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41)
검은 머리 영국 의사-441화(441/505)
441화 비글호 [1]
런던항이라고 같은 런던이니 가깝겠구만! 하면 오산이다.
서울에서도 어디 가려면 절대적인 거리는 별로 고려 대상이 아니잖아?
그나마 서울은 대중교통이 어마어마하게 잘되어 있는 편이다.
서울 내에서만 그렇고 서울 밖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무래도 차가 없이는 빡세단 것이 단점이지만, 그 정도 단점도 없는 대도시는 전 세계에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은 여러 대도시들 중에 연식이 제일 어린 축에 속하잖아.
“역시나 가는 길은 X같군요.”
“하는 수 없는 일 아닌가. 이쪽은 가뜩이나 오가는 사람이 많다네.”
“앰뷸런스 타고 올 걸 그랬나.”
“그거…… 그런 식으로 쓰면 죽인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죽일 건데 내가 나를 죽일 수는 없잖아요.”
“거…….”
다시 말하면 연식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런던은 단점이 진짜 많다.
일단 길이 죄 구불구불하다.
얘네들이 돌아가는 걸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고, 런던이 완벽한 평지는 아니라서 그렇다.
물론 우리나라에 비하면 ‘네? 스코틀랜드 말고는 다 평지 아니에요?’란 소리가 나오겠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평지라는 건 자로 잰 듯한 평지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그런 땅은 생기기 어렵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언덕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사람이나 동물이나 가파른 언덕으로는 걷기 싫기 마련 아니겠나?
그러다 보니 직선으로 가는 대신 살짝 옆으로 돌더라도 평평한 땅으로 가게 되는데, 이게 사실 서울의 강북은 주로 사람과 동물이 다니던 시절에 만들어진 곳이다 보니 구불구불한 것과 같은 이유로 조성된 길이다.
나중에 자동차가 만들어지면, 그 이후로 조성되는 도시는 쭉쭉 직선으로 만들어질 거다.
자동차는 동물이나 사람과는 달리 헥헥대지 않잖아.
“아 근데 오늘따라 사람이 너무 많네.”
“오늘따라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여길 안 오는 거야.”
“아, 그렇구나.”
“올 일이 거의 없지. 이 냄새나고 구린 곳을 왜 오나.”
리스턴은 창문을 열고서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실제로 소리를 지른 것은 아니고 원래 그냥 목소리가 큰 양반이라 그렇게 들리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말을 노상 여기 다니거나 아예 살고 있는 사람들 다 들을 수 있게 한다는 건 좀 그렇긴 한데…….
아무튼, 나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긴 했다.
덜컹.
일단 도로 정비도 더 잘 안돼 있다 보니 마차가 심히 요동치는 것도 거슬렸다.
세금 받아서 다 어디다 쓰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소득세야 21세기 대한민국에 비하면 훨씬 적은 비율로 내고 있긴 하지만…….
절대적인 액수를 따지고 보면 정말 많이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
물론 많이 벌고 있기도 하다.
“그나저나, 다윈이 유명해요?”
“자네…… 하긴 자네가 이상한 데서 상식이 없긴 하지.”
이런 길을 그나마 수월하게 가려면 참을성을 기르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참을성이라는 것은 기르기는 어렵고 없애기는 쉬운 놈에 속한다.
나도 전생에는 제법 참을성이 좋았는데, 이젠…….
19세기 살면서 뭐가 그리 편하고 좋아서 참을성이 없어지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상류층으로 살아 보면 안다.
하이 빅X비?
여긴 시종들이 있다.
하다못해 제자들도 사실상 노예랑 다름이 없어.
실제로 내가 내 손으로 밥 차려 본 기억이 깜깜할 정도고, 목욕물도 다 알아서 받아 놓는다.
-티에피영 님이 매일 저녁 물 받아 놓고 데우라신다!
하면 누구라도 데우게 되어 있다.
갑질이 아니라 그냥 시대가 이래.
그리고 공짜로 부리는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19세기 영국은 이미 노예 무역이 금지된 선진국이거든.
그런 건 저기 저 그래, 미개한 아메리카에서나 하는 짓이다.
돈을 준다, 이 말이다.
그 돈이 좀 적은 게 문제긴 한데, 나는 꽤 주는 편이다.
무튼, 참을성이 없다는 말이 길어졌는데,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꾼이다.
우리도 왜 멀리 갈 때는 너튜브나 넷플X스, 웹소설이나 웹툰을 쟁여서 가잖아.
지금은 그럴 수가 없으니 리스턴이라도 챙기는 것이 좋다.
이 양반이 의외로 호사가고 말도 잘한다.
괜히 여자들한테 인기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입이나 털어 봐요.”
“입을 털다니. 군자가 그런 소리를 입에 담아서야 되겠나.”
“솔직히 양놈인데 군자는 무슨.”
“양놈이라니…… 어찌 그런 상소리를.”
“아무튼, 어떤 놈인데요?”
“뭐…… 알겠네. 어차피 갈 길도 머니 얘기나 함세.”
리스턴은 허험 하더니만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다윈이라는 친구에 대해서였는데, 엄청 부잣집 도련님인 모양이었다.
“땅덩이가 그렇게 넓다고요?”
“그래, 집에 식물원도 있대. 그런 주제에 에든버러 의과 대학에 갔다네.”
“에든버러 의과 대학……?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그 이름을?”
“그때 윌리엄 버크랑 헤어 사건 기억 안 나나?”
“그 이름도 기억이 나는데.”
“무덤 도굴꾼들 사형 시킬 때 들었을 거야. 그놈들은 무덤을 턴 게 아니라 아예 시신을 생산했거든.”
“아…… 맞다. 그 미친놈들.”
미친 건 그놈들이 아니라 이 세상일 수도 있다.
일단 저 둘 중 하나는 사형장에서 튀어서 지금 어딨는지도 모른다고 하고, 저 둘에게 시신 생산을 의뢰했던…….
그러니까 살인 교사범인 교수는 멀쩡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거든.
아무튼, 다윈은 그런 곳에서 의과 대학을 다닌 모양이다.
“담당 교수가 그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는데, 다니다가 관뒀대, 금방.”
“그래요? 끈기가 생각보다 없네.”
“뭐…… 우리도 자네가 와서 좀 변한 거지 원래 의과 대학은 졸업하기 힘든 곳이긴 하네.”
“왜 그렇죠?”
“왜긴, 겁쟁이들이 많으니까 그렇지. 그깟 수술이 뭐가 무섭다고들 그렇게 도망을 치는지…… 해부가 무섭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 썩을 정도로 죽은 지 오래된 시신이 뭐가 무섭나.”
“아.”
리스턴의 말에 다윈이 딱히 끈기가 없어서 도망친 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긴 뭐가 되었건 한 이론의 창시자쯤 되는 사람인데 끈기가 없을 수 있겠나?
어쩌면 그냥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 리스턴이 말하는 수술은 내 시대 이전의 수술이지 않나.
다시 말하면 마취가 없던 시절의 수술이란 얘긴데, 그건 수술이 아니라 그냥 살해다.
거기에 썩은 시신 해부는 그냥…… 뭐 말을 덧붙일 필요가 있나?
굳이 상세한 설명을 해야 하냐고.
“아무튼, 그러다 신학 대학교에 갔네.”
“굉장히…… 진로가 휙휙 바뀌네요?”
“부잣집 도련님들이 다들 그렇지 뭐.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이지만, 의사나 신학자가 전망이 좋지 않나.”
“그야…… 그렇긴 하죠.”
놀라운 일인데, 의사들이 거의 살인자들과 동급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대우는 썩 괜찮은 편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나마 살려 두니까 그랬다고 치는데 여기서는 도통 그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외과 의사는 같은 의사인지부터 논의를 해 봐야 한다는 놈들이 대다수이니만큼 아예 논외로 친다.
나랑 리스턴 역시 그 외과 의사니 원래 같으면 신분이 상당히 낮아야 하긴 했다.
허나 내과 의사라고 해서 뭐가 다른 것도 아니다.
수은이니 비소니 하는 것들 먹이는 것도 그놈들이고, 사혈이라는 명목하에 피 빨아 먹는 놈들도 그놈들이다.
‘진짜…… 대체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된 걸까?’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털었더니 리스턴은 내 속내도 모르면서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원래 도련님들이야 이거 하다 저거 하다 해도 되는 놈들이 아닌가.”
“아, 그건 그렇죠.”
이건 또 21세기에도 통하는 말이라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금수저에 대한 정의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들에게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거다.
“아무튼, 그래서 졸업은 했는데 뭐…… 원래도 취미가 식물 같은 거 들여다보고 하는 거였다고 들었네.”
“아…….”
덕후였구나, 싶었다.
21세기는 바야흐로 덕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너튜브를 하건 뭘 하건 내가 이거 좋아하고 잘합니다! 하면 그것이 딱히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 해도 직업이 되잖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산업 혁명은 대단히 무서운 변화여서 오히려 현대 사회보다도 훨씬 더 효율에 집착하는 사회다, 지금이.
“쓸모없는 놈이야, 그놈. 근데 그런 놈이 비글호 선장 말동무로 그 배에 타게 된 걸세.”
“말동무라…… 중요한 직함이긴 하죠.”
“그렇긴 하지. 우리도 사실상 청나라 갈 때 그 역할도 한 거 아닌가.”
“그랬죠. 말이 잘 통하진 않았지만.”
“선장이 힘들었을 거야.”
“그러긴 했을 거예요.”
말동무가 뭔 놈의 직함인가 싶겠지만, 내가 지금 리스턴과 떠들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을 보면 알 텐데…….
19세기는 아직 놀거리가 거의 없는 시대라고 보면 된다.
물론 술 먹고 아편 빨면서 노름하는 놈들도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우리가 보기에만 막장인 것은 아니라 19세기에도 그런 놈들은 좀 경원시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배라는 고립된 곳에서 선장이 그 지랄 하면 바로 반란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 나는 열린 사람이지’ 하면서 선원들과 말 트고 지낸다?
런던 사교계에서 아웃이다, 바로.
귀족과 그러지 않은 이들에 대한 구분이 명확한 사회라 그렇다.
“근데 비글호는 얼마나 항해를 하고 오는 건데요?”
“5년.”
“5년……? 그럼 사람 많이 죽었겠는데……?”
“한 절반은 죽었을 거야.”
“용케 탔네. 부잣집 도련님인데.”
“선장 말동무인데 뭐, 안전하지. 게다가 일단 의학도 배우지 않았나.”
그러니까 그 의학 때문에 더 죽을 가능성이 높을 텐데, 아쉽게도 19세기 의사인 리스턴은 내 덕에 교화가 많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가 대학에서 배웠던 것이 쓸모가 있을 거라 믿고 있다.
뭐…….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뭐라고 하진 않았다.
종교랑 정치 얘기는 하는 거 아니라고 하잖아?
그게 왜 그러냐면, 믿음에 대한 얘기라 그렇다.
리스턴에게 의학은 일종의 신앙이니만큼 천천히 까야지 한 번에 까려고 하면 안 된다.
“그건 그렇군요.”
게다가 일단 살아 돌아오지 않았나.
그럼 된 거다.
‘하긴…… 어지간히 강하지 않고서야 어디 19세기 위인이 될 수나 있었겠나?’
21세기가 발전이 더 빠른 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겠지만, 다른 시대였으면 죽었을 위인들이 다들 살아남아 뭔가 하는 것도 있을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기 와서 들게 된 생각이다.
와 보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생각이기도 하고.
“근데 지금 듣기만 해서는…… 딱히 유명해질 이유가 없는데요? 그냥…….”
그냥 돈 많은 병신 아닌가?
대학교 중퇴하고, 아빠 빽, 돈 써서 딴 데 입학해서 졸업했는데 전공은 못 살리고…….
지금까지 인생 최대 업적이 선장 친구인 거 아니야.
해서 물었더니 리스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인간이 어디 정박할 때마다 거기서 새로 찾은 식물이며 동물 박제며 하는 것들을 여기로 보냈다고 하는데…… 그게 다 학계에서는 아직 처음 보는 것들이라 명성이 대단하다네.”
“아…… 하긴 5년 동안 온갖 데를 다 갔겠군요.”
갈라파고스라고 남미에도 갔을 테니…….
전 세계를 돌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긴 할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여전히 불만 어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볼 때는 허명이야. 그러면서 은근슬쩍 진화 얘기를 한다는 것도 꺼림칙하고 말일세.”
“신학교 나왔다는 놈이 왜 그럴까요?”
“나도 모르지. 가서 그놈도 모르는 거 같으면 좀 알려 주려고, 주님의 뜻을.”
“아, 일단 말로 하죠.”
“나도 말로 하려고 했는데.”
“주먹은 왜 쥐어요, 근데.”
“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