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3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36화(436/505)
436화 나이팅게일 [1]
병원에서 간호사는 병동의 기둥이라고 보면 된다.
의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을 수직적으로 보곤 하는데…….
뭐, 그랬던 적도 있긴 하다.
아직 의료라는 것이 거의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
의사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나머지 인력은 그저 그를 보조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세기쯤 되면 슬슬 의료도 제법 진보를 하게 되는데, 그중에는 당연히 간호사라는 직업의 재정립도 있다.
‘이 양반이 그걸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21세기 대학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의사가 처방을 내면 간호사가 그 처방을 수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처방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이후 환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까지도 기록하고 보고한다.
그 외에 투약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를 포함해 전문 영역에 속하는 간호 업무를 한다.
의사는 사실 이런 것을 다 배우지도 않을뿐더러, 실제로 병동에 계속 있지도 못하기에 만약 병원에 간호사가 없다면 환자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거나 적어도 예후가 어마어마하게 나빠질 터였다.
그리고 우리 병원에는 간호사가 없다.
있긴 한데 제대로 된 간호사는 하나도 없다고 해도 된다.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라 그냥 제도가 그렇고 교육이 그렇다.
19세기 의사들이 돌팔이인 게 무조건 그들 잘못인 것은 아닌 것처럼.
“오…….”
옛날엔 안 그랬는데 요새는 딴생각하고 있으면 말이 안 나온다.
해서 오만 연발했는데 다행히 나이팅게일 쪽이 똘똘했다.
“혹 병원에 사람 안 필요하십니까?”
어떻게 봐도 아직 애긴 하다.
물론 영국인들이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에 비하면 좀 들어 보이기도 하고 덩치도 있고 하다 보니 나이가 가늠이 잘 안 되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보다 보면 이게 또 신기하게 구분이 된다.
어린애들은 티가 난다, 이 말이다.
“필요하지.”
하지만 그럼 뭐 어떻단 말인가.
나도 어린데.
아동 보호법에 저촉되지도 않는다.
왜?
그런 법 따위 없거든.
보호고 나발이고, 이 시대는 진짜 낭만에 미쳐 돌아가는 시대다 보니 애라고 하면 더 좋은 노동 인력으로 여기는 곳도 많을 지경이다.
성냥팔이 소녀 안나도 백린 성냥 만드는 곳에서 일하다가 턱뼈 녹아서 일도 못 하게 되니까 월급 대신 성냥 줘서 내쫓았고, 그런 몰골의 아이가 파는 성냥은 아무도 안 사 주고 그 결과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안나가 자기가 받은 성냥을 태우다가 급성 백린 중독으로 환각을 보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시대상을 보면 제대로 된 해석이지 않을까?
“오…… 그럼 저도 일할 수 있나요?”
“물론이지.”
“근데 제가 좀…….”
“좀?”
“우악스럽다는 평을 많이 듣습니다. 보기와는 달리요.”
아니, 보기에도 많이 우악스러워 보입니다.
아까 올 때도 우리 부하들…… 그래도 명색이 깡팬데 다 여기저기 던지면서 왔 잖아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사나이, 그게 나니까.
비겁하다는 말은 하지 말기 바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선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폭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실제로 교통사고에 준할 만큼 심하게 맞고 응급실로 오는 경우를 왕왕 본다.
지금 의학 수준으로는 살리기 어려울 만큼…….
그러니까 맞아 죽는 사람이 꽤 된다는 말이다.
“그…… 뭐 사람 살리려면 좀 우악스럽기도 하고 그래야지.”
“그렇죠? 역시 피영시인은 알아줄 줄 알았습니다. 특히…… 소독. 이거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일인데 인간들이 말을 안 들어요.”
뒤에 ‘그래서 팼습니다’라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을 두고 감히 이런 말을 하네 어쩌네 하는 소리는 하지 말기 바란다.
애초에 간호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나른한 직업인 것도 아니지 않나.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들을 텐데, 사실상 의료인은 병과 싸우는 군인들이라고 보면 된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환자와 동맹을 맺고 싸우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응급실에서는 술에 취해 병과 편을 먹는 환자들이 꽤 있고, 중환자실에서는 섬망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 보니 그 전선의 선봉에 서 있는 간호사들의 전투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 그렇지. 뭐…… 정 안 되면 어떻게든 하는 게 맞긴 하지.”
“역시…… 역시…… 피영시인입니다!”
그중에서도 나이팅게일은 종군 간호사다.
크림 전쟁.
내가 무식해서 어디랑 어디가 싸운 건지 모르겠는데…….
‘어?’
나이팅게일이 영국 사람이었네.
몰랐다, 이건.
다 내 잘못이다.
무식하기도 하거니와 딱히 관심도 없었어.
생각해 보면 적어도 산업 혁명 이후로 세계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 태반이 영국 사람이고 또 나이팅게일은 어떻게 봐도 영어 이름이니 영국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했는데…….
‘그럼 크림 전쟁도 영국이 일으킨 건가? 내가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면 꽤 큰…… 큰 전쟁일 텐데?’
뭔가…….
뭔가 떠오를락 말락 한다.
조금만 더 머리를 굴리면 진짜로 뭔가 떠오를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그럼 저는 언제부터 나가면 됩니까?”
“어…….”
눈앞에 전사가 있는데 한눈파는 건 그리 지혜로운 일이 아니니까.
해서 나는 우선 나이팅게일에게 집중했다.
아까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던 내 부하들 때문에 잠시 당황해서 그렇지, 나이팅게일을 꽁으로 고용하게 된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삼국지로 치면 길 가던 장비가 ‘어이 술만 먹여 주면 내 얌전히 일을 해 주지’ 하는 셈이랄까?
물론 잘 다루지 못하면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되긴 하겠지만…….
나이팅게일이 무분별하게 사람 패고 다니고 그랬다면 어찌 세상에 나이팅게일 선서라는 게 있을 수 있었겠나.
본인의 기준에 미흡하다 싶은 사람에게만 혹독하게 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꽤나 혹독하긴 했을 테니, 그 말 안 듣기로 유명한 군인들까지 다들 설설 기면서 손 닦고, 소독하고, 뭐 그랬겠지?
“내일부터 오게. 아주 좋아.”
진심이다.
좋다.
그 정도는 해 줘야 우리 19세기인들이 말을 들을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조지프도 요새 안과 수술 배우고 익히고 직접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미처 병동은 챙기질 못하고 있는데…….
이럴 때 우리 나이팅게일이 병동에 강림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오…… 이렇게 화끈할 수가…… 근데 보수는…….”
“나는 사람을 아끼는 편이야. 전보다 훨씬 나을 거야. 애초에 자네 학생 아닌가?”
“그건 맞죠.”
“돈 벌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겠네.”
“와.”
“대신 내 지침을 온 병원 사람들…… 환자들까지 포함해서 다들 따를 수 있게 해 줘.”
“그건 자신 있습니다.”
“좋아.”
생각해 보니까 나이팅게일한테 내가 쫄 일은 하나도 없었다.
돈 주는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게다가 나이팅게일을 병동에 짱박아 놓게 된다면…….
사실 나는 얘랑 마주칠 일도 거의 없다.
말 그대로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다, 이 말이었다.
“뭐, 좋은 일 있으신 모양입니다? 애들은 똥 씹은 표정이던데.”
“아…… 힘이 장사인 간호사를 뽑게 되어서.”
“간호사가…… 힘이 장사일 필요가 있을까요?”
“간호사야말로 세면 셀수록 좋지.”
그렇게 인재를 얻은 덕에 기분이 좋아진 채로 마차에 오르니 마부 역할을 맡고 있는 부하 녀석이 넉살 좋게 웃으며 물어 왔다.
해서 나도 꽤 친절하게 답을 해 주었는데 아쉽게도 잘 알아듣진 못하는 듯하다.
하긴 얘네가 생각하는 간호 업무란 그저 뭐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고, 소리 지르면 조용히 시키는 정도가 다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저 업무조차 힘이 세면 더 잘하게 된다.
세상에 힘이 세서 나쁜 게 있겠나.
“그, 그렇군요.”
“아무튼, 오늘은…… 음. 좀 피로하니 차나 마시러 가지.”
“아, 네. 그럼 어디로…….”
“어디로 갈까…… 그래, 제이미 경네가 좋겠네.”
“제이미 경…… 안 계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괜찮아, 나는.”
“그건…… 그렇긴 하죠.”
19세기라고 하면 무조건 런던이 제일일 거 같겠지만…….
사실 런던은 너무 오래된 도시다 보니 오히려 뉴욕에 비해 후진 감도 있다.
특히 호텔이 그렇다.
뉴욕에는 벌써 그랜드 호텔이라는 이름의 우리가 아는 호텔들이 있어서 돈 있는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가서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있는데, 런던은 아직 약간 여관식이다.
뭐 자본가들 사이에서 도는 얘기 들어 보면 런던 부자들이 뉴욕 부자들보다 돈도 훨씬 많고,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이 런던을 찾고 있는 만큼 곧 지어질 것도 같은데…….
그전까지는 그냥 아는 사람 집에 가서 먹는 게 제일이다.
우리 집은 내가 차를 잘 모르다 보니 잘 가르치지도 못하겠고, 또 뭔가 생활 공간에서 먹으면 그 맛이 안 나기도 해서 여러 부잣집을 전전하고 있다.
‘하여간…… 아까 크림 전쟁. 영국이 일으킨 전쟁 중에 큰 전쟁…… 19세기…….’
19세기는…….
마차 창밖을 보면 진짜 끔찍하긴 하다.
특히 런던은 저 공기 오염 때문에 더 끔찍하게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는 평화의 시기라고들 한다.
아, 유럽이 그렇다는 거다.
유럽 놈들이 전 세계 누비면서 온갖 나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 고려하면 평화의 ‘ㅍ’ 자도 나올 수가 없어.
‘그럼 이게…… 설마 제이미 경이 일으키겠다는 전쟁이 크림 전쟁인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는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우크라이나에 뺏은 땅도 크림 반도였고…….
그 근처 어디선가 벌어진 전쟁이니까 크림이라고 했겠지?
“허.”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니야. 내가 너무 똑똑해서 놀랐다.”
“아…… 네…… 그러시죠.”
부하 놈은 다시 묵묵히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나는 그사이 다시 한번 크림 전쟁에 대해 생각했다.
청나라와의 전쟁도 전쟁이긴 했지만…….
사실 그건 승패가 정해져 있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상식적으로 목선 가지고 싸우는 나라가 증기선까지 띄우는 나라를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게다가 여기 군대는 신식 군대고 거기 군대는 구식 군대다.
군대가 다 같은 군대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군대는 제대로 싸우기 어렵다.
특히 근대 화기를 이용한 싸움은 더 그렇다.
상대적으로 발전한 무기를 다루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거든.
‘러시아는 그래도 유럽이야. 딱히 러시아가 전쟁을 잘했던 적은 없는 거 같긴 하지만…… 청보다는 셀 거 같은데…… 음.’
진짜로 꽤 많은 사람들이 다칠 거 같다.
역사에 남은 전쟁이라면 더더욱 그럴 테지.
헌데 진짜로 나를 여기로 보낸 신이 존재하긴 하는 모양인지 딱 맞는 타이밍에 아마 원 역사보다는 어릴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나이팅게일이 내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걸 잘 활용해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