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29)
검은 머리 영국 의사-429화(429/505)
429화 응급 [4]
부흥회라고 해서 뭐…….
막 소리 지르고 쓰러지고 그러진 않았다.
그건 약간 동양식 부흥회였던 모양이고, 19세기 영국은 오히려…….
뭐라고 해야 할까?
대단히 엄격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면모가 있는 만큼 우리는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사이에도 계속해서 이런저런 처치는 있었다.
“자, 다음 주머니.”
“네…… 그…… 저희는 그럼.”
“하하. 걱정 말게, 걱정 말아. 설마하니 나나 우리 공작님이 입 싹 닫을 거 같은가?”
“그건 아닙니다.”
“설령 공작님 돌아가셔도 내가 잊지 않아.”
“네, 네! 감사합니다.”
아직 순진하고 착해 빠진 유태인 청소년들 피를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어차피 피를 흘려서 혈압이 떨어진 건 아니었다 보니 그렇게 많은 양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공작 각하께서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된 것은 또 아니었다 보니 매일 한 명 정도는 공물로…… 아니, 피 주머니가 되긴 해야 했다.
“그러니까…… 식사 대신 주는 부분도 있다는 거지?”
“그렇죠.”
“그거…….”
“뭐요.”
“폴리도리가 썼던 뱀파이어랑 비슷한 거 아닌가……?”
“뱀파이어……? 그런 게 벌써 있어요? 드라큘라인가?”
“그건 또 뭐야.”
“아, 그건 아직이군.”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나 좀 무서운데.”
리스턴은 주먹으로 칠 수 없는 것, 즉 권력자나 혹은 귀신 같은 것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보니 이어지는 내 말에 뒤로 슬쩍 물러섰다.
자꾸 피 주머니와 나 그리고 점점 혈색이 좋아지고 있는 공작님을 번갈아 보는 것이 어째 숭악한 상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우선 공작님의 혈압부터 쟀다.
“으…….”
“좀 어떠세요.”
혈압 재는 방식이 아무래도 21세기 시절에 비하면 좀 아플 수밖에 없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다 보니 제이미가 깨어나 신음을 흘렸다.
어차피 계속 깨워 두는 것이 좋긴 했기에 이참에 질문도 던졌다.
“아프…… 아프네.”
“아프죠, 그럼. 생살을 쨌는데.”
“그게…….”
‘그게 할 소린가’라고 하고 싶은 듯했지만, 아쉽게도 아직 완전히 깨어난 것은 아니었다 보니 확실치가 않았다.
다만 예상을 할 뿐이었다.
말 그대로 생살을 째 놓고 꿰매 놓지도 않은 상황이니 아플 수밖에 없지 않겠어?
의사가 아닌 일반인도 예상할 만한 일인데…….
그렇다면 대체 왜 조치를 취하지 않느냔 말이 나올 터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는 아니다.
그런 거라기보다는 진짜 방법이 없어서 그렇다.
버드나무 우린 물로 뭐가 되겠나.
내가 먹어 보니까 거의 플라세보 효과에 기대는 것일 뿐이지, 진정한 진통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화학자 아저씨는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뭐가 진통 효과를 가져오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거라는데…….
이 양반은 다 조금만이라고 말하니 뭐 믿을 수가 없다.
“좀 아파요.”
“으. 으.”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으, 으……!”
때문에 나는 환자의 환부를 살필 때도 진통제를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취를 하면 되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21세기에도 케타민을 제외하면 혈압을 떨어뜨리는 게 대부분이다.
지금 저혈압이 문젠데 마취도 걸면 우리 공작님…….
아마 멀리 가 버리실 거다.
사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원시적인 마취제의 문제가 그것만이 아니기도 해서, 자제하는 게 맞다.
-전신마취 하면 머리 나빠진다는데, 맞나요?
21세기라면 당당하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 나빠질 거다.
일단 저산소증을 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약 자체도 해로울 것이 분명한데…….
우리가 독성 물질을 걸러 내지도 못하고 있으니 뭐.
“으아아아아!”
때문에 나는 이틀 전에 째 둔 곳을 조지프가 친히 소독한 청결 솜을 역시나 증류수에 담가서 마취도 없이 꾹꾹 눌러야만 했다.
그냥 아무 데나 째고 눌러도 아플 텐데 여긴 염증이 있는 곳 아닌가.
엄청 아플 거다.
나도 아프다.
마음이.
“휘유…….”
“정말…….”
“끔찍하구만…….”
“쉿. 저주받아…….”
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자, 보세요. 누렇죠? 농이 계속 잘 나오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진짜 사실 수도 있어요.”
“이…… 이…….”
‘이렇게 아픈데 사실 수도 있다니?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묻고 싶은 듯했다.
나도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정직한 의사다.
없는 말을 지어서 할 수는 없다.
그것이 비록 환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원래 줬다 뺏는 것이 가장 나쁜 짓인데, 희망 가지고 그러는 건 정말이지 최악이니까.
“일단 계속해 보죠. 지금은 한 번만 더.”
“이…… 이익…… 으아아아아!”
불로 지지는 것도 아닌데 제이미가 왜 이렇게 비명을 지르나 싶을 수도 있다.
강인하네 뭐네 해 봐야 역시 한낱 인간에 불과하구나 싶을 수도 있고.
하지만…….
19세기인이니까 비명이라도 지르고 있는 거다.
21세기였잖아?
이미 기절했거나 운 나쁘면 페인 쇼크로 죽었다.
이게 다 19세기인 중에서도 공작까지 해 먹고, 또 일흔 살 가까이 살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라 이만큼이라도 버티는 거다.
정 의심스러우면 어디 더러운 못이나 바늘에 찌르고 좀 버티다가 땡땡 부었을 때 생으로 살 째 보면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그쯤 되면 통증뿐만 아니라 죽음도 체험할 수 있을 거라는 건데…….
“휴,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아는 건…… 다 말했네…… 제발 자비를…….”
“그래서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이참에 이걸 한번 써먹어 볼까.”
통증을 참느라 있는 힘껏 힘을 주던 제이미 경이 탈력감에 훅 늘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죄수들 고문할 때 써먹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일 놈들이고 더 죽일 놈들 숨겨 주고 있는 놈들에게라면 얼마든지 뭐 해 볼 수 있지 않겠나?
아닌가?
21세기 자아가 속삭이듯 말했지만, 이제는 거의 흐릿해진 지 오래다 보니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 살 거 같은가?”
고문 아니, 치료하는 동안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리스턴이 다가와 물었다.
그사이 수혈이 재개되었는데, 딱히 그것 때문은 아니고 그냥 통증에서 벗어난 덕에 다시 살아난 것처럼 보이는 제이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였다.
“아무래도 그저께보다는 확실히 확률이 올라갔죠. 생각보다 강하시네요.”
“그래…… 뭐…… 우리가 피를 주고 있으니까.”
“그것도 있죠.”
“역시…… 피에는 생명이 있는 건가.”
리스턴은 아마 성경을 인용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여기서 해야 할 말은 ‘아닙니다’가 맞겠지만…….
이게 또 아니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당장 21세기에도 헌혈 독려할 때 생명 나눔이라는 문구를 쓰잖아.
달리 말하면 피는 생명이라고 해도 무방할 거 같다.
‘오…….’
나는 나도 모르게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말씀을 수천 년 전에 남기셨다면, 확실히 계시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아멘.”
그런 내 모습이 영험해 보였는지 리스턴뿐만 아니라 여럿이 ‘아멘, 아멘’ 했다.
이거 이러다 이번 일이 해결 되고 나면 대규모 유태인 납치 수혈 사태가 벌어질 거 같아 걱정이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전전긍긍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강하다.
‘나중 일은 나중에…….’
어?
모든 일을 어떻게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21세기에야 나 말고도 다른 똘똘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니까 일이 그렇게도 해결이 되지만…….
여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나서기 시작하면 문제가 더더욱 커질 확률만 높단 말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하는 게 맞단 생각과 함께 이 걱정은 저 멀리 치워 버리고 치료에만 열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더 지났을 무렵, 마침내 우리 공작님은 병상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죽다 살았네.”
“정말 죽다 사셨죠.”
“그…… 치료…… 맞았던 거지?”
“물론이죠. 저 아니었으면 벌써 돌아가셨어요.”
“그래,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소인배였다면 내 치료를 오해해서 눈이 회까닥 돌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 양반은 역시나 공작을 해 먹었을 만큼 대인이기는 해서 껄껄 웃었다.
웃는 얼굴이 좀 씁쓸해 보이긴 했지만, 하여간.
“그런데…… 내 몸에 유태인들 피가 좀 들어갔다고?”
“아, 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깨끗한 피가 들어가야 했어서.”
“그거…… 오해가 좀 생길 만한 말인데. 유태인들 피가 깨끗하다니…… 이거…… 자네 혹시 유태인인가? 아니, 그럴 수가 없는데.”
뭐…….
환단고기에 심취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가 ‘유태인과 우리 민족의 뿌리가 같다! 우리도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다!’라고 했던 거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 그런데 관심이 없기도 하고, 딱히 유태인하고 엮여서 좋을 일도 없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19세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도 봐.
그 사람들 덕에 살아난 주제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잖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성병이 아무래도 적지 않습니까. 덜 문란하니까.”
“허어, 점점?”
“그게 사실인데요. 외도…… 안 해 보셨어요?”
“그, 이 사람 참.”
“이 방에서는 저 말고는 순결한 사람이 없어요.”
“그럼 자네 피를 주지 그랬나.”
“저는 치료를 해야 하는데 저기 어떻게 누워 있습니까.”
“으음.”
“하지만 저도 유태인들의 피가 깨끗한 피다, 라고 소문이 나는 건 좀 그렇긴 해요.”
그렇게 되었다가는 진짜 납치 된다.
납치만 되는 것도 문젠데, 거기에 더해 살해될 거다.
피만 뽑으면 되는데 왜 살해까지 가냐고?
정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엔.
“그래? 그렇지, 그럴 수는 없네. 어디 더러운 유태인들이…… 아, 내 몸에…….”
“피는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 새롭게 되니까 걱정 마시죠.”
“아, 사혈을 해 줄 건가?”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어찌…… 아아…….”
“아무튼, 소문을 다르게 내보자고요, 우리.”
보통 선동과 날조를 할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진실을 아는 사람들의 입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웠다.
“뒈지기 싫으면 입 다무세요.”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뚝 잘라 들으면 마치 내가 협박이라도 한 거 같겠지만 아니다.
저 소문이 번지면 다른 놈들에게 뒈진다는 얘기였다.
“유태인들이 티에피영 응급 구조대에 의뢰한 덕에 제이미 경이 살았다……?”
“네.”
“말이 좀…… 이상한데?”
“그래도 유태인 탄압이 잠시라도 멈추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공작님께서 살아났는데요.”
“그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자네는 그냥 왔잖아.”
“공작님이니까 온 거죠. 딴 놈들이라면 돈을 내야 오죠.”
물론 나는 이 사태를 이용해 런던의 후진적인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할 계획이었다.
“의산데?”
“회원제라고 하면 될까요?”
“회원……?”
“네. 저희를 보려면 월정액을 끊어야 하죠.”
“여기 보면 등급표가 있는데, 이건 뭔가.”
“딱 정액만 낸다고 제가 오면 이상하잖아요. 뭘 더 내야지. VIP 등급제를 시행할 겁니다. ‘P.S.’에서 뭘 사건 우리 병원을 더 다니건 아니면 후원을 하건…… 하여간, 돈을 쓰면 등급이 오르는 거죠.”
이를 위해 NC형 응급 회원제를 도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