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39)
검은 머리 영국 의사-439화(439/505)
439화 나이팅게일 [4]
그외에도 간호사들이 해야 할 일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진짜’ 간호사라면 사실 환자 상태 파악부터 시작해서 투약이나 시술, 처치에 대해 설명해 주고, 의사 회진을 따라 돌면서 의사가 세운 계획과 환자 상태가 상충하지 않는지 점검도 해야 하고…….
이것도 대강 말한 것일 정도로 사실상 병동은 간호사가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간호사들은 어떠한가.
사실상 병동 인테리어 정도라고 해도 된다.
“대체 하는 일이 뭔가?”
어제 병동에서 뭘 하는지 밤새 관찰한 리스턴이 잠도 못 자고 저렇게 비분강개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평소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던 만큼 충격도 심했을 거다.
뭐가 되었건 간에 돈을 주고 있긴 하니까, 뭐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을 테니.
허나 지금 우리 간호사들의 업무 중 가장 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확성기일 거다.
의사가 중얼거리면 그걸 환자에게 알리고, 환자가 아무리 봐도 죽을 거 같으면 그걸 의사에게 알리고.
“뭐…… 거의 없다고 봐야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으면 또 안 됩니다.”
“왜? 난 다 잘라 버리고 싶은데.”
“진짜 자르겠다는 건 아니죠?”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까지 들진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칼춤 추는 꼴이 생각났다.
“나는 여자는 베지 않아.”
“팔다리는 자르잖아요.”
“환자는 성별이 없네.”
“오.”
이건 또 명언일세.
참으로 옳은 말이었다.
원래는 칼 휘두르는 거 말고는 딱히 잘하는 게 없었는데, 요새 이 양반이 조선 공부를 좀 하더니 있어 보이는 말을 제법 하기 시작했더랬다.
근데 뭐 말만 잘하면 뭐 하나.
실제로 뭔가 해야지.
“하여간, 간호사들 없으면 안 됩니다.”
“왜?”
“우리 환자들은 그보다 훨씬 무식하니까.”
“아.”
내 말에 리스턴은 입을 쩍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부정하기 어렵긴 할 터였다.
19세기 일반인들의 인식은 중세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긴 하니까.
실제로 아직도 씻으라고 하면 지랄하는 놈들이 많다고 들었다.
우리 병원이야 내가 직접 축복한 성수로 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서로 씻겠다고 벗어 제끼는 통에 오히려 더 문제였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환자들이 저지르는 만행을 일일이 고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사실 전생에도…… 이상한 짓 하는 환자들이 꽤 있었지.’
민간요법을 그렇게들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더랬다.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현대 의학이라는 것도 결국은 완전하진 않지 않던가.
물론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은 있어 다행이지만, 환자는 개인이기에 의학이 자신을 포기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뭐든 하게 되는 거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개구리를 생으로 먹고 온 사람이 진짜…….’
아무리 그래도 췌장암인데 개구리를 생으로 먹고 와서 그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하셨던 케이스는 두 번 죽는 날까지도 못 잊을 거 같다.
하지만 그건 여기다 댈 것도 아니다.
여긴…….
‘똥은 왜 자꾸 바르는 걸까……?’
제대로 된 약이 없는 세상이다 보니 이상한 걸 자꾸 주워 드신다.
비소, 수은, 납, 아편…….
요새는 시발 내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코카인까지 먹는다.
그중에서 코카인의 파급력은 가히 놀라 만하다.
아직 내가 알던 그 코카인…….
아련하게 말하는 거 아니다.
해 봤다는 것도 아니고.
나X코스와 같은 드라마에서나 본 코카인이라는 얘긴데, 하여간, 그렇게까지 순도가 높진 않아서 그런가 적게 빨면 거의 각성제로써 효과를 보이는 거 같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라 보여서는 안 되는 것도 보인다는 점인데, 아마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유행하는 거 같다.
‘하긴, 변이 만지다 보면 연고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긴 하지?’
하지만 약에는 연고도 있는 법이다.
먹다 보면 뭔가 바르고 싶어지는 법이란 말인데, 놀랍게도 19세기 런던에서 가장 찾기 쉬운 바를 만한 것이 바로 변이다.
이런 변이 있나 싶은데, 다른 거 바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변이 낫긴 하다.
자꾸 산화 구리니 산화 철이니 뭐니 바르는데, 그게 다른 말로 하면 썩은 금속을 바르는 거라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변 바르라고 할 수 없는 건 똥독이 올라서 죽는 사람들이 퍽 많기에 그렇다.
“그렇지…….”
아마 리스턴이 떠올린 환자들의 만행은 나와는 또 다른 것일 터였다.
만행이 두 가지라서는 아니다.
제대로 된 상식을 갖춘 의사 열이 있다면 열 가지 만행을 떠올릴 수 있을 거다.
정말…….
어휴.
“그러니 간호사는 있어야 해요. 뭘 하는 게 아니라 뭘 못 하게 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니까요.”
“그렇게 들으니 이미 할 일은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니, 우리가 그런 데서 만족해야 하겠습니까?”
“그건 안 되지. 우리야말로 이 시대의 선두 주자 아니던가.”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매일 같이 지키고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 게다가 여인네들의 질서는 여인네들의 것이지 않나?”
시대착오적인 발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맞는 것일 수도 있고 틀린 것일 수도 있다.
여인네를 간호사라는 단어로 바꾸면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라서 그렇다.
21세기에도 간호사들끼리의 위계는 간호사들이 잡는 법이다.
만약 의사가 간호사를 정도 이상으로 태운다?
그럼 수간호사가 바로 교수 소환술을 시전하고, 교수는 남의 나와바리를 침범한 죄를 물어 의사에게 벌당을 세우게 된다.
옳게 된 의사라면, 내 생각에는 이게 더 악랄한 거 같지만, 간호사의 잘못을 수간호사에게 고하는 것이 맞다.
‘뭐 19세기니 그렇게 말해도 되지.’
그리고 이 시대에 간호사는 다 여자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할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여긴 수간호사 할 만한 깜냥이 있는 사람도 없고 또 너무 까다롭게 굴면 다른 병원으로 튀거나 아예 직종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간호사가 일종의 전문직인데 어찌 그럴 수 있냐고 하면 너무 현대적인 시각을 가진 거다.
과장 조금 더 보태서 ‘너는 오늘부터 우리 병원 간호사다’라고 하면 간호사가 될 수 있는 게 19세기고, 그 말은 곧 직업으로서의 가치가 그리 높지 못하다는 말도 된다.
뭐, 우리 병원이야 나름 돈을 좀 주는 편이니 여기서 좀 갈군다고 해도 딴 데로 튀는 일은 없겠지만, 내 걱정은 그게 아니라 제대로 갈굴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에 닿아 있었다.
“마친 적임자가 있습니다.”
헌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그것도 전설 등급으로.
“그래? 누구? 아, 전에 봤던 그 거친 소녀 말인가?”
“네, 거친…… 소녀요.”
소녀는 아닌 거 같긴 하다.
나이나 성별로는 정의가 맞지만 이미지는 전혀 아니잖아?
오히려 전사가 맞는 거 같다.
대체 부모가 누구길래 이 시대의 여성이 그렇게 자란 걸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억압적인 시대거든.
그 똑똑한 브론테 자매도 거의 갇혀 있다시피 해서 자라고 있잖아.
그나마 아빠가 홀몸이라 망정이지 어머니가 멀쩡히 살아 있었다면 아마 낮에도 밤에도 어마어마하게 시달려야 했을 거다.
물론 어머니가 없는 건 마땅히 불행이라 해야 마땅할 거 같긴 하지만.
“나이가 좀 어리던데……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을걸요.”
“하긴 애들을 그냥 막 던지더만.”
“네, 워낙 강한 사람이에요. 거기에 더해 제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은 거 같고.”
“어디서 공부를 했길래 우리 가르침을 전해 들은 거지?”
“그건…….”
그러고 보니 사람 뽑기로 해 놓고 그것도 묻지 않았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상대가 다름 아닌 나이팅게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리스턴은 무림인이지 미래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논리를 이해해 주지 못했다.
“아니, 대체 무슨 놈의 일을 이따위로 한단 말인가.”
“거…….”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해서야 되겠나. 우리는 당당한 문명인이거늘…… 혹시 마음에 들었나?”
“아니, 그건 아닙니다.”
“아니야. 이렇게 비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면…… 내 자네 취향을 몰랐군…… 아니, 아니지.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나랑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힘세고 강한 사람을…… 허어.”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친놈이 갑자기 나랑 나이팅게일을 엮기 시작했다.
나도 어린 나이지만 나이팅게일도 어린 나인데 이런…….
‘뭐, 이 시대를 고려하면…… 그렇게 어린 나이인 것도 아니긴 하지.’
19세기가 이상 성욕에 미쳐서는 아니다.
평균 수명이 마흔 조금 넘는 시대라는 걸 언제나 유념해야 한다.
만약 한국식으로 평균 결혼 연령이 30대로 간다?
그럼 애가 이제 막 걷는데 부모가 골로 갈 수 있다, 이 말이다.
뭐 이 시대에도 오래 사는 사람은 오래 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못하거든.
워낙 아이 때 죽은 사람들이 많아서 평균 수명 깎아 먹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상식적으로 아이 때 사망도 못 막는 사람들이 어른 때 사망은 어떻게 막겠나.
“아니, 아닙니다. 정말로.”
“흐음…… 근데 근본도 모르는 사람을 취직시켜 줬다? 그것도 병동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일단 우리 간호사들이 납득할 수 있겠나?”
“음.”
“텃세가 장난 아닐 거야. 알겠지만…… 보통 아니잖나? 그러니 꼭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고 주장하는 게 나을걸.”
“보통은 높은 사람 마누라가 그렇게 오면 더 지랄하지 않나요?”
“높은 사람도 높은 사람 나름이지. 원장님 사모님이 그렇게 오면 또 모를까 자네의 정인을 감히 건드릴 수 있는 간 큰 여인이 존재할 거 같진 않네.”
리스턴의 말에 나는 새삼스럽게 내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래, 뭐…….
국왕 폐하께서도 한 수 아니라 여러 수를 접어주는 나를 상대로 뭔가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럼 하는 수 없이 소문은 그렇게 낼까요?”
“이거…… 정말 속이 시커멓구만.”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정말 나이팅게일 그녀를 위해서…….”
“지랄하지 말게.”
아니, 정말 억울하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리사욕을 채운 적이 없거늘…….
어찌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단 말인가.
내 비록…….
어?
이제 명품 아닌 것은 걸치지도 입에 넣지도 않는 몸이 되었지만, 이것은 다 하늘이 내 고귀한 뜻에 감동해 베풀어 준 은혜일 뿐이다.
“아…… 의원님.”
“내 딸이 여기로 오길 원한다 해서…… 간호사들에 대한 처우가 어떤지 보려고 왔네.”
“네네. 천천히 둘러 보시죠.”
결론부터 말하면 나와 리스턴이 한참 동안 떠들어 댄 건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나이팅게일.
크림 전쟁에서 활약한 나머지 남은 평생을 병상에서 골골대야만 했던 그 위대한 여인은 금수저였다.
그것도 돈만 많은 집안이 아니라 나름 권력도 있는.
“돈을 좀 기부하겠네. 여기 장식이 좀…….”
“그거야 잘된 일이죠.”
“대신이라고 하면 뭣하지만, 여기서 내 딸이 정확히 위치가 어떻게 되나.”
“간호부장입니다. 간호사들의 왕이죠.”
“허허.”
나는 봤다.
그사이 기부금에 0이 하나 더 느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