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47)
검은 머리 영국 의사-447화(447/505)
447화 다윈 [3]
“끄으으으으!”
남영동이 생각난다.
그 뭐더라?
1987년?
영화에서 보면 민주투사들을 잡아다가 의자에 앉혀 놓고 전기 흘리잖아.
다윈이 딱 그걸 당하고 있었다.
“후. 이제 조금만 참으세요.”
“그, 그러지.”
누가 보면 뭐 아주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진짜로 투사인 줄 알겠어.
혹시 고향이 스코틀랜든가?
아니면 아일랜드?
그럼 인정이다.
우리 자랑스러운 대영제국은 우선 가까운 곳부터 다 조지고 세계 경영에 들어가신 아주 대단한 나라이거든.
‘인종만으로 문명의 척도를 가늠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아일랜드 때문이잖아?’
21세기에도 아일랜드와 영국은 사이가 무척 나쁘다.
영국은 브렉시트 하는데 아일랜드는 ‘어 너네 잘 가 우리는 남을게’ 했던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야.
둘이 왜 사이가 나쁠까.
역사에서 나쁜 놈을 짚을 때 잘 모르겠으면 영국을 짚으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프랑스가 보기에 있다면 들여다보긴 해야 한다.
얘네끼리도 사이가 나쁘긴 한데 나쁜 짓을 할 때만큼은 형제보다 더 친밀해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특히 북아프리카 쿠데타 벨트는 프랑스의 탓이지.’
어찌 보면 영국보다 더 나쁘다.
대영제국은 대인배스럽게 선봉에 서서 욕먹고 있지만, 프랑스는 영국 뒤에 숨어 있잖아?
하긴, 그게 특기긴 하다.
2차 세계 대전 때도 ‘우리는 이 아름다운 도시 파리가 파괴되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라는 진짜…… 미친 소리를 하면서 다른 나라도 아니고 나치 독일에 홀랑 항복했잖아.
항복만 했나?
비시 프랑스라고 친나치 정권이 들어서서 나치가 아닌 연합군하고 싸웠다.
진짜 신기한 게 이런 역사는 영화나 드라마에 거의 안 나오고 맨 레지스탕스만 나오는데…….
“끄으으으으!”
“자…… 오늘 치료는 끝났습니다. 후우.”
“고생…… 고생 많았……어?”
“아니, 당신들 누구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다윈과 의사인지 도살자인지 모를 놈이 드디어 우릴 알아보았다.
누가 누구에게 고생 많았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만 들어서 가만히 있으려니 리스턴이 나섰다.
사실 그럴 줄 알고 가만히 있던 거기도 하다.
철컹.
물론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세상에 아직 다윈이 풀지도 않았는데 그걸 베어 버릴 줄이야?
“어…….”
“이…….”
“이런 흉악한 물건은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지.”
둘 다 할 말을 잃고 어버버하고 있었다.
그사이 리스턴은 자신이 단칼에 베어 버린, 뭐라고 불러야 할까, 전기 벨트를 창밖으로 내던졌다.
딱히 창문을 먼저 여는 섬세함은 없었기 때문에 와장창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뒤이어 반토막 났던 벨트가 박살 나는 소리도 났다.
아마 다윈 이…… 새끼라고 하자.
이 새끼도 현실감이 없을 거다.
나 같아도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웬 도적놈이 들어와서 그거 잘라 버리고 밖으로 던지면 꿈인가 싶을 거야.
“어어?”
특히 방금 전까지 전기로 튀겨지고 있던 다윈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몽롱할 거야.
“다, 당신!”
반대로 전기로 다른 사람 튀기고 있던 놈이야 정신이 명료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물론 하는 행동 자체는 다윈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긴 했다.
리스턴을 상대로 움찔거릴 수 있는 놈은 거의 없으니까.
몇몇 야생의 치료사들은 어느 정도 되긴 하지만, 그것도 단칼로 쇳덩이를 잘라 내는 걸 보기 전까지의 일이다.
“그 검…… 설마!”
“리스턴이다.”
“사, 살려 주십쇼! 잘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무릎까지 꿇는 건 좀 드문 일이었다.
대체 뭘 했길래 저럴까?
“아…… 너, 설마? 도살자 해리 제자야?”
“그아아!”
확실히 나보다는 리스턴이 훨씬 눈썰미가 좋다.
그러니 수술도 쭉쭉 배울 수 있는 걸 텐데, 상대에게는 딱히 행복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녀석은 리스턴이 기어코 자신을 알아보자마자 그대로 뒤로 달려서 깨진 창문을 통해 도주했다.
“미친.”
저택이니만큼 층고가 꽤 높았기에, 나는 녀석이 필시 다쳤을 거라 생각하고 즉시 창가로 달려갔다.
허나 그것은 내 오산이었다.
나는 아직도 19세기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저놈은 야생의 치료사답게 미리 도주할 수 있도록 짚이 잔뜩 실린 짐마차를 대기시키고 있었더랬다.
거기에 실린 채 눈에서 멀어져 가는 녀석을 보면서 리스턴도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때 다 죽였어야 했어.”
“그…….”
“자네가 말린 탓이야. 또 어디 가서 사람 심장을 튀길 텐데, 대체 이 책임을 어찌 질 텐가.”
“이럴 줄은 몰랐죠…….”
“사람 불알 자르던 놈의 제자가 그럼 제대로 된 치료를 하겠어?”
“아니, 치료를 안 하게 될 줄 알았죠. 스승이 목매달려 죽었는데.”
우리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로 서로를 탓하다 문득 발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다윈이 몰래 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딜.”
“힉.”
내가 얘기 안 했던 거 같은데, 리스턴은 사실 축지법도 쓴다.
실제로 쓴다는 건 아니고 각력이 워낙 좋아서 그런가 한 번 뛰면 아무 준비 동작 없이도 몇 미터씩 팍팍 뛰어 버린다.
다윈이야 그런 사실을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한 손에 잡혀 버렸다.
“어쭈.”
“으읏.”
다윈도 나름 5년간의 항해에 감히 도전했고 또 살아왔을 만큼이나 강인한 영국인이었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아무 의미 없던 반항은 바로 진압되었다.
그렇게 몸이 들린 다윈은 즉시 취조의 대상이 되었다.
입을 터는 건 언제나 그렇듯 내 몫이었다.
“이 치료를 가슴이 아파서 받는 게 맞나?”
의사가 되어 가지고 환자를 책망하듯 묻는 건 사실 하면 안 될 짓이다.
하지만 환자도 환자 나름이긴 하다.
이런 짓을 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해서 하지 말란 말도 못 한 짓을 하는 사람들은 좀 혼나도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났습니까?”
“아니, 그래서 가슴이 아파서 받는 게 맞냐고.”
“그렇습니다.”
“흐으음…….”
나는 아까 얘 허리가 휘는 걸 봤다.
전기가 워낙에 강하게 들어가서 그런 건데…….
과학 기술의 발전이 참 무섭긴 하다.
런던에서 내가 봤던 전기 고문 장치보다 전압이 훨씬 올라간 느낌이야.
‘심장이…… 더욱이 통증이 있을 정도로 망가진 심장이 이런 걸 견딜 수 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미리 가져온 청진기를 꺼냈다.
그러자 리스턴이 내가 잘 들을 수 있게 다윈의 옷을 찢었다.
“어!”
좀 놀라긴 했지만 뭐 어쩌겠나.
대화만 눈높이를 맞춰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치료도 그렇다.
어지간히 충격을 주지 않으면 진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말이다.
“흐음…….”
아무튼, 나는 다윈의 심장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맨 귀로 듣는 것보다는 훨씬 잘 들린다.
나름 우리 화학자 아저씨도 그렇고 그 외의 내 돈을 받고 일하고 있는 놈들이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부정맥은 없어 보여. 그래서 저렇게 전기를 흘렸는데도 버티는 거야. 음…….’
심장은 전기 신호에 따라 뛴다.
병원에 가거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심장 박동에 따라 이상한 거 그려지고 그러잖아?
그게 심장의 전기 신호를 나타내는 건데, 심전도라고 아마 들어 본 적 있을 거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전기가 잘못 통하면 심장 마비로 간다.
당연하게도 이미 망가진 심장이라면 더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번 심근경색이 세게 왔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부정맥이라는 부작용에 시달리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
“혹시 가슴 안 아픈 거 아니야?”
“아픈데요? 환자가 아프다는데…… 그리고 대체 여긴 왜 왔습니까.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아는 사람인데 외면할 수는 없어서. 그리고 우리가 최고 명의들인데 우리를 왜 배제하지?”
“의사…… 의대 나온 놈들은 미친놈들 아닙니까. 지금도 보세요. 가슴 아프다는 사람의 옷을 찢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뭐? 안 아픈거 아니냐고?”
막무가내로 전기 튀기는데 버틴다면 심장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와중에 좀 기분 나쁜 말이 나오긴 했는데, 19세기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하잖아?
의사가 사람 잡는 시대에 의대를 나올 생각을 했다는 거부터가 좀 이상한 놈들이긴 할 거다.
낭만에 미쳤거나 합법적으로 사람을 째 보고 싶다거나 뭐 그런 거 아닐까?
아, 나는 빼고다.
난 참의사야.
“들어 봐요. 가슴이 어떻게 아파요.”
“가슴 아픈 게 아픈 거지 뭔…….”
“아니, 이게 중요하다니까? 어떻게 아프냐고. 여기가 뻐근한가? 아니면 팔이 저리면서 아픈가?”
“으, 으음…….”
지금도 봐라.
질문이 그럴싸하니까 여전히 옷 찢긴 채 리스턴에게 붙들려서 대롱대롱하는 주제에 진지해졌잖아.
“가슴이…… 음.”
“잘 생각해 봐요. 어떻게 아팠냐고.”
“여기가 약간…… 이렇게 조각나는 듯이…….”
“조각이 나? 칼로 쑤시는 느낌?”
“칼로 쑤시는 게 어떤 건지? 힉.”
리스턴은 교육 정신이 미쳐 버린 사람이다 보니 바로 알려 주기 위해 다시 칼을 빼 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리스턴을 말렸다.
아닌 게 아니라 리스턴칼로 가슴을 쑤시면 죽거든.
“대강 이런 느낌?”
해서 대신 나는 손톱을 세우고 그걸로 가슴을 찔렀다.
옷이 없다 보니 무척 아플 터였다.
“으아!”
“말을 해요. 이런 느낌?”
“으아아아!”
“뭐 해?”
“아니, 아닙니다! 이런 거 아니에요!”
“그래, 그렇구나. 흐음…… 이런지 얼마나 됐는데요?”
혹 감별진단에 도움이 될까 해서 찔러 봤는데 별로 그렇진 않았다.
그런 얘기 하면 싫어할 테니 솔직하게 털어놓는 대신 말을 돌렸다.
내가 이렇게 환자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다.
“어…… 한 두어 달?”
“두어 달? 여기 오자마자 그랬다는 거 아니야.”
“네? 아, 네.”
“바다에서는 괜찮았고?”
“바다에서는…… 괜찮았어요. 그래서 다시 배를 탈까도 싶은데…….”
“너 떨고 있는데.”
몸은 솔직한 모양이다.
하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부잣집 도련님이 배를 또 타는 게 말이 되나 싶다.
아마 말은 안 해도 못 볼 꼴 많이 봤을 거다.
일단 사람이 죽어 나가고…….
힘드니까 싸우고…….
“네, 그건 안 될 거 같아서 치료법을 찾고 있는데 이렇게 방해를 하시니…….”
“그래서 좋아졌나?”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전기 맞을 땐 확실히 통증이 없어요.”
“그야 당연하지.”
“네? 억.”
“지금 가슴 아팠어?”
“아, 아뇨. 여기가.”
“그래. 원래 그런 거야. 사람은 보다 심한 통증을 우선적으로 느끼게 되어 있다고.”
“아…….”
나는 다윈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머리가 좋고 나름 의과 대학도 다녀 본 사람이라 그런가 이해력이 좋았다.
두 번 때릴 일 없이 딱딱 이해하고 넘어가는 중이었다.
“한두 달이나 됐는데 아직 살아 있다. 음…… 심장 문제는 역시 아닐 거 같은데. 폐도 아니고.”
“아니, 그럼 왜 아픈 거지? 열어 볼까?”
옆에서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는 리스턴을 무시한 채,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