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5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56화(456/505)
456화 무모한 도전 [1]
심장…….
이거 진짜 개무서운 거다.
레지던트 때의 일이다.
-야, 너 당직이지?
-어, 왜.
-나 예물 보러 가야 돼서, 우리 과 당직도 있긴 한데…… 너는 그냥 거기 살잖아. 뭔 일 있으면 연락 달라고.
-아…… 올 때 메로나.
우리 땐 전공의 뭔 법도 없어서 주 88시간이 아니라 주 100시간 이상 일했더랬다.
주 100시간이라고 하면 진짜 지옥이겠다 싶을 수도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던 시절이다.
낭만이라고나 할까?
아아 한잔 쫙 빨고 환자 딱딱 정리해서 감사 인사 들으면서 병동 올려 보내고 하면 바이탈 뽕이 딱 차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의사가 뽕이 뭐냐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죽어 가는 환자가 내 손에 살아나는 걸 한 번이라도 겪게 되면 아마 이해할 거다.
그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비슷한데, 그걸 더 강렬하게 느끼는 애들은 미안하지만 바이탈과에 종사할 ‘재능’이 없는 거라 바로 도태되기 마련이다.
-야…… 나 못 나간다. 예물도 못 보네.
-뭔 소리?
이 기억 속 친구도 재능이 없던 친구다.
테이블 데스 하나 보고 바로 런 친 놈이다, 이 말인데 꼴에 수술을 하고 싶었는지 이비인후과에 지원했다.
내가 봤을 땐 약간 실수다.
태화 의료원의 이비인후과는 전통적으로 두경부외과가 개빡세거든.
사람 얼굴과 목에 생기는 암이란 암은 다 거기서 수술하는데, 부위가 부위다 보니 절제로 끝나지 않고 다시 재건까지 해야 하는, 인정하기 싫지만 전체 수술 중 최고 난이도에 해당하는 수술을 거기서 했다.
-내 환자 심근경색이래.
-잉…… 아까 다 보고 말한 거 아냐? 괜찮다며?
-내가 뭘 아냐. 심전도가 어제랑 다르길래 내과…… 아, 지금 내 환자 심혈관 조영술 받으러 간다. 너 혹시 시간되면 나 소시지 하나만. 나 밥을.
-하, 이 병신…….
그래서 외과 중환자실에 무려 두 자리를 이비인후과에서 쓰고 있었는데, 그러면 뭐 하겠나.
평소 중환자실을 아예 안 도는데.
학생 땐 분명 나보다 똑똑했던 거 같지만, 의사는 수련 과정에서 뭘 배웠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그때 가서 보니까 심전도는 거꾸로 봐도 심근경색이더라고.
‘요는 21세기 의사조차 익숙하지 않으면 심장은 아예 모른다…… 이 말이지.’
친구 비웃을 때가 아니다.
내가 그 친구보다 더한 짓을 하게 생겼어 지금.
“얼굴이 안 좋네.”
“당연히 안 좋죠. 심장 수술을 내가 어떻게 하나.”
“했잖아?”
“아니, 그건…….”
솔직히 심낭 압전 생긴거…….
겉에 난 상처 꿰맨 거랑 지금 이 놈이 들고 온 케이스랑 같냐?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그 사람 앞에 가서 이놈 저놈 하는 건 안 된다.
명확히 따져 보면 놈도 아니다.
여자다.
“그건 심장 껍데기잖아요. 안에 째고 하는 거랑 같나?”
“아무리 그래 봐야…… 이미 늦은 거 아닌가? 벌써 오고 계시다던데.”
“아니…… 전화도 없는 시대에 뭔 놈의 소문이 이렇게 빠르냐고.”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여자냐?
그랬으면 내가 걱정을 하겠냐?
의사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여기 19세기다.
수술하다가 사람 잘못되는 경우가 잘되는 경우보다 더 많은 시대다, 이 말이다.
이건 내 생각인데 ‘이 문을 지나는 자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문구 있잖아? 그거 지옥문이 아니라 병원 대문 앞에 써 붙여야 된다.
오면 절반은 죽는데 그게 맞지.
“아무튼, 이거 보통 건수가 아니야.”
“아니…… 그렇게 흥분해서 할 말이 아니라니까요?”
“그럼 흥분이 안 되게 생겼나? 심장 수술이라니…… 그래, 확실히 저번 수술은 자네 말대로 껍데기에서 그쳤지. 하지만 이건 제대로 된 심장 수술일세.”
“그래서 큰일이라니까요?”
아, 지금 오고 계시는 분이 누군지 얘길 안 했구나.
이름하여 엘리자베스 왕녀 되시겠다.
조지 3세의 딸이다, 이 말이다.
당연히 현 대영제국의 국왕이신 윌리엄 4세의 여동생이신데…….
“뭔 놈의 형제 자매가 그렇게 많아, 왕이.”
“15남매 아닌가?”
“15명……? 아내가 여럿이에요?”
“뭔 소리야. 샬럿 왕비 전하 한 분이지.”
“허…….”
이건 금실이 좋았네 어쨌네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내가 본 적은 없지만 샬럿 왕비란 분은 아무래도 평상복보다 임부복을 더 오래 입었을 거 같다.
‘진짜…… 강한 여인이었겠구만, 그리고…….’
이 미친 시대에 15명을 낳을 수 있었다니.
확실히 대영제국은 바이킹의 후예가 세운 나라가 맞다.
신분이 높을수록 무력이 강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야.
하긴 그러니까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그렇게 나쁜 짓을 했겠지.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
“70년생이니까…… 이제 많지.”
“이제 많은 정도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어쩌겠나. 의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온다는 환자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나.”
어디에서 와도 심장을 열어 달라는 환자는 외면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같은데…….
증상을 전해 듣기로는 확실히 판막에 문제가 있는 거 같긴 하다.
아, 전해 주는 놈이 이걸 어떻게 알았느냐면 다 티에피영표 청진기 덕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우리 대영제국이 프랑스처럼 유럽 대륙의 유행을 선도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적어도 의학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내가 나름 유명 인사가 된 덕이기도 하다.
뭐…… 독일 놈들이 변태처럼 꼼꼼한 탓도 있다.
호흡이나 제대로 하는지 듣자고 만든 청진기로 글쎄 부정맥이랑 심장 판막 질환을 진단하고 있더라고.
“하아…….”
“그리 걱정되면 연습을 좀 하면 어떤가?”
“시신으로요?”
다른 것도 아니고 심장 수술을 어떻게 시신으로 하나 싶어서 물었더니 리스턴이 눈을 피한다.
이 새끼…….
“아, 사람으로 하자는 뜻이었구나.”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해야 연습이 되지. 그냥 하면 되겠나?”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 심장을 막 열어요? 그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하하, 나는 멀쩡한 심장 열자고 한 적이 없는데?”
“그럼…… 이 사람 설마?”
리스턴이라면 지금 당장 교도소로 뛰어가서 주먹으로 몇 놈의 심장을 두들겨서 망가뜨린 후, 고쳐 주겠답시고 데려올 수 있는 놈이다.
그리고…….
‘애초에 사형수라면 그것도 나쁠 건 없지 않나?’
그 정도면 나도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뭐…….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사형수라니,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나쁜 짓을 하면 사형수가 될까?
마지막에라도 인류의 진보를 위해 공헌을 하고 갈 수 있다면, 어쩌면 주님께서도 ‘오케이, 통과’ 하고 천국으로 들어오게 해 주실 수도 있을 거 같다.
‘이렇게 말하면 설득이 될지도?’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리스턴의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자네…… 설마 죄수들을 잡아 올 생각은 아니지?”
원래 사람은 ‘아니지?’라고 하면 ‘아니’라고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왜냐면 상대가 그걸 바라는 눈치라는 걸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죠, 당연히.”
“근데 왜 그렇게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어?”
“제가요?”
“이 새끼…….”
“아니라니까.”
“그래, 뭐…… 나는 접신 같은 거 할 수 있는 재주는 없으니.”
리스턴에게 도덕성으로 비난을 받는 날이 올 줄이야.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리스턴은 그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판매하고 있는 청진기 덕에 이거저거 진단되고 있는 건 알지?”
“알죠. 대부분 사기꾼 아니야, 근데?”
“그렇긴 하지. 난 청진기로 증기 기관을 진단할 수 있다는 놈도 봤네.”
“아.”
분위기상 ‘그런 놈이 있어요?’라는 얼굴로 바라봤지만 사실 저게 안 될 거 같진 않다.
군대 갔을 때 대대장이 ‘보일러가 고장 난 거 같은데 청진기로 진단해 보면 안 되나?’라는 참신한 개소리를 진지한 얼굴로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과감하게 들이받았어야 했을 거 같지만 그때만 해도 난 용기가 없어서 하라는 대로 했다.
그리고 진단했다.
하니까 되더라고?
“그중에는 역시 대단한 놈들도 있긴 해. 그거 아나? 그…… 뭐라더라? 아 그래 심장 류머티즘.”
“아……? 그런 말이 있어요?”
“자네…… 공부 좀 하게. 너무 자만하지 말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니까 되더라고?’는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긴 하다.
근본적으로 19세기 사람과 21세기 사람 간의 지능 차이는 없다.
아니, 고대 시대로 거슬러 가도 마찬가진데, 뭔가 차이가 있어 보이는 건 쌓인 지식이 달라서일 뿐이다.
만약 나와 같은 시대의 현인이 있어 선진 문물을 시기적절하게, 순서대로 딱딱 전해 준다면 이런 식의 진보가 일어나는 것도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하다.
‘와, 소름.’
그 말은 이 역시 다 내 덕이란 말이지 않나.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은 늘 그가 감당할 만한 시련만을 내려 준단 말이 있지 않나.
‘그렇다면 당신 정말 안목이 뛰어나구만그래.’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나를 이 시기로 보낸 걸 보면 과연 신은 신이다 싶다.
“혼자…… 뭐 하나? 또 접신해?”
“아, 아뇨. 그냥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어요.”
“어…… 그런 것치고는 대단히 건방져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죠. 아무튼, 그 심장 류머티즘이란 소리 한 놈 아니, 의사는 어디 있죠?”
“그걸 처음 말한 놈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런던에서 자신을 최초의 심장전문의라고 부르는 놈은 알지.”
“허…….”
진짜, 참…….
뭘 모르니까 용감할 수 있다 싶다.
심장전문의?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
내과로 가면 일단 전공의 마치고 전문의 딴 다음에 2년 동안 분과 전문의를 하고 또 중재 시술로 갈지 초음파로 갈지 정하고 몇 년을 더 죽도록 고생해야 따는 거다.
흉부외과로 가면…….
여기는 말을 말자.
눈물이 나서 앞을 가리니까.
“어디에 있어요, 그 새끼?”
“아까는 대견해 하지 않았어?”
“감히 최초의 심장전문의를 운운하니까 그렇죠.”
“아…… 그거. 그래, 우리가 최초지. 그놈이 설마하니 심장에 칼을 대 봤겠나?”
“그럴 리가 없죠.”
“그래, 가는 김에 그 타이틀도 뺏어 와야겠군그래.”
하여간, 건방진 놈은 참교육을 해 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김에 이놈이 심장 류머티즘이라 부르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류마티스열과 관련이 있는지도 알아봐야겠다.
만약 맞다면…….
아마 그로 인해 죽어 가는 이들이 제법 있을 거다.
‘생각해 보니까 항생제가 없는 시대지.’
없을 수는 없다.
아니, 꽤 흔할 거다.
현대였으면 ‘아, 목 아프네. 약 먹어야지’ 하고 끝날 병이 여기서는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참 많은데, 그중 하나가 류마티스열이니까.
20세기까지도 연간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던 아주 무서운 병이니만큼 19세기에도 진단이 잘 안되었을 뿐 엄청나게 기승을 부리고 있긴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