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32)
검은 머리 영국 의사-432화(432/505)
432화 제대로 된 강의 [1]
원장님 말씀 중에 좀 억울한 것도 있다.
따지고 보면 내가 강의를 아예 안 해 본 것도 아니긴 해서 그렇다.
일단 해부 강의는 제법 여러 번 해 봤더랬다.
애초에 우리 병원 애들이 해부는 나름 잘하는 게 다 내 덕이란 말이다.
해부야말로 여러 의술, 특히 수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식이니만큼 넓게 보면 우리 병원이 수술을 잘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다 내 덕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알음알음 가르치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그땐 내 명성이 사실 그렇게까지 대단치가 못했더랬다.
리스턴이나 원장님에게야 인정받은 지 오래였지만…….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절대다수는 다들 나를 그저 노랑 원숭이 취급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런던 제일의 의사지, 이젠.’
학계에서 나를 두고 저격하는 놈이 있으면 그놈이 미친놈 취급받게 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나를 두고 그저 지금까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 욕하는 놈들도 있긴 하다.
이해는 한다.
내가 중간 설명을 잘 안 해 주고 있으니까.
근데 그건 내 잘못이라기보다는 그저 시대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잖아.
중간중간 떼어먹을 수밖에 없잖아.
이거 다 이해시키려고 들다가는…….
진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을 거다.
‘뭐…… 딱히 내 이론을 다들 이해하고 있어서 날 저격하는 놈이 없는 건 아니지.’
누가 그랬더라.
펜이 칼보다 무섭다고?
뭐…… 그런 시대가 언젠가는 올 수도 있긴 할 거다.
실제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긴 했다.
악플도 그렇지만 악의적인 기사와 보도로 인해 죽어 나가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나?
하지만 그때 그럴 수 있던 것은 결국, 칼을 쓸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리적으로 죽을 텐데, 뭐 어쩌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뛰는 놈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하다.
이따금씩 미친놈처럼 감히 나를 욕하는 애들이 있긴 하다고 들었다.
-죽일깝쇼?
부하들이 그때마다 와서 물었고.
뭐…… 일반적으로 볼 때 걔네는 죽는 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거 같긴 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런 고집쟁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둬.
아마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서 그럴 거다.
총과 칼 그리고 비인간성으로 무장한 일본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아닌가? 생각해 보니까, 그 새끼들은 그럼 나를 왜놈 취급하고 있다는 거 아냐.’
그냥 싹 죽일까……?
잠시 좋지 못한 생각도 들었는데, 간신히 내가 의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덕에 잡념을 뒤로 하고 제대로 된 강의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본래 의과대학 학과 과정은 복잡하고도 지난한 편이다.
애초에 6년제 아닌가.
그게 그냥 학교 오래 다니면 있어 보여서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고, 등록금 더 받으려고 그런 것도 당연히 아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 몸에 칼 대고 약 주고 하려면 당연하게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지 않겠나.
‘그걸 다 따라 하는 건 무리야.’
21세기 기준으로 한 사람의 제대로 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소양이 대단히 많다.
가령 수술을 한다고 치자.
그럼 수술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사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어떤 치료를 할지 결정하는 거다.
생각보다 같은 질환에 대한 치료라 해도 그 사람의 기저질환이나 질환이 진행한 정도에 따라, 또 약물에 대한 반응 및 기대 여명에 따라 치료 방법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법이기에 그렇다.
또 어떤 치료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달라지는 것이야 굳이 입 아프게 떠들 것도 없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왜…… 그 치료를 하느냐를 아는 거지.’
왜냐면, ‘왜’를 모르면 어떤 치료를 할지 선택하는 것도 불가능해지기에 그렇다.
예과 때 생물학부터 해서 유기 화학 같은 기초 과학을 배우고 본1 때 해부학, 생리학, 미생물학, 병리학 등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임상을 배우게 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다.
그러나 여기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나?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일단 나부터가 안 된다.
부끄럽지만 이제 다 까먹었다.
일반인들 대상으로 썰처럼 푸는 거라면야 되겠지만 나가서 사람 고쳐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건 도저히 무리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진득하니 배울 생각이 있는 놈들도 없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여기 와서 알았다.
전생엔 이해가 안 되었거든.
내가 환자 수술할 때 겁이 많이 났던 건 내가 무식해서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 와서 보니 수술이 잘못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대강이라도 짐작이 되니까 겁이 났던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럼 사람이 주저함이 없어져 버린다.
이 시대가 그렇다 보니 어제 의대 입학한 친구가 나는 대체 언제 사람 살에 칼 대 보냐고 한탄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일행 정도면 엄청 배움이 느린 거라고 보면 된다.
다른 팀 애들은 벌써 단독으로 칼질하고 다 하고 있거든.
문제는 그게 진짜 칼질이라는 거다.
‘족집게 과외식으로…… 딱 환자 치료하는 데 필요한 것만 골라서 가르쳐야 해.’
그렇기에 자연히 내 강의의 방향성은 야매로 잡히기 시작했다.
다른 데도 아니고 태화 의과대학을 나온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좀 서글퍼지긴 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
시대가…… 사파를 부르고 있다.
정파는 20세기 이후에, 대전쟁을 겪은 후에나 오라고 하자.
나는 나중에 욕을 먹더라도 지금 당장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최대화하겠어.
“후…….”
“이번엔 상당히 진심인가 보구만…….”
“어차피 따로 돈 나오는 것도 아닌데, 웬일인가.”
야매라고 하면 어쩐지 만만해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정식으로 가면 오래 걸릴 길을 조금이나마 짧게 가고자 길을 닦는 것인데 그게 어찌 쉽겠나.
이제 보니 사파 고수가 진짜 고수다.
정파는 그거…….
그냥 남들이 하던 대로 하는 게 다잖아.
그에 비하면 사파는 정말이지 온몸 비틀기 해서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진정한 무림인들이었다.
“사람 살리는 데 제가 언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있나요.”
그러한 연고로 지금 벌써 며칠째 퇴근도 못 하고 일하고 있는 중이다.
리스턴과 블런델은 오늘도 늦게 나온 나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고.
이들도 일을 하느라 늦게까지 병원에 있는 거냐면, 그건 아니다.
일단 자욱한 담배 연기부터가…….
아니, 뭐 이 시기 의사들은 수술하다가도 담배 물고 하니까 이것만으로 땡땡이치고 있다고 하는 건 지나친 억측이 될 거다.
“그러는 형님들은 무슨 놈의 카드 게임을 이렇게 오래 하십니까.”
하지만 탁자 위에 늘어져 있는 카드와 돈을 보면 뭐…….
“이게 재밌더라.”
“그래, 너도 해 봐라. 우리가 나쁜 거 가르친 적이 있더냐.”
나쁜 거라…….
리스턴과 블런델 일당이 내게 알려 준 거…….
아편, 담배, 술, 납 와인, 중금속 디저트 등등 일일이 열거하면 입만 아플 지경이다.
놀랍게도 다 좋은 뜻에서 알려 준 거긴 하다.
하나하나 다들 건강에 좋건 뭐에 좋건 간에…… 하여간,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는 속설이 있지 않던가.
저 중에서도 특히 담배는, 많은 의사들이 여전히 환자 앞에서 피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저히 나을 거 같지 않아 보이는 상처를 보면 측은지심과 함께 빨리 나으라는 의미로 담배 연기를 후 하고 불어 주기도 하는 신묘막측한 물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도 뻔뻔스레 내 얼굴에 대고 담배 연기 뿜어 대고 있는 이들이 딱히 날 모욕하고자 함은 아니라고 본다.
“도박이잖아요…….”
“도박이 나쁜가?”
“재미로 하는 거네, 재미로.”
“그래, 우리가 뭐 가산 탕진하자고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공작님은 왜 계신 겁니까?”
“몸이 나아서. 자네가 명의야, 하하.”
둘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카드 게임을 하려면 나름대로 쪽수가 있어야 하지 않던가.
내 은사님의 은사님이 마작을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그분 말이 마작이 개같은 게 4명 모으는 게 제일 힘들다는 점이라 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마작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죽는 통에 점점 힘들어져서 인생에 낙이 없다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이렇게 살면 진짜로 전쟁은 못 보고 가겠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조용히 앉아서 자기 카드 팩을 뒤집어 까고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켄트 공작 부인의 기둥서방 존 콘로이였다.
“댁은…… 여길 왜 왔소?”
따지고 보면 우리의 정적이라고 봐도 된다.
우리는 누가 봐도 왕의 편에 서 있고, 저 사람은 그 반대편에 있으니까.
뭐……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대립하는 꼴을 보이고 있진 않긴 하다.
애초에 윌리엄 4세가 그렇게까지 왕권을 휘두르고 있지 않기도 하거니와 사람이 유하기도 하기에 그렇다.
허나 윌리엄 4세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야욕을 결코 숨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카드 게임 하러 왔지.”
해서 퉁명스럽게 물었더니, 뭐 그런 걸 다 물어보냐는 식으로 답했다.
황당해서 나머지를 바라보니 오히려 나머지 일행이 나를 황당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카드 게임 하러 온 사람한테 왜 그러나.”
“그러게.”
“자기 일 열심히 한다고 뿔 난 모양인데.”
“아니…… 이 사람은…….”
“하하. 돈 싸 들고 오면 다 좋은 사람이지.”
“그러게나 말이야.”
“하하.”
그러더니만 나를 막 타박했다.
해서 억울해하려는 찰나, 리스턴이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진짜 찬 건 아니다.
리스턴이 진심으로 까면 다리가 부러져도 남을 테니까.
하지만 상당히 아픈 것도 사실이라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리스턴 또한 어이쿠, 내 코담배가 하면서 탁자 밑으로 숙이더니, 내게 비밀스레 속삭였다.
‘호구네.’
‘응? 아.’
그제야 나는 알아먹을 수 있었다.
이 인간이 여기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이유를.
도박꾼들한테 누가 최고의 친구겠나.
맨날 와서 돈 잃어 주는 친구가 최고다.
그렇다고 뭐 존 콘로이가 여기 와서 프락치 짓을 하고 있을까?
‘그럴 만한…… 위인은 아니지.’
이렇게 말하면 너무 신분제에 매몰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존 콘로이는 애초에 공작 부인과 대등하게 어울릴 만한 깜냥이 되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오히려 공작 부인을 등에 업고 분에 넘치는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는, 기둥서방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요, 수고들 하시고. 나는 바람 좀 쐬다가 다시 준비해야 해서.”
“허어…… 아직도?”
“아주 죽겠어요. 그래도 확실히 잘 나오고 있어요. 이 강의만 들으면 사고 칠 일은 줄어들 거예요.”
“기대가 되는군그래.”
“카드 돌리면서 그런 말 하면 아무 소용 없거든요.”
“그래, 알았으면 들어가, 우리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