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6화(46/505)
46화 수액 [2]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화내서 얼렁뚱땅 때우는 건 자주 쓰지는 못할 거 같았다.
둘이 어찌나 투덜대던지.
조지프는 의사의 꿈을 키워 준 것이 내가 아니었다면, 앨프리드는 내가 일종의 생명의 은인이 아니었다면 끓는 물을 내게 부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극심한 의문을 표했다.
‘그래도 뭐…….’
나는 환자를 지키고 있었다.
그 사이 애들이 물을 끓여 왔고.
식히는 동안, 그러니까 기다리는 사이 나는 혈관을 잡았다.
“어…… 근데 그렇게 큰 혈관을 잡아도 되는…… 건가?”
그냥 토니켓(팔을 묶는 고무줄) 감고 피 뽑듯 잡을 수는 없었다.
일단 고무나 플라스틱과 같은 신소재가 없는 시대다 보니 라인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아니, 그 전에 라인을 잡는다는 개념이 없긴 하지.
하여간 아무것도 없는 시대이지 않나?
차라리…….
진짜 차라리 중심 정맥관이 더 안전해 보였다.
“바늘이 너무 커…….”
“아…….”
말 그대로 바늘이 컸다.
대체역사물 보면 어? 조선 시대 야장들도 주문만 하면 미세하게 다 만들 수 있다고 하던데, 19세기 런던 놈들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을 지경이었다.
애초에 주사용이 아니라 피 뽑는, 그러니까 살해용인가 싶을 정도로 바늘이 굵었다.
지이익.
하여간 나는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환자의 경정맥을 찾아 거기에 바늘을 꽂았다.
“으, 으으으으.”
통증?
통증이야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는 의식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조차 신음을 엄청나게 흘려 댔다.
“야, 마취하면 안 돼?”
보다 못한 앨프리드가 말을 꺼냈다.
시선은 환자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맴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마어마한 고통을 직접 겪어 본 적이 있다 보니 남 일 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혈압이 떨어지거나 호흡이 억제될 수도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
현재 내가 확인한 마취제는 오직 하나, 아산화질소뿐이지 않나.
그 가스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처음엔 오히려 좀 각성을 시키는 듯하다가 마취를 시키고, 거기서 더 지나면 호흡 억제을 통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정도?
이 환자는 빈말로 봐도 건강하다는 말은 못 할 상황인데 여기서 그걸 써?
21세기에 수술 과들이 괜히 수술하기 전에 마취해도 괜찮을지 여부를 확인했겠나.
마취제가 엄청나게 발전한 상황에서도 그랬는데 지금 무턱대고 쓰면 어찌 될까.
“한 번 찌르는 건데 뭐.”
“거의 칼인데……? 칼로 쑤시면서 한 번이라고 하면 그게 되나?”
“뭐…… 일단 됐잖아요.”
그래서 마취제를 쓰지 못했다.
핑계가 살짝 비인간적이긴 했다만…….
하여간에 찔러 넣는 데 성공했다.
잘 못 하는 놈이면 이러다 경정맥이 아니라 경동맥을 찌르기도 한다는데, 나야 뭐 천재 외과 의사이지 않나.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시간에, 심지어 피를 워낙 많이 흘려서 혈관벽끼리 숫제 들러붙었다 해도 좋을 지경인 혈관 틈으로 이렇게 굵은 혈관을 꽂아 넣었다.
“물 식었지?”
“응? 아니? 아직도 뜨거운데.”
“어어! 손 넣지 말고!”
“왜?”
“뜨…… 뜨거우니까.”
미친놈이 기껏 끓여 왔더니 손가락을 넣으려 했다.
아니, 이미 넣었을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어떻게 들고 왔는지 못 봤잖아.
그렇다고 다시 끓여 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환자가 존나 강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
애초에 지금 이게 무균 시술이라고 할 수 있나?
기껏해야 염화석회로 피부를 닦고, 끓는 물에 담갔던 주삿바늘을 꽂은 건데.
게다가 환자의 몸 다른 부위는 아직도 흙투성이었다.
‘지금만 문제가 아니지…….’
생각해 보니까 제멜 그 새끼가 역시 개새끼였다.
피만 낸 게 아니지 않나.
설마하니 피 내려고 찌르는 거…… 그게 바늘이 되었건 거위 깃털이 되었건 간에 소독을 했겠나?
그럴 리가 없었다.
감염이 될 거면 이미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끓이지 않은 물을 섞어서 넣을까 하는 생각이 들진 못했다.
‘템스강…… 그 개똥물…….’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런던은 상하수도 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랬다면 응? 이렇게 물에서 냄새가 나겠어?
한번 끓였는데도 지랄인데 안 끓인 걸……?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살해 방법이었다.
‘다음부터는…… 급할 때 쓸 수 있게 증류수를 좀 만들어 둘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잡생각이라고 쓰고 한탄이라고 읽어도 좋을 만한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슬슬 물이 식은 게 느껴졌다.
내가 만졌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철제 그릇을 통해 전해지는 온도가 그랬다.
“어, 어! 환자 발작한다!”
그때 마침 환자의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문 일도 아니었다.
적어도 외상 환자를 본 적이 있다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출혈량이 많아서 머리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면 간혹 이럴 수 있었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출혈 원인을 잡든지 아니면 피를 주든지 해야 했다.
지금은 둘 다 불가하니 물이라도 줘야 했다.
묽은 피라도, 뭐가 되었건 간에 몸 전체에 돌게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니들은 잡아. 그거 절대 빠지게 두지 말고.”
“어, 어!”
“응!”
하여간, 조지프와 앨프리드는 아는 게 없는 것이지 멍청한 놈들은 아니었다.
부리나케 전신 경련을 일으키는 환자의 몸을 붙잡으면서도 용케 내가 아까 꽂아 넣은 바늘은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이게 꽤 넣기 어려운 것이고, 지금 빠지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게 된 모양이었다.
“하아…….”
그렇다고 상황이 많이 좋아졌냐.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단 라인이 없었다.
들어간 바늘도 그냥 바늘 그 자체로 남아 있는 상황인데 고무줄이 있겠나.
‘여러모로…… 콘돔 만들어지면 따로 만들 게 너무 많겠는데……?’
잠시 공장인지 연구실인지 모를 곳에 널려 있던 거무죽죽한 길쭉이들을 떠올렸다가, 나는 일단 깔때기에 천천히 물을 들이부었다.
조심스레 붓는다고 부었는데도 양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애초에 혈관이 너무 들러붙어 있기도 했고.
“와…….”
경정맥이 부풀어 오르는 게 보였다.
‘이거…… 공기 섞여 들어가면 바로 막히겠는데?’
공기 색전증(Air embolism).
혈관에 과량의 공기가 섞여 들어가면 생기는 일인데, 별로 들어 본 적은 없을 터였다.
왜냐면 그럴 일이 거의 없으니까.
생각해 보라.
공기가 끼어 들어갈 틈이 있었는지를.
수액도 라인도 죄다 빈 공간 아닌가.
게다가 넣는 사람도 숙달된 간호사인데 사고가 나겠나?
‘시벌…….’
허나 이곳은 예외였다.
물을 그냥 공기 중에서 들이붓고 있다 보니 참 사고 나기 좋은 환경이었다.
물을 너무 세게 들이붓게 되면 공기 방울이 부글거리게 될 테고, 그게 들어가면 어디가 막혀도 죽을 터였다.
지금 이 환자는 자그마한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니까.
“어…… 멎는다.”
그것과는 별개로, 콸콸 들이부은 물은 환자의 쪼그라들었던 혈장 볼륨을 실시간으로 회복시키고 있었다.
비록 묽디묽은 피일지언정 머리를 비롯해 여기저기로 피를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단 얘기였다.
이게 피였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었을 테지만…….
“좋아.”
“와…… 이게 어떻게……?”
“진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둘의 얼굴 말마따나 이 정도 결과만 해도 대단한 일이긴 했다.
이 시기에 경련은 곧 죽음을 의미하지 않았겠나?
수혈도 못 하고 볼륨에 대한 개념도 없는 시대에 저혈류로 인한 경련을 대체 무슨 수로 고칠까.
단기적인 효과라도 볼 수 있는 치료조차 없었을 터였다.
이 둘이 기적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부터는…….”
이 둘은 그래도 됐다.
날 밀고할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 말이 퍼져 나가면 혹 어찌 될는지 걱정이 됐다.
특히 제멜.
그놈이 죽인 환자를 대놓고 살린 상황이잖아?
심지어 우리의 로버트 박사님은 고향에 내려가 있었고.
“기도하자.”
“응?”
“기도?”
해서 나는 놀라운 신앙심을 입증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제부터는 하늘에 달렸어…….’
따지고 보면 엄청 놀라운 일도 아니긴 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기도라도 해야지 뭐.
지금 상황에서 항생제를 주겠어, 아니면 피를 주겠어.
물이나 주구장창 줘야 하는데, 출혈량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피 검사라는 게 불가해서 그랬다.
‘모르긴 해도, 헤모글로빈이 한 5 미만일 것 같은데(정상 수치 13~17)…….’
할머니들은 5로도 별 증상 없이 지내는 사람들도 있긴 있었다.
천천히, 영양이나 만성 질환 등의 이유로 떨어지는 경우에는 우리 몸이 적응이라는 걸 하거든.
하지만 건강했던 성인에서, 증상이라고 해 봐야 두통밖에 없었던 남자가 그렇게 떨어진다면?
괜히 죽었다고 오인되어서 관짝에 들어갔다가 나온 게 아니었다.
“그, 그래. 기도하자.”
“역시 평이가 믿음이 참 좋아.”
나머지 둘은 영문 모를 얼굴로 내 양손을 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된 기도긴 했지만 둘 다 곧잘 했다.
나고 자랄 때부터 교인으로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끼이익.
그쯤 되어서 강의실 문이 다시 열렸다.
한창 경련이네 뭘 줘야 되네 하면서 소란스럽다가 조용해졌으니 궁금하지 않겠나.
셋 중에 제일 나일론 신자인 나만 실눈을 뜨고 들어오는 놈들을 살폈다.
타고난 눈이 작다 보니 또 이럴 땐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뜬 눈으로 뭘 볼 수 있다고는 상상을 못 하는 느낌이랄까.
“아…….”
“명복이라도 비는 건가.”
“오…….”
“거참. 이렇게 신실한 학생들을 두고 무슨 말을 한 건가, 자네.”
블런델이 끼어 있었다.
아마 콜린이 제멜을 부르려다가 블런델을 부른 모양이었다.
저 인간이야 로버트 리스턴의 부하라는 말을 들어도 억울할 게 없는 사람이니, 그 교수님과 의형제를 맺은 내가 어렵지 않겠나.
그 참에 기도하고 있는 나를 봤으니 편을 들 수밖에.
“아니.”
“뭐. 자네는 기도하는 장면을 두고도 불손한 생각을 품나?”
“아니, 아닙니다. 하지만 저 환자는…….”
“무덤에서 꺼내 왔다는 증거라도 있나? 게다가 방금 손가락 움직였잖아. 생매장이라도 했다는 건가? 의대생이라는 사람이 도시 괴담에 홀려서야 이거 되겠어?”
“진짜…… 진짠데.”
“어허! 집안 믿고 까부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일세. 그만하게.”
콜린은 억울해 보였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당한 걸 보라고.
웃음 가스 맡고 뒈질 만큼 맞았지, 그다음 날에는 생니까지 뽑혔는데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지.
시신 파헤쳐 온 게 분명한데 아니라지.
심지어 신성해 보이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지.
‘응…… 억울해 보이기만 한 얼굴이 아닌데……?’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가 좀 그렇긴 한데…… 난 천재란 말이지.
자고로 천재란 존재는 의도치 않게 주변에 상처를 주는 존재다.
특히 어릴 땐, 나도 인성이 완성되지 못해서 굳이 티를 냈더랬다.
자기애적 상처를 마구 주고 살았단 얘긴데, 그중 일부가 저런 표정을 짓다가 사고를 쳤다.
다시 말하면, 지금 콜린은 딱 사고 치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