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4)
검은 머리 영국 의사-44화(44/505)
44화 이상한 소리가 나 [3]
이러니저러니 해도 선배는…….
선배는 약간 호구였다.
“헤헤. 그럼 올려 드립죠.”
내 대신 돈을 내서만은 아니었다.
꼴을 보아하니 시세보다 꽤 많이 준 모양이었다.
여태 퉁명스럽기만 하던 무덤지기는 21세기 서비스 정신을 탑재하고는 연신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이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뭉텅이로 빠져 있는 데다가 얼굴도 제대로 씻지 않아 엉망이어서 그랬다.
‘으음.’
무엇보다, 이 사람에게서는 시신 냄새가 은은하게 번져 왔다.
무덤지기라고 해서 시신을 만질 일이 많은 건 아닐 텐데도 그랬다.
끼이이익.
하여간 우리가 잠시 기다리는 사이, 무덤지기는 관에 달린 고리에 도르래를 달고는 손으로 열심히 잡아당기고 있었다.
대체 왜 관에 빙빙 돌려 감은 밧줄이 있으며 그걸 또 그대로 묻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심지어 흙을 덮어 주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여차하면 팔아먹을 생각이었나.’
시대가 시대고, 또 지옥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는 런던이지 않나.
시신을 팔아먹는다는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
왜?
얼마에?
이런 걸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합리적이진 않아 보였다.
적어도 리스턴 박사님이 구해 오는 시신들은 무연고자다 보니 어디 묻힐 일이 없거나, 연고지가 있는 사람이라 해도 유족이 직접 넘기는 것들이어서 그랬다.
“어우.”
하여간 무덤지기는 이도 별로 없는 주제에 무거운 관을 혼자서 끌어 올렸다.
“여기, 여기 와서 보시오.”
그렇다 해도 관을 우리가 있는 곳까지 끌고 오는 건 좀 힘들었는지 손을 흔들어 불렀다.
뭐, 안 갈 이유야 없지 않겠나.
해서 달려갔다.
퉁! 퉁!
가다 보니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
진원지는 분명 관이었다.
“들었어요?”
“어.”
“이런 망할.”
나만 들은 게 아니라, 앨프리드와 조지프까지 다 들었다.
문제가 있다면 무덤지기는 태연한 얼굴로 서 있다는 점이었다.
“그…… 안 들려요?”
나는 우선 관을 묶고 있던 밧줄부터 풀면서 물었다.
그러자 무덤지기가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너무 예민하면 이런 데서 일 못 합니다.”
어이가 없기는 한데, 또 그럴싸하기도 했다.
하긴 너무 민감하면…… 이런 데서 일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곤 해도, 뻔히 들리는 소리를 안 들린다고 해?
지지직.
하여간 우리는 열심히 밧줄을 풀었다.
퉁! 퉁! 퉁!
소란이 있어서 그런가, 안에 있던 사람이 더욱 버둥거리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숫제 관 뚜껑이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어…… 이건 좋지 않은데.”
그제야 무덤지기가 반응했다.
내가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그는 삽을 들고 오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나오면, 한 대 후려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저, 저기요! 여기 살아 있는 거 같은데?”
“그럴 리가. 병원에서 온 시신인데…… 당연히 죽었지. 당신은 프랑켄슈타인도 안 봤소? 이거 죽여야 해. 안 그러면…….”
“조지프.”
“응?”
“제압해.”
“아.”
나는 환자에 대해 생각했다.
이름도, 솔직히 말하면 얼굴도 제대로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왔더니 웬 개새끼가 발목 째고, 팔 째고, 이마 째고…….
뭔 내부자들도 아니고.
그러다 코피까지 내더니 결국 죽었다고 하면서 위로금 얼마 주고 공동묘지로 보냈다.
아직 살았는데, 유족도 무덤지기도 신경 쓰지 않고 안에 묻어 버렸다.
그러다 천운이 닿아 다시 뚜껑 열고 나오는데 삽에 맞아 죽어?
그렇게 죽으면 나라도 다시 살아날 것 같았다.
“저기, 신사분.”
해서 조지프를 출동시켰다.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에 비하면 좀 손색이 있지만, 그래도 거구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무덤지기 아저씨보다 거의 한 10cm가량이 컸다.
“뭐, 뭐야.”
게다가 무덤지기 아저씨는 생긴 것에 비해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약한지, 삽을 휘두르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치고 있었다.
덜커덕!
그 사이, 나는 앨프리드 선배와 함께 뚜껑을 열었다.
아니, 앨프리드가 돌연 내 손을 잡지만 않았다면 필경 그렇게 했을 터였다.
“왜요?”
“지…… 진짜 시신이 살아난 건 아니겠지.”
왜 그런가 하고 돌아봤더니만, 이 인간 완전 쫄았다.
지가 먼저 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조기 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해 놓고는…….
“아니에요.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죽었다 살았으면 그건 기적이죠.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아니…… 예수님도 아니고…….”
“그러니까요. 아니 뭐, 이분이 태어날 때 동방 박사님들이 오시기라도 했답니까?”
“아니, 아니지.”
여기서 좀 더 나가면 신성 모독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 시대이지 않나.
조심해야 한다는 뜻인데, 당연히 이럴 때 100% 안전하면서도 잘 먹히는 개그가 있었다.
“게다가 제멜이 죽인 건데…… 제멜은 프랑스 놈이지, 유태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 하하. 그렇지. 그렇네.”
현재 영국에서 제일 미워하는 나라가 어딜까?
잘 모르겠으면 가까운 나라 뽑으면 될 일이었다.
다시 말해 프랑스.
원래 가까운 나라랑 친하게 지내기란 어려운 일 아니겠나.
게다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둘은 전쟁까지 벌였더랬다.
“그러니까 불가능하다, 이 말씀이죠.”
“음.”
“아, 손 좀 치워요. 땀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나.”
“음.”
그렇게 농담으로 을러대고 났더니, 앨프리드 선배는 역시나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방해물을 치운 나는 관뚜껑을 열었다.
“사, 살려 줘…….”
거기엔 환자가 있었다.
얼굴이 창백한, 그러나 분명히 표정도 짓고 있고 말도 하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래요. 일단 병원으로 갑시다.”
“또, 또 죽이려고!”
약간 섬망 증세도 있는 거 같았다.
아닌가?
합리적인 추론인가?
이거야 원, 병원에서 하도 많이 죽여 대니까 이런 반응으로도 유추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니. 그…… 제멜 그 사람한테는 안 갈 겁니다.”
“그, 그래. 그래야지. 흐…….”
제멜 얘기를 했더니 환자가 거의 까무러칠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한숨 쉬는 환자를 보고 있다 보니 궁금증이 일었다.
‘막말로 효과도 없는데 그렇게 침습적인 치료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을까?’
의사로서의 궁금증이었다.
딱 봐도 말이 안 되는 치료법이긴 했다.
두통의 원인이 거기에 혈액이 몰려서 그런 것도 아니긴 하고.
근데 정말 쓰잘데기없는 치료를 막무가내로 했을 리는 없지 않겠나?
그래도 사람인데.
해서 물었다.
“근데 머리는 이제 안 아파요?”
“히, 히익. 찌르지 마세요.”
괜한 것을 물었다 싶었다.
환자는 벌벌 떨더니,
“으, 으아아.”
경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 환자분?”
“넌 왜 그런 걸 물어서 그러냐…… 방금 전까지 머리 아프다고 해서 푹 찔린 사람한테…….”
“하여간…… 숨은 쉬니까. 이건 출혈 때문에 하는 경련일 거예요.”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았어.”
“조선에서 사람 죽는 걸 하도 많이 봐서요.”
“아…… 하긴. 거긴 막 거리에서 사람 죽이기도 한다며?”
미안합니다, 조상님들.
소인이 살기 위해 거짓말을 좀 했는데, 그게 돌고 돌아 무슨 매드맥스 같은 나라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네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수정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조선에 뭐라도 좀 보내긴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막상 보내게 되면 대체 누구한테 보내야 할지는 고민해 봐야 할 것이었다.
1830년이니까…… 아마 순조 시대일 텐데…….
나라에 망조가 들어서는 시기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반란군을 육성해?
‘아이구.’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서, 나는 일단 환자를 마차로 옮기기 위해 머리 쪽으로 이동했다.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의 명에 의해 시신을 꽤나 많이 옮겨 댔던 우리는 척하면 척이었다.
어느새 선배는 환자의 다리 쪽으로 가서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살아 있는 건가요?”
무덤지기는 좀 겸연쩍은 얼굴로 다가와 도왔다.
분명 살려 달라는 말도 들었고, 비명도 들어서 그랬다.
“그렇다니까요. 죽기 전에 생매장을 할 뻔했지 뭡니까.”
“거참…… 이게 그러면…….”
무덤지기는 우리를 도와 마차로 오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곤 날 보면서 입술을 달싹였는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왜요?”
“아니, 아닙니다. 하하.”
허나 끝내 말을 건네진 않았다.
뭔가 좀 찝찝했다.
생매장당할 뻔한 사람을 보며 무덤을 돌아보는 무덤지기라.
어쩐지 저기에 생매장당한 사람들이 더 있을 것 같잖아?
“으…….”
하지만 다시 무덤으로 가기엔 환자 상태가 영 별로였다.
애초에 죽은 줄 알았던 환자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기력을 되찾긴 했으나, 이대로 두면 다시 죽게 될 터였다.
그때는 저 관에 또 들어가서 진짜로 묻혀야겠지.
“병원으로 가죠.”
“어…… 아니, 이게 대체.”
마부 아저씨는 아직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도련님 일행이 무덤에 가서 뭘 하려나 했는데, 진짜로 사람을 들고나와서 그랬다.
게다가 옷에 온통 흙이 묻어 있는 걸로 봐선, 방금 다시 위로 올라온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여.”
“아, 기도는 이따 하시고 오시라고요! 병원 가야 해!”
“하.”
근원적인 공포에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던 그는 앨프리드가 드물게 소리치고 난 이후에야 자리에 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찍질이 영 맥아리가 없어서 그런가 좀 느렸다.
평소라면 나는 듯이 달렸어야 할 거리를 기어가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잘된 일이기도 하지만, 또 못된 일이기도 했다.
빨리 달리면 그만큼 흔들릴 테니, 환자에게 좋을 리가 없지 않나.
하지만 느리게 가서 좋을 것도 없었다.
‘아닌가…… 그 병원에 간다고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하여간 느리게 가게 된 김에, 나는 찬찬히 환자에게 대체 뭘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일단 두통의 원인에 대해 고민하는 건 너무 멀리 보는 일 같았다.
병원까지 왔다면, 여기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아니니 진짜 죽게 고생하다가 왔을 테니 보통 원인이 아닐 수 있겠지만, 그게 지금 당장의 사망 원인은 아니지 않겠나.
‘피…… 피가 많이 났어.’
수혈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여기 와서 나는 수혈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해?’
혈액형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현미경이 있어 응집 반응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시약이야 먹고 죽으려 해도 없고.
하지만 피를 줄 사람의 피와 이 환자의 피를 미리 섞으면 반응을 볼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게 너무 하이테크놀로지일 수 있다는 건데.’
그렇지 않겠나.
이 실험적인 새끼들이 피를 줄 수 있다는 걸 안다면 백퍼 줬을 거란 말이지.
별 이상한 짓도 다 했을 게 뻔했다.
동물 피도 주고 뭣도 주고 응?
그런 만행이 자행되고 있지 않다는 건 그런 방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건 안 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물…… 물이라도 주면서 시간을 벌자. 다행히 환자가 젊단 말이지. 게다가 피를 흘렸다고는 해도…… 그 새끼 실력이 딸려서 그런가 큰 혈관은 건드리진 못한 거 같아. 수혈은 천천히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