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3)
검은 머리 영국 의사-43화(43/505)
43화 이상한 소리가 나 [2]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 그래도 19세기에 산 사람을 죽었다고 하고 사망 선고를 내릴 리가…….
‘없어야 하는데. 없어야 하는데 말이지.’
나는 나도 모르게 아까 일을 떠올렸다.
19세기 와서 아니, 런던에 와서 참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많이도 만들고 있지 않나.
사람 관련한 기억은 대개 좋은 것인데, 의학 관련된 기억은 대개 그렇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끔찍할 수준이었다.
-두통을 치료하려면 역시 피를 빼야지!
너무 끔찍해서 그런가, 살짝 왜곡도 되어 있었다.
-일로 와, 이 새꺄!
회상 속의 닥터 제멜은 왜인지 모르게 로버트 리스턴 박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발목에서 피를 빼더니, 그다음에는 팔에서, 그다음에는 이마에서, 그러다 결국 거위 깃털을 이용해 코피를 냈다.
망할 놈이.
환자의 안색은 점차 창백해져만 갔다.
머리가 아픈 건 이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피가 빠져나가면서 저혈량 쇼크가 일어나고 있으니, 두통이 무슨 소용이겠나.
그나마 다행인 건 실력과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동맥을 째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정맥이나 모세혈관의 출혈은 혈압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피가 나고 나면 멎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게 되지.’
사망 진단이 쉽겠나.
그럴 리가 없었다.
누군가를 살리는 데도 의학적 지식은 필요하겠지만, 누군가가 죽었다는 걸 선언할 때도 의학적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실려 간 사람, 아는 사람이야?”
방금 열렸다가 닫힌 입구, 그러니까 무덤으로 향하는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나를 불렀다.
둘은 여전히 배움에 고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선은 나와 방금 전까지 째고 있던 팔뚝을 오가고 있었고.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터였다.
대가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배우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귀한 것인지 알 거거든.
“아니, 그게 아니라…… 움직인 거 같아서.”
“응?”
“움직여? 죽었다고 했는데.”
“착각이겠지?”
“그렇겠지.”
“그렇다고만 보기엔…….”
내 말에 조지프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앨프리드의 반응은 좀 묘했다.
해서 나는 조지프와 함께 선배를 바라보았다.
해명을 바라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앨프리드는 잰 체하는 귀족 출신이 아닌,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딱히 망설이지 않았다.
“너네는…… 못 들어 봤어?”
“뭘?”
“뭘요?”
“아…… 업턴 출신이지. 거기는 옛날 방식으로 장례 치르는 곳이 아직도 많지?”
“응?”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딱 들어오질 않았다.
해서 여전히 멍한 얼굴로 있으려니 앨프리드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말이야. 장례식 치를 돈도 없는 사람이 되게 많거든.”
“아…… 그건…… 그렇겠네요.”
그래.
장례식이라니.
나는 마차를 타고 오면서 지나쳤던 인간 군상들을 떠올렸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훨씬 나을 터였다.
이곳의 삶은 지옥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살아 있을 때도 그런데, 죽어서는 어떨까.
“그래서 그냥 묻어. 남의 묘에 묻기도 해. 그나마 아까 그 사람은 돈을 좀 받기는 한 모양인데…… 그래 봐야 공동묘지에 묻힐 거야.”
“그게…… 그게 왜요?”
“사실 이건 그냥 소문이야. 대부분은 무시하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앨프리드는 미국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음모론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음모론을 떠들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 그리 억울할 것도 없었다.
하여간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해부 실습실 구석이었다.
앨프리드가 우리 둘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까닭이었다.
나머지 일행 중에서도 우리가 뭔 얘기를 하나 궁금해 하는 눈치인 놈들이 있었지만, 콜린이 워낙에 싫어해서 그런지 가까이 오는 녀석들은 없었다.
“너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아? 소설인데.”
구석에서, 그것도 여기저기 시신이 놓인 해부 실습실에서 튀어나온 소설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라니.
나는 팔뚝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쓸어내렸다.
그에 반해 조지프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몰라요.”
“저는 들어는 봤어요.”
나도 읽었다고는 하지 않았다.
소설로 본 게 아니라 이토 준지 만화로 봤거든.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의대 공부 하면서 교양까지 쌓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뭐 시신에 전기를 흘려서 되살아난다 이런 얘긴데…… 그런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야. 런던 공동묘지에는 무덤에서 소리가 난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아.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난다고.”
“에이. 에헤이. 말이 됩니까, 그게.”
선배의 말에 조지프는 꺼림칙한 얼굴이 되어 손을 훠이훠이 저어 댔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시신들을 돌아보는 걸 보니 겁을 먹은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노상 과학을 말하지만 실상을 파헤쳐 보면 모자란 지식을 여전히 신비가 채우고 있는 시대니까.
허나 나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의심하고 있던 것에 파팟 하고 불이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산 사람을 묻었다…… 이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어. 죽은 사람이 움직인다고 하지. 하지만 내 생각은…… 어쩐지 그런 거 같아서. 예수님도 아닌데 죽었다 살아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렇죠. 게다가…… 아까 그 사람…….”
“움직인 것 같다고 했지? 그럼 가능성이 더 커.”
“따라갈까요? 실습이야…… 밤에 와서 해도 되니까요.”
나랑 앨프리드는 이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덤으로 향하는 문은 아니었다.
아까 그 사람들은, 그러니까 유족들은 달구지를 끌고 걸어갔지만.
지금 나나 선배 차림을 하고 저쪽 길로 걸어가는 건 일종의 자살 행위라 그랬다.
교수님이 함께라면 다르겠지만, 이렇게 셋이 가면 아마 강도질만 여러 번 당할 게 뻔했다.
“여길 밤에 온다고?”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와는 달리 조지프는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하필 방금 프랑켄슈타인이니 죽었다 살아난 시신이라느니 하는 얘기를 들어서 그럴 터였다.
‘이건 또 의외네.’
겁이 없는 줄 알았는데.
좀비 같은 건 무서운 모양이었다.
괜찮았다.
그런 건 없으니까.
“불 켜 놓고 하면 돼.”
“아니…… 나는…….”
“왜, 겁나? 기도해.”
“아니, 그런 게…….”
“일단 가자고. 만약 산 사람 묻고 있으면 어쩔래.”
“그. 하.”
내가 강경하게 나오는 통에 아무래도 할 말이 궁색해졌는지, 조지프는 한숨을 쉬며 뒤따라 나왔다.
“오, 오늘은 일찍 돌아가시나?”
마부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조기 퇴근은 무조건 좋은 일 아니겠나.
미안하지만, 그게 아니란 말을 해야만 했다.
“무덤에……? 아니, 거길 왜?”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꺼림칙한 말이었던 모양이었다.
마부 아저씨는, 그러니까 위험해 보이는 뒷골목에서도 당당해 보였던 아저씨는 파리하게 질린 채 물었다.
제발 농담이라 해 달라는 눈으로 되묻고 있었다.
‘산 사람 묻는 거 막으러 간다고 하면…… 안 되겠지?’
이 점에 대해서는 나와 앨프리드, 그리고 조지프 모두 합의된 사항이었다.
어떻게 봐도 좀 이상해 보이지 않나.
“아는 사람 기일이라서요.”
“아니, 런던에 아는 사람이 있었어? 근데 거기에…… 그…….”
해서 조지프가 총대를 멨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좀 이상하니까.
그렇다고 앨프리드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끼리끼리 어울리는데, 가문의 묘지도 아니고 공동묘지에 묻힌 사람을 안다고 하면 좀 그렇잖아.
“그렇구만. 그…… 음. 아. 이거야 원. 안 갈 수는 없겠네.”
마부 아저씨는 아는 사람 기일이라는 데도 연신 투덜거리며 마차를 몰았다.
솔직히 좀 오버한다 싶었다.
무덤.
꺼려지기야 하겠지만, 공동묘지라고 하면 나도 많이 가 봤단 말이지.
“어우.”
“이게 무슨…….”
“시신 썩는 냄새지 뭐겠나.”
많이 가 봤단 말은 취소했다.
여기가 19세기 런던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보여 주는…… 그런 곳이잖아.
“땅에 묻었는데 대체 왜…….”
“뭐, 그거야 무덤지기들이 알겠지.”
“물어본 적 없어요?”
“재수 없게 그런 놈들하고 어울리라고? 상종 못 할 것들이야.”
마부 아저씨는 떼잉 하고 화를 내더니 마차를 세웠다.
묘지 바로 앞은 아니고 좀 떨어진 곳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말도 좀 인상을 쓰고 있는 느낌이라 더 가 달라고 하기도 뭐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셋은 이미 시신 썩는 냄새라면 익숙해진 지 오래라는 점이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참…… 그렇긴 한데 하여간, 실제로 그런 걸 뭐 어쩌겠나.
“음.”
“으음.”
그렇다고 괜찮은 건 아니었다.
해부 실습실에서 냄새가 나는 거랑 묘지에서 나는 건 좀 다른 얘기였으니.
대체 왜 이러나 하고 봤더니 파헤쳐진 묘들이 좀 있었다.
끌어 올려진 관도 있었고.
도굴을 하는 건가 싶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여기 뭐가 있다고…….’
부자들 묘라면 어렵긴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장품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여긴 공동묘지였다.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묻히는 곳이란 얘기였다.
“어떻게 오셨소? 이런 데 올 만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근원적인 공포를 이기기 위해 셋이 최대한 달라붙어서 입구를 통과했더니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덤지기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알 수 있었다.
흙 묻은 옷에 퀭한 눈, 그리고 손에 들려 있는 삽.
‘와…….’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인상이었다.
“그, 방금 여기 온 사람들…… 어딨죠?”
“방금? 아…… 런던 칼리지에서 사고 나서 죽었다는 그 사람인가.”
의료 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언급하면서 저렇게 평온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정말이지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1도 없는 시대였다.
“벌써 저 안에 들어갔는데.”
“네? 벌써요?”
“그렇지 뭐. 시간 끌 게 뭐 있나.”
“아니…… 그거 좀 꺼내 볼 수 있어요?”
“시신을……? 음.”
여기 있다 보니 나도 좀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자각조차 못 한 채로 그거 좀 꺼내 보자고 해 버렸다.
자괴감이 들어 가만히 있는 동안, 무덤지기는 내게 뭐라고 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족은 갔구만, 그래.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추가금이 들어.”
그러곤 천벌 받을 소리를 해 대기 시작했다.
“시신을 가져갈 거면 돈을 더 내야 하네.”
마부 아저씨가 왜 상종 못 할 놈들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말이 무덤지기지, 시신 판매업자나 다름없는 놈이었다.
“아직 썩기 전이라 좀 비싸.”
단가까지 매기는 것으로 봐서는 진짜 업자였다.
하루 이틀 팔아 본 솜씨가 아니란 말이었다.
하여간 돈 얘기가 나왔기에 내 발언권은 소실된 지 오래였다.
나는 앨프리드를 돌아보았다.
평소라면 조지프도 함께였을 텐데, 녀석은 겁먹은 채 바닥만 보고 있었다.
물론 나 혼자만으로도 돈 내란 뜻을 전달하기엔 충분했다.
“또?”
“저 거지예요, 선배.”
“와…… 이제 존댓말 하는 거 봐라?”
“사람 죽일 거예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