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38)
검은 머리 영국 의사-438화(438/505)
438화 나이팅게일 [3]
당직은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은 일일 터였다.
나는 전생에 개인적으로 두 개의 직업을 가졌는데, 공교롭게도 두 직업 모두 당직이 있었더랬다.
의사와 군인.
고단한 직업이다.
“흐아암…….”
“형님은 그냥 아무 때나 잘 자네요.”
“하루에 얼마만큼은 자야겠다고 정해 놓고 자는 편이라.”
“아…… 그게.”
저게 정한다고 될 일이면 세상에 불면증이 왜 있겠나.
만약 그랬다면 21세기 산업 중에 상당히 거대한 축을 이루고 있는 수면 산업은 그대로 망했을 터였다.
하여간, 나는 그게 안 돼서 그냥 생으로 버텨야만 했다.
스마트폰이라도 있었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스마트폰은커녕 MP3 플레이어도 없는 세상이니 어쩌겠나.
“아무튼, 갑시다.”
“그래. 근데 몰래 볼 수가 있나……?”
나도 리스턴도 ‘몰래’는 성립할 수가 없다.
나는 런던에서 몇 안 되는 동양인이고 리스턴은…… 그냥 리스턴이라 그렇다.
“그냥 있어도 될 거 같아요.”
“그래? 감시 안 할 때 어떻게 되나 보러 가려는 거 아니었나.”
“생각해 보니까 딱히 잘못이라는 생각도 안 할 거 같아서요.”
“아…… 그런가. 뭘 기대하는 건지 모르겠구만그래.”
그래도 괜찮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리스턴이 쿨쿨 자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뿐이었던 나는 실제로 이런저런 것을 떠올리면서 시간을 죽였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거 같았다.
잘못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하는 잘못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잘못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 않겠나.
당한 사람의 살의야 당연히 인지하고 있던 놈에게 훨씬 강하게 투사되기 마련이겠으나 실제로 끼치는 해악이 훨씬 큰 것은 아무래도 인지도 못 하는 놈들이다.
내가 볼 때 우리 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고는 후자가 치고 있는 거다.
알면서는…….
‘알면서 그러는 거였으면 진짜 다 죽여야지.’
나는 말로 안 한다.
진짜 죽이지.
“흉악한 생각을 또 하고 있구만그래.”
“아닌데요?”
“거짓말하지 말게. 그러다 지옥 가.”
고작 거짓말로도 지옥에 간다면…….
나는 이미 그른 몸 아닐까?
3미터에 익사하나 3천 미터에 익사하나 그게 그것일 텐데, 나는 이미 3천 미터에 있는 거 같거든.
해서 별 반성 없이 병동으로 향했다.
그나마 신설된 병원이라 1층엔 외래나 수술방, 응급실이 몰려 있고 2층부턴 병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외래 환자들과 병동 환자들이 구분되어 있다는 말인데, 이게 생각보다 되게 중요한 부분이었다.
외래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미아즈마 아니, 병원균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흐음.”
“으음.”
“어쩐 일이세요?”
하여간에 우리 둘이 병동에 올라가자,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인사를 해 왔다.
하긴, 그렇긴 할 터였다.
이 당시 의사들은 당직을 병원에서 서지 않거든.
대개 병원에서 가까운 집에 있다가 누군가 급한 환자가 생기면 자던 것을 깨워 데려오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것도 언젠가 고치긴 해야 하겠지만…….
‘어차피 자리 지키고 있어 봐야 토템밖에 더 되나?’
나나 리스턴 정도 아니면 진짜 토템이다.
군의관 때 사격 의무 지원 가서 그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앰뷸런스에 뭐 있는지 아나?
그 흔한 피도 없다.
지혈대도 미군에서 사용하는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묶고 누르는 용도가 다인 싸구려 옛날 지혈대가 다였다.
수술?
그 자리에서 수술이 가능한 사람은 내 생각에 백강혁 정도다.
정말 후하게 쳐 주면 양재원 교수님?
‘우리도 때에 따라 토템이지.’
그나마 21세기에서 병원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곳이다 보니 야지가 아닌 병원에서 서는 당직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의사만 있으면 사람이 산다.
말 그대로 죽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말인데, 여기는 그게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외상 환자가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하는 것도 육안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뭐…… 한심하다고 한들 엑스레이가 툭 나오는 건 아니다 보니 기다리는 것이 일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아직 우리 병원은 당직을 서지 않고 있다.
그러니 간호사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 그냥 둘러보려고. 낮에는 시간이 없어서.”
리스턴은 자느라 둘러댈 말도 전혀 생각지 않았을 것이 뻔하지 않겠나.
아마 안 잤어도 그랬을 거다.
보통 문제를 말로 해결하는 편이 아니라 그렇다.
“네에? 왜요?”
“내가 병원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거 알지 않나. 신경 쓰지 말고 일 보게. 바쁠 텐데.”
“아, 네. 뭐…… 그렇게 바쁘진 않아요.”
해서 내가 둘러댔다.
그렇게까지 그럴싸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뭐…… 높은 사람하고 길게 말 섞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대충 하고 빨리 갔으면 하는 게 바램일 터였다.
해서 우리는 당직 간호사를 두고 복도를 어슬렁거릴 수 있었다.
나는 그사이 바쁘진 않다는 말을 곱씹고 있었다.
‘당직 간호사는 병동당 둘…… 위층이랑 다 해서 넷이고, 평균 입원 환자는 대략 100명 정도.’
뭔 놈의 입원 환자가 이렇게 많냐고 할 수 있을 거다.
특히 우리 병원 규모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다.
공간이…….
우리에게 익숙한 6인실로 채운다면 절대로 100명이 입원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올 수가 없어서 그렇다.
2층부터라고 했지만 기껏해야 3층이 끝이고, 평수로 해 봐야 100평도 안 되니 그럴 수밖에 없는데…….
놀랍게도 우리 병원의 병실은 20인실도 있다.
20명이 한방에 있다, 이 말이다.
‘이건 나도 도저히 설득이 안 되더라…….’
뭐 하러 과가 같은 환자를 병실마다 나누어 놔서 번거롭게 하냐는 것이 주된 얘기였다.
그나마 침대 사이에 사람 하나 간신히 서 있을 만한 간격이라도 확보한 것이 내 자랑거리다.
그것도 없애야 한다고, 그럼 최소 한 층에 열 명씩은 더 받을 수 있고 그게 다 돈이라는 주장이 꽤나 강력했으나, 내가 저지시켰다.
설득은 어려워서 무력으로 그랬다.
‘돈 있는 사람들은 1인실을 선호할 거고 그걸 비싸게 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것도 침몰됐지, 결국엔.’
돈 있는 사람이 왜 병원에 입원하냐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
사실 병동에서 뭔가 해 주는 게 거의 없는 시대다 보니 이것도 맞긴 했다.
심지어 보살펴 주는 것도 원래 그 일을 하던 시종들이나 가족들이 더 잘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긴 간호사가 있는데 좀 다르지 않겠냐고?
아니다.
사실 우리 병원만 간호사라고 불러 주는 거지 다른 데서는 명칭마저 통일되지 않았다.
“너무 시끄러운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아서 환자 하나가 병실에서 비척거리며 나왔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몸 건강한 성인도 20명 모아 두면 누군가는 뒤척이고, 코를 골고 할 텐데 여긴 다들 아픈 사람들이지 않나.
심지어 환자가 나온 병실은 내과 병동, 즉 우리 원장님 병실이다.
21세기에야 내과라고 하면 분과도 많고 정말 이런 병 저런 병 다 보지만 이 시기에 제일 중하다 여겨지는 내과적인 질환은 역시 소화기 질환이다.
설사 보거나 하는 병이란 말인데, 아직 지사제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시기다 보니 밤이고 낮이고 싸 제끼기 마련이다.
“아, 참아요.”
“참기엔 너무 시끄러운데.”
“그럼 뭐 어째요. 가서 그만 싸라고 해요? 그게 안 돼서 입원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긴 한데…… 읍.”
“가서 싸요, 그냥. 잠잘 생각은 마시고.”
“으으.”
그래도 21세기 병동이었으면 아마 귀마개라도 줬을 터였다.
하지만 우리 병동은 그런 거 없다.
참는 게 미덕인 시대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의료진이 환자에게 마냥 참으라고 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지만…….
말하는 간호사도 듣는 환자도 딱히 문제를 삼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시대상이 다르단 생각이 든다.
21세기에 주입된 문화 상대주의에 의해 저래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고.
하지만…….
“저거 그냥 아무거나 귀 막을 수 있는 것만 주면 될 텐데, 안 주네요.”
“하지만 참을성을 기르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
“아파 죽을 거 같아서 입원했는데 뭘 길러요.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산다고.”
“사람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네.”
“뭘 모르시네. 병원에서는 죽죠.”
“그야…… 죽을 사람이 왔으니 그런 거 아니겠나.”
“아니, 그래서 귀 막는 거 하나 안 주겠다고?”
“그런 말은 아니고. 하지만 좀 뭐랄까…… 엄살…… 떠는 느낌인데?”
엄살로 치부하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달리 약도 없는 상황에서는 잠이라도 잘 자야 회복이 될 거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잠만을 위해 집으로 보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화장실 들락날락거리는 속도로 미루어 보건대, 집에 가서 더러운 물에 노출이 되는 순간 아마 내일모레쯤이면 저 병동 환자들 중 절반은 시체가 될 것이 뻔해서 그렇다.
심지어 여전히 ‘뭘 안 먹으면 설사 안 하는데?’라는 이론이 팽배해 있다 보니 설사가 극심한 환자에게조차 수분 제한을 거는 바람에 싸는 물을 단순히 채우지 못해 죽는 사람도 있다.
“으으…… 너무 아픈데.”
“오, 저 환자는 아까 내가 팔 자른 사람이로군.”
리스턴의 망나니 같은 말을 뒤로 한 채, 나는 간호사와 환자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팔 잘랐는데 아프죠.”
간호사는 이번에도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아니 아프다는데!”
“그럼 뭐 어떻게 해 드려. 호 해 드려?”
“그…….”
“기도해요? 아까 보니까 근데 목사님, 신부님 오셨을 때 나오지도 않더만.”
아니, 적반하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픈데 뭐 어쩌라고’를 시전하고 있었다.
사실 그럴 수 있는 일이긴 했다.
버드나무 우린 물을 주고 있긴 하지만…….
생약이라는 건 늘 그렇듯 용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이걸 이제 화학적으로 버드나무 껍질에 있는 어떤 성분이 효과를 내는 것인지 확인하고 분리하고 확 용량을 늘려다가 줘야 아스피린이라는 효과적인 약이 되는 거다.
물론 팔 자른 환자에게 덜렁 아스피린 하나 던져 준다고 흡족해할 거 같지도 않다.
‘나는 진짜 다치지 말아야지…….’
새삼스럽게 진통제가 부족한 시대라는 게 실감이 난다.
“그때는…….”
“마취 덜 깨서 안 아팠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죠? 아플 거라고.”
“그치만…….”
“참아요. 어쩌라는 거야.”
“으읏.”
그에 비해 참을성은 대단한 거 같다.
물리적인 것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대체 저렇게 비아냥대는 것을 어찌 참는 것일까.
환자야말로 성인군자가 아닌가 싶었다.
“이런 미친.”
물론 리스턴은 성인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분기탱천하고 있었다.
“우린 관찰 중이에요. 내일 한 번에 모아서 뭐라고 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내 환자에게 저렇게 하는데.”
“그럼 뭐 해 줄 건데요.”
“그…….”
화를 낸다고 능력이 올라가는 건 소년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요새는 만화도 수준이 높아져서 대부분의 만화에서는 화를 내면 보통 능력이 퇴보하거든.
리스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말문이 턱 막힌 그를 향해 나는 말을 이었다.
“일단 상처가 어떤지 봐 줘야죠. 문제가 생겨서 아픈 걸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렇군.”
“이런 교육을 해야 해요. 간호사들이 병동에서 어떻게 하냐에 따라 환자들의 예후가 크게 달라질 거라니까요?”
“그걸 대체 자네는 어떻게 알았나.”
“주님이 주신 소명…… 간호사라고 그게 없겠습니까. 직업에 투철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따를 뿐이죠.”
“아, 역시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