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37)
검은 머리 영국 의사-437화(437/505)
437화 나이팅게일 [2]
병동.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공간을 뜻한다.
한 번이라도 입원해 본 사람은 알 텐데, 생각보다 의사 만나기 어렵다.
의사들은 외래 또는 수술방에서 다른 환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왜 입원시켰나 싶을 수도 있다.
수술과라면야 수술하기 위해 입원시켰구나 하고 납득이 가겠지만 내과는 그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집에 가면 죽을 거 같으니 입원시키는 거긴 한데…….’
21세기 대한민국 대학병원에서는 입원시켜 놓으면 마음이 확실히 편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어떻게 되더라도 바로 가서 볼 수 있다, 일단.
게다가 대학병원을 비롯한 현대 의학은 점점 시스템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혹 내가 갈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다른 의사나 팀이 가게끔 되어 있다.
거기에 더해 병동에서 잔뼈가 굵은 간호사들도 신뢰할 수 있다.
어지간한 응급엔 초동 대처가 가능할뿐더러, 진짜 심각한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파악이 되기에 그렇다.
하지만 여긴 어떤가?
‘차라리 집이 나을 수도 있어.’
나는 21세기 의사다.
이런저런 부족한 것들이 대단히 많기는 해도, 적어도 뻘짓은 안 한다.
하지만 그런 내가 24시간 지키고 서 있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그렇다.
나 또한 내 환자들을 계속 봐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제자들만 덜렁 보내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
아무래도 다른 놈들보다야 낫겠지만, 도긴개긴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거기다 섣불리 굴리느니 그냥 내 옆에 끼고서 뭐라도 더 가르치는 것이 나중을 생각하면 훨씬 나을 거다.
‘진짜로…….’
그러니 내가 퇴근한 다음의 병동은 어떨까.
숫제 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정말이다.
사실 21세기 대학병원이라고 해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특히 미숙한 의료진이 많을 수밖에 없는 3월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에 나는 진짜 사고는 얼마 안 되고, 또 대다수의 환자들은 그런 사고를 겪지 않고 퇴원할 수 있는 건 작은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걸러 내는 시스템이 있어서 그렇다.
이용자가 보기에는 여전히 미숙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을 통틀어서 대학병원의 시스템이 제일 엄격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사람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이기에 그렇다.
‘문제는…… 여기는 그렇게 생명을 중하게 여기는 시대가 아니야.’
저출산으로 인해 나라가 소멸하니 어쩌니 했던 대한민국에서는…….
아니, 꼭 저출산 아니더라도 생명보다 더 중한 가치는 없다고, 적어도 교육은 그렇게 받는 현대인들에게는 대체 이게 뭔 소린가 싶을 말인데…….
실제로 런던은 오히려 넘쳐 나는 인구가 골칫거리다.
쓸모없는 인간이 있다고 진짜로 믿는 사람 또한 천지다.
내 생각에는 유희거리가 부족한 시대일수록 섹스만 한 놀이가 없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 중 태반이 그로 인한 부산물로 여겨져서인 거 같다.
너무한 말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여기 와서 보면 실제로 그렇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자기 자식도 그렇게 말할래? 또한 통하지 않는다.
여긴 자기 자식도 그렇게 여기니까.
‘하지만 여기서 나이팅게일이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
나 이 팅 게 일.
그녀가 생명을 중하게 여기는지 어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두었으면 숱한 생명이 마구잡이로 죽어 나갔을 크림 전쟁에서 그녀가 살린 생명이 대체 몇이란 말인가.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그때 나이팅게일이 확립한 시스템으로 인해 병동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제야 비로소 집보다 위험한 공간이었던 병원이 보다 안전한 시설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 말이다.
“또 뭔가 숭악한 생각을 하고 있구만그래.”
그렇게 더 많은 생명을 품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불쑥 찾아와 이상한 말을 꺼냈다.
억울해서 즉시 답했다.
“저는 언제나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데요?”
“그 인류에 혹시 나도 속해 있나?”
“다 속해 있지, 그럼.”
“이런 제기랄.”
“아니, 이 양반이. 머리 다시 뽑아 줘?”
“농담일세. 자네도 농담이지?”
나는 농담이 아니었기 때문에 잠시 가만히 있었다.
애초에…… 저게 그렇게 오래 갈 거 같지도 않긴 했다.
아니, 벌써 어느 정도 황무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내가 벗겨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공감이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나라면 저렇게 사느니 그냥 다 밀어 버렸을 거 같다.
“농담……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절박한 얼굴이 되어 다시 묻길래 그냥 그렇다고 해 주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데 괜히 여기서 나쁜 소리 할 게 뭐 있나.
좋게 좋게 지내면 다 좋은 거다.
“그래…… 근데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간호사를 새로 뽑으려고요.”
“간호사를……? 뭐 그런 거까지 자네가 고민하고 그래?”
그래, 리스턴의 지금 발언.
이게 19세기 의료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고 보면 된다.
21세기에서는 병원 평가할 때 간호사 숫자를 보거든?
무슨 간호사 눈치를 보느라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게 병원 수준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일이라 그렇다.
허나 지금 간호사에 대한 취급은 이런 것도 사실이다.
“병동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몇인지 아십니까?”
“내가 그런 거까지 알아야 하나? 나는 수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네.”
아니…….
어쩌면 환자에 대한 취급이 이 지경이라고 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리스턴의 발언이 충격적으로 느껴진다면 축하한다.
훌륭한 현대인이란 뜻이니.
허나 지금은 정말 다들 이러고 있다.
환자가 죽어도 의사가 눈앞에서 뻔뻔하게 수술은 잘 됐는데 환자가 좀 약했던 거 같다고 말하는 게 현실이란 말이다.
뭐 21세기에도 그렇게 말하는 인간 말종 같은 의사가 있을 거 같긴 한데, 보통 그렇게 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 아닌가.
허나 여기서는 아니다.
놀랍게도 보호자들도 납득하고 돌아간다.
아, 우리 가족이 좀 약했구나 하고.
‘죽음이 만연한 사회라는 게 참…….’
자꾸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까 의사들이 그러는 거다.
뭐, 인식이 바뀌려면 100년은 더 걸리긴 할 거다.
애초에 출근했다 돌아왔더니 애가 죽어 있더라는 게 괴담이 아닌 매일 벌어지는 현실인 시대니.
하지만 이제 우리 병원에서만큼은 아니게 될 거다.
“너무 많이 죽어 나간다니까요?”
“사람은 죽네, 누구나. 당장 자네나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물론 리스턴의 말도 이해는 간다.
현대에도 통용되는 말인 사람 인생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진리가 훨씬 강력하게 통하는 시대니까.
아침에 멀쩡히 가족과 식사하던 청년이 저녁은 조상님들과 먹게 되는 시대가 19세기란 말이다.
게다가 이 유럽이란 동네는 14세기에 흑사병으로 인한 팬데믹을, 인구의 무려 30%에서 50%가 사망할 정도 아주 혹독하게 겪어 놨기 때문에, 죽음의 무도라든지 하는 음악들이 있을 정도로 지나치다 싶을 만큼 죽음과 친숙한 면 또한 있다.
“안 죽어도 될 사람이 죽는 건 문제 아닐까요?”
“그래서 수술도 하고 하는 거지. 근데 그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죽는 건 그냥 그 사람의 문제 아니, 운명이라고 봐야지. 주님께 너무 거스르는 것도 안 될 일이야.”
흑사병으로 인해 한 시대, 즉 중세 시대가 무너지지 않았나.
그때 같이 무너진 것이 있다면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고 결국, 그로 인해 르네상스 운동이 벌어졌다고 보면 될 텐데…….
참 사람이란 신기한 존재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된 지도 벌써 500년이 지난 시점에도 기독교는 여전히 유럽 전역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숱한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여전히 신을 믿을 리가 없지 않겠나?
‘하긴, 21세기에도 종교는 여전히…….’
그리고 나를 보낸 존재는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뭐가 되었건 간에 신이라고 봐야 할 터였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리스턴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가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지 않나? 나는 정말 공들여 환자를 보고 있다네. 자네도…… 놀랍게도 환자만큼은 열심히 보고.”
“그게 놀랄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병동도 꽤 바빠. 내가 알지. 게다가 조지프가 틈만 나면 돌아다니면서 아직도 그…… 그 지랄을 하고 있다네.”
교수가 제자에게 지랄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내 친구 조지프는 좀 욕을 먹어도 되긴 한다.
그 새끼가 하는 건 진짜 지랄이니까.
그렇다고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칭찬해 마땅한 일이다.
자주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린 게 조지프일 수도 있다.
“그래도 덕분에 깨끗해지긴 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 병원 간호사 충원율이 나날이 떨어져. 의사들의 불만이…… 그나마 자네가 있으니까 버티는 거지.”
이걸 어쩌나.
더 본격적인 전사를 끌어들일 생각인데.
근데 그렇다고 해서 충원율이 더 떨어지진 않을 거 같다.
왜?
내가 드디어 간호사들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니까.
이제야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돈도 마음도…….
“돈 더 주면 되죠.”
“아, 돈을? 그럼 되겠지. 하지만 이걸 유념하게. 간호사는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존재들이 아니야.”
이제 와 19세기 인식 운운하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입만 아프다, 이 말이다.
“하지만 환자들이 더 살아 나간다는 얘기가 번지면 결국, 그로 인해 더 많은 환자들이 오겠죠.”
“오…… 어떻게? 간호사들로 그게 되나?”
“일단…….”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다는 말도 있는데, 솔직히 이건 시대가 바뀜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저거, 보는 게 듣는 것보다 백배 낫다는 말만큼은 어느 시대가 온다 해도 바뀔 수 없을 거 같다.
“병동으로 가 보죠. 오늘 밤에 몰래.”
“몰래……? 나 오늘 약속 있는데.”
“누구랑요. 아, 여자?”
“그래. 두 탕이야.”
“나중으로…… 좀 미뤄도 되잖아요. 그리고 그러다 병 걸려요, 진짜.”
“하하, 콘돔 끼는데 무슨 걱정인가.”
잠시 내가 성병을 예방하는 대신 시대의 도덕성을 추락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도구는 죄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걸 만든 나도 죄가 없단 생각을 억지로 떠올렸더니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다.
“그래요…… 알아서 하시고. 오늘 콜?”
“그래, 뭐 가 보지. 이게 더 재밌을 것도 같구만그래.”
리스턴이야 어지간하면 내가 하자는 대로 움직이는 양반이 된 만큼, 오늘도 날 따라 움직여 주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밤이 되길 기다렸다.
우리 병원에 몰래 숨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