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64)
검은 머리 영국 의사-464화(464/505)
464화 마취의 진보 [5]
리스턴 형님은 내가 들고 있던 쇠관을 뺏어다가 환자의 절개창에 쑤셔 박았다.
꽤 위급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목에는 제법 깔끔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확실히 리스턴은 재능이 있다.
아니, 미친 수준이야.
한 번만 알려 주면 거즘 비슷하게 할 수 있을뿐더러 연습 좀 하면 나보다 나아진다.
‘뭐…… 주로 응급, 거친 수술 위주로 잘하긴 하지만…….’
이건 재능 탓이 아니라 성격 탓일 거다.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성격도 재능의 일종이 되는 분야가 수술이긴 하니 별 의미 없는 말이긴 하다.
실제로 성질 급한 사람은 신경외과나 안과 수술 못 하거든.
안과야 부위가 작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신경외과는 왜? 싶을 수도 있는데…….
한 번이라도 신경외과 수술 장면 녹화한 거 보면 바로 이해 갈 거다.
특히 Brain 파트는 몇 시간 동안 1cm 안쪽에서 깔짝대야 한다.
속 답답해서 뒈져 진짜로…….
“존!”
“네!”
“인계받았지?”
“네, 물론입니다.”
지금 발생한 호흡 부전은 내가 주입한 복어 독에 의한 것이지 않나.
근육이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숨을 안 쉬는 게 아니라 못 쉬는 거다, 이 말이다.
그냥 구멍만 뚫었다고 갑자기 환자가 숨을 쉬진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해서 우리가 억지로 숨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아직 인공호흡기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바이오 로봇을 활용해야만 했다.
1호기 존 스노가 풀무를 개량해 만든 앰부백을 들고 나섰다.
“그래. 네 손에 목숨이 달렸어.”
“그렇게 말씀하시니 자신이 없어집니다.”
“근데 죽어도 싼 놈이긴 해.”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이 확 놓이네요.”
그러곤 내 조언에 따라 방금 박아 넣은 쇠관에 앰부백을 연결하고 공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냥 일반적인 앰부백이 아니라 고무호스로 가스통과 연결이 된 녀석이었다.
가스통에는 당연히 산소가 들어 있었다.
저게 가능했던 건 다 19세기 프랑스 혁명 때 목 잘려 죽은 라부아지에 덕분이라고 보면 된다.
세금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한 죄로, 또 대중의 미움을 산 죄로 죽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 실험이라는 게 인류의 진보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살려 주는 게 옳았다고 생각한다.
‘괜히…… 빠게뜨 놈들이 미개하단 소리 듣는 게 아니지…….’
우리 영국이었으면 어떻게든 살렸다.
애초에 영국은 혁명도 명예롭게 해서 명예 혁명이었잖아.
그에 비해 저 미개한 것들은 단두대나 만들고 마구잡이로 죽였다.
심지어 단두대 만든 놈도 단두대에서 죽었잖아?
마리 앙투아네트도 지금 와서 보면 억울하기만 하다.
가짜 뉴스에 의해 악녀가 된 채 대중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거니까.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어? 소문에 우르르 움직이냐…… 그것도 그렇게 폭력적으로?’
그걸 나중에 ‘우리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입니다’라고 이미지 메이킹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소름이 돋아요, 아주.
정의로운 척은 혼자 다 하는데 뒤로는 2차 세계 대전 끝났는데도 나는 알제리 못 잃어, 베트남 못 잃어 시전하다가 깨갱했다.
그에 비해 우리 영국은…….
어?
어…….
그래, 대놓고 나쁜 짓을…….
“평?”
“아아.”
이건 나중에 차차 설명하는 게 옳을 거 같다.
지금은 바쁘니까 결론만 말한다.
영국이 프랑스보다 훨씬 나아.
“히익. 살, 살려 주십쇼!”
리스턴의 말에 따라 나는 앨프리드와 함께 다음 타자에게로 이동했다.
녀석은 방금 우리가 살려 둔 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공포에 떨고 있길래 이상해서 뒤를 보니 피가 좀 나긴 했다.
내가 실수를 하기도 했고 형님도 목을 쨌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작 저 죄수는 조용한데 이놈은 시끄럽게 굴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살려달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왜 죽이니?”
“으으! 살려 줘!”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더 발작하고 지랄이다.
“사, 살려 주십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를!”
이놈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죄수들만 그러고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저치들이 기대하는 눈빛이지? 아무리 봐도?’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시민들조차 죽음을 기대하고 있다.
억울했다.
해서 뭔가 하기 전에 이 오해부터 좀 풀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푸나 하는 걱정 따위는 없었다.
이미 수천 년 전에 나와 같은 오해를 샀던 성인이 한 분 계셨거든.
‘이게 예수님이 느꼈을 감정인가……!’
하긴, 생각해 보면 범인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조선에서도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위버멘시가 걷는 길을 이들이 바로 알아보리라 생각하는 건 너무한 기대다.
‘주여…….’
나는 예수님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답은 없었다.
제자 새끼들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졸라 고독하구만…….’
예수님 때는 그래도 제자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잖아?
내가 뭐 어?
그리스도를 바라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
내가 바란 것은 그저 위버멘시다.
하지만 아무도 운을 안 떼는데 혼자 위버멘시네 하면 좀 그렇긴 할 거 같다.
너무 없어 보이잖아.
“나는 인자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살리러 온 사람이야.”
“평……?”
“맞잖아요? 의사가 그럼 사람 살리러 왔지 죽이어 와?”
“아니, 뭐…… 그건 그렇지. 근데 지금 이런 걸 보여 주고…….”
해서 한참 격을 낮추어서 인자라 했다.
물론 예수님도 자신을 일컬어 인자라 하긴 했는데…….
나 정도면 어? 이 정도는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살려 준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야.
“이런 거라뇨?”
“사람이…… 죽…….”
“안 죽었어요. 이대로 좀 두면 살아납니다!”
“그, 그래.”
“그리고 이 실험을 통해 숱한 사람들이 살아날 거에요.”
“그, 그래. 고정하게. 내가 미안해.”
“휴.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랴!”
“그래, 그래. 여기 다 참새 새끼들이지. 맞지? 어? 니네 다 참새잖아!”
억울하다 보니 금세 언성이 높아졌다.
리스턴도 날 말리려다 보니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이들의 얼굴이 왜인지 모르게 새하얘졌다.
“짹.”
“짹짹!”
그러더니 갑자기 참새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내가 좀 한심해졌다.
이런 놈들에게 나를 증명하려고 했다니…….
“허허허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짹짹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더 강해졌다.
“실험이나 하자.”
“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예수님도 자기 생전에는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지 않았나.
어찌나 억울하셨던지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도 했더랬다.
허나 후대를 생각해 보면 어떻지?
신이 되었다.
아무리 낮게 쳐도 4대 성인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되긴 하겠군.’
2024년쯤에는 5대 성인에 김태평이 있을 거 같다.
이렇게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데 오해하고 탄압하는 걸로 봐서는 무조건 그렇게 될 거다.
그래, 이제라도 무소의 뿔처럼 가는 거다.
우직하게 내가 믿는 바를 따라서 간다.
다른 사람이 뭐가 중요해?
나 자신한테 떳떳하면 그걸로 된 거다.
“히, 히익…….”
“앨프리드.”
“네.”
내 말에 앨프리드가 나서서 밸브를 돌렸다.
“그러게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
“우, 우우.”
뭔가 이상한 말을 하면서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벌주는 게 아니라 단순한 실험 아닌가.
심지어 산소 저거 만드는 데 돈도 많이 들었다.
‘내가 진짜…… 아니, 아니지. 그만 억울해하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축 처지기 시작한 죄수의 팔에 고무줄을 묶고는 정맥을 찾아 복어 독을 주사했다.
아무래도 두 번째라 그런지 나도 여유가 더 생겨서 아까보다는 차분하게 죄수를 관찰할 수 있었다.
힉, 힉.
숨이 가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갈비뼈 사이 근육을 비롯한 모든 근육의 움직임 멎었다.
이게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터였다.
용량을 좀 줄였거든.
물론 객관적으로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
아무리 나라고 한들 그동안 정맥에 복어 독을 찔러 보진 않았거든.
이번 실험이 최초다, 이거다.
“자, 다시.”
“그래. 잘해 보게.”
나는 아까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구부러진 각도가 좀 다른 강철관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환자의 혀를 아래로 쭉 밀었다.
‘생각보다 저항이…… 아까도 이랬는데.’
이제 와 고백하는데, 아깐 솔직히 나도 좀 당황해서 실수했다.
사람이 눈앞에서 픽 처지는데 안 그러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잖아?
게다가 이거 되게 오랜만에 하는 일이기도 하다.
허나 몸의 기억이란 참 신비한 거 같다.
아까 한번 개판 쳤다고 바로 원래 어땠었는지 딱 기억이 나고 있다.
‘그래…… 이것보단 훨씬 부드러워야 해. 목의 위치도…… 그래, 이 정도?’
어떻게 했다, 뭐 이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다.
감각이 어땠는지, 손에 전달되는 저항감은 어떠했는지가 모조리 떠올랐다.
빡.
“아.”
그렇다고 해서 바로 되는 건 아니었다.
일단 얘네 이가 개판이다.
너무 약해.
“에이.”
대기하던 리스턴이 바로 칼로 목을 긋고 관을 다시 꽂았다.
그러곤 내게 말했다.
“아까보단 나은가?”
“네, 확실히.”
“그래, 그런 거 같더라고. 뭔가…… 될 거 같은 느낌이었어.”
확실히 예민한 사람이라 그런가 내 몸짓에서 뭔가 느낀 모양이었다.
“다음엔 되려나?”
“글쎄요?”
“뭐…… 세 명 더 있으니까. 그 안엔 되겠지?”
“될 것도 같아요.”
“좋네.”
“그래요. 해 보죠.”
허나 다른 놈들은 리스턴이 아니지 않나.
특히 죄수 놈들이야 아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구한 날 남의 돈 뺏고 패고 죽이는 놈들이 이 신비로운 술기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말이 되겠나.
“아, 안 돼……!”
끼리릭.
해서 여전히 난리 블루스였다.
물론 이미 묶인 지 오래인 데다가, 설령 자유의 몸이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리스턴뿐만 아니라 경관들에 군중까지 있어서 그랬다.
군중들은 왜? 싶겠지만 진귀한 구경 하러 온 사람들 방해하면 맞아 뒈질 수도 있는 게 19세기다.
게다가 상대가 경찰에서 공언하고 나 같은 유명인이 보증한 죄수다?
아마 나한테 실험당하다가 죽는 거보다 훨씬 끔찍하게 갈 거다.
“으…….”
“좋아.”
때문에 얘들도 정도 이상으로 발버둥 치진 않았다.
딱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쇼’라는 뜻을 전달하는 정도로만 움찔거렸다, 이 말이었다.
덕분에 나도 망설임 없이 손을 쓸 수 있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죽이러 온 게 아니라 살리러 온 인자거든.
빡.
물론 인자도 실수를 하긴 한다.
더욱이 손에 익은 물건이 아니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슉.
“어?”
“들어갔네요.”
결국엔 성공하는 것이 위버멘시 아니겠나?
“이대로 얼마나 가는지 보자고. 손 아프면 교대해. 여기 사람 많으니까. 아마 직접 짜 보고 싶은 사람 많을걸?”
나는 마지막 2명에 이르러서는 죄 성공적으로 삽관을 해낸 후 사태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심장 수술에 필요한 복어 독의 용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