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43)
검은 머리 영국 의사-443화(443/505)
443화 비글호 [3]
다행히 우리는 우리의 왕보다 한발 앞서 다윈을 만날 수 있었다.
“설마…….”
우리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이런 반응부터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우릴 아는 모양이었다.
사진이 보편화되기는커녕 찍은 본인도 이게 나인가 싶을 시대라는 걸 감안하면 꽤 놀라운 일이다.
우린 딱히 초상화를 남기지도 않았거든.
아니, ‘나는’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다.
불안하거든.
미래인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피영시인과 리스턴 경입니까……?”
이거 봐라.
이제 다윈 같은 사람조차 리스턴보다 나를 더 앞에 둔다.
물론 의료 업적만 두고 보면 이게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전혀 아니란 게 문제다.
“우릴 안다니 얘기가 빠르겠군그래. 왕께 바칠 물건이 있지. 그것 좀 보세.”
“히익.”
“형님 너무 깡패같이 말하지 마세요.”
저봐, 저거.
잔뜩 쫀 거 봐라.
근데 그렇게도 생기긴 했다.
아니, 왜 말을 이렇게 하냐고.
꼭 우리가 중간에서 왕한테 갈 물건 가로채러 온 거 같잖아.
“진상품은 그대로 둬도 됩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물은 제 허락 없이는 궁에 들일 수 없어요.”
“주, 죽입니까?”
해서 정정을 해 주었는데 이것도 즉시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쫀 거 같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도 우르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주, 죽인대.”
“안돼…….”
나는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말을 이었다.
여기 와서 한 짓이라곤 사람 살린 거밖에 없는데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싶은 얼굴을 한 채였다.
“내가 죽이긴 왜 죽입니까. 오히려 죽어 가는 놈이 있으면 반드시 살릴 거예요.”
“사, 살림 당한다…….”
중간에 웬 놈이 이상한 말을 하긴 했지만, 다윈은 그나마 애든버러 의과 대학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점점 대화가 통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된 대화는 아니었다.
허나 아까처럼 도망가려고 하진 않았다.
“아무튼, 에콰도르 인근 섬에서 신기한 동물 잔뜩 가져왔죠? 그것 좀 봅시다.”
“아, 네네.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으셨군요. 하지만 이게 폐하께서 먼저…….”
“아니, 내가 갖겠다는 게 아니라니까?”
“근데 저 포획 틀은 왜…….”
“위험해 보이는 게 있으면 일단 검사를 해 보겠다는 거지. 뭐, 왜.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거 같나?”
“아, 아닙니다. 여기…….”
게다가 도망간다고 해도 별 상관이 없었을 거 같은 정도로 이놈이 들고 온 동식물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아마 21세기 대한민국의 검역관이 봤다면 총으로 쏴 버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긴…… 뭐 여기에 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걱정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긴 하지.’
이것도 신기하긴 하다.
아메리카, 즉 신대륙을 천연두를 포함한 구대륙의 각종 전염병으로 거의 절멸시킨 놈들이지 않나.
일방적으로 패기만 했냐?
그것도 아니다.
신대륙은 천연두에 대한 보답으로 매독이라는 사상 최강, 최흉의 성병을 선물해 주었다.
그 대가로 인해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죽어 나갔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생태계와 함부로 접촉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쯤은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너…… 다윈 인마. 너는 꽤 배운 사람 아니냐……?’
이 시대 선원들은 사실 그런 생각하긴 어려운 사람들이긴 하다.
대항X시대 게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 텐데, 원양 항해를 하다 보면 선원들이 막 죽어 나가잖아?
그게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이번에 돌아온 비글호도 거의 절반은 죽어 나갔다고 들었거든.
그럼 돈이라도 많이 주나?
아니다.
이 시기 사람은 그 어떤 자원보다도 흔해 빠진 자원이기 때문에 막 버리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돈은 못 버는데 위험하기만 한 직업이기에 도시에서는 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타는 게 배다, 이 말이다.
허나 선장이나 그 말동무급으로 가면 귀족이기에 아예 얘기가 달라지는데…… 그래 봐야 이 모양인가 보다.
“아니…… 용케 살려 왔네.”
“하하. 고생 많이 했죠. 특히 선원들이 고생했습니다.”
그 선원 중에서는 아무래도 죽어 나간 사람들이 있을 거 같아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괜히 시비 걸어서 뭐 하겠나.
어차피 지금부터 이거 다 뺏어야 하는데.
아니, 말이 헛나왔다.
뺏는 게 아니라…….
그래, 안전하게 보관한다고 하자.
“이거 그럼 다…… 그 섬에서 온 겁니까?”
“아, 네. 갈라파고스 제도에…… 들으셨군요? 원래 생물에도 관심이 많으십니까?”
“의사니까요. 인간도 생물 아닙니까.”
“아, 하긴…… 제가 멍청한 질문을 했네요.”
본심을 숨기고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뒤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안 봐도 뻔했다.
레드 코트.
즉, 대영제국의 정규군이다.
“길 비켜라, 이놈들!”
“다윈! 다윈은 어디 있나!”
보아하니 어중이떠중이도 아닌 거 같았다.
레드 코트에 그런 잡졸들이 있지도 않겠지만, 말 위에 탄 채 시민들에게 위엄 있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기마 경찰 뒤로 질서 있게 전진해 오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 뒤에 누가 있을지 뻔히 보이는 듯했다.
“왕이신가?”
“우리가 오는 걸 알았나 보군.”
“아니…… 대체 왜 이렇게 보양에 집착을 하시지?”
“천년 묵은 거북이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
“형님은 또 왜 입맛을 다십니까.”
“십장생 중 실제로 제일 오래 사는 게 거북 아닌가. 심지어 이놈 생긴 것을 좀 보게나. 범상치가 않네.”
생각해 보면 리스턴도 이런데 왕이라고 생각이 올바르게 박였을 거란 기대를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다.
하여간, 우리는 의관을 정제히 하고 왕을 기다렸다.
1%의 확률로 왕이 오시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대영제국의 왕께서는 신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잘 없으셨다.
“오? 자네 둘이 여긴 웬일인가?”
벌써 다 알고 온 주제에 놀란 척하는 걸 보고 있자니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거북이를 보며 입맛 다시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그냥 죽게 둘까? 싶기도 했다.
‘대체 원 역사에서는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설마 그건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그 심리인가?
하긴 그랬을 거 같긴 하다.
지금 이 인간이 하려고 했던 거 다 했는데도 살아남았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니까.
“위험한 동식물이 들어왔다고 들어서요. 저희야 대영제국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이들 아닙니까. 그 공으로 폐하께 작위도 받고, 주치의도 하게 되고 그랬지요.”
속으론 영 딴생각을 하고 있지만, 원래 귀족쯤 되면 겉과 속이 따로 놀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심지어 이게 마냥 칭찬은 아니지 않나.
우리를 그렇게 인정해 놓고서 우리 말 안 들으면 너 이상하게 된다? 이 뜻으로 한 말이다.
“허허.”
왕께서도 바로 알아들으셨는지 웃으면서도 인상을 쓰셨다.
원래 왕 될 생각이 없으셨던 분이지만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맞긴 한 모양이다.
뭐, 애초에 나도 그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돌리진 못하니 알아듣는 게 당연하긴 하다.
“위험하다니, 여긴 맹수도 독초도 없다고 들었는데.”
게다가 왕께서는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이내 직진하기 시작했다.
아예 거북이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는데, 정말 의도가 너무 투명해서 밉지도 않았다.
뭐…….
이런 환자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의외로 21세기도 민간요법은 그놈의 자연적이라는 말과 함께 오래도록 살아남아 의학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뭐…… 여기 와 보니까 의학도 마냥 잘한 것만 있는 건 아니긴 해?’
업보가 너무 많다.
괜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의사 말 안 듣고 고집스럽게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니다, 이 말이다.
하지만 그냥 그런갑다 하고 둘 거면 뭐 하러 의사를 하나?
그런 인식 이용해서 돈 버는 쇼닥하지.
세태와 야합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진짜 전문가는 그러면 안 된다.
특히 이 시대에서 나는 거의 오직 나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 수준이다.
“폐하. 신대륙에 갔던 콜럼버스나 선원들도 독초를 들고 가거나 맹수를 들고 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 병으로 죽었죠.”
“하하. 신의 벌을 받은 거 아닌가. 인신 공양에 대한 벌이지.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괜찮네.”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다.
19세기 중반에 신의 벌 운운하는 거, 진심이냐?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콜럼버스가 옮겨 온 매독을 상기해 보면 어떻습니까. 우리 영국은 그때도 지금도 독실하긴 매한가지 아닙니까. 낯선 환경에서 온 살아 있는 생물은 위험한 법입니다.”
“하하. 프랑스병을 말하는 건가? 이건 그저 주님께서 방탕한 놈들을 벌주시려다가 우리에게 불똥이 튄 것일세.”
슬슬 죽이고 싶어진다.
거북이 고기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쩐지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는 갈라파고스산 땅거북이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기랄.’
그래, 쟤가 뭔 잘못이 있겠냐.
게다가 생긴 걸 보아하니 리스턴 말처럼 천년은 아니더라도 수십 년은 족히 산 거 같이 보인다.
주름이 저게 그냥 막 생기진 않을 거 같어.
그런 애 막 도축해서 먹고 그러면 안 될 거 같다.
심지어 생각해 보니까 쟤 원래 살던 곳이 지구 반대편인데 순 인간의 욕심 때문에 여기까지 끌려온 거다.
‘엄마 찾아 3만 리’라고 하는데 여기서 거기까지가 한 그 정도 될걸?
“폐하, 이 거북이를 먹고자 함이 혹 조선의 십장생 때문은 아니온지요?”
해서 좀 더 노력을 해 보기로 했다.
“으음.”
우리 왕이 그래도 거짓말은 잘 안하는 편이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씹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으음.”
소스가 어딘지는 말 안 해도 알 거 같아서 리스턴을 돌아보니, 딴청을 피우고 있다.
세상에 십장생이라니.
21세기가 되면 조선에서도 거의 욕으로만 쓰인다고…….
이 십장생 같은 새끼들아.
“헌데 조선에서는 외래 거북이를 먹지 않습니다.”
“으음? 외래 거북이……?”
나도 거짓말은 잘 안 한다.
구라 마스터긴 한데, 잘 뜯어 보면 완전 구라는 아니다, 이 말이다.
이것도 그렇다.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이 어떻게 외국 거북이를 수입하겠나.
게다가 지금 조선에는 자라니 남생이니 하는 토종 거북이들이 득시글득시글할 거다.
표범이니 호랑이니 하는 맹수들만 많은 게 아니라는 건데…….
생각해 보면 참 희한한 땅이다.
아마 사람이 거주하는 땅 중에서는 맹수가 제일 많이 산다고 해도 좋을 거다.
‘이참에…… 수익을 다각화해 보자.’
생각해 보면 21세기에도 자라탕 먹는 사람들이 꽤 있었잖아.
조리만 잘하면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 여기 애들은 더 강하니까 어쩌면 진짜로 건강해지는 일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놈은…….
“보십쇼. 이놈은 주름이 많고, 느릿한 것을 보니 땅거북 같은데. 맞습니까?”
“아, 네.”
“이런 거 먹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탈만 나지. 폐하께서 십장생에 관심이 생기셨다니…… 제가 녹용과 자라탕을 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노, 녹용은 뭔가?”
“십장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슴뿔도 모르면서 무슨 십장생을 안다고…… 제가 알아서 잡아 올리겠습니다.”
“허…… 그럼 이 거북이는 어쩌지?”
“신기하게 생겼으니 사람들이 돈 내고 와서 구경할 법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