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35)
검은 머리 영국 의사-435화(435/505)
435화 제대로 된 강의 [4]
“사혈!”
“아니지! 지져야지!”
“어허…… 이런 사특한 소리들이나 하고 있다니. 때가 어느 때인데. 소독부터 해야지! 술을 부어야지 않겠나.”
“지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소독일세!”
내 말 한마디에 아주 난리가 났다.
뭐…….
무리도 아니긴 하다.
내과야말로 진정한 의사 취급을 받는 시대이긴 하지만, 사실상 뭔가 해 볼 수 있는 건 오히려 외과 쪽이거든.
내과…… 솔직히 뭘 할 수 있나?
21세기에도 내과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지켜보는 거였던 거 같다.
내가 외과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뭐만 물어보면 음 더 지켜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이 지랄만 하는 통에 속 답답해 뒈지는 줄 알았다.
그러다 진짜 뒈져서 여기까지 온 거니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내과 놈들의 책임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자자, 조용.”
잠시 회한에 젖어 있던 나는 소란스러워진 장내를 침묵시켰다.
예전 같았으면 소리 지르고 별 지랄을 다 해도 소용이 없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강하다.
이 말 한마디에 말 그대로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운집한 강당을 조용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이 권력이고, 이것이 권위다.
생각보다 19세기…… 살 만할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간신히 뒤로 하고 입을 열었다.
“다친 사람이 왔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이 사람이 어디가 얼마나 다쳤는지 보는 것입니다.”
“아.”
“에이…….”
몇몇은 감탄했지만 또 몇몇은 겨우 그 정도냐는 반응을 보였다.
원래 원칙이라는 것이 이렇긴 하다.
듣고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법이다, 이 말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을 안 해서 죽어 나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당장 저번 다리 붕괴 사태만 봐도 그렇지 않았나.
구조랍시고 막 빼내다가 덜컥덜컥 죽어 나가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그전까지는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어디가 얼마나 다쳤는지 모른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아.”
“아?”
그러한 내막을 조금 풀어서 설명하니 에게 하던 놈들도 조금 표정이 달라지는 것이 보였다.
애초에 여기 불러다가 앉힌 놈들은 나나 리스턴, 적어도 원장님 선에서 쓸 만하다고 여긴 놈들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예 싹수가 노란 것들은 입구 컷이었다, 이 말이었다.
어차피 가르쳐 봐야 제 맘대로 환자 죽일 놈들 앞에서 입 아프게 떠들 일은 없지 않겠나.
물론 길게 보면 그런 놈들까지도 다 어떻게든 고쳐 써야 하는 게 맞는데…….
이 시대에는 교정·교화하는 데 있어 쓸 수 있는 방법이 꼭 평화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다행이다.
말로 안 되면 패면 된다, 이 말이다.
“함부로 옮기거나 처치하다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상처가 더 덧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그 부위가 허리나 목, 머리면 치명적이죠. 콜린.”
“네.”
콜린은 누운 상태 그래도 허리를 들어 올렸다.
“이렇게 다쳐서 의식이 없는 환자는 자신이 어디를 다쳤는지 알 수 없어요. 만약 보이는 부위 외에 허리를 다쳤다고 가정해 봅시다. 허리 부상이 있는 환자에서 하반신 불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으음…….”
“그렇긴 하죠.”
“간당간당한 상태였는데 우리가 뭔가 처치를 하려고, 또는 이동을 시키려고 허리를 건드려서 더 다쳐서 하반신을 못 쓰게 되면 그건 참 불운한 사고 아닙니까?”
“아아…….”
“그렇긴 하겠네.”
저렇게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엔 진정한 의료사고지만…….
이 시기에는 의료사고에 대한 개념이 좀 약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 19세기라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20세기에도 그랬다.
내가 이래 봬도 꽤 상남자라 한 때 흉부외과를 꿈꿨던 적이 있거든.
하지만 펄떡거리는 심장을 실제로 눈앞에 두게 되면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저건 감히 손을 대도 되는 장기가 아닌 거 같단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21세기 수술이야 심장을 잠시 멈추고 한다고 하지만 옛날, 그러니까 1900년대 중반까지는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뛰는 심장 그대로 했으니 더 했을 거다.
‘그 심장 수술이 발전하게 된 계기가 진짜…….’
괜히 심장 수술하려면 사자의 심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닌데…….
하여간, 아무리 옛날 사람이라고 해도 심장 수술은 금기라 여기긴 했더랬다.
지금도 심장 수술은 금기다.
물론 알게 모르게 건드리는 놈들이 있긴 할 텐데 환자들 싹 다 죽이고 있을 테니 알려질 일은 없을 거다.
무튼, 심장 수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찰스 베일리라는 양반인데, 그 사람이 가슴을 연 채로 죽인 사람만 5명이다, 5명.
21세기였으면 의사 면허 박탈이 문제가 아니라 감방 가야 될 텐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막판에 성공한 것만 바라봐서 영웅이 됐다.
뭐, 그 사람 덕분에 후에 수십만이 살게 되었으니 영웅이라 해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 무조건 다쳐서 왔다. 그러면 상처부터 살피십시오. 상처가 어떻게 된 줄도 모르고 치료 계획부터 세운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 아닙니까, 생각해 보면.”
그런 시대에 내가 강의를 하고 있다.
참 어려움이 많다, 이 말이다.
그래도 이젠 내가 퍽 권위가 있는 편이다 보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긴 하다.
“헌데 그 상처를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일단 상처에 난 피를 닦아야 해요. 피가 사실 시야를 엄청 방해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나님도 참, 투명하게 만들어 주셨으면 좀 좋나.”
피가 투명했으면 장담하건대 사망자 수가 몇 배는 늘었을 거다.
눈에 팍 띄는 색이라 다친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거든.
하지만 뭐 그것까지 내가 떠들 일은 아닌 거 같아서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헝겊으로 닦아 내는 건 또 그것만으로도 상처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일입니다. 한번 문대 보세요, 살에. 꽤 아프죠? 이미 상처가 나서 피부가 벗겨진 상태라면 더 심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류수를 뿌려야 합니다.”
제일 좋은 건 사실 식염수다.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정확히 개량이 된 식염수를 대량 생산하는 건 아예 무리기 때문에 그냥 증류수를 쓰고 있다.
물론 이거 만드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은 아닌데, 뭐든지 하다 보면 늘기 마련이고 또 돈을 쓰면 개선이 되기 마련이다 보니 지금은 증류수 만들기 세트도 생산을 하게 되었다.
“근데 증류수 그냥 만들려면 힘들죠?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물건입니다. 존 스노.”
“네.”
스노가 내 말에 다라이를 끌고 나왔다.
그 위에는 증류기가 있었는데, 진짜 그냥 물 붓고 끓이기만 하면 증류수가 완성이 되는 물건이다.
물론 불을 때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조지프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할 수 있겠다.
“혼자 만들려면 만드셔도 되는데, 그게 쉽지 않겠다 하는 분들을 위해 오늘 하루만 프로모션 가격으로 모십니다. 나중에 나가기 전에 이름을 적고 돈만 내시면 우리가 배달도 해 드려요.”
돈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다.
나는 진짜로 돈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인류를 생각할 뿐이다.
진짜다.
아무리 좋고 필요한 일이라 해도 성가신 일이 되어 놓으면 손이 잘 안 가기 마련 아닌가.
조지프같이 유별나게 투철한 놈이 아니면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그럴 때 이 기기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자, 그렇게 깨끗하게 상처를 닦아서 관찰하고 나면, 다친 정도에 따라 치료를 해야겠죠.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잘 들으세요.”
나는 그 후로 소독의 중요성과 봉합 기술에 대해서 떠들었다.
아쉽게도 완전 멸균된 실도 생산이 어렵거니와 녹는 실은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기 때문에 안쪽만 꿰매는 건 안 될 일이다 보니 그냥 상처에 따라 깊게 뜨고 안 뜨고를 구분해 주었다.
또 길이가 짧으면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도 그렇게까지 깊게 뜨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물론 원래 같으면 깊게 뜨는 게 더 좋긴 한데, 지금은 그렇게 하다 더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감염 위험이 올라가는 시대다 보니 오히려 피하는 게 더 좋아 보여서 그렇게 말했다.
“자, 제일 중요한 게 뭐냐. 바로 소독입니다. 상처가 감염되고 썩으면 죽어요. 무조건 죽습니다. 그러니 소독이 제일 중요합니다.”
“아…….”
“흠 그 정도인가.”
중간에 인터넷 댓글 빌런 같은 말이 나온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대부분은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다.
이전 같았으면 굳이? 위생? 더 위험한 거 아닌가? 등의 반응이 이어졌을 텐데, 그래도 런던은 우리의 활약으로 인해 제법 개화가 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소독이 중요하다는 데 그건 전통에 부합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소리는 없어.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하여간, 강의만 하다 하루를 다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슬슬 높으신 분들의 집중력이 흩어질 시간이기도 해서 고만두기로 했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고 원래 계획했던 게 이 시간이다.
“저기!”
해서 집에 가려는데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원래…….
꼭 있다.
질문하라고 할 때는 안 하고 나중에 하는 인간들.
뭔가 부끄러워서도 그럴 거고 아니면 강연자와의 개인적인 친분을 원해서도 있을 거다.
뭐가 되었건 간에 귀찮아진다, 이 말인데 괜찮다.
내게는 부하가 있으…….
“으아아아.”
“으어어억…….”
“뭔 여자가 힘이…….”
잉.
불상사가 생긴 거 같아 뒤를 돌아보니, 대단히…….
초면에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고집스럽게 생긴 여자아이인지 여성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애매한 나이의 사람이 내 부하들을 집어 치우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동시에 위압 스킬이라도 건 것인지 나는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리스턴이 옆에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형님은 아직 극장에 앉아 있어서 제지도 불가했다.
“티에피영 경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그렇게 내 부하들을 수수깡처럼 밀어젖히고 다가온 여성은 당당히 내게 말했다.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나도 수수깡이 될 거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이고 나발이고 믿지 않는 이에겐 안 통하는 법이지 않나.
“그렇군요. 정말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특히 소독 부분이 마음에 드는데…….”
“어, 어어.”
“병원에서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말 안 듣는 놈들이 많을 거 같은데.”
“그…… 힘으로……?”
“역시.”
여기서 납득하니 더 무서웠다.
시벌…….
힘으로 한다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
아…….
잠깐.
나 이 사람이 누군지 알 것도 같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성녀로 표현하지만 알고 보면 성기사 혹은 바바리안 느낌이 옳은 사람.
“혹시 존함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