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5)
검은 머리 영국 의사-45화(45/505)
45화 수액 [1]
다그닥! 다그닥!
마차는 천천히 그러나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는 빠르게 달려 의과 대학에 다시 도착했다.
말이 의과 대학이지 그냥 병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딱히 뭐…….
대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설비가 없거든, 여기는.
“자, 자. 내립시다.”
“어, 어.”
“아직 살아 계신 거야?”
하여간에 나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쓸데없는 걸 묻는 조지프에게는 한마디 보태기도 했다.
“인마, 내가 보고 있었잖아. 아직 살아 있어.”
“그, 그래? 아니…… 이게.”
“손목에서는 원래 맥이 약해.”
“그래서 그…… 이상한 데 손을 대고 있는 거야?”
이상한 곳?
이 미친놈이 뭔 소리를 하는 건가?
하고 내 손을 내려다보니, 뭘 모르는 놈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만한 지점에 손이 가 있기는 했다.
그러니까 환자의 사타구니에 내가 손을 대고 있다는 얘기였다.
다 이유가 있었다.
“의사한테 이상한 곳이 어딨어, 다 사람 몸이지.”
“근데 거기가 더…… 잘 느껴지는 거야?”
“응. 잘 느껴져. 그…….”
뭐라고 말을 하는지는 또 다른 얘기였다.
21세기에서라면 허벅지 동맥이 손목 옆을 지나는 노동맥보다 더 잘 느껴지는 게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여긴 그렇지가 않아서 그랬다.
“그…… 내 취미 중 하나가 내 몸에서 맥 짚는 거야. 응.”
“응……? 그런 이상한 취미가 있었어? 왜 내가 몰랐지?”
“남들 앞에서 홀랑 벗고 하기가 좀 그래서.”
“아.”
둘러대야 하는데 당장 떠오르는 핑계가 참으로 옹색했다.
아니, 옹색하기만 한 게 아니라 좀 이상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조지프와 앨프리드도 내게서 살짝 몸을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환자가 크게 흔들렸다.
‘외상 환자……는 맞지만 뼈가 다쳤을 가능성은 없으니 다행이긴 한데.’
환자를 옮기면서 저렇게 휘리릭 움직이다니.
진짜 기본도 안 된 놈들이었다.
의무병들도 응? 들것으로 올린 다음에야 ‘살려야 한다!’라고 외치면서 달린다고…….
“후…… 일단 강의실로 오기는 왔는데.”
회상은 그만두었다.
그래 봐야 현실만 비참해질 뿐,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다.
지금도 보라.
별 좋을 것도 없는 병실이지만, 의사가 아니라서 못 들어가니까 딱 서러워지잖아.
우리가 허락 없이 막 들어가도 되는 곳은 강의실, 독서실 그리고 해부 실습실이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병실과 비슷한 시설을 갖춘 곳은 해부 실습실이긴 한데…….
‘안 돼…… 그건 사람한테 하면 안 될 짓이야.’
거기에 이 환자를 올려 두는 건 좀 그랬다.
일단 죽을 확률이 너무 큰데, 미리 갖다 놓는 느낌이지 않나?
다행히 조지프나 앨프리드도 근본이 악한 놈들은 아니다 보니 강의실로 옮기는 데 동의했다.
“어, 어어!”
“저 미친놈들이 시신 들고 왔다!”
강의실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콜린 일행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들고 온 시신 아니, 아니! 환자는 어떻게 봐도 시신 그 자체였다.
흙이 잔뜩 묻은 데다가 신발도 없고, 손은 묶였고…….
그나마 느슨하게 묶어 놔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발버둥 쳐도 별 소용이 없을 뻔했다.
“아냐, 살아 계셔!”
“조선놈이 마법을 쓴다!”
와.
저 개새끼가 내가 제일 우려하는 말을 하네?
“이 새끼가, 미쳤나.”
“윽.”
다행한 것은 우리에게 조지프가 있다는 것이었다.
콜린도 체격이 뭐 아주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조지프에 비하면 그냥 꼬마 그 자체였다.
입을 틀어막으니 아예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사이에 앨프리드가 입을 열었다.
“저 새끼들…… 지들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다시 묻을 수도 있어.”
“네?”
설마 그러려고.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럼……?”
“일단 입을 열게 해야지. 산 사람은 말을 하잖아.”
“그…… 혈압이 다시 떨어지는 것 같은데…….”
“혈압?”
“아, 그. 맥이 약해진다고요.”
“아아.”
혈압의 개념이 완전히 잡힌 게 대체 언제일까.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는데, 너무 불길해서 고개를 털어 버렸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1945년에 뇌출혈로 사망.
이거 내가 어디서 봤더라.
아, 그래 맞아.
암울한 병원 생활에 한 줄기 빛이었던 갓작가 명원의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서 봤지.
‘고증을 지켰을 거야. 그렇다면…… 혈압은…….’
명색이 대통령인데 의사 검진 한번 안 받았을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의사가 돌팔이였다는 점이었다.
혈압이 180을 넘게 찍는데도 노상 괜찮다는 말만 했다.
심지어 루즈벨트는 고혈압으로 인한 ‘증상’을 호소했는데도 그랬다.
고혈압으로 인한 증상이라니.
조용한 살인자라는 말이 다 무색하다.
‘하여간 시바…… 혈압 개념이 없다는 거지?’
‘혈압 개념이 없다는 게 뭐?’ 싶을 수도 있었다.
의료진이 아니거나 의료진이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됐다.
하지만 의사는…… 그러면 아주 곤란했다.
기본적인 순환에 대한 개념도 없다는 거니까.
현대 의학에서 응급 질환의 원칙이 뭔가?
A, B, C.
A는 Airway 즉 기도를 뜻하고, B는 Breath 즉 호흡, C는 Circulation 즉 순환을 말했다.
“이 사람 이렇게 된 게…… 피를 빼서 그런 거겠죠?”
“응? 피를 빼서?”
그러니 지금 당장 피를 주네 물을 주네 했다가는 너무 수상쩍어 보인다는 얘기가 되었다.
해서 방혈로 접근했다.
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피 빼는 데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그렇게 피 뽑다가 빈혈이 오거나 심지어는 죽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아니지.
들은 게 아니지.
지금 눈앞에 죽은 사람 보고 있잖아.
“피를 뺀다고 사람이…….”
“아니, 피는 생명이잖아요, 생명. 그게 없어지면 죽죠.”
“하지만 이 사람은 치료를 위해 뺐잖아.”
“그…….”
왜 방혈, 그러니까 피 뽑는 데 환장을 할까.
이게 다 히포크라테스 때문이었다.
그가 활동했던 시대를 감안하면 뭐, 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천재임은 틀림없었다.
편두통에 관한 묘사만 해도, 히포크라테스가 묘사한 증상 양상에서 우리가 더할 것이 많지 않을 지경이니까.
하지만 4체액설은 진짜…… 이건 어떻게 쉴드 칠 방법이 없다.
뭐든지 피가 많아서 또는 모자라서 아픈 거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그리고 그걸 지금까지 배우고 있으니 자꾸 피만 뽑잖아.
“근데 그러다 쓰러졌잖아요…… 핏기도 없고. 이거 딱 피가 부족한 사람 몰골 아닙니까?”
“머리가 아파서 그렇게 된 거 아닐까? 여전히 머리에 피가 많은 거지, 응.”
오호.
이것이 살의인가.
나는 앨프리드를 보며 부들거리다가,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이 인간은 야만의 시대에서 태어나 아직 개화되지 못했다.
야만.
단지 앨프리드 하나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었다.
“일단 환자에게 물어보죠.”
“뭘? 의사는 우리야. 병에 대해 제일 잘 아는 건 우리라고.”
아니, 아니라니까?
어, 이제 알았네.
어른들이 의사 말 드럽게 안 듣고 어? 자기 몸은 잘 안다고 하는 게 다 이런 새끼들 때문이네.
돌팔이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런 인식이 생긴 거야.
“후우.”
나는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환자분, 어지럽지 않아요?”
“어…… 네. 너무…….”
환자는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진짜 간신히 의식을 부여잡고 있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피를 그렇게 냈는데 멀쩡하면 이미 괴물이지, 그게 사람인가.
“심장이 두근거리진 않고요?”
“너무 두근거립니다…… 미쳐 버릴…… 으.”
하여간 애써 답하는 환자에게 보탬이 되고자, 나는 앨프리드를 돌아보았다.
“이거 빈혈이랑 증상이 같잖아요.”
“빈혈?”
“아니, 그. 어, 옳지. 밥 못 먹고 고생하면 사람이 이러지 않습니까? 이게 뭐가 과해서 생기는 증상 같아요?”
“아…… 모자라서……? 그럼 치료가 과했던 건가?”
치료라니!
그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이 무엄한 놈.
“그렇죠. 닥터 제멜의 의욕이 너무 심했던 거죠.”
“그렇군. 그럼 어쩐다? 이걸 어떻게 다시 채워?”
“피가 모자라게 되었으니…….”
딴생각을 하면서도 웃으면 말할 수 있는 사나이, 그것이 나였다.
하여간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승부수를 띄울 시점이랄까.
피.
이게 모자라면……?
수혈을 해야 되지 않겠니?
놀랍게도 21세기에서도 여전히 피가 최고의 수액이었거든.
지금 이 시점에서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피를…… 줄 수는 없잖아.”
“네?”
헌데 돌아오는 답이 심상치 않았다.
줄 수 없다니?
물론 나는 과학자이니만큼, 부리나케 머리를 굴렸다.
수혈이 불가한 상황이라고 하니 또 여러 개가 떠오르기도 했다.
일단 피를 어찌 보관할 것인가.
이 시대에는 불가할 터였다.
왜냐.
사실 그게 쉬운 게 아니거든.
“교황청에서 금했어.”
당연히 그런 과학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금했단다.
“왜…… 왜요?”
감히 교황청의 결정에 의문을 표하다니.
이 불경한 자식.
십자가에 매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구는 돈다 이후로 어느 정도 과학자의 의문은 인정을 받게 된 지 오래였다.
게다가 지금은 조지프에 의해 콜린의 난도 진압되었다.
환자가 말하는 것을 봤으니 시신 도둑질의 누명도 씌울 수 없을 터였다.
하여간 그렇게 주변이 깨끗한 상황에서 물으니, 앨프리드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 예전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던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모른다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 그게 선배였다.
하긴 부끄러워할 이유도 딱히 없기는 했다.
아무도 모를 텐데 뭘.
“하여간 피는 줄 수 없다, 이 말이죠?”
“응. 뭔가 저주를 받는 건지…… 하여간 안 돼. 사람이 죽는다고 들었어.”
그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일단 지금 시점에서는 뭐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뭘 줘야 할까.
뭘 주긴 뭘 줘.
물이라도 줘야지.
“그럼…… 물 끓입시다.”
“응?”
“물을?”
난을 진압하고 온 조지프가 물어왔다.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서였다.
순환의 개념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았다면 볼륨이 부족해졌으니 채워 준다는 생각 정도는 어렵지 않게 떠올렸을 텐데.
“응. 피를 못 주니까 물이라도 주자. 근데 그냥 주기는 좀 그렇잖아.”
“끓는 물을 넣자고?”
“아니, 아니.”
미친놈이.
참신한 고문을 떠올리네.
혈관에 끓는 물이라니…….
와…… 고대인들의 상상력이 모자라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시벌 진짜 고통스럽게 여럿 보낼 뻔했다.
“식혀서 줘야지.”
“그럼 뭐 하러 끓여?”
“그…….”
“그래, 조지프 말이 맞네. 이걸 뭐 하러 끓여?”
조지프와 앨프리드는 나를 보며, 약간 멍청이 보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복장 터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물에도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이걸…….
“체, 체온에 맞춰서 줘야 하는데, 그렇게 딱 맞춰서 끓일 수 있어?”
“식힐 수는 있고?”
해서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욕 나오는 상황이었다.
“시발 그냥 끓이라면 끓여.”
“어?”
아니, 욕이 나왔다.
“시발놈아 그냥 끓이라고!”
“어, 어어. 알았어.”
오.
이게 되네?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