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52)
검은 머리 영국 의사-452화(452/505)
452화 심장 수술 [3]
우리가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에도 환자의 자상 안에 집어넣은 탐침자는 퉁퉁 튕겨지고 있었다.
시벌…….
욕한다고 뭐라고 하진 못할 거다.
생각해 보면 욕이란 것도 다 쓸모가 있어서 만들어졌을 텐데, 그럼 이럴 때 욕하지…… 언제 욕하나.
퉁.
잠깐 넋을 놓고 있으려니 탐침자가 한 번 더 튕겨 나왔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그리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계속 심장에 부딪히고 있는 거다.
그대로 둬서 좋을 일이 있을까?
절대 없을 거다.
해서 뺐다.
어디에다 두어야 하나 하다가 애매해서 그냥 들고 있었는데…….
‘음?’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근데 뭐가 이상한지 잘 모르겠다.
‘이런 거 대단히 오랜만인데…….’
19세기 와서 충격을 받은 일이야 숱하게 많았다.
솔직히 그럴 만한 일밖에 없었잖아.
그렇다고 어려운 일이 없었나?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답은 알겠는데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단 고민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지금처럼 알쏭달쏭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단 정확한 사례가 떠오르는 건 아예 없어.
“자네 뭐 하나.”
“그러게, 뭐 해? 닦아 줘?”
“피도 거의 안 묻었는데 뭘 닦나.”
“아, 그렇네요.”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리스턴과 소독에 미친 조지프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자는 거의 깨끗했다.
옆면에 살짝 피가 묻어 나왔을 뿐이지…….
“잉.”
“왜?”
가만있자…….
환자의 혈압은 지금도 떨어지고 있다.
어떻게 아냐고?
병동의 학살자 아니, 지배자이자 내 새로운 제자인 나이팅게일이 귀신같이 잰 덕이다.
다른 간호사들까지 내가 직접 가르칠 필요는 없었다.
나이팅게일에게만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니까.
전능함이 느껴질 정도인데…….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다시 환자에게로 돌아와 자와 상처 그리고 환자의 바이탈을 살폈다.
바이탈은 확실히 안 좋았다.
혈압이 70이 채 안 되니 말 다 한 셈 아닌가?
괜히 수혈 머신 아니, 블런델을 부른 게 아니다.
헌데 상처를 보면 피가 그렇게 많이 나질 않았다.
아까 한차례 닦아 내긴 했지만, 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와, 피가 미친 듯이 흘렀다’ 할 정도로 붉긴 했지만 피는 사실 원래 붉다.
그리고 붉은색은 시각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준다.
피가 그래서 붉은지 아니면 피가 붉어서 시각적으로 충격을 받게 된 건지 선후 관계는 모르겠지만 벌어지는 현상이 그래.
‘이럴 정도로 피가 나지 않았어. 물론 환자가 원래 아주 아픈 사람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억을 더듬어 봤더니, 지금 저기 리스턴에게 얻어터진 채 누워 있는 놈…….
리스턴에게 습격당하기 전에도 얼굴에 멍 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환자의 주먹에 쓸린 상처가 있다.
그 말은 곧 한 대 쳤다는 뜻이다.
이 시기 영국인을 상대로 주먹을 날릴 수 있으려면 제법 강해야 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환자는 기저질환이 없었거나, 있었다고 해도 경미한 수준이었을 거란 판단이 선다.
여기까지 와 보니 ‘역시 나는 천재요, 유일무이한 존재’란 생각과 함께 아까 들었던 이상하단 느낌이 더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지금은 피가 거의 안나. 실질적인 상처는 가슴에 베인 상처가 다라는 거야.’
생각보다 근육은 베어 봐야 피가 그렇게 많이 안 난다.
아니, 뭐 잘려 본 사람의 의견은 많이 다르기야 할 텐데…….
다른 장기, 특히 심장에 비하면 그렇다.
‘그런데 환자의 바이탈은 어마어마한 실혈…… 아니, 아니야. 이거?’
심장과 상처 그리고 환자의 상태를 종합해서 보자 비로소 떠오르는 진단명이 있었다.
“시, 심낭 압전!”
“응?”
“땅길 거 가져와! 마취하고! 이건…… 이건 어쩌면 살릴 수도 있어!”
“뭔…… 심장인데 어떻게 살려. 이건 그냥 기도나 해야…….”
“기도하면서 칼로 째면 되지!”
“그건…… 그건 십자군 아닌가?”
리스턴은 내가 진단명을 외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딴소리나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뭐…….
나무랄 일은 아니긴 했다.
이 시기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사는 아주 용기 있는 이들이 선택하는 직업이었다는 걸 문헌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니, 문헌 아니라 그냥 여기 돌아다니는 의사나 야생의 치료사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진짜 이걸 사람한테 한다고? 싶은 짓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 하잖아.
하지만 심장은 예외였다.
펄떡 뛰는 심장은 그것을 보자마자 경이롭다는 생각이 훅 들기 때문이다.
이건…… 사람이 건드리면 안 되겠구나 싶다, 이 말이다.
그래서 이 무지한 이들조차 심장엔 칼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안 갖다 댔다.
“아, 일단 빨리! 마취 걸어!”
“어…… 네!”
아마 이전 같았으면 내가 아무리 지랄을 했어도 안 들었을 거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적어도 이 병원에서만큼은, 또 내 일행에만큼은 영향력이 장난이 아니다.
슈우욱.
게다가 앨프리드는 내게 목숨을 두 번이나 빚졌을뿐더러 적절한 가스라이팅을 통해 선배에서 충실한 부하 또는 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였다.
아무리 착하다 한들 사람들 앞에서 소변줄을 꽂는 데 동의한다는 건……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잖아?
해서 앨프리드는 가스 밸브를 돌렸다.
“조지프!”
“아, 응!”
조지프는 일단 닦을 게 있으면 죽자고 달려드는 놈이다.
사실상 파블로프의 개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얘도 내 개가 되었다는 말이다.
“콜린!”
“네!”
콜린?
얘야 뭐…… 알잖아?
1호 정도 된다.
“형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에요. 빨리 손 씻고 와요.”
“아무리 그래도 심장을…….”
“이거 성공하면 최초입니다. 세계 최초 심장 수술 성공.”
“으읏.”
그에 반해 리스턴은 아직 개 정도는 아니다.
사실 베푼 은혜를 생각하면 벌써 되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너무 강한 인간이라 그럴까?
해금 조건이 제법 까다로운 모양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 뜻대로 하기 어렵다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본격적으로 조종당해 본 적이 없는 인간이라 그런가 의외로 쉬웠다.
“옳지.”
“최초는 못 참지.”
“그렇죠. 참된 의사라면 그래야 옳지.”
“맞는 말이야.”
외과 의사는 누구나 나르시시스트적인 면모가 있는 법이다.
내가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남의 몸에 ‘선의’를 가지고 칼을 댈 수 있겠나?
그렇기에 명예욕도 당연히 강하다.
의사가 되어 가지고 환자보다 명예를 생각해서 되겠나? 싶을 수도 있는데…….
놀랍게도 환자 생각하는 마음과 명예욕은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21세기가 되어서까지도 꾸준히 새로운 수술법이 나오고 그로 인해 수많은 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었다는 건 불변의 진리다.
“후.”
“휴우.”
그렇게 우리는 장갑과 수술모, 마스크를 끼고 환자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솔직히 내 머릿속에서도 ‘최초’라는 타이틀이 어른거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세계 최고는 알 바 아니고, 내 인생 최초이기에 그랬다.
‘심장…….’
원래 외과 의사들은 입이 좀 험한 편이다.
성질 더러운 놈들이 주로 해서 그런 건 아니고, 하다 보면 성질이 더러워져서 그렇다.
그게 그거 같지만 엄연히 다른데 아무튼.
그런 우리가 한 수 접어 주는 분들이 있으니 바로 흉부외과 분들이시다.
심장은 그런 장기기에 그랬다.
칼 한번 잘못 놀린다 해도 기껏해야 지방이나 잘려 나가는 게 보통인 우리 외과에 비해 거기는 심장 아니면 대동맥 아니면 관상동맥이다.
‘시발…….’
나는 그 압박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칼을 들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수술을 시작되었으며 환자가 아직 살아 있었고 그사이에 주워들은 환자의 나이가 기껏해야 22살이라는 것이 내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었다.
리스턴 또한 비슷한 생각인지 뭔지 한층 진중해진 얼굴로 상처를 벌렸다.
그 덕에 나는 제법 성공적으로 가슴에 난 자상의 위아래로 절개를 늘려 나갈 수 있었다.
이미 난 상처를 왜 더 늘리냐는 말을 한다면 나는 ‘시발!’이라고 답해 주겠다.
찌르는 놈이야 별생각 없이 푹 찌르면 끝이지만 그걸 수복하기 위해서는 안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나.
도시 건설·경영 게임만 해 봐도 알 텐데 원래 부수는 건 쉬워도 고치거나 다시 만드는 건 더럽게 어려운 일이다.
“당긴다.”
“네.”
“후우…… 피…… 쫙 튀는 거 아니지?”
“음.”
“아니……지? 아니지?”
“일단 당겨 봐요.”
시야 확보는 수술에 있어서 기본이다.
어디 만화에 나오는 놈들이나…….
그 전설의 백강혁 교수님은 안 보고도 뭘 막 했다고 하는데, 그런 걸 일반인에게 기대하는 건 범죄다.
뭐가 보여야 뭘 해도 할 거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당기다가 가려져 있던 상처가 벌어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불상사가 일어난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후.”
그걸 알면서도 가야 하는 게 수라의 길…… 아니, 외과 의사의 길이다.
그 끝에 설령 테이블 데스가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이곳 수술방이다.
“휴.”
“휴? 이 새끼.”
다행히 피가 튀지 않았다.
숙련된 외과 의사다 보니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 이건 심장이라 그런가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툭 새어 나왔다.
자연히 리스턴의 핀잔이 이어졌지만 일단 무시했다.
이건 말 그대로 첫걸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단 당기고 있어요.”
“알았어. 아, 저기…… 저거 심낭이야? 엄청 불었는데?”
“피가 찼을 거예요. 아까 심낭 압전이라고 했잖아요.”
“실제로 보면 이렇게 되는구만…… 하긴, 출혈도 없이 심장이 못 뛰게 되려면 이렇게 세게 눌러야겠지.”
“그렇죠. 어디냐…….”
“어디냐니. 저기 안 보여?”
“아.”
“아는 무슨…… 자네는 가끔 보면 재능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단 말이야, 하하.”
심낭에 난 미세한 상처를 찾아 그 틈을 통해 피를 빼고 그 근처에 난 심장 파열을 봉합해 줘야 할 텐데…….
솔직히 말하면 내 눈에는 당장 보이지 않았다.
그걸 도운 건 리스턴이었다.
‘확실히…… 이 사람은 천재야.’
재능 운운하는 게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뭐 어쩌겠나.
실제로 내 재능은 리스턴에 비하면 진짜 별거 아니다.
내가 별거 아니라는 건 아니고, 리스턴이 천재라서 그렇다.
이런 사람이 원래는 마취도 없이 사람 팔다리나 자르던 인간 백정이었다니…….
새삼 인간은 자신이 속한 시대의 영향을 짙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자기 재능에 맞는 시대를 타고 나는 게 얼마나 큰 운이겠어.’
내 생각은 아니고, 웹소설 작가로 직업 바꾼 내 친구 녀석이 하던 말이다.
재주라고는 공상과 MSG 치는 게 단데 그게 직업이 되어 먹고 살고 있으니 운 좋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긴 할 거다.
그럼 나는 어떠냐고?
이 리스턴이 내 조수 역할을 하고 있다.
“휴. 혈압은?”
“돌아옵니다!”
“좋아, 이제 여기…… 이것만 꿰매면 되겠어. 다행히 상처가 작아서 새기만 하네.”
원래 운 중에 제일은 인복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