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57)
검은 머리 영국 의사-457화(457/505)
457화 무모한 도전 [2]
류마티스열.
영어로 하면 ‘Rheumatic fever’다.
내가 봤을 때 딱히 잘 지은 이름은 아닌 거 같다.
보통 음식점 이름도 딱 보면 아 뭘 팔겠구만 싶잖아?
그게 예상이 돼야 잘 지은 이름이지 이게 음식점인지 뭔지도 모르겠으면 망하지, 그게 되겠나.
‘뭔 병인지 어떻게 아냐? 저 이름만 듣고.’
류마티스내과란 과도 있으니 류마티스라는 이름 자체는 익숙할 거다.
실제로 류마티스관절염은 꽤 흔한 질환이기도 하고.
유명한 화가 중에 르누아르라고 있는데 그 사람이 50대부터 류마티스관절염을 세게 앓는 바람에 화풍마저 바뀌었다는 얘기는 다들 알고 있을 거다.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으로 쉽게 말하면 원래 외부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야 할 면역 시스템이 미쳐 버리면서 몸을 공격해 발생하는 병이라고 보면 된다.
요즘에야 약을 잘 쓰면 되는데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진짜 고통스러웠을 거다.
‘근데 이건 감염병이야.’
문제는 류마티스열은 자가면역질환이 아니라는 점이다.
뭐…… 감염 후 발생하는 자가면역성 질환이긴 한데, 기전 자체가 많이 다르다.
근데 왜 이름이 이따위로 붙었냐?
증상이 비슷해서 그렇다.
18, 19세기 의사들이 뭐 검사를 할 수가 있어야지.
그냥 보고 들은 증상과 소견만으로 때려 맞춰야 하다 보니 발생한 일이라고 보면 된다.
나중에 가서 고치려고 해 봤으나 이미 수백 년을 그렇게 부르던 병을 이제 와 바꾸는 것도 이상해서 21세기에도 그냥 그렇게 부른다.
‘아무튼…… 엄청 많을 거야. 안 옮게 조심해야겠구만.’
드문 균에 의한 것도 아니다.
A군 연쇄상구균(Group A Streptococcus)이라는 놈이 일으키는데, 편도염 세게 앓아 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이 균에 의해서였을 가능성이 높을 거다.
노랗게 농이 잡혔어? 그럼 거의 얘다.
제때 항생제 치료만 잘하면 후유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긴 항생제가 없지 않나.
그렇다 보니 합병증이 잘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심근염이다.
“자네 뭔 생각을 또 그렇게 하나?”
“아, 류마티스열에 대해 생각하고 있죠.”
“그런 병이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생각한다고 뭐가 떠오르나?”
“그…….”
억울하다.
이 시점에서 나보다 해당 질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렇다.
항원항체반응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걸 누가 알겠어.
하지만 이런 건 심화 과정이다.
아직 세상은 이걸 받아들이기엔 일러도 한참 이르다.
“그래도 대강 생각은 해 볼 수 있죠.”
“뭐…… 그래, 그거야 자유지. 아무튼, 지금 만날 놈이 그래도 꽤 전문가이긴 한 모양이야. 나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놨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형님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조선말에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네.”
“아.”
“우리가 볼 땐 한참 모자라 보이는 놈들에게도 찾아보면 다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지. 알겠나, 병신?”
“그.”
뭔가 뉘앙스가 방금은 진짜 그 병신 같았다.
이 새끼…….
타산지석도 아는 놈이 병신을 모를까?
원래 타국어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게 욕인 법인데…….
리스턴같이 똑똑한 놈이 병신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물어보기도 좀 그렇다.
해서 그냥 있다 보니 어느새 마차가 멈추어 섰다.
“음. 여기…….”
“느낌이 별로네. 도살자 느낌이 좀 나.”
이건 편견일 수도 있는데, 이 시대에는 제대로 된 병원일수록 좋은 데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우리 병원이 제일 좋은 동네에 있어서 하는 생각은 아니다.
도살자 해리도 그렇고 야생의 치료사들도 그렇고…….
미친놈들일수록 외곽에 있었거든.
근데 도착해 보니 여기도 외곽이다.
“환자도 많아요.”
“필시 돌팔이겠군.”
거기에 더해 환자가 많다?
그 말은 이 시기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이 말이다.
이런 말을 하면 되게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
시대의 수준이라는 게 있다.
19세기에 잘 먹히는 의사는 돌팔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나만 해도 지금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나.
심지어 돌팔이 흉내도 내야만 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 타협한 부분이 있고.
“그렇죠.”
“일단 들어갈까.”
“그럴까요.”
“후.”
그렇게 상황 파악을 어느 정도 끝마친 우리는 조용히 의원으로 향했다.
말 그대로 문전성시였다.
다들 가슴께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과연 최초의 심장전문의란 소문을 제가 직접 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심장병 환자들이 모여들었을 리가 없다.
딱히 우리 병원에 왔어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하긴 21세기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
내 생각에 진짜 전문가, 주류 의학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어디부터는 할 수 없는지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거다.
메타 인지가 된다는 건데, 그 덕분에 차곡차곡 개선을 해 나갈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부정할 수 없는 특장점인데 단점이 아예 없진 않았다.
‘현대 의학이 포기한 환자들은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호스피스 병동이 그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죽음에 대한 관점이 달라서 그런가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지 못했다.
그런 환자들을 각종 사이비들이 치료할 수 있다고 현혹하면서 돈과 시간을, 종래에는 생명까지 빼먹었다.
“어어…… 피영시인이다…….”
“표정이…… 죽이러 왔구나.”
“해리…… 해리처럼?”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에이 망할 놈들.”
“쉿. 너도 죽고 싶어서 그래?”
“아니…… 참의사들을 자꾸 죽이니까…….”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자연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리스턴이야 웃고 있어도 무서운 사람이다 보니 우리가 걷는 길에 사람이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모세가 홍해를 갈랐던 것처럼 사람들이 좌우로 쫙 찢어졌다.
마음에 드는 소리만 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돌팔이에게 심장 맡기러 오는 사람들의 말까지 신경 쓰는 건 별로 현명한 일이 아니란 것이 내 생각이다.
“문은 열려 있구만그래.”
“해리보다 조심성이 부족하네요.”
“더 떳떳한가 보지. 보통 미친놈은 아닐 거야.”
“그럴 수밖에 없죠.”
심장…….
21세기에도 부담스러운 장기를 19세기에 턱턱 건드려?
한두 바퀴 돈 놈으로는 무리다.
“음.”
“으음.”
의원 안에 들어선 순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가 운영하던 도살장 아니, 병원에서는 피비린내가 났었거든.
비위생적인 도구와 바닥에 널브러진 고환 조각 그리고 여기저기 묻어 있는 핏자국까지…….
이제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잊히지가 않는다.
<디X블로> 게임을 VR로 플레이했다면 딱 그 느낌이었을 거 같다.
뭐 해리는 도살자라는 위명에 걸맞지 않게 힘없이 잡혀서 목매달려 죽긴 했지만.
“깨끗하네요?”
“그러네. 일단 피 냄새가 안 나. 사혈은 안 하는 건가.”
“그런가 본데요.”
“더 불안해지는군. 대체 어떤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아, 사혈에 대한 의견은 나와 리스턴이 꽤 다르다.
리스턴은 여전히 사혈이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하필 내가 시행했던 수술 중 태반이 안에 들이찬 피를 제거하는 방식이었기에 그렇다.
지금 기술로 완치가 가능한 질환을 애써 감별해 낸 결과물이지만, 그러다 보니 점점 사혈에 대한 믿음 자체는 공고해지는 거 같아 두렵다.
‘나중에 차차 수정해야지.’
아무튼, 우리는 나름 깨끗한 의원 내부를 지나 안으로 향했다.
“으, 으으!”
“역시.”
“뭔가 하고 있구만그래.”
당연하게도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19세기다.
아무리 멀쩡해 보인다 한들, 무조건 돌팔이 짓을 한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이렇게 그럴싸해 보이는 외관을 지닌 곳들이 더 무서워.
환자들이 죽어 나가도 보호자들이 그저 ‘아, 우리 가족이 약했구나!’ 하고 납득해 버리거든.
벌커덕.
내비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소리 따라 걸어가면 그만인 것을.
그렇게 우리는 바로 진료실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의사는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중년의 사내였다.
말이 중년이지 리스턴 형님과 비교해 그렇게 위로 보이지도 않았다.
머리 심기 전 리스턴과 비슷해 보인다고 보면 된다.
‘확실히…… 심는 게 낫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기다렸다.
다윈 때도 그렇고 원래 이럴 때 먼저 나서는 것이 리스턴이라 그랬다.
이제 슬슬 날카롭게 벼려진, 더 이상은 수술에 쓰이지 않는 리스턴칼로 저 수상쩍은 대머리가 들고 있는 도구를 베어…….
“지적인 관상이니 말로 할까.”
“응?”
“말로 하지. 우리 다…… 지성인 아닌가.”
버릴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이것이 동병상련의 정인가 보다.
또 리스턴이 좀 나이가 들기도 한 거 같다.
확실히 이전보다 불같은 면이 좀 줄었어.
“아…… 리스턴 경. 피영시인 경.”
상대는 자신을 제임스 호프라 소개하고는, 잠시 진료 중이던 환자를 내보냈다.
이제 보니 손을 통해 전기 고문을 받고 있던 환자는 어딘지 안심한 얼굴로 밖으로 향했다.
명의라고 해서 왔는데 너무 아파서 놀란 모양이다.
저대로 안 돌아올…… 거 같진 않다.
19세기는 고통으로 가득 찬 시대이기에 그렇다.
물론 그중에서도 지옥이 병원인 것은 맞다.
대체 세상 어딜 가야 전기 고문을 돈 내고 받겠어?
“그렇지 않아도 학회 때 잘 들었습니다. 심장 수술이라니…… 이 제임스, 감복했습니다.”
“아, 그때 있었나?”
“명색이 최초의 심장전문의라 자처하고 있는 사람인데 심장 관련 학회를 빠진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요.”
“하긴, 그것도 그렇구만.”
내 생각과는 별개로 둘의 대화는 부드럽게 잘 이어지고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놀랍다.
“아무튼, 우리가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앞으로 꽤 어려운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자네 환자 중에 수술이 아니고서는 안 될 거 같은 환자들이 있나?”
“아. 으음.”
제임스는 잠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보니 진료실 안에서 밖에 대기 중인 환자들 일부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많이 있죠.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고 있지만, 사실…… 제 생각에는 전기치료가 특별히 도움이 될 거 같진 않아요.”
아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뻔뻔하게 돈 받고 그런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자 제임스가 하하 웃었다.
그러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우선 류마티스심장병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죠. 이 병은 아주 특이하게 목의 통증으로 시작합니다. 아주 극심해서 물도 못 삼킬 정도지만 대개 1주일 이내에 좋아집니다. 물론 그 안에 사망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눈 대신 귀를 열었다.
‘이 새끼…… 진짜 많이 보긴 한 모양인데?’
경과가 그럴듯해서 그랬다.
확실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