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44)
검은 머리 영국 의사-444화(444/505)
444화 비글호 [4]
돈 받고 동물을 보여 준다.
이게 딱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인간은 자본주의 이론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이전부터 돈 버는 일이라면 귀신 같이 찾아서 했으니까.
오히려 이전엔 범죄에 대한 인식이 달랐기 때문에 더더욱 적극적이었을 거다.
“동물원이라…… 거북이가 딱히 신기해 보이진 않는데……?”
영국에도 당연히 동물원은 있다.
심지어 몇몇 귀족들, 그러니까 우리 편에 서서 돈 엄청 벌고 있는 제이미 경 같은 사람들은 개인 동물원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 잡아 온 벵골 호랑이며 아프리카 등지에서 잡아 온 코끼리, 코뿔소 등등…….
“다른 동물들은 많잖아요. 그냥 거기다 같이 두고 키우면 안 될까요? 어차피 먹으면 안 된다니까요?”
“으음…….”
“음.”
왕뿐만 아니라 다윈도 좀 아쉬워 보였다.
이 새끼 이제 보니까 거북이는 진짜 먹으려고 데리고 온 모양이다.
‘뭐…… 푹 고아 먹으면 설마하니 먹고 죽기야 하겠냐마는…….’
굳이 갈라파고스에서 여기까지 온 애를 죽일 필요가 있겠나?
솔직히 맛이야 얘나 자라나 뭐나 다 비슷하지 않겠어?
“동물 협회인지 뭔지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 줘서 키우라고 하죠.”
“그래, 그럼. 하는 수 없지.”
“네네. 근데 어디 가십니까?”
“거북이가 아니면 난 딱히 이런 데서 시간 낭비할 이유가 없네.”
“아.”
우리 왕…….
사람이 너무 투명하다.
오히려 좋긴 하다.
예측이 쉽잖아.
“아니, 그냥 이렇게 가신다고?”
졸지에 커다란 육지 거북과 함께 덩그러니 놓이게 된 다윈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긴 이 친구는 우리 왕이 어떤 분인지 모르니 이럴 만도 하다.
듣자니 원래 다른 항구로 입항하려 했는데 왕 때문에 여기로 왔다고 하니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이거 때문에 지금 선장님하고도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왔는데…….”
“하하 원래 그런 분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사가 다망하시지 않겠어요?. 나랏일 돌보는 게 얼마나 바쁘시겠어.”
나는 그런 다윈과 대화를 하면서 동시에 그를 자연스레 우리 마차에 태웠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뭐 하는 거긴. 너 납치된 거야.”
“네?”
“농담일세.”
약간의 반항이 있긴 했지만 리스턴 덕에 별 무리는 없었다.
아마 스스로 마차에 훌쩍 뛰어올랐다고 해도 이보다 빠르진 못했을 거다.
아무튼, 그렇게 마차에 태운 우리는 아니, 리스턴은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실은 농담이 아니게 될 수도 있네.”
농담이라는 말에 그나마 풀어지려 했던 다윈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아무리 먼 바다를 항해하고 온 사람이라 한들…….
리스턴의 협박에 굴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라 그랬다.
당장 해적질하던 놈들이라 해도 리스턴 앞에 서면 벌벌 떨 텐데 다윈 같은 학자가 뭐 어쩌겠나.
“뭐, 뭐, 뭡니까. 도, 돈이라면 많이 있어요.”
돈이 많다는 말에 나도 부쩍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하긴 가지고 있는 땅 너비가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대강 21세기식으로 계산하면 여의도보다도 넓다고 하더라고.
어째서 대한민국에서는 여의도를 척도로 사용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정도면 좀 뜯어먹을 수 있는 게 있을 거 같다.
“돈? 돈은 나도 많아. 그리고 강도질할 생각은 없네.”
“그, 그럼……?”
하지만 리스턴 없이 나 혼자 강도질하는 건 좀 그렇긴 하다.
나만 욕먹을 거 같잖아.
게다가 나 혼자서는 어지간한 지금의 영국인은 털어먹는 게 불가능하다.
저주를 믿는 놈이라면 바로 가능한데, 다윈처럼 배운 게 있는 놈은 안 될 거다, 아마.
문제는 이놈이 긴 항해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강인한 놈이라는 거다.
‘지겠지?’
하긴 이긴다고 돈 뜯어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이상한 거긴 하다.
해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은 채 잠시 리스턴의 말을 기다렸다.
“자네…… 이상한 이론을 만들려고 한다던데.”
“아.”
리스턴은 평소와는 달리 주먹 대신 칼을 잡고 있었다.
누구라도 생각을 고쳐먹게 될 만한 상황이다, 이건데…….
다윈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건대, 딱히 그래서 저러는 거 같진 않았다.
뭐랄까…….
이미 스스로 꽤나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네, 맞습니다.”
“으음.”
눈치는 리스턴도 꽤 비상한 편이지 않은가.
평소에 안 살피는 건 딱히 살필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이고, 막상 눈치를 보려고 하면 또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더 추궁하는 대신 우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잘 보니 칼 손잡이에서도 손을 뗀 상황이었다.
그 덕에 다윈도 보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저는 과학자입니다. 리스턴 박사님도 과학자…… 그중에서도 뛰어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듣자니 갈렌에게서 벗어난 몇 안 되는 의사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우리는 스스로 관찰한 것을 배운 것 위에 두네. 그…… 태평의 말에 따르면 과학자는 지조가 없어야 한다고 하던데.”
“네네. 역시…… 영국 최고의 명의십니다. 두 분이 계셨으면 우리 배 선원들도 훨씬 덜 죽었을 텐데. 아무튼.”
“말해 봐.”
심지어 다윈은 꽤 똘똘한 사람이라 그런가 리스턴을 띄워 주기까지 했기 때문에 분위기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물론 난 이게 다 헛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리스턴은…… 진짜 골수 기독교인이야.’
나 만나고 좀 이상해지긴 했다.
주님하고 접신을 하네 마네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바탕에는 어마어마한 믿음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근데 진화론……?’
그나마 지동설은 성경에서도 어느 정도 그렇게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었다고 들었다.
나야 성경 학자도 아니고 하니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진화론은 그럴 여지가 없다.
아니, 창세기부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떡하니 있는데…….
그걸 정면에서 부정하는 거잖아?
“갈라파고스라는 섬에 갔습니다.”
“그래. 들었네. 저 거북이도 거기서 들고 온 거라며.”
“네네. 그랬더니, 거기서는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생물들이 있더군요.”
“으음…….”
물론 리스턴이라고 해서 탈레반 수준으로 말이 안 통하는 놈은 아니다 보니 일단은 듣고 있었다.
여전히 칼 손잡이에도 손은 안 대고 있었고.
“그중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던 동식물들이 있었어요. 잘 보니 갈라파고스의 생태계에 적응한 형태로 보이더군요.”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응?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윈을 바라보았다.
진화론을 줄기차게 밀었던 거 아닌가 싶어서 그랬다.
헌데 모르겠다니?
리스턴이 무서워서 저러나?
‘아니…… 그럴 거 같진 않은데…….’
오히려 선원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학자는 고집이 있다.
샌님들이? 싶겠지만, 조선을 봐라.
우리 유학자 형님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입에 침 바른 소리 못 하는 사람 많았잖아?
심지어 병자호란 때는 코앞에 칸이 군대를 끌고 왔는데도 오랑캐니 뭐니 하면서 개긴 게 학자들이다.
원래 공부하다 보면 목숨보다 중요한 게 생기기도 하는 법이거든.
나도 그렇다고 하면 약간 켕기기는 하는데, X도 모르는 놈들이 이렇게 하면 환자 살리는 거라고 할 때 분연히 떨치고 선 덕에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진화…… 개념은 있었죠. 아무래도 적응하지 않겠냐는 거. 하지만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까요. 저도 창조론을 믿고 있습니다. 명색이 신학자인데 어떻게 안 그렇겠습니까.”
“으음…… 근데 지금 눈으로 확인을 했다, 이거지?”
“네.”
“으음……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 거고?”
“네. 이게 맞나…… 싶어서요.”
“으음.”
듣다 보니, 다윈은 실제로 기독교인이긴 한 모양이었다.
헌데 과학자이기도 하다 보니 지금 고민이 되는 거 같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진화론…….
이거 생각보다 파장이 진짜 큰 이론이잖아?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
지동설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뭐…… 그렇다고 해 봐야 정말로 신이 없는 세상이 되었냐고 하면 그건 모르겠는데.’
물론 내가 살았던 21세기에도 여전히 기독교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러 부침이 있음에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 혹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거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굳건한데…….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내가 다윈한테 ‘야, 너 고민할 필요 없고 가서 떠들어 봐’라고 할 수는 없다.
런던의 모든 강경한 기독교인들이 다들 리스턴처럼 신사적이라고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그렇다.
죽을 거다.
진짜로.
‘그리고 그렇게 순교자가 되면 엄청나게 되겠지.’
기독교가 어떻게 서방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종교가 되었나.
예수님을 비롯한 열두 제자가 죽어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다윈이 죽는다?
그럼 진화론은 신화가 될 거다.
‘그렇게 되면 내가 아는 미래가 더 멀어질 거야.’
이미 멀어지고 있는 거 같다.
나 때문에.
근데 더 큰 변화를 줘?
그건 좀 아닌 거 같다.
“그…… 찰스라고 해도 되나?”
“아, 네. 물론이죠. 티에피영 경. 말씀하십쇼.”
해서 내가 나섰다.
“고민이 되면 그만큼 신중한 것도 좋겠군. 우리 리스턴 형님은 신사지만 안 그런 이들도 많으니까. 고향으로 돌아가 안전한 곳에서 말 통할 만한 사람들하고 먼저 교류도 하고 그러라는 말이야.”
나라면 이렇게 할 거 같단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21세기 의료계도 보수적이다 보니 새로운 걸 제시해야 할 때 보통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땐 시발 왜 이러나 했는데, 와 보니 19세기 때 너무 자유분방했던 것에 대한 반발인 듯하다.
하긴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 생명 다루는 건데 너무 자유로운 것도 문제다.
“으음……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는데 역시 지혜로우십니다.”
“그래. 그럼 우리 마차 타고 갈래?”
“아, 아뇨. 제가 알아서.”
혹시 몰라 집 알아 두려고 했는데 아깝다.
‘미행을 붙이면 되지.’
하지만 옆에 있던 리스턴 형님의 말에 순순히 보내 주기로 했다.
역시 형님이 나보다 한 수 위다 싶었다.
대강 보내 놓고 나중에 지켜보면 되지 않겠나?
해서 미행 붙여 놓고 근처에서 소문만 수집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달라? 기이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러다…… 얘 죽겠는데?”
“네, 그러니까요. 우리가 가야겠어요.”
젊은 다윈이 미쳐서 동네방네 진화론을 설파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까 살해당할 거 같다는 얘기는…….
아니, 맞나?
“대체 왜 동네 의사들을 불렀대?”
“그러니까요. 해 봐야 에든버러…… 그쪽에서 배운 놈들일 텐데.”
“살해당하기 전에 가 봐야겠군.”
“근데 형님 입장에서는 미리 죽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어차피 진화론 그거…….”
“자네는 의사 맞나? 어찌 사람을 가려 본단 말인가.”
“아니…….”
아무튼, 우리는 다윈에게로 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