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42)
검은 머리 영국 의사-442화(442/505)
442화 비글호 [2]
역시 리스턴표 라디오를 틀어 놓길 잘한 거 같다.
시간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 우리는 곧 런던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원래는 팰머스로 온다고 했는데…… 알지 않나. 요새 런던으로 모든 물류가 몰리고 있는 거.”
“아…… 우리 제이미 경 때문인가?”
“아마 그럴 거야.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니…….”
“근데 저건 탐사선이라고 했는데 뭔 상관이죠?”
“탐사선이고 나발이고 다 군함인데 뭘. 그리고 이건 소문인데…….”
런던항은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끝까지 마차를 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물론 우리야 높은 사람이고 또 힘도 세다 보니 무작정 밀어붙이려면 밀어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 봐야 더 빨리 갈 수 있을 거 같진 않아서 그냥 내려서 걷고 있었다.
리스턴은 어디 안에 있을 때보다 주로 밖에 있을 때 훨씬 더 눈에 띄는 인간이다 보니 다들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 쳐들어가나……?’
‘곧 전쟁날 거 같다더니…….’
‘예끼. 전쟁이 그리 쉽게 나나? 몇 년은 걸리지…….’
‘근데 저 둘이 왜 여길 온단 말인가.’
‘누구 죽일 놈이 있나 보지.’
‘하긴…… 그게 더 합리적인 추론이구만그래.’
사실 나도 꽤 눈에 띄는 편이긴 하다.
유일한 동양인인 것은 아닌데…….
나처럼 잘 차려입고 무엇보다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는 동양인은 아예 없거든.
아무튼, 거의 모함에 가까운 대화를 들어 가면서도 나는 리스턴에게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의사 둘이 왔는데 ‘누구 죽이나 보지’라는 말이 좀 그렇긴 한데…….
“우리 윌리엄 4세의 명도 있었다는 얘기가 있어.”
“네?”
좀 그랬던 것은 우리 왕이 갑자기 나오는 통에 다 잊어 버렸다.
정말로 ‘형이 왜 여기서 나와?’이지 않나.
그 양반이 평소에 탐사니 수로니 생물이니 하는 데 관심이 있었으면 또 모르겠는데, 전혀 없다.
일국의 왕에게 이런 말 하는 게 좀 미안하긴 한데, 노는 데 평생을 열중했고 앞으로도 거의 그럴 거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젠 왕이 되었으니만큼 뭔가 하긴 하는데 누가 시키거나 정말 안 하면 안 될 거 같은 거나 하는 것이지…….
절대로 알아서 하는 법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놀랬지? 나도 놀랐네. 아무튼, 그래서 이대로 궁으로 가서 보고를 올릴 거란 얘기가 있어.”
“아니, 그걸 왜 내가 모르지?”
무엇보다 내가 몰라선 안 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 대영제국의 왕실이 굴러가는 일을 내가 다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좀 잘난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자아가 비대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리스턴보다는 더 잘 알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주치의잖아.
“숨겼으니까 모르겠지. 나도 몰랐어. 하지만 내겐 이런저런 친구들이 있지.”
“친구들? 아…… 걔네.”
왕실의 위엄은 여전히 지엄하다 할 수 있다.
또 레드 코트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음지에서만큼은 분쇄할 수 있는 게 리스턴의 주먹이다.
처음 싸웠던 건 순 우연이었는데, 그렇게 박살 난 레드 코트들, 그중에서도 정예라 할 수 있는 버킹엄궁의 경비병 중 일부가 리스턴의 부하가 되었다.
리스턴은 친구라고 하지만 리스턴이 원할 때만 볼 수 있고, 리스턴이 원하는 말만 해 주는 상대가 친구는 아니지 않나.
“매주 물어보는데 이번에 뭔가…… 꺼리기에 캐물었더니 말해 주더라고. 왜 숨기는지는 알겠지?”
“알 거 같네요.”
다윈은…….
종의 기원이라는 책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람 자체도 썩 괜찮았다는 평이 있는 인간이다.
리스턴이야 진화론과 같은 사특한 이론을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이미 적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그래, 기억나네.’
현대 의학은 진화라는 개념과 딱 떼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의사들 중에도 기독교인이 꽤 많은데도 그런데, 그 이유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실제로 진화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러스는 보다 보면 이게 정말 살아 있는…… 생물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구조도 그렇고 행태도 그렇고 이상한데, 그래서 그런가 진화가 엄청 빠르다.
그래서 따로 구분해 변이라고 하는데 팬데믹 겪어 본 사람들은 다들 알 거다.
바이러스의 변이라는 게 단순한 적자생존 수준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DNA 차원의 변이까지 일어난다는 걸.
말이 쓸데없이 길어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다윈에 대해서는 그래도 좀 배우는 편이다.
‘뭐…… 시험에 나올 건 아니고, 나도 공부하기 싫은 김에 본 거긴 한데…….’
사실 다윈이 발표한 책 때문에 이번에 같이 항해한 선장,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그 양반도 진화론이라는 악의 이론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공격에 자살했다고 들었다.
억울했을 거다.
종의 기원이 나오는 건 여행에서 돌아온 지 거의 20년 뒤의 일이니까.
‘뭐…… 분위기를 살핀 건지 아니면 그사이에 신학교 다니면서 쌓은 신앙을 배신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20년이다, 20년.
21세기에도 20년은 대단히 긴 세월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걸 2번이나 겪을 만큼이나 긴 세월이니 뭐…….
무엇보다 평균 수명이 80에 가까운 시절에도 길게 느껴지는 세월인데 이 시기에는 어떻겠나.
평균 수명이 50도 안 되는 시절이다.
20년이면 서른 살 된 사람이 기다리다가 죽을 수 있는 세월이란 말이다.
‘신중한 인간이겠지…….’
애초에 뭔가 수집하는 걸로 유명하다고 하지 않나.
5년이나 배 타고 왔다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고 왔을 것이 분명했다.
보통의 학자라면 그런 다윈의 수집품을 보고 ‘와, 이건 생물학의 보고’라고 생각할 것이었고.
하지만 우리의 왕이라면 어떨까.
“여기 뭔가 불로장생의 비밀이 있을 거라고 여기겠군요.”
“그래. 하필이면 거북이를 잡아 왔다더군.”
“거북이……? 거북이는 왜요?”
“이건 사실 내 탓도 있네.”
해서 같이 뒷담화를 까려고 했는데 갑자기 리스턴이 고개를 떨구었다.
‘왜 그러냐’라고 물어볼 필요는 딱히 없었다.
이 인간도 나만큼이나 성질이 급해서 바로 말할 게 분명하거든.
“조선에서는 씹장생이라는 개념이 있지 않나.”
“십장생이요.”
“씹장생.”
“십…… 아니, 됐다. 그래서요.”
이럴 때마다 드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다.
왜 멀쩡히 다른 말은 다 발음 잘하면서 욕 같아 보이는 건 이렇게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 새끼 내 생각보다 조선에 대해 더 잘 아는 게 틀림이 없다.
일단 십장생부터가 그래.
무식하다고 욕할 수도 있는데, 나도 십장생이란 말은 알아도 안에 어떤 게 정확히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중에 해니 달이니 하는 것들은 다 빼고…… 동물을 보면 사슴이나 학, 거북이가 남는데 학은 내가 뭔지 잘 모르겠고…… 사슴은 그리 오래 사는 동물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거북이가 오래 살 거란 결론에 도달했네.”
“그건 잘못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요.”
거북은 실제로 오래 사는 동물이지 않나.
종류에 따라서는 수백 년 사는 놈도 있다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봤다.
심지어 애완용으로 파는 거북이들도 툭하면 20년, 30년은 살기 때문에 중간에 버릴 생각 안 들게 처음부터 생각 잘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아무래도 21세기 애완 거북 정도의 관리만 받는 거 같은 19세기 인간들의 수명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면 장수 동물이 맞다.
“자네가 싫어할 거 같은 말도 있네.”
“어떤……?”
“오래 사는 동물이 아무래도 건강에도 좋지 않겠나.”
“아니…… 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당연한 얘기지, 아무래도.”
“당연?”
화가 난다.
심하게 뭐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도 어려운 것이, 어떤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개념은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렇다.
수술만 하면 이제부터 뭘 먹어야 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사실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지 뭘 먹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닌데…….
음식의 성분에 대해 알아내고 그것이 실제로 임상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기에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아니, 그럼 다윈이 거북이라도 잡아 왔단 말입니까?”
“그럴 거야, 아마.”
“그걸 그럼…… 우리 왕은 먹으려고 하고?”
“그렇지……?”
“그게 문명인으로서 할 짓입니까? 귀한 거북이니까 잡아 왔을 거 아니에요?”
“그렇지. 생전 처음 보는 거북이라고 들었네.”
“이런 미친. 그럼 희귀종이잖아요.”
“희귀할 정도로 몸에 좋지 않을까?”
“우리 임금께는 홍삼이나 먹입시다. 이런 거 말고…….”
거북이가 건강에…….
좋겠냐? 상식적으로?
정 먹을 게 없으면 먹을 수는 있긴 할 거다.
뭐, 나름대로 고단백질의 건강식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절대로, 내 모든 명예와 칭호를 걸고 단언하건대 거북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 왕이 더 오래 살 수는 없다.
오히려…….
관리가 아예 안 된, 심지어 이국에서 온 야생 동물이기 때문에 괜히 먹었다가 우리가 모르는 기이한 풍토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뭐…… 정말 숙주였으면 다 죽었겠지만.’
비글호가 아니라 유령호가 되었을 거다, 이 말이다.
억세게 운이 좋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외국에서 함부로 식물이나 동물 막 가져오면 안 되거든.
괜히 검역 당국에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걸렸을 때 ‘몰랐네요?’ 하면서 대충 퉁 치고 넘어가려고 해도 안 되는 일이고.
그러다 팬데믹 생기는 거다, 진짜로.
“일단 가세. 저기가 소란스러운 게, 저쪽인가 본데.”
“알았어요. 거북이는 빼돌립시다. 오다 죽었다고 하지, 뭐.”
“그게 되나……?”
“아니면 내가 또 가서 설득해야 되는데…… 힘들단 말이에요, 그거.”
“힘들다기보다는 좀 그렇지? 아무래도 사람들이 수군대는 게.”
“그렇죠. 내가 진짜 나쁜 놈이라도 된 거 같다니까.”
왕은 말을 진짜 안 듣는다.
사실 50 넘은 아저씨가 남의 말 안 듣는 건 특기 사항에 적어 놓기도 민망한 사항이긴 하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지는 법이잖아.
근데 왕이다.
날 때부터 왕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전에도 공작이었다.
이 시기 공작쯤 되면 진짜 남의 말 들을 이유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도 설득 대신 협박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죽어요’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게 왕한테 할 말인가? 협박 아닌가?
협박 맞지만 좀 억울했다.
내가 죽이겠다는 말은 아니니까.
-대자연이 죽일 겁니다. 법칙이 찾아갈 거예요.
-히익.
해서 이 시대 사람들이 알아듣게끔 말해 줬더니 어째 더 무서워하는 거 같았다.
본래 의사는 환자가 그러면 좀 풀어 주고 해야 하지만, 이 환자는 그랬다간 또 이상한 짓을 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두었다.
“옳지, 저기 있네. 내가 선장 얼굴을 알거든. 그 옆에 저게 다윈이겠구만.”
“오. 가죠.”
“그래. 길 비켜라, 이놈들아. 팔다리 잘리기 싫으면.”
“저주받기 싫으면 비켜!”
하여간 우리는 산처럼 모여든 인파를 간신히 헤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