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51)
검은 머리 영국 의사-451화(451/505)
451화 심장 수술 [2]
21세기에서도 싸움은 곧잘 일어나곤 했다.
특히 학교 다닐 때는 뭐…….
나 같은 사람도 몇 번인가 싸운 적이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법에 의해 또 다치면 나만 손해란 생각에 주먹다짐조차 해 본 적이 없지만, 인간의 본성 안에는 아무래도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별히 내가 성악설을 지지한다기보다는 현대 대한민국보다 훨씬 제약이 덜한 이곳 런던을 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될 터였다.
“여기! 제발 좀!”
진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나는데, 문제는 주먹 다툼으로만 끝나는 법이 잘 없다는 점이다.
술집이면 들고 있던 잔이 일단 흉기가 된다.
잔이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리잔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 걸로도 사람을 치면 물론 사고가 날 수 있지만 여긴 납이나 철로 만든 잔이 대부분이다 보니 머리 같은 데 잘못 맞으면 한 방에 잘못되곤 한다.
“비켜, 비켜!”
“어어…… 리스턴과 평이다!”
“알아봤으면 비켜라, 이놈들.”
“사, 살았다! 이제 살았어!”
하지만 보통은 때리는 쪽도 맞는 쪽도 술에 취해 있다 보니 생각보다 머리를 딱 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하루 이틀 싸움이 나는 게 아니다 보니 보통 술집 주인들이나 종업원, 심지어 손님들까지 말리는 데 도가 텄다.
정확히 말하면 지켜보다가 누구 하나 죽을 거 같은 각이 보이면 말리는 데 선수라고 보면 된다.
보통은 주먹이 날아가자마자 환호성이 터지는 것이 우리 자랑스러운 런던의 술집 문화거든.
“이건…….”
“저 새끼가 찔렀어요!”
그 정도는 사실 나도 뭐 자랑스러울 것까지는 없어도 건전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에서도 석전이라고 스트레스 쌓이거나 갈등이 폭발하기 전에 주기적으로 돌 던지면서 놀고 그랬잖아.
마냥 놀이라고만 하기엔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던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둔기는 좀 봐줄 만하잖아?
하지만 이 시대에는 뾰족한 걸 몸에 품고 다니는 놈들이 제법 있다.
그리고 그걸 단순 호신용이나 장식용이 아니라 실전용으로 사용하는 놈들도 꽤 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사람을 찔러?”
아직 경찰은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들 정도로 소란스러운데도 그렇다.
뭐…….
런던 경찰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사람 하나 찔린 거 가지고 호들갑 떠는 걸로 보이긴 할 거 같다.
게다가 지금은 범인이 특정되어 있잖아?
막말로 경찰이 사람 살릴 것도 아닌데 나쁜 놈만 잡으면 만사 오케이일 터였다.
“억.”
심지어 우리 병원엔 리스턴이라는 거한이 상주 중이다.
지금도 그랬는데 거의 항상 우리 형님이 범인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편이다.
“형. 그렇게 패면 쟤도 치료해야 돼요.”
“난 안 찔렀는데?”
“형은 차라리 찌르는 게 날걸요.”
가끔 좀 과하게 해결하는 바람에 환자가 원 플러스 원이 될 때도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경찰이 형님을 잡아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쁜 놈 잡다가 생기는 불상사에 대해서는 경찰뿐 아니라 법도 시민도 눈을 감아 주기에 그렇다.
아무튼, 리스턴 형님에 의해 뻗어 버린 환자 아니 범인은 대기 중이던 우리 제자들이 응급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저 사람이야 뭐 아프긴 해도 아직 어디 부러질 정도로 맞은 건 아니기에 우리는 일단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아오…… 술 냄새.’
술…….
의사들이 괜히 줄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 말을 떳떳하게 하기엔 의사들도 술을 꽤 많이 먹긴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먹는 건 좀 그렇다.
그러다 다치면 되게 골 때려…….
“창백한데.”
“혈압도 낮아요.”
뭐 그건 그거고 환자 보는 건 보는 것이다 보니 나랑 리스턴은 우선 환자 상태부터 파악했다.
그래 봐야 뭘 많이 보는 건 아니었다.
볼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외상외과 의사다 보니 파악할 수 있는 게 좀 있었다.
“이 정도면 꽤 출혈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한데요?”
리스턴은 본인이 ‘외상 메이커’였다 보니 경험적으로 아는 게 있었다.
애초에 직관이 워낙에 좋은 사람인 데다가 머리도 좋아서 내게 배우는 것도 제일 빨랐다.
사실 수제자는 응급실에 있는 애들이 아니라 리스턴이라고 봐야 할 정도다.
그런 말 하면 좋아할지 싫어할지 몰라서 일단 두고 있긴 한데…….
“뭐지?”
“으음. 일단 안으로 옮기죠. 흙바닥에는…….”
“미아즈마가 너무 많겠지.”
“마침 오네요.”
잘 모르겠을 땐 일단 병원으로 옮기고 보는 게 장땡이다.
이 시기 병원은 안으로 들어가 봐야 뭐가 없다는 게 문제긴 한데, 일단 구경꾼이라도 없어지면 좀 나을 거 같다.
“살려야 한다!”
“살려야 한다!”
앰뷸런스 운용하면서 돈을 받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좀 그럴싸해 보이는 것이 중요해진 참 아니겠나.
거기에 더해 이런저런 진짜 중요한 지침도 가르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구호다.
이게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저 새끼들 쇼하나? 싶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해서 발을 맞추는 거다.
균형 안 맞으면 환자가 떨어질 수 있는데 멀쩡한 사람도 인사불성인 상태에서는 크게 다칠 수 있다.
안 그래도 아픈 사람이라면 더 다칠 수 있는데 이 간단한 구호로 그걸 예방할 수 있다면 무조건 해야 하지 않겠나.
“참의사들…….”
“멋지다…….”
“나도 커서 의사가 될래요.”
“일단 돈부터 내자. 저 서비스, 병원 앞 말고 다른 데서 받으려면 돈 내야 된대.”
물론 홍보 효과도 좋다.
이 시대는 쇼잉에 익숙하지 않은 시대다 보니 이렇게만 해도 진심이라고 생각하더라고.
아무리 19세기라 해도 장점이 있긴 하다, 이 말이다.
마지막 말이 지나치게 자세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걸 알아차렸다면 제법 날카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고백한다.
쟤는 프락치다.
“어디 찔린 거야.”
아무튼, 우리는 환자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병원 안쪽, 특히 응급실 쪽은 내 지시로 인해 대대적인 수정 공사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신경 쓴 것이 위생이고 그다음이 시야다.
불빛이 밝다, 이 말이다.
“조지프.”
“네!”
그리고 조지프가 개발한 증류기가 있어서 사시사철, 24시간 뜨신 깨끗한 물이 제공되고 있다.
조지프가 그렇게 생산한 물을 가져오는 동안 리스턴은 환자를 일도양단 아니, 환자가 입고 있던 피에 젖은 옷을 반으로 잘라 내 벗겨 버렸다.
이미 다친 지 좀 되었는지 피가 엉겨 붙은 부위도 있었는데 역시 리스턴이다 싶은 게 한순간에 발가벗겨 버렸다.
이 사람이 범죄 조직에 투신하지 않고 의사를 하고 있는 게 런던의 복이다 싶다.
안 그랬으면 런던의 뒷골목엔 죽음의 꽃만 가득했을 거 같다.
촤아아악.
그렇게 맨살이 드러난 환자의 환부에 조지프가 물을 들이부었다.
거의 동시에 콜린과 똘똘이 존 스노가 부드럽게 가공한 천으로 환자의 몸을 박박 닦았다.
그러자 피부에 엉겨 붙어 있던 피가 쭉 닦여 나감과 동시에 드디어 상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제기랄.”
“가족분 있나?”
“사망 선고를…….”
“아직 안 죽었어, 인마.”
하필 심장이었다.
아까 리스턴에게 한 대 맞고 튕겨 나갔던 놈이 실은 살수였나 싶다.
사실 딱 한 번 찔렀는데 그게 하필 심장 부근일 확률은 대단히 낮을 수밖에 없지 않나.
물론 그보다 낮은 확률도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심장을 찔린 사람이 살아날 확률이다.
“아직 속단하긴 일러요. 가슴이지, 심장이 찔렸다고는 확신할 수 없어요.”
“아, 하긴 심장이었다면 피가 이것보다 훨씬 많이 나긴 했을 거야.”
“근데 컨디션이 피가 많이 났을 거 같은 상태긴 한데…….”
“원래 빈혈이 있지 않았을까?”
빈혈이 그렇게까지 심한 사람이 술을 먹으러 다닐 수 있나 싶긴 했지만 일단 다물기로 했다.
대안 없는 반박이야말로 별 의미 없는 짓거리 라는 게 평소 내 생각이기에 그랬다.
게다가 지금은 환자 상태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탐침자!”
“네!”
21세기였으면 초음파나 CT를 찍었을 텐데…….
여기 뭐가 있나.
X-ray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한탄만 하고 있으면 뭐가 되나?
훌륭한 의사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는 자원이 적어도 최대한 활용할 궁리를 해야 하는 법이다.
물론 더 훌륭한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X-ray도 만들고 초음파도 만들고 CT도 만드는 건데 아쉽게도 난 수학과 물리를 잘하지 못해서 공대를 포기한 사람이다.
“후.”
공대는 포기할지언정 환자는 포기하지 못하는 사나이, 그게 나다.
“자아…….”
해서 탐침자라는 걸 만들었는데, 말 그대로 ‘자’다.
애걔 싶을 수도 있는데 멸균 소독한 자를 상처 안에 넣으면 얼마나 다쳤는지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여전히 애걔 하는 속이 배배 꼬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콜럼버스의 계란 세우기가 그랬듯 세상을 바꾸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약간 바꾸는 방식이다.
지익.
들어간다, 자가.
말마따나 피가 그렇게 많이 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자를 집어넣는 나나 들여다보고 있는 리스턴을 포함한 다른 이들 모두 자가 조금 들어가다 말겠거니 하고 있었다.
그럼 정말 행복할 거 같다, 환자도 나도.
대강 지금 난 상처 꿰매 주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어…….”
“이게 왜 더 들어가지.”
하지만 자는 영원히 들어갈 기세였다.
상처 안에 블랙홀이라도 있나 싶을 정도였는데…….
팅.
그러던 자가 저절로 튕겨 나왔다.
“뭐 하나, 자네.”
“제가 그런 거 아닌데요.”
“장난친 거 아니야?”
“환자 앞에서 장난치는 거 본 적 있어요?”
“어…… 그러고 보니 의외로 없구만, 자네.”
“의외는 무슨.”
나는 잠시 리스턴과 대화하다가 말고 다시 자를 밀어 넣었다.
결과는 같았다.
팅.
또다시 튕겨 나왔다.
한 번은 우연이겠지만(사실 우연일 순 없는 상황이다) 두 번은 절대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자 끝에 닿는 건 심장이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일 거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끔찍한 판단일 거다.
“이거 설마 심장인가?”
“그런 거 같은데요.”
“에구머니나.”
리스턴 입에서 저런 부끄러운 리액션이 나올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그러고 나서도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벌리고 있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심장?
심장이라니.
내가 외상외과라고 목에 힘주고 다니지만, 흉부외과 앞에서는 빛이 좀 바래는 것도 사실이다.
펄떡 뛰는 심장을 눈앞에 두고 있노라면, 여기에 칼 대는 놈은 진짜 대단한 놈밖에 없겠구나 싶거든.
물론 21세기에는 체외 순환기라는 미친 발명품이 나와서 심장을 멈춰 놓고 수술할 수 있으니 좀 낫지만 그래도 무서운 게 심장이다.
지금?
지금은…….
“이거 어쩌죠?”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나.”
글쎄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