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33)
검은 머리 영국 의사-433화(433/505)
433화 제대로 된 강의 [2]
이곳이 병원인지 도박장인지 모르겠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집중력을 발휘해 결국, 강의를 만들 수 있었다.
딱히 의사만을 위한 강의는 아니었다.
간호사까지만을 위한 강의도 아니었다.
의료인뿐만 아니라 그냥 일반인도 들어 두면 두고두고 쓸데가 있을 만한 강의들로 구성해 보았다.
‘너무 욕심부린 건 아니겠지?’
아직 강의를 해 본 것이 아니다 보니 좀 긴장이 되긴 했다.
생각해 보면 전생에서도 이름만 교수였을 뿐 진짜로 교수 생활을 해 보진 못했지 않나.
세상에 무슨 인생이 그런지…….
이제 인생 피겠지? 하는 찰나에 죽어 버렸다.
뭐, 교수라는 게 조교수 시절에는 딱히 좋지도 못하긴 한데…….
‘하여간, 가 볼까.’
나는 여전히 내 전용으로 남아 있는 연구실에서 잠시 쉬다가 이내 강의실로 향했다.
내가 일부러 우리 학교 사람들 말고도 다 오라고 청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강의실이 아니라 극장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가실까요?”
“그래.”
나는 갱단 부하이기도 한 마부가 끄는 마차를 타고 극장으로 향했다.
왕립 극장인데 이렇게 그냥 막 써도 되나 싶을 수도 있는데, 여기서 해부학 공연도 한다는 걸 감안해 보면 그냥 의학 강의 정도면 뭐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퍼포먼스가 아예 없진 않을 거다.
그냥 강의만 해서 뭐가 되겠나?
절박한 사람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수험생들과 같은 사람을 상대로라면 입만 털어도 일타강사니 뭐니 하면서 추켜세워 주겠지만…….
사실 진짜 실력이 늘려면 강사가 강의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지 않겠나.
지나고 나면 대학 그거 별거 아니라고 어른들이 떠들어 대곤 하지만…….
사실 중요하다.
일단 저 말하는 어른이 좋은 대학 나왔으면 ‘지는 좋은 대학 나와서 잘 먹고 잘살면서’라는 생각이 들고 또 그 어른이 좋은 대학을 안 나왔으면 ‘지도 못 나왔으니 신 포도 부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부터가 대학이 중요하다는 뜻 아니겠나.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뭔가 하기 위해서 아직까지는 대학 간판이 중요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절박함이 없지…….’
나는 거친 런던 골목을 내달리면서 역시나 우중충한 런던 거리를 내다보았다.
언제나처럼 오가는 사람들이 참 많기도 많았다.
아무래도 이 근방은 빈민가랑 거리도 있고 가난한 사람이 오기엔 비싼 가게들이 즐비한 곳이다 보니 다들 차림새가 준수했다.
그래서 그런가, 다들 표정도 좋았다.
21세기 눈으로 보면 참 비극만 가득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이전과 비교하면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뭐…… 백날천날 굶어 죽는 것이 일상이었던 세상에 적어도 런던 중산층 정도가 되면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니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벨 에포크 시대라고 부르던 모양인데…….
‘그래, 뭐…… 강의를 쇼처럼 해야지.’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지만, 그런 사람들만 모여 있어서는 세상이 발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그리고 나처럼 원래 좋은 곳에 있다가 후진 곳으로 온 사람은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이번 강의의 목적은 그런 인간 한둘쯤 더 만드는 데 있다고 보면 된다.
뭐…….
생각 없이 보면 재밌을 거다.
“이게…… 맞아?”
“어, 맞어.”
“아니…… 이건 고문 기계인데…….”
“좋다고 니네 부모님도 보내고 했을 땐 언제고.”
“그건 내가 안 하니까…… 으아…… 교수님!”
일단 무대 장치가 있다.
많이 작아진 고문 기계…… 아니, 천국의 계단이다.
비만 캠프에 왕까지 왔다 갔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오겠다고 하는 이들이 막 늘었더랬다.
그러나 우리 캠프는 가격이 좀 있다 보니 오고 싶다는 사람을 다 받아 주기가 어려웠다.
문제는 돈 있는 사람들은 또 바쁘다는 점이었다.
자본가라고 하면 어쩐지 일은 노동자에게 맡기고 맨날 놀러 다니는 사람들이 떠오르겠지만 그건 귀족 계급이 그렇고, 이제 막 사업 시작해서 부를 늘리고 있는 신흥 자본가들이나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법관이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들은 돈 많이 받는 노동 계급이지 않나.
‘원래 집에다 놓는 물건이긴 하지.’
물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만들어 내는 것처럼 인테리어 용도로 써도 될 듯이 이쁘거나 하진 않다.
그렇게 작지도 않다.
전자 제품이 아닌 만큼 엔진이나 기타 기계 부분이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크다.
다행인 것은 이 시기 부자들은 집구석이 꽤 넓다는 점이었다.
해서 대강 설치할 수 있게끔만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대박이 난 거랑 나랑 뭔 상관이냐고…….”
앨프리드는 그 위에 끌려 올라가 걸어야 할 운명이었다.
왜?
내가 증명을 해낼 참이라 그랬다.
평소 운동을 해 온 사람, 즉 조지프와 그러지 않은 사람인 앨프리드가 객관적으로 얼마나 체력 차이가 나는지를 보여 줄 예정이다.
사실 타고난 것에 의한 차이가 훨씬 크겠지만 그런 거까지 고려해서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21세기에서도 제일 어려운 연구가 생활 행태에 관한 연구였겠어.
운동과 식습관, 수면 습관이 건강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연구하는 건 일단 그 사람이 그 생활 습관을 잘 지켜야 가능한 일인데, 심지어 실험 대상이 적을 때는 개체 차이가 있다 보니 운동 하나도 안 한 놈이 훨씬 더 오래 살기도 하고 그런다.
“이게 다 인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선배.”
“이게 무슨…… 내가 뭔가 잘못했다면…….”
“잘못할 게 있나. 오히려 내가 신세만 지고 있지.”
“근데 이게 무슨 일이야.”
해서 조작을 좀 했다.
데이터 마사지를 했다는 얘긴데, 21세기에서 이런 짓 했다가는 매장된다.
사실 하기도 어렵고.
IRB(기관 생명 윤리 위원회)니 뭐니 하는 감시 기관도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논문 에디터들이 어찌나 깐깐하게 보는지 여기서 했다는 연구가 재현이 안 되는 순간 바로 조사 들어간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뭐가 되었건 운동하면 건강해진다는 건 너무 당연한 명제잖아?
“자, 안녕하십니까. 김태평입니다.”
나는 그렇게 좌우로 설치된 기계 위에 각각 조지프와 앨프리드를 올려놓고 인사를 올렸다.
극장을 채운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딱히 의사만 있는 게 아니라 간호사에 그냥 돈 많아서 초대된 이들도 있고, 또 빅토리와 공주와 같은 주요 인사들도 있다.
해서 나는 평소보다 훨씬 더 신경 써서 옷을 입은 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서야 발표에 들어갔다.
“여기를 봐 주십쇼.”
PPT를 이용해서 발표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건 먹고 뒈지려 해도 없는 세상 아니던가.
하지만 돈과 인력이 충분하면 다 되긴 한다.
“오…….”
“저건……?”
천에 글씨를 써서 극장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내가 손짓을 하면 위에 있는 인력들이 제일 겉에 있는 천을 떨어뜨려 다음 장이 뜨게 한다.
주변에 가스등을 잔뜩 가져다 놨기 때문에 어지간히 눈이 어두운 사람 아니라면 다 읽을 수 있을 거다.
애초에 글씨가 크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많은 내용을 담지 않았거든.
“오늘의 주제는 개념입니다. 의학의 개념을 바로잡는 시간이 될 거라는 얘기죠.”
이전 같았으면 이런 얘기 하는 순간 붙잡혀 갔을 거다.
‘감히 오랜 전통을 무시하고 이딴 소리를 해?’라고 하면서.
하지만 이젠 아니다.
경찰이 내 편이고 왕이 내 편이고 공작도 내 편인데 누가 감히 나를 건드리겠나.
물론 종교계에서는 나를 좀 저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지동설을 주장한다고 해서 죽일 수 있고 그런 세상도 아니다.
교회의 권위는 여전히 무시하기 어려우나 그렇다고 해서 전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정도도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히포크라테스와 갈렌의 저서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습니다. 수천 년도 더 된 지식을 마치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직접 종교계를 규탄하는 것도 아니니 뭐 이 정도는 좀 공격해도 될 거 같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감히…….”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예상했던 바였다.
무시하고 진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체가 다 저러면 또 모를까…….
“쉿.”
“어디 피영시인이 말씀하시는데.”
이제는 런던에 내 빠들도 많다.
“이제 지구는 둥글며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돈다는 것은 정설이 되었습니다. 천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완전무결하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도 않다는 것이 명명백백히 밝혀졌죠.”
해서 나는 안심하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 말은 곧 옛 성현들의 말씀이라고 해서 다 맞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솔직히 우리 의료인들, 다 반성해야 합니다. 저까짓 하늘. 저게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내는 것이 지금 당장 죽어 나가는 환자 고치는 것보다 중요합니까? 아니죠. 저건 엄밀히 말하면 취미의 영역입니다.”
후에 천체 물리학자들이 들으면 기함할 만한 소리를 떠들어 대면서였다.
하지만 실제로 우주를 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면서 동시에 실생활에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게 응용 과학자인 내 생각이다.
그에 비하면 당장 의학 한 줄 더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뭐 지구가 아예 못 쓸 땅이 되어 버린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19세기는 아직 그러려면 먼 시기다.
지금 구원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이렇게 치고 나가는 동안 우리는 뭐 했습니까? 아직도 상처가 나면 갈렌의 말씀을 따라 지지고, 기름 붓고 오만 지랄을 해서 오히려 환자를 죽이는 이들이 많죠? 그나마 런던은 나와 여기 있는 조지프 그리고 리스턴의 협조로 인해 절단 환자가 많이 줄었지만, 저기 저 미개한 바게뜨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하루에 몇십 개의 팔다리가 절단되고 있습니다.”
그런 얘기를 너무 직접적으로 하면 욕먹을 수 있으니 나는 교묘하게 질투심도 유발하고 또 프랑스 욕도 했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새 천에는 썩은 빠게뜨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다들 좋아했다.
하여간, 우리 영국인들은 프랑스 욕을 하면 이렇게들 좋아 죽는다.
이제 곧 프랑스랑 동맹해서 러시아 박살 낼 작정을 윗분들이 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이 개념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우선 다친 사람을 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 자랑스러운 대영제국의 문자인 알파벳을 이용하면 좋을 거 같아 이렇게 써 봤습니다.”
다음 PPT 아니, 천에는 ABC가 쓰여 있었다.
이것도 못 읽는 사람은 이제 적어도 런던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빈민들도 어느 정도 다 읽는다, 이 말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야 당연히 보는 순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음 얘기는 아예 처음 들어 보는 것일 터였다.
그것이 설령 의사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게 될까 싶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족집게 주입식 교육이라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