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45)
검은 머리 영국 의사-445화(445/505)
445화 다윈 [1]
다들 알다시피 다윈은 에든버러 의과 대학에 다닌 적이 있다.
다시 말해 의학을 배운 적이 있다, 이 말이다.
21세기였다면, 딱히 그러지 않았다 해도 의사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있었을 거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학에 대한 신뢰겠지만, 아무튼, 특히 현대 의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신뢰를 안 갖기도 어렵다.
어마어마하게 신중해진 태도로 어마어마한 근거를 가지고 쌓아 오고 있는 학문이라 그랬다.
“이 새끼는 왜 이럴까요?”
“뭐…… 부끄러운 말이지만, 당연한 거 아니겠나.”
“당연……?”
“우리야 좀 다르지만, 주변을 보게나. 신뢰가 막 가나?”
“그건…… 아니긴 하죠.”
하지만 19세기라면 오히려 의학을 배운 탓에 주류 의학에 대한 신뢰가 팍 떨어질 수도 있는 법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윈이 에든버러 의과 대학을 관둔 이유가 썩은 시신으로 해부해서만은 아니더라고.
마취 없는 수술 때문도 있다고 들었다.
뭐 그거야 런던 전역에서 했던 짓이긴 한데, 하필이면 다윈의 담당 교수가 소아 전문이었대.
‘어휴…… 시발…….’
소아라니.
생각해 보니까 소아도 수술의 대상이 된다.
21세기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그땐 마취를 했다.
거기에 더해 진통제도 주고…… 이런저런 안정제도 주고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의학의 발전 덕도 있지만 소아에 대한 인식의 발전 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어른이 아니잖아?
-가만히 있어!
-으아아아아아아아.
-퍽.
-으아아.
-너 그러다 죽는다!
안 봐도 훤하다, 훤해.
21세기에야 대한민국에서도 체벌이 거의 사라졌지만, 이 시기 유럽은 체벌의 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빠가 없으면 안 된다느니 버릇이 없다느니 하는 말이 왜 있겠나.
엄마의 완력으로는 아무래도 패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 탓이다.
‘하긴 이 시기에는 ADHD도 치료법이 물리지.’
우리끼리 하는 얘기긴 한데 원장님 아들내미 중 하나가 아무리 봐도 ADHD 같다.
원장님은 그 아이를 진짜 두들겨 패서 치료하고 있다.
아니, 치료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봐야 할 거다.
맞는 걸로 교정이 되는 건 보통 과잉 행동 장애뿐이거든.
그에 비해 맞는 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문제는 무궁무진하다.
우울증에 강박 장애에 각종 정신 장애가 다 따라온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해서 너무 때리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나도 맞을 뻔했다.
-조선에서도 회초리를 든다고 들었네!
이 나이에 종아리 걷을 뻔했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이번에 우리가 최대한 잘 치료해 주고 한몫 단단히 뜯어 보세.”
“아, 네. 그래야죠.”
그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 하지는 않은 치료를 받고 있다, 우리 다윈께서.
해서 우리 둘이 그걸 해결해 주기 위해 출동한 참이다.
물론 무료는 아니다.
딱히 상대가 원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의사가 되어 가지고 죽을 길로 가고 있는 놈이 뻔히 다 보이는데 어떻게 그냥 둔단 말인가.
성가시게 했으니 그 대가로 돈을 좀 더 받아 낸다고 한들 누가 뭐라 하진 못할 터였다.
“그나저나 더럽게 멀구만…….”
“그러게요. 180마일도 넘는다고요?”
“그래. 여유 있게 가면 하루 만에도 가긴 갈 텐데, 모르겠네. 차라리 기차를 탈 걸 그랬나.”
“기차…… 기차를 생각 못 했네.”
“뭐 이렇게 된 거 느긋하게 가세. 설마하니 지금까지 버티다가 갑자기 뒈지진 않겠지.”
“그것도 그래요. 어지간히 건강한 놈이니까 그 긴 항해도 견뎠겠죠.”
심지어 다윈이 있는 슈루즈베리는 엄청 멀다.
버밍엄보다도 더 가야 될 정도로 멀다.
‘그러고 보니 영국 내에서는 그렇게 돌아다녀 본 적이 없네.’
기껏해야 업턴에서 런던 온 게 다 아닌가.
물론 런던 근교에서는 여기저기 다녀 보긴 했지만 다 마차 타고 두어 시간 내의 거리였더랬다.
그에 비해 이건…….
‘풍경이 꽤 좋네, 영국도.’
참 바쁘게도 살았구나 싶었다.
전생에도 정신없이 살다가 국내 여행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번에도 그러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 본성 어디 안 간단 말이 있는가 보다.
자나 깨나 환자만 생각하는 나라니…….
참의사 김태평.
개인적으로 위키에 오로지 진실만 남게 된다면 소원이 없을 거 같다.
‘런던만 벗어나면 이쁘게 생겼구나.’
하여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이왕 이렇게 된 거 관광이나 하자 했더니 이 영국이란 나라도 퍽 볼거리가 있다 싶었다.
어떻게 보면 런던도 꽤 진귀한 구경거리가 있는 곳이긴 했다.
세상 어디에서 그런 비참한 거리와 화려하기 짝이 없는 거리가 공존하는 꼴을 보겠어.
조선이었으면 바로 죽창 들었을 거 같다.
거기나 여기나 도긴개긴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우리 조상들이 영국 놈들보단 나았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혐성국보다는 나아야지.
“자네도 다윈이 받았다는 치료를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렇게 한참을 풍경이나 보면서 잡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맞은편에 있던 리스턴이 내게 물어 왔다.
살짝 뜨끔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열심히 바깥을 쳐다보던데.”
“그렇게 보였군요. 제가 너무 집중했나 봅니다.”
“그…… 그래.”
당당하게 나가면 보통은 받아들여 주는 법이다.
특히 나처럼 뛰어난 업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참고하면 좋다.
원래 사람들은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이거든.
괜히 사기꾼들이 사전 작업으로 내가 얼마를 벌었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네, 내가 누구를 아네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대단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면 다음부터는 뭔 소리를 해도 다 믿어 준다.
“아무튼, 우리 다윈…… 가슴이 아프다고 했죠?”
“그래. 좋지 못한 사인이지. 가슴이 아프면 대개 일찍 죽으니까.”
우리 식으로 하면 흉통이 있다고 하면 된다.
흔히 응급실에서 빨리 진료받고 싶으면 들어갈 때 심장 부여잡으라고 하잖아?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물론 그게 진료 빨리 보려고 한 수작질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상당히 곤란해질 수 있다.
또 그 때문에 다른 진짜 급한 환자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권장하진 않는 바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응급실은 진료를 빨리 보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라 응급한 질환을 보기 위해 마련된 곳이니.
“설마 안 좋은 형태의 흉통은 아니겠죠?”
“흉통이 다 같은 거 아닌가?”
“바로 가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으니까요. 일단 가슴 안에 여러 장기가 있는데 다 하나로 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겠구만…… 하긴 배도 통증이 여러 개가 있지.”
리스턴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저러는지 너무 알 것 같아서 나도 입맛이 썼다.
-어? 아니네?
현재 우리 병원에서 수술로 치료 가능한 복부 장기 질환은 거의 맹장염, 즉 충수돌기염 하나로 수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놀랍게도 충수돌기염에 대한 치료 성공률은 95%를 훌쩍 넘고 있는데, 그 때문에 내 지침을 따르는 모든 외과 의사는 배를 열기 전에 기도부터 한다.
충수돌기염이어야 한다는 기도인데 이게 빗나가는 경우엔 성공률이 0에 가까워지기 때문이었다.
-어, 어쩌죠?
-어쩌긴 닫아 드려.
-그다음은요?
-다음? 다음은 없지…….
그래서 아닐 경우에는 이런 대화가 오가기 마련이었다.
물론 열기 전에 좌측 하복부를 눌러 보는 것으로 진단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될 확률은 절반이 안 되긴 하지만…….
말이 절반이지 러시안룰렛보다도 확률이 높은 거다.
뭐 원래 신체 검진만으로는 진단이 어려운 법이라지만 그렇게 자위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나야 정답을 알고 있는 만큼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라는 걸 아니까 좀 나은 데 반해 리스턴을 비롯한 순수 이 시대의 의사들은 환자들이 그렇게 죽을 때마다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근데 지금 다윈이 받고 있는 치료는 아마 심장이나 폐뿐만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인한 흉통에도 별 쓸모가 없을 거예요.”
“그게 핵심이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 치료를 시도하는 것과 아예 무용해 보이는 치료를 시도하는 건 다른 거야. 하지만…… 방금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라고 해서 방법이 있나 싶구만.”
충격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고 또 그래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의사가 되어 가지고 환자가 눈앞에서 죽는데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
물론 그때마다 너무 큰 충격을 받는 것도 문제긴 하다.
그런 사람은 보통 바이탈을 다루지 못하거든.
내가 아는 놈도 결국 포기하고 다른 과 갔는데, 지금은 웹소설 쓰더라고.
거기 주인공은 죄 내과니 외과니 바이탈과인 걸 보면 자기가 바이탈과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어지간히 큰 부채 의식을 갖고 있는 거 같다.
이리저리 기부도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나한테 기부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일단 생각을 해 봤죠, 제가.”
“그, 그래? 아직까지는 심장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해 봐서 자네도 뭐가 없는 줄 알았네.”
“하하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 김태평입니다, 김태평.”
“그래 병신이지. 빨리 말해 보게, 병신.”
요즘 들어 이 양반 점점 조선어 발음이 좋아져서 그런가 묘하게 기분 나쁘게 말할 때가 있다.
그나저나 나는 아까 말했던 것에 기초해서 입을 털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정론은 아예 떠들 생각이 없다.
여기서 무슨 협심증이니 심근경색이니 늑막염이니 뭐니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눈높이 교육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실을 왜곡해서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전문가로서 감히 말하는데 이건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얘네들 자존심 때문에 자기 전문 영역에서는 구라를 못 쳐요.
“일단 폐는 아닐 거예요.”
“어째서?”
“폐가 뭐 하는 장기입니까?”
“숨 쉬지. 아…… 아!”
폐가 숨을 쉬는 기관인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다행히 살아 있는 사람 가슴 열어보고 숨 쉴 때마다 오 폐가 들락날락하는구나 하는 실험을 해 본 건 아니다.
이 정도는 그냥 경험적으로 알았다.
가슴 찌르면 숨 못 쉬어서 죽는다는 것 정도는 뭐 수천 년 전 기록에도 있으니까.
“그래, 폐가 문제면 아픈 게 아니라 숨을 못 쉬는 게 주된 증상이겠구만!”
“그렇죠. 그리고 심장 쪽은…….”
“피가 안 통해야겠군.”
“그럼요.”
반드시 그런 건 당연히 아니다.
애초에 폐는 안쪽으로는 감각이 없어서 막에 염증이 생겨야 아프거든?
그래서 늑막염이니 뭐니 하는 것만 아픈 거다.
물론 폐렴이 아주 심해도 아플 수는 있는데 그 정도 되면 통증이 문제가 아니다.
21세기에도 중증 폐렴은 답이 없는데 지금 그런 거 얘기해서 뭐 하나?
‘심장도 똑같지.’
만약 다윈의 흉통이 심장 때문이다?
그럼 가야 된다.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내가 알기로 다윈…… 꽤 오래 살았다.
“근육통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통증일 가능성이 제일 커요. 그렇다면 지금 하는 치료가, 치료가 아닌 살인술이라고 봐야겠죠.”
“빨리 가 봐야겠구만.”
아마 괜찮을 거다.
그리고 원 역사에서도 이런 치료 받았을 거야.
근데 왜 가냐고?
돈이 많다잖아.
그리고 이번 기회에 흉통 치료에 대해서도 좀 건드려 보면 좋을 거 같다.
내가 이렇게 오직 환자만 생각한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