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4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46화(446/505)
446화 다윈 [2]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문이나 열고 말하지?”
그렇게 우리는 버밍엄을 지나 슈루즈베리에 위치한 다윈 집에 당도했다.
우리 마차가 꽤나 요란한 장식, 그러니까 리스턴칼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서 봐도 ‘아, 저놈들 왔구나’ 할 수밖에 없는데도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은 마당이었다.
심지어 우리 마차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지체도 있겠다, 재산도 있겠다…….
무엇보다 우리 다윈 치료비로 뭘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마차 두 대가 더 왔다.
“야, 문 안 열어?”
“저기 뭐 보이는 거 같은데?”
그런데도 아무도 없다.
세상에…….
대영제국의 도가 지옥 불에 떨어진 모양이다.
귀족 둘이 친히 행차했는데…….
그것도 삥을 뜯으러도 아니고 사람을 살리러 왔는데 이 모양이야?
“어 온다.”
“역시 칼을 뽑아야 오는구만.”
사실 집이 너무 커서 그럴 수도 있긴 하다.
철로 된 대문 안으로 쭉 정원이 있는데 그 정원이 흔히 말하는 정원보다 훨씬 컸다.
아무래도 런던 같은 대도시가 아니다 보니 땅값이 싸기도 한 모양인데 그런 걸 감안해도 이건…….
“돈이 진짜 많은가 보네.”
“이 정도면 나쁜 짓을 좀 하지 않았겠어요?”
“그렇지. 원래 세상이 그런 법이야. 깨끗하게만 살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명확해지지. 지금은 보게나.”
“저는 우리가 깨끗하게 사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
“네.”
심지어 정원에 식물원도 있다.
억측이 아니라 유리로 된 온실이 있어.
저 정도 사치는 나나 리스턴조차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제이미 경이나 우리 왕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아무튼, 리스턴이 또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교정해 주는 사이 안에서 집사인지 하인인지 모를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카, 칼은…… 자르면 안 됩니다!”
이유야 명확했다.
리스턴이 자신의 칼로 대문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그냥 병신 같은 놈이 그러고 있으면 ‘저 새끼 뭐 해?’ 하고 내쫓으면 된다.
일단 그럭저럭 만든 칼로 철제 대문을 어떻게 하는 건 절대 무리니까.
하지만 리스턴이라면?
소드 마스터가 휘두르는 검은 대문이 아니라 집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리고 리스턴과 나는 의사로서의 명성보다는 이쪽으로의 명성이 훨씬 드높은 편이다.
“소…… 소드 마스터 리스턴 경 맞으시죠.”
“그렇네.”
“이쪽은 그럼…… 피영시인…… 경…….”
“그래 병신 김태평이지.”
원래 자극적인 소재가 더 잘 먹혀서 그렇다.
의사가 사람 살렸다, 이건 별 재미가 없지 않나.
실제로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그걸 뉴스에 싣는 게 무슨 유익이 있겠나.
그런 신문사가 있다면 망한다, 바로.
하지만 의사가 저주를 내리고 칼로 철을 벤다?
와…… 뉴스에는 그런 게 나야 한다.
“일단, 안으로…….”
“그래.”
“도련님밖에 안 계시는데, 도련님을 보러 오신 건가요?”
“도련님이 다윈인가?”
“네.”
“그럼 맞네.”
“네에…….”
하여간, 우리는 하인 덕분에 문을 자르고 들어가는 대신 제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향할 수 있었다.
밖에서 볼 때도 거대하다고 생각했는데 안에서 보니 더 거대함이 느껴졌다.
“저건 설마 온실인가?”
“아, 네. 도련님 취미가 식물 보기라.”
“취미가 그래서 온실을 지었어?”
“네. 하하. 진심이셔서.”
이놈 봐라, 싶었다.
진짜 취미 때문에 온실을 짓다니.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이유 모를 분노가 일었을 거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유를 안다.
뭔가…….
내가 봤을 때 정당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 부자를 보면 화가 나잖아?
‘후후.’
‘좋구만.’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나도 부자라서 그렇기도 하고, 또 상대가 부자라면 뜯어먹을 때 죄책감이 덜해서 그렇다.
리스턴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흉악한 미소를 교환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저택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안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의사로 오신 거죠?”
“그렇지. 설마하니 사람을 죽이러 왔겠나?”
집사인 것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그런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우리에게 물었다.
리스턴은 가끔 사람을 죽이러 다닐 때가 있는 사람이니만큼 좀 찔리는지 굳이 자세하게 답했다.
집사는 그런 리스턴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듣기 싫은 말은 무시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네에’ 하더니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방을 내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도련님께서 치료 중이라.”
“아마 치료가 아닐 텐데.”
“네?”
“살인일세, 그런 짓은. 당장 그만두게 해야 해.”
“그…… 아무리 그러셔도…… 일단 도련님이 원해서 받는 치료라서요.”
“그럼 우리더러 여기서 그 말 같지도 않은 짓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네? 방금 오셨으니 여독도 푸시고…… 며칠 쉬시죠. 저기 밖에 있는 사람들도 다 치료 대기 중입니다.”
치료 대기라.
나는 잠깐 헷갈렸다.
혹 다윈이 집에 개원이라도 한 건가 싶어서였다.
의과 대학 졸업도 안 한 놈이 그게 되겠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시대 의과 대학은 졸업에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유념하기를 바란다.
‘카사노바도 의사 노릇하고 그랬던 게 유럽이긴 해.’
어디서 자격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 의사요’ 하고 치료했는데 그럴싸하면 의사가 되는 것이고 보기에 좀 그러면 죽을 수 있는 게 유럽이다, 이 말이다.
카사노바 그거 엄청 옛날 사람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18세기 사람이다.
돌아가신 지 40년도 안 됐다.
물론 그때보다는 좀 체계가 잡히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윈이 개원하는 걸 법적으로 잡을 수는 없다.
“아아, 그런 뜻이 아니고. 다 의원들입니다. 근데 치료라는 게…… 그렇더군요. 아무리 좋은 치료라 해도 겹치면 꽤 힘들게 되는 것이더라고요.”
“아…… 다 의사라고?”
“의사는 아니고요. 치료사가 더 많습니다. 아무튼, 전에 좀 고생을 하신 뒤로는 오전, 오후 이렇게 한 번씩만 치료를 시도합니다. 그중 잘 듣는 게 있으면 계속하고요.”
“그럼 그냥 이렇게 기다리라고?”
“돈은 드립니다.”
“얼마.”
“이 정도……?”
“하하.”
확실히 부잣집이라 그런지 통이 크긴 하다.
일반적으로 환자 하나 보고 주는 돈에 비하면 많이 준다, 이 말이다.
하루에 환자 하나 보는 게 말이 되나 싶을 수도 있는데, 의외로 아직까지도 영국의 소도시에서는 그렇게 생계를 이어 나가는 의사들이 많다.
환자가 없어서는 절대 아니다.
생활 습관부터 노동 환경까지 다 최악인데 안 아프고 버틸 수 있겠나?
그보다는 지금 의사 실력으로는 운이 좋아야 하나라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부리다가 하루에 몇 명 죽여 봐, 그럼 자기도 죽는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집사로서는 이 돈에 불만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에 우선 놀랐을 거다.
하지만 우린 그런 일반적인 의사가 아니지 않나.
실제로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심지어 그걸 남들도 꽤 많이 알아서 큰돈을 벌고 있기도 하다.
뭐, 당장 며칠 병원 비운다고 빵구가 날 정도로 수술 환자가 많진 않긴 하다.
대부분의 돈은 당뇨나 티에피영탕 같은 걸로 충당하고 있으니까.
“다른 돌팔이랑 우리가 같다고 생각하나? 어?”
“어어.”
“좋게 좋게 하니까 이 새끼들, 이거.”
“어…… 억.”
아무튼, 우리는 여기 사람 살리러 온 거다.
대가로 꽤 많이 받을 생각이고, 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생각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간을 끌 수가 없다, 이 말이다.
이심전심이라고 리스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일단 집사를 제압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양손으로 어깨를 누르자 상대가 바닥에 엎드리게 되었다.
다른 하인이 펄쩍 뛰었지만 걔는 내가 처리했다.
“죽고 싶나?”
“히익.”
이것도 쉬운 일이었다.
그냥 그럴싸한 표정 지으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방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의원들을 지나쳤다.
당연히 의원들도 좋게 보진 않았다.
순서가 있는데 무시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런던이었으면 좋게 보건 말건 아무 상관 없을 터였다.
눈 한번 마주치면 다 쫄 거잖아?
하지만 이들은 좀 달랐다.
“니들이 뭔데.”
“앙?”
“뭐야, 이 새끼.”
야생의 치료사들이지 않은가.
죽음?
이들보다 죽음과 가까이 지내는 이들이 또 있을까?
홀로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면서 말도 안 되는 치료법으로 연명하는 놈들이 바로 이들이다.
말이 치료지 사실상 살해에 가까운 짓을 하고 있는데도 살아남았다는 건 그 자체로 강하다는 뜻이었다.
스르릉.
벌써 사혈이 주업이 놈들은 날카로운 꼬챙이나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일부가 아니라 다수가 그랬다.
원래 이 시대에는 어디 아프다고 하면 피 빼는 게 정석이거든.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지직.
19세기는 놀랍게도 과학의 시대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얘들 스스로 하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전기 같은 것들도 나왔는데, 원래 이렇게 새로운 것이 나오면 한 번쯤 자기 몸에 써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전기의자니 전기 벨트니 하는 것들이 런던 밖에서는 꽤 유행한다고 들었는데 여기가 그 런던 밖이었다.
“형님?”
“앞에 한둘만 베면 돼.”
무법천지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지경에서는 역시 리스턴만 한 사람이 없었다.
“어…….”
그가 칼을 뽑자 스산한 기운이 사방으로 뻗쳤다.
동시에 리스턴과 눈이 마주친 두어 명의 의원, 그러니까 사혈을 전문으로 하는 칼 든 깡패 같은 놈들이 쓰러졌다.
칼에 베여서는 아니었다.
‘심검……?’
마음으로 벴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살기에 쓰러진 것이었다.
그게 신기해서 ‘오!’ 하고 있었는데, 전기 뱀장어를 꺼내던 놈이 소리쳤다.
“서, 설마…… 소드 마스터 리스턴과 피영시인……?”
“저, 저주다!”
“곰도 베는 놈이 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또 손을 내밀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남들이 볼 때는 저주로 앞에 놈들을 쓰러뜨린 거 같을 거다, 이 말이었다.
거참…….
“역시 자네야.”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아무것도 안 한 건 나지.”
“아니…….”
‘마음으로 벤 거 아냐?’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 틈에 위로 향하지 않으면 저 깡패 같은 놈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일단은 움직였다.
1층도 거대했지만 2층도 거대했다.
원래 같으면 다윈을 찾는 데 한참 걸렸을 거다.
“으아아!”
하지만 이 시대의 치료는 주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2층에 도달하는 즉시 다윈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비명이 들려오는 곳으로 다가가니 철제로 된 거대한 벨트를 찬 다윈이 있었다.
입에는 재갈을 물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의사인지 고문관인지 모를 놈이 레버를 당길 때마다 전기가 벨트를 통해 흐르는 모양이었다.
“으, 으으으으!”
참 살해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