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55)
검은 머리 영국 의사-455화(455/505)
455화 학회 [2]
“뭔 소리여……?”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영어…… 맞지?”
“조선말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내 예상대로다.
다들 웅성웅성하고만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심장이 무엇을 하는 장기인지, 순환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기에 그렇다.
“역시…… 병신같군그래.”
뒤에서 칭찬…….
칭찬 맞지?
아무튼, 그걸 늘어놓고 있는 수상할 정도로 조선어에 능숙해진 리스턴조차도 바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자…… 다들 어려우시겠지. 실험대를 대령하라!”
“네이!”
나와 리스턴을 비롯한 여러 부호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는 태평 연구소는 여전히 돈 먹는 하마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제이미 경으로 강력히 의심되는 미친놈이 코카인 제조법을 기어이 빼돌리는 데 성공, 전 유럽에 코카인이 유행하고 있다.
괜히 만들었나 싶을 때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두고 있는 건 지금처럼 간간이 도움이 될 때가 있기는 해서다.
“오…….”
“저건 뭔 돈지랄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자의 말이 좀 마음에 걸리긴 했다.
그만큼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 말인데…….
그래도 괜찮다.
의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래서 위키 김태평 문서에 좋은 말이 한 줄이라도 더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 브론테 자매들은 안 될 거 같지……?’
앞에서는 생글거리더니만 앞으로 쓸 소설 구상이랍시고 보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등장인물에 아무리 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동양인이 있는 건 뭐, 괜찮다.
그 사람이 간간이 ‘시발 시발’ 하는 것도 괜찮아.
근데 왜 주술사냐.
왜…… 심장에서 피를 빼야 한다고 주장하는 악역이냐고.
-네? 은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창작물인데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말이 있었다.
작품 시작 전에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 이름, 집단, 사건은 허구이며 실존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가 있는 작품이야말로 현실과 가장 가깝다는 얘기 말이다.
그거 들었을 땐 참으로 그럴싸하다고 여겼었거늘…….
대상이 되고 보니 예술가들이 창작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와…… 저 유리 저거…… 저게 다 얼마냐.”
“저기 매달린 둥근 거…… 설마 고무인가?”
“전기 장치도 있는 거 같은데?”
“안에 흐르는 붉은 액체는…….”
“말하지 말게. 피임이 틀림없어.”
“대체 누구…….”
“그걸 말하지 말라고. 자발적 혈액 제공자가 되고 싶어서 그러는가?”
그 때문에 나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에 대해 해명하기로 작심한 참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인데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것부터가 실책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혈액 순환 모형이다.
최대한 간단한 형태로 도식화된 혈관을 유리관으로 만들고 그 안은 붉은 액체(당연히 피는 아닌데, 도덕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피는 자꾸 굳는다는 단점이 있다)로 채웠다.
단순히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유리관 가운데에 있는 고무 펌프다.
펌프는 이중으로 되어 있어 바깥 고무가 심낭막 역할을 하고 안쪽 고무는 심장 자체의 역할을 한다.
“자…… 심장에 의해 피가 흐르는 것을 최대한 간단히 나타내는 모형입니다. 가까이 오셔서 봐도 좋습니다만 깨면 배상 책임이 있으니 주의하세요.”
내 말에 우르르 다가오던 이들이 다시 우르르 멀어졌다.
이 시기 투명한 유리는 과장 좀 보태서 부르는 게 값인 데다가 깨지기는 또 더럽게 잘 깨지기에 그랬다.
하여간 적절한 위치에서 타협을 본 청중들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유리관 안을 따라 졸졸 흐르고 있는 붉은 액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하네…….”
“저걸 어떻게 만든 거지?”
“저 안쪽 고무풍선에 붙은 기구가 때 되면 누르는 거 같은데?”
“아…… 그렇구만. 근데 심장 뛰면 피 도는 걸 누가 모르나? 아까 설명했던 거랑은 관계가 없는 소리 아닌가?”
그러다 슬슬 지겨워졌는지 개소리를 뱉기 시작했다.
뭐, 이것도 다 예상했던 일이었더랬다.
일일이 당황하기엔 내 19세기 경험이 너무 단단하다, 이 말이다.
“자…… 이제 이 장치를 아까 그 환자의 심장처럼 만들어 보겠습니다. 리스턴 형님.”
“으음!”
리스턴은 확실히 범상한 사람은 아니다.
내 신호에 따라 그는 바늘을 이용해 정확히 바깥쪽 풍선과 안쪽 풍선을 동시에 팍 뚫었다.
그러곤 바깥쪽 풍선에 난 구멍만 손가락으로 막았다.
그러자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안쪽 풍선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안쪽 풍선과 바깥쪽 풍선 사이에 난 공간을 아주 소량의 붉은 액체가 채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아니, 잠깐만.”
그리고 그렇게 채워진 혈액은 결코 다시 안쪽 풍선으로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유리관을 순환하던 구조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에 비해 안쪽 풍선과 바깥쪽 풍선 사이는 공간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더 많은 피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
“이럴 수가.”
불과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붉은 액체의 순환이 멈추었다.
바깥쪽 풍선에 들이찬 붉은 액체로 인한 압력 탓에 안쪽 풍선으로 더 이상 액체가 들어오지 못해서였다.
여전히 전기 신호에 의해 안쪽 풍선에 부착된 기구는 풍선을 눌러 주고 있지만 애초에 풍선이 부풀지 못하는데 누르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게…… 아까 피영시인이 말했던 그 현상이군……!”
“그래…… 밖으로 출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환은 안 되는…….”
“천재…….”
“미쳤다…….”
이보다 압도적인 설명이 또 있겠나?
해부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이나 잘 설계된 구조 덕에 가능한 거다.
“후후후.”
나?
나는 이러한 것도 없이 떠올렸다.
물론 애초에 심낭 압전이라는 진단명이 이미 존재하고 또 그에 대해 나름 심도 있게 배운 덕에 가능했던 일이긴 하다.
안 배웠다?
내가 어떻게 그걸 거기서 바로 떠올리겠나?
그건 천재, 즉 하늘이 내린 재능을 지닌 진정한 적폐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리스턴이나 조지프와 같은 절친한 사람들에게도 함구한 바 있다.
“역시…….”
“피영시인…….”
“저 괴물…….”
“진정한 천재!”
그러니 이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겠나.
전생의 내가 늘 질투했던 백강혁, 이수혁이 따로 없었다.
솔직히 그 둘이 말이 안 되는 거다.
연공서열 다 무시하고 치고 올라갈 만큼 뛰어난 실력을 현대 의학에서 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한데 그걸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건 더 이상한 일이거든.
그치만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그렇다.
19세기서는 내가 바로 백강혁, 이수혁이다, 이 말이다!
이름도 그냥 김태혁으로 할 걸 그랬어!
“꿇어라…….”
나는 그 생각을 하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단상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참이다 보니 왜인지 모를 전능감마저 느껴졌다.
“이놈들. 꿇어!”
“꾸, 꿇자구. 이런 대단한 사람 앞에서 꿇지 그럼 어디 가서 꿇겠나.”
물론 내가 진짜 전능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학회장에 모인 이들이 실제로 무릎을 꿇을 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 녀석의 권능까지는 아직 무리인가 보다.
하지만 시간만 더 걸렸을 뿐, 모양새는 결국, 비슷해졌다.
“이것이 너희와 나의 눈높이다.”
이거 한번 꼭 해 보고 싶었다.
“이것이 우리 런던 칼리지 의과 대학 드림팀의 의학이다!”
물론 저 말만 하고 말면 미친놈이 된다.
난 뱀파이어 제왕이 아니기에 그렇다.
애초에 의사가 뱀파이어 운운하는 것부터가 좀 이상한 일이잖아?
해서 뒤에 사족을 덧붙였고, 그러자 좀 미심쩍어하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리스턴과 블런델 그리고 제자들까지 다 같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 이것이 우리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아니긴 하다.
나지.
아무리 넓게 쳐 줘도 아직은 리스턴 말곤 내가 의지할 만한 놈은 없어.
심지어 그 나이팅게일마저도 지금은 거의 일방적으로 내게 배우고 있는 상황이니 말 다 한 셈이다.
하지만 뭐…….
참된 리더란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여서 분란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란 게 내 생각이다.
교수님들 중에 그런 분이 하나 있었는데 나중에 실력에 비해 푸대접을 받게 되더라고.
자기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에게조차 너무 엄정한 잣대를 들이댄 탓에 끝까지 따르는 사람이 아예 없게 된 탓이다.
해서 나는 입을 다무는 것으로 그들에게 동조해 주었다.
“이럴 수가…… 심장이 미지의 영역이 아니었다니.”
“칼을 대도 되는 장기였다니?”
그러면서도 귀는 쫑긋 세웠다.
내가 알려 주는 걸 곡해해서 듣는 놈들이 꼭 있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놈하고 저놈…… 이따가 잡아 놔.’
‘네. 대장.’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거창한 발표를 계획하게 된 것은 이제 슬슬 학회 데뷔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심장이라는 장기의 기능이 다른 장기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이다.
괜히 인공 심장이 제일 먼저 시도된 게 아니라는 건데, 이해하기도 쉽다.
심장이 뛰면 피가 돈다.
그 정확한 원리야 아직 다 알기 어렵겠지만 대강의 파악은 시켜 줄 수 있잖아.
이렇게 하나하나 개선시키다 보면 언젠가 개념 정도는 21세기 수준으로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절대 심장 수술을 해도 된다는 건 아니라고…….’
심장은 누누이 말했듯 펄떡 뛰는 장기다.
체외 순환기를 이용해 피를 돌릴 수 있는 현대에야 멈춘 심장을 시간을 들여 수술할 수 있겠지만, 이 시대에는 글쎄…….
대동맥 위아래를 클램프로 꾹 잡고 한다고 치면 아무리 길어도 4분 이내에 수술을 끝마쳐야 할 거다.
기가 차는 시간이다.
4분이라니…….
저 리스턴이 다리 하나 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랑 비슷한 시간 동안 심장 수술을 해내야 한다는 뜻이지 않나.
‘시벌…….’
그게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대로 죽을 거다, 이 말이다.
나 포함 이 시대에는 절대로 심장 수술을 다시는 시도해선 안 된다.
나도 진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한 거야.
진짜 천재인 내가 이럴진대 다른 놈이 한다면?
그 새끼 잡아다가 바로 십자가에 매달아야 한다.
“티에피영 부탁일세.”
십자가 운운했던 것은 철회해야 할 거 같다.
이대로 가면 거기 매달리는 게 내가 될 거 같아서 그렇다.
내 명성을 내가 너무 무시했던 게 탈이다.
또…….
이 시대에 아직 항생제가 없기 때문에 발생 가능한, 현대에 살던 나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던 질환들이 많다는 것도 무시했던 탓이기도 하다.
“심장 수술을 해 달라, 이거죠?”
“그래. 이대로 두면 어차피 죽네…….”
“하…….”
주여, 시간을 한 번만 더 되돌려 주시면 안 됩니까?
깝치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