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58)
검은 머리 영국 의사-458화(458/505)
458화 무모한 도전 [3]
내가 잠자코 있자, 안 그래도 제임스 호프와 동료 의식을 느끼고 있던 리스턴은 가만히 제임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덕분에 제임스 호프는 우리 앞에 선 의사 중에서는 참으로 드물게 자기 이론에 대해 차분히 떠들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같으면 여기저기 좀 맞기도 하고 강압적인 상태에서 자백하는 거나 들었지 이런 건 또 처음이라 나도 느낌이 색달랐다.
“그렇게 목이 아픈 증상이 나으면 싹 괜찮다가 몇 주 후에 관절염이 생깁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닌데…… 제가 볼 때는 애초에 목이 아픈 증상이 나타났을 때의 특성에 따라 다른 거 같습니다.”
“으음…….”
안 좋은 의미에서 색다르다는 건 아니었다.
이 사람은 뭔가 달랐다.
무작정 해 보고 보자 하는, 평균적인 영국 의사랑은 다르다 이 말이다.
철저하게 분석하고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봐야 치료는 전기치료나 하고 있지만 이건 이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시대의 한계라고 보는 게 옳다.
솔직히 21세기에도 현대 의학의 한계로 하나 마나 한 치료나 하는 경우도 있잖아?
전기치료는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런 걸 고려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제가 들여다보니 처음 목이 아플 때 편도에 노랗게 염증이 핀 거랑 아닌 거랑 확률이 달라요. 노랗게 염증이 핀 경우가 관절염으로 이환되는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문제는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모르겠다는 건데…… 아무래도 이 노란 염증이 문제인 거 같단 말이죠.”
나는 시방 제법 감탄한 참이다.
미아즈마 개념도 중구난방이고, 그 와중에 개별적인 미아즈마 즉 세균에 종류가 있어 같은 부위에 발생하는 감염 질환도 다 다를 수 있다는 개념은 나조차 퍼트릴 생각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 사람은 벌써 그걸 어느 정도 구분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 방향성도 정확했다.
노란 염증을 일으키는 균, 즉 A군 연쇄상구균(Group A Streptococcus)이 문제거든.
“그래서 그 염증을 제거해 봤습니다.”
“응?”
물론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염증을 제거한다는 말에 불안감이 훅 올라왔다.
약을 쓴다는 얘기는 아닐 거라 그랬다.
“어떻게……?”
나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왔다.
활발한 상호 작용에 만족한 제임스는 이런 내 속도 모른 채 껄껄 웃으며 답했다.
“긁어야죠. 이걸로.”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 둔 도구 하나를 보여 주면서였다.
그나마 핏자국 같은 게 묻어 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멸균에 신경을 쓰는 거 같지도 않았다.
조지프가 있었다면 갈! 하면서 달려들었을 거다.
내 눈초리가 좀 사나워졌다는 걸 알아챘는지 제임스는 말을 보탰다.
“아, 제 생각에…… 사람 입속은 애초에 더럽지 않나 싶어서요. 그냥 물로만 닦습니다.”
“그렇겠네. 하하.”
그럴싸한 개소리에 리스턴이 동의했다.
뭐라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라는 게 참으로 개탄스럽다.
‘사실…… 이비인후과 애들 편도 수술할 때 좀 간편하게 하긴 하지?’
풀 드랩(Drape)은 안 친다, 이 말이다.
하지만 기구 소독은 다 한다.
상처 내고 피가 나는데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전신마취에 관까지 삽입하고 하기 때문에, 편도 소독도 나름 하고 한다.
그래서 기구 소독이 의미가 있는 건데…….
그게 안 되는 시대에서는 사실상 기구 닦는 게 별 소용이 없을 거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해 봤는데…… 별 도움은 안 되더군요.”
“그런가? 제거를 했는데?”
“네. 아마 한참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아예 편도를 반으로 갈라 봤는데 그 환자는 거기서 난 피에 목구멍이 막혀서 죽었어요.”
“거참, 안 됐군.”
내가 그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동안에도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죽었다는 말도 나왔지만 분위기가 처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 시기 병원에서 안 죽어도 될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 정도는 그럴 만한 일이 아니라서 그랬다.
“한 세 명 그러고 나니까 이건 답이 아닌 거 같더군요.”
“포기가 빠르군그래.”
심지어 세 명밖에 안 된다?
진짜 별일 아니다.
보호자들도 딱히 뭐라 안 할 거다.
물론 도의적으로 돈으로 보상은 좀 해야겠지만 그 이상을 바라거나 부담을 느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약을 썼습니다.”
“아, 약.”
그래, 물리적인 제거가 불가능하다면 약으로 넘어가는 게 옳다.
애초에 편도염에 물리적인 제거라는 방법을 떠올렸다는 거부터가 실험적이다.
물론 이전 시대에서 이런 짓들을 다 해 본 덕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 거긴 하다.
“비소도 써 보고…… 수은도 써 보고…… 최근 유행하는 니트로도 써보고요.”
“니트로?”
“아, 모르셨구나. 두 분께서 운영하고 계시는 연구소에 지금 유럽의 여러 귀족들이나 사업가들이 자극을 받아서요. 엄청 투자하고 있거든요. 이거저거 막 나와요.”
“그래서 그게 뭔데?”
니트로…….
나도 어디서 들어 본 듯한 기억이 있다.
사람 몸에 쓸 만한 물질은 아니었던 거 같다.
뭔가 펑 하고 터질 거 같은 느낌이잖아?
‘아, <니드 X 스피드> 자동차 게임에서 나와.’
부스터 아이템 아니었나?
게임 만드는 게 허투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다 조사하고 만든 걸 거다.
“그…… 뭔가 새로운 거라고 하던데요? 이탈리아에서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새로운 거야? 그럼 써 볼 수 있지.”
방금 대화에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았다면 아직 멀은 거다.
19세기는 과학의 시대이지 않나.
새로운 물질이 나오면 여기저기 다 써 보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이렇다 할 약이 없는 의료계에서 제일 적극적이었다.
그게 독이면 어쩌냐고?
비소랑 수은은 그럼 독이 아닌가?
“그렇죠. 근데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그렇구만…… 흐음…….”
아무튼, 니트로.
기억해 둬야겠다.
뭔지 알아보고 진짜 쓸 만하면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쓸 수 있는 약이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
“요약하면 목 아픈 상태에서의 치료나 관절염으로의 이환을 예방하는 건 아직 연구 중에 있다는 얘기지?”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 경과를 관찰하고 있는 게 답니다.”
“그래, 그 경과는 어떻지?”
“말씀드려야죠, 당연히.”
치료는 역시나 별 성과가 없어 보였다.
괜찮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어.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 말이다.
“일단 그렇게 목이 아프고 몇 주가 지나면 관절염이 생긴다고 했죠?”
“그렇지.”
“손목, 발목, 무릎, 팔꿈치 등을 주로 아파합니다. 버드나무 껍질 우린 물을 먹이면 조금 나아지긴 하지만 완전히 좋아지진 않아요. 그리고…… 제일 문제가 심장입니다, 심장.”
“그래, 그게 문제야.”
“어릴수록 심장 증상이 잘 생기는 거 같습니다. 애들은 거의 절반 이상이 생기는 거 같아요.”
“그거…… 그건 별로 좋지 못한 일인데.”
게다가 이 양반…….
분류, 분석은 21세기 기준에서 봐도 수준급인 거 같다.
솔직히 나도 이제 이런 질환은 다 기억이 나진 않거든?
막말로 학생 때가 벌써 몇 년 전인데 기억이 나겠어.
심지어 내과도 아니고 외과 전공이다 보니 졸업하고는 단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다.
아마 내과를 했어도 비슷했을 거다.
이런 질환,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어렵거든.
“네, 일단 대개 심장이 좀 빨리 뜁니다. 이걸로 들어 보면 극명하게 차이가 나요.”
“애들은 원래 좀 빨리 뛰잖아?”
“그보다 더 빨라져요. 그리고, 이건 좀 특이한 발견인데요.”
“어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도 관찰됩니다.”
“허어…… 빨리 뛰었다가 느리게 뛰었다가 한다는 얘기지?”
“네.”
“그러다가 덜컥 멈춰서 가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죠.”
부정맥도 생길 수 있다는 건 이제 알았다.
아마 배우긴 했을 텐데 까먹었으니 이렇게 말해도 무방할 거다.
시험 문제 틀려놓고 ‘아, 맞다!’ 하는 거만큼 추한 것도 없잖아?
이 김태평 늘 떳떳하게만 살아온 사람이다.
“역시 그런가.”
“네? 알고 계셨습니까?”
“아무래도 그럴 거라 생각했지. 나이 든 사람의 심장도 들어 보셨나?”
아무튼, 둘만 대화하게 두는 것도 예는 아닌 거 같아 대강 각을 보다 끼어들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들었다는 걸 티를 내야 해서 부득이하게 아는 척도 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처음 안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내 질문에 제임스 호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 생각에는 아이일 때 저런 증상을 보였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이렇게 되는 거 같아요. 뭐…… 그런 의견을 전에도 냈던 사람이 있고요.”
“그래?”
“네, 물론이죠. 이거 얼마나 무서운 병입니까. 갑자기 픽픽 죽어 나가지 않습니까.”
“하긴…… 그런 병이지.”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나이 어린아이가 심장으로 죽어 나가는 경우가 21세기라고 해서 왜 없겠나.
아주 드물어졌지만 류마티스열로 인해 심장이 망가지는 케이스도 여전히 있긴 했다.
가와사키병이라고 해서 어린 시절에 걸릴 수 있는 열병의 합병증 또한 심장을 망가뜨릴 수 있었다.
이건 경과가 더 빨라서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갑자기 급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사람들 심장을 들어 보면 쉭쉭 잡음이 들려요.”
“잡음……?”
“네. 처음엔 이게 왜 이러나 했거든요?”
“이제는 아나? 해부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추론을 한 거야?”
“네? 부검했죠.”
“아, 부검.”
류마티스열 같은 경우에는 심근염에 이환이 되고 시간이 더 지나면 보통 심장의 판막이 망가지게 된다.
판막이란, 심실에서 피를 쥐어짤 때 심방 쪽의 판막은 그쪽으로 역류하지 않도록 덜컥 닫히고 반대로 대동맥 쪽의 판막은 그쪽으로 피가 잘 가도록 열리는 일종의 자동문이라고 보면 된다.
이게 협착이 생기면 심실이 더 많은 힘을 줘야 피를 보낼 수 있으니 심장에 무리가 가게 되고 그로 인해 심장이 커지게 되는데 결국에는 심장 기능 부전, 즉 심부전이 생긴다.
반대로 헐렁해지면 피가 자꾸 역류를 하니까, 이때도 같은 양의 피를 제대로 보내기 위해 심장이 무리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망가지게 된다.
“부검을 해 봤더니 여기서 여기로 향하는 곳의 판막, 즉 승모판이 망가져 있더군요. 심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커져 있고요.”
“이렇게 되고 안 죽을 수 있는 확률이 있나? 자네는 많이 봤으니 알 거 아니야.”
리스턴은 제임스 호프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제임스 호프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무조건 죽어요.”
“무조건?”
“네. 그래서 수술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솔직히 심장에 칼을 어찌 댑니까? 헌데 이번 학회에 발표하시는 걸 보고 용기를 얻었죠. 벌써 수술받겠다는 사람도 여럿 모아 놨습니다.”
“그래……?”
“혹시 가능하시다면 저와 같이 수술에 들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환자들도 좋아할 겁니다.”
이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나도 연습을 좀 해야 하거든.
그 대상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예정된, 그래서 당장의 죽음을 각오한 환자들이라고 하면 좀 괜찮을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