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63)
검은 머리 영국 의사-463화(463/505)
463화 마취의 진보 [4]
고리대금업은 말이 좀 그래서 그렇지 사실 유서 깊은 사업이라고 보면 된다.
돈 빌려주고 이자 좀 받는 일이니 딱히 비난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굳이 저리로 받을 필요가 없으니까 고리로 받는 건데 뭐?
게다가 돈이 필요해서 빌린 거 아닌가?
세상 누구도 제발 내 돈 좀 빌려 가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 돈 좀 빌려 달라고 애원하다가 갚을 때가 되니 생각이 달라지는 놈들이 태반이다.
‘이렇게만 보면 돈 빌린 놈들이 잘못인 거 같지만……?’
특히 21세기 대한민국은 빚졌다가 파산하는 이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투기하는 이들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역사 대부분이 농경 사회였고, 실질적인 자본주의가 시작된 게 얼마 안 되어서 그렇다.
농민들은 원래 도시민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다.
도시민들도 농민을 이해하기 어렵고.
아무튼, 살다 보면 돈이 필요할 때가 생기는 법이다.
아프건, 흉년이 들었건, 뭔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건 사실 사회 보장 제도의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
‘근데 기독교에서는 그걸 금했었지.’
원래 같으면 영주님이 해야 하는 일인데, 중세 기독교에서는 돈 빌려주는 게 불법이었다.
그냥 불법이 아니라 어기면 지옥 가는 종류의 불법이다 보니 영주님도 할 수가 없었다.
영지민이 소중하긴 해도 걔들 밥 먹이고 지옥 갈 만큼 소중하진 않을 거잖아.
해서 이단인 유태인들에게 그 일을 하도록 시켰더랬다.
어차피 이단이라 땅도 안 줘서 농사도 못 짓던 놈들이니만큼 처음엔 별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사회가 점차 발전하면서 유태인들이 독점하는 금융 산업은 단지 구제 차원의 업무에서 벗어나 사업, 투자 등으로 영역을 급속도로 확장했다.
‘괜히 유태인들이 부자가 된 게 아니지.’
그리고 마침내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농경 사회는 끝장이 났다.
바야흐로 도시민들의 시대가 열렸다, 이건데, 유태인들은 이미 천년도 전부터 반강제로 도시민으로 살아온 이들 아닌가.
경쟁이 제대로 되겠어?
거대 자본가들 중 태반이 유태인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더해 힘까지 있는 게 귀족 나리들 아닌가.
돈이 돈을 낳는 사업이 있는데 그걸 그냥 두겠어?
‘우리 리스턴 형님이야 여전히 독실하지만…….’
이제 좀 배우고 힘 있다 하는 놈들 중에 신실한 사람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이쪽입니다.”
신을 잊다니…….
접신하는 자로서 용서할 수 없다.
“티에피영……? 표정이 왜…….”
“아…… 신성 모독을 저지르는 놈들이니까.”
“네? 그런 건 아닌데.”
“내가 볼 땐 그래. 내 말을 의심하는 건가요?”
“아, 아닙니다. 어느 누가 감히 티에피영 님을…….”
“그래, 오늘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마시죠.”
주님의 이름으로 네놈들을 처단하겠다.
라는 생각으로 감방 안으로 들어섰다.
말이 감방이지 여긴 거의 사무실이었다.
제대로 된 구치소는 지하실에 있는 데 반해 여긴…… 이거 뭐야, 창문인가, 저거 설마?
“어…….”
“뭐야?”
“설마?”
심지어 묶여 있지도 않다.
역시 권력이 좋긴 좋다.
‘내가 더 세니 나는 짱이겠네.’
나중에 큰 잘못 저질러도 최악의 상황에 처할 일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되지.
나는 의사잖아.
“이거 뭐 이래요? 왜 이렇게 잘해 줍니까?”
“일단…… 유죄 확정이 아니거든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솔직해집시다, 우리.”
정신을 차리고 물어보니 경관이 허둥지둥하면서 답했다.
어이가 없었다.
니들이 언제…….
무죄 추정을 했냐.
거의 뭐 조선 시대 관상가보다 더한 관상가 나리들 아니었나?
생긴 것만 보고 강도네 살인자네 하던 놈들이 권력 앞에서는 이토록 쪼그라드는 걸 보고 있자니 참 세상 살이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단 생각이 들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이건 뭐 내가 뭐라고 하기도 뭐하다.
뭘 얼마나 가졌냐에 따라 판결조차 달라지는 게 대한민국이잖아.
애초에 대한민국의 정신의 여신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그……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도와 달라고.”
“도와야지. 일단 물어는 보고.”
“네네.”
나는 비질란테가 된 심정과 이단 심문관이 된 심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죄수들에게 향했다.
여느 죄수들과는 때깔부터가 달랐다.
입고 있는 옷도 고급인 데다가 피부도 고왔다.
그래 봐야 21세기 대한민국 기준으로 보면 썩은 수준이지만.
“이봐.”
“설마…… 티에피영?”
“그래, 나다, X새끼야.”
“응?”
사람들은 보통 많이 가진 사람을 두려워한다.
가진 걸로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보통은 그게 맞긴 하다.
상대가 나보다 가진 게 많으면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더 강하다?
“형님. 얘가 제일 시끄럽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끕.”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일단 무력도 내가 위다.
리스턴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손에 제일 말 많던 놈이 끌려왔다.
다른 놈이 습관처럼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를 시전했지만 상관없다.
“어 알지. 조지 남작네 애들 아냐? 남작이 나한테 뭐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냐?”
“아니…….”
“그래도 법과 절차가…….”
“벌주려는 게 아닌데? 이제부터 니네 건강 검진 시간이야.”
“어어……?”
“뭔……?”
남작 따리가 뭘 할 수 있나?
물론 상대는 세습 귀족이니 직접 부딪쳤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에 고작해야 하수인 몇 놈 때문에 남작이 나서는 것이 더 우습다.
게다가 나는 얘네들에게 벌을 주려는 게 아니다.
목구멍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혹시 큰 병은 없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거다.
“탁자를 대령하라!”
“네이!”
내 명에 따라 조지프와 콜린이 접이식 탁자를 주르륵 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감방이 다른 감방에 비해 넓고 쾌적했다고는 하나 탁자까지 펴기는 좀 그래서 죄 밖으로 끌고 나온 참이었다.
별로 어렵진 않았다.
리스턴이 한 손으로 제일 시끄럽고 덩치 큰 놈을 잡아다가 들어 올리곤, 다음 놈부터는 좀 가볍게 잘라서 들 거라고 했더니 얌전히 따라 나왔다.
잘한 짓이다.
내가 봤을 때 우리 형님 농담 아니었거든.
“누워.”
“어…….”
“눕힘 당하고 싶어?”
“아, 아닙니다.”
아무튼, 그렇게 편 탁자 위에 여태껏 대롱대롱 들려 있던 죄수를 눕게 했다.
경찰서 앞이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그냥 대로변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경찰들이 뭐 하는 짓이냐’라고 묻는 사람이야 당연히 하나도 없었다.
“워…….”
“뭐 먹을 거 없나?”
“사람들 오라고 해!”
“맥주! 맥주!”
오히려 좋아했다.
그래, 생각해 보면 국가 기관에서도 간간이 이런 거 해 주긴 해야 한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나?
즐거움이 있어야지.
끼리릭.
우리야 뭐 전문 엔터테이너만큼이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게 익숙한 사람이다.
앨프리드도 그렇게 된 지 오래다 보니 별 망설임도 없이 가스 밸브를 돌렸다.
“으, 으읏.”
“저항하지 말고. 어차피 여기서 못 나가, 너.”
거기서 흘러나오는 가스에 놀란 죄수가 버둥거렸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우리가 편 탁자에는 가죽 벨트가 있었고, 리스턴의 철저한 교육을 받은 내 제자들은 그걸로 순식간에 사람 결박하는 데 있어 달인이다.
앨프리드는 굳이 그런 놈을 향해 절망을 속삭인 셈이었다.
“이제 됐습니다.”
최대한 버텨 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과 20초가 채 지나기 전에 정신을 잃었다.
앨프리드는 그런 죄수의 바이탈 사인, 즉 호흡수와 맥박과 혈압을 잰 후 내게 보고했다.
약간 늘어지긴 하는데, 그래도 뭐…….
워낙 건강체여서 잘 버티고 있었다.
“그럼…….”
나는 그 죄수에게 미리 준비해 둔 복어 독을 주사했다.
아무 데나 찔러 넣으면 안 되기 때문에 혈관을 찾아서 주입했다.
“오…….”
“허…….”
21세기에는 아무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정맥주사지만 여기선 아니다.
애초에 혈관 찾아서 뭔가 넣는 게 희귀한 일인 세상이기에 그렇다.
사실 혈관에 넣어도 되는 게 거의 없기도 하고.
아무튼, 덕분에 나는 별것도 아닌 시술에 환호성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게 복어 독인 줄 알아도 저럴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나는 지금 안락사를 시행한 것일 수도 있다.
나름의 준비를 해 오긴 했지만, 말 그대로 나름의 준비라 그렇다.
-누구나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뭐 이런 말도 있잖아?
마이클 타이슨이 한 말인데, 질환은 타이슨보다 훨씬 무서운 놈이다.
“어…….”
“확실히…….”
독을 주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죄수의 입술이 퍼레지기 시작했다.
청색증이 왔다, 이 말이다.
놀랍게도 이 증상에 대해서는 그리스 시절, 즉 히포크라테스 때 이미 기술이 되어 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 말인데…….
이건 비단 의사들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상식이었다.
이 시대는 일반인들 또한 일상에서 워낙 많은 죽음을 지켜보기에 그랬다.
“어어.”
“이거 뭐야.”
“사형이었어?”
“아, 하긴. 티에피영 경 아닌가…….”
“죽음을 부르는 자…….”
“누가 그러더만. 살린 만큼 죽여야 한다고…….”
그러다 보니 주변에 모여든 이들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좋아.”
“좋아……?”
“역시…….”
“누, 눈 마주치지 마.”
죽어 가고 있지만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다.
“자, 관 줘 봐. 형님은 여차하면 째야 되니까 칼 들고요.”
“어. 근데…… 이거…… 이걸 사람 목에 넣어도 되나?”
“될 겁니다, 아마.”
“아마……?”
“형님도 철 말고 다른 건 넣어 본 적 있지 않아요?”
“뭔 소리…… 아. 하긴 이거보다 크지. 근데 그건 쇠가 아니잖아…….”
리스턴의 얼굴이 좀 붉어졌다.
아직 미성년자인 다른 제자들은 뭔 말인지 몰라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나도 말해 놓고 좀 놀랐다.
리스턴이 이것보다도 크다니.
‘시벌놈.’
나는 욕지거리를 하면서, 그러나 용기를 얻은 채 기역 자 형태의 쇳덩이로 환자의 혀를 눌렀다.
그사이에도 환자의 얼굴은 점점 파래지고 있었다.
“읍!”
때문에 콜린은 평소보다도 더 다급하게 불빛을 가져다 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보이진 않았다.
당연했다.
내 머리가 가리고 있잖아.
21세기에는 그래서 후두경에서 불빛이 나오게 만든다.
‘그런 생각해 봐야 아무 소용없지.’
되지도 않을 거 염불 외워서 뭐 해.
그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야…….
빡.
아.
이게 생각보다 굴곡진 쇳덩이도 잘 안 들어간다.
소리가 나서 보니까 얘 앞니가 둘 다 나갔다.
부러진 꼬락서니를 보니 애초에 앞니가 좀 약했던 거 같긴 한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피가 막 나!
“형님!”
피가 안 날 때도 안 들어갔는데 지금 되겠나?
“음!”
해서 기관절개술을 시행하도록 했다.
목을 벴다, 이 말이다.
“어이구…….”
“무슨 아주 큰 죄를 저지른 모양이지?”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