얘기하는데 기절을?
“그…… 피가…… 저희더러 죽으라는 말씀이신지.”
심지어 이 친구는 죽음 운운하고 있다.
내가 의산데.
심지어 왕의 의산데.
“뭔 소리야. 피가 필요하다니까.”
순간 기분이 나빠져서 정색을 하고 말하자 상대는 더더욱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고, 공작님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 하셨는데 다짜고짜 피라고 하시니…….”
“그러니까, 수혈을 해야 한다니까?”
“아, 아아. 수혈이군요. 저는 또.”
“또 뭐.”
“주술인 줄 알고…… 그런 일도 하시지 않습니까.”
굽신거리면서 하는 말이 밉상이다.
하…….
순간 진짜 주술이라도 걸어 버릴까 싶었지만, 지금 당장 피가 필요했다 보니 나는 허허 웃었다.
“그런 일 안 하네. 아무튼, 이 친구들 다들 처녀, 총각인 것은 맞지?”
“진술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진술에 따르면……?”
“그게 저희 관습이 좀 엄하지 않습니까. 어른이 했니 안 했니 묻는데 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요.”
“그럼 몰래 하는 놈들도 있단 말인가?”
“멀리 갈 것도 없이. 하하.”
내 앞에 있던 놈이 사람 죽어 나가는 일은 아니란 생각에 긴장이 풀렸는지 처웃었다.
예사로 넘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몰래 한 놈 때문에 우리 제이미 경이 잘못되면 어쩐단 말인가.
‘평. 안 한 놈을 뽑아야 한다는 거 아닌가.’
‘그렇죠.’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다가와 말했다.
직관이 뛰어난 사람이니만큼 들을 만한 의견이 나올 것도 같았다.
나로서는 당장 답이 없는 상황이지 않나.
나는 내 입으로 떠들기는 그렇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다 보니 굳이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러는 편이 아니다.
‘검사를 하면 되지 않나?’
‘검사……? 아.’
설마 이 양반이…… 막 검사를 하자는 건가 싶어서 뒤를 바라보았다.
그건 좀 인권 유린에 속하는 검사 아닌가.
심지어 우리 병원에는 아직 여자 의사가 없다.
병원이라고 국한 짓기도 뭣한 것이 그냥 런던에는 없다.
간호사들이야 있겠지만 여기 오는 길에 데리고 올 생각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고민이 되었다.
무엇보다 난 그런 검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더 문제…….
‘못 생긴 놈들은 안 해 봤을 거야.’
‘아.’
하지만 리스턴이 내놓은 답은 아주 명쾌했다.
‘그리고 티가 나거든, 자네처럼. 내게 맡기게. 5분 내에 다섯 놈 추려서 가지.’
‘오…….’
명쾌하다고 해서 꼭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날 모쏠이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나.
뭐…….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다.
전생엔 바쁘게 살다 죽었고, 이번 생엔 아무래도 좀 마음에 걸려서 그런다.
하여간, 리스턴은 호언장담한 대로 아니, 장담했던 것보다도 더 짧은 시간 내에 다섯 놈을 추려 왔다.
“어떤가.”
“그…….”
인정하긴 싫은데, 어디선가 본 거 같은 인상의 다섯 명이 서 있었다.
그래…… 솔로들의 짝 찾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모태솔로 특집에서 본 거 같다.
“그, 형님.”
“응?”
“제가 저런 느낌입니까?”
“아, 그렇진 않아. 하지만 비슷한 느낌도 있네.”
“그렇군요.”
혹시 내가 연애 상대를 배제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배제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제이미 경의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그사이에는 별 변화가 없었는지 평온하기만 했다.
끌려온 의대생들도 없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정말로 혈압이 안정적이었다는 것이니까.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정작 방 안에서 내내 혈압 재고 했던 놈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냥 ‘왔어요?’ 하고 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뭐, 그런 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차차 가르치면 될 터였다.
지금 급한 것은 환자 아니겠나.
최대한 담담한 척하고 있지만 제이미 경은 내 친우이기도 하다 보니 나는 곧장 훈련받은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
“아, 어.”
우선 블런델을 시켜서 피 검사에 들어갔다.
다섯 명이나 끌고 왔으니 이 중 하나는 맞겠지 했는데 신기하게 셋이나 맞아떨어졌다.
피 주머니가 셋이라니.
든든했다.
해서 일단 첫 번째 타자부터 피를 흘려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과연 가장 효과적인 승압제라는 말에 딱 어울리게 혈압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역시 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효율이었다.
“칼.”
“네.”
그렇게 혈압이 90을 넘기자마자, 나는 잇몸에 자리한 농을 죽 그어서 절개배농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바로 찾아오거나 하진 않았다.
패혈증이 이렇게 나으면 뭐…… 21세기에는 죽는 사람이 없지 않겠나.
“기도.”
“아, 그러지.”
원래 같으면 약도 넣고 별짓을 다 하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우리는 기도나 해야 했다.
들어줄는지 어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초조함에 미쳐 버린 19세기 의사들이 다른 짓을 벌이는 것보다는 기도가 확실히 낫긴 할 터였다.
해서 나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게 손에 손잡고 부흥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