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65)
검은 머리 영국 의사-465화(465/505)
465화 마취의 진보 [6]
시간이 지나자, 다들 깨어났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말이다.
“오…….”
“와…….”
“저게……?”
아까보다는 구경꾼들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한창 목구멍에 쇳덩이 박고, 이 부러뜨리고, 그러다가 갑자기 목 째고 거기다가 쇳덩이 박고 하는 것에 비해 쉭쉭 소리 내면서 공기나 주입해 주는 건 아무래도 심심한 구경거리라 그랬다.
21세기식으로 치면 불멍 느낌일 거 같다.
이건 그래, 숨멍이라고 하면 되겠어.
즉 볼만한 모양새가 아예 아니란 얘긴데, 그걸 감안하면 이만큼이라도 있는 게 신기한 일이다.
‘하긴, 집에 가면 뭐 하겠어.’
아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부유층이라면 얘기가 다르긴 하다.
맛있는 아니, 영국이니까 배 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고, 사람들 초대해서 얘기라도 나눌 공간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애인이랑 사랑 놀음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런던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하층민들은 얘기가 완전 다르다.
이 사람들은 일단 집이랄 게 없는 경우도 많다.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집이 있는 것도 이상하다.
하층민들을 위한 집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절대적인 집이 부족하다.
‘그만큼 짓질 않고 있으니 뭐…….’
21세기 대한민국이라면 아파트라는 신박한 해결책을 내겠지만 여긴 19세기 런던이다.
절대 다수의 정치인, 부유층, 귀족들에게 하층민들은 사실 사람이 아닌 무언가다.
참정권?
그런 낭만적인 것을 바라는 것은 아직 한참 무리고, 그냥 도구라고 보면 된다.
공장 멀쩡하게 굴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도구.
근데 아예 기계는 아니다 보니 뭔가 먹이고 재워야 하긴 해서 그런 시설이 있긴 하다.
‘4페니 숙소가 있지.’
말 그대로 4페니만 내면 가서 잘 수 있는 숙소다.
부끄럽지만 나도 구경을 가 본 적이 있다.
혼자 간 건 아니고 리스턴이 가 보자고 해서 그렇다.
내가 그렇게까지 악랄한 사람은 아냐.
아무튼, 내 감상으로는 최대한 좋게 말하면 최초의 캡슐 호텔이다.
나쁘게 말하면 관짝인데, 사실 진짜 관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안에서 자게 되어 있다.
4페니조차 비싸다고 하면 2페니 숙소도 있는데 그건 밧줄을 늘어 놓고 거기에 어깨 걸치고 자게 만든 곳이다.
거기 가서 돈 쓰면서 혹사당하느니 차라리 길바닥에서 이처럼 신기한 구경거리 보는 게 훨씬 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다 살았네.”
“이걸로 끝인가요?”
경찰들이 그렇게 깨어난 죄수들을 보며 못내 아쉽다는 투로 물어 왔다.
분명 고통을 주긴 했지만 사실 마취를 하지 않았나.
이게 벌인가? 싶을 거다.
나야 뭐 내가 사법 기관도 아닌데 굳이 벌을 직접 줘야 하나 싶은 참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아직 실험이 좀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뇨, 내일 한 번 더 하죠.”
“오……? 이놈들로요?”
“죽지도 않았는데요, 뭐. 그리고 죽어 마땅한 놈들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아까 자백하는 거 다 적어 두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밤이다.
복어 독 용량이 지나쳤다, 이 말이다.
아주 나중에 더 긴 수술을 하게 된다면 또 모를까…….
아직은 근 이완을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된다.
“으…….”
“팔 아파…….”
인공호흡기가 100% 수동이라 그렇다.
그나마 오늘은 한 번에 마취한 인원이 5명밖에 안 되었고 내 제자들뿐만 아니라 구경꾼 중에서도 해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서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평소에도 이렇게 되면 그게 지속 가능하겠나?
사람 갈아넣는 것도 다 각을 보면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드러누워 버리거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놈이 그냥 다 안 하겠다는 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1세기 대한민국을 떠올려 보면 쉽다.
애 안 낳잖아.
나라에서 안 낳으면 나라 망한다고 떠들어 봐야 아무 소용 없었다.
‘뭐…… 그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닌데 낳으라고 하면 뭐 하나?’
저출산 대책위라고 해 봐야 맨날 노인네들 나와서 이게 문제네 저게 문제네 하다가 다 안 될 거 같으면 결국,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이기적이라서 그래요, 이 지랄 하는데 낳겠어?
이 문제도 똑같다.
내가 요즘 의대생들은 이기적이라 팔 하나쯤 희생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
희생할 생각 없는 놈들은 다 도망갈 거다.
그럼 누가 손해냐.
나다.
“그래, 극악무도한 놈들이죠. 좀 더 벌을 줘도 되겠어요. 대신 내일은 좀 더 짧을 거예요.”
“아…… 네네. 그게 좋긴 하죠. 이게 뭐…… 오늘 이게 몇 시간이나…….”
“그래, 좀 지나쳤지. 이게 한 시간이 되게끔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한 시간…… 그럼 적당하겠네요.”
최선을 다해 볼 참이다.
복어 독으로 인한 근 이완 작용 시간을 한 시간 정도로 맞춰 볼 생각이다, 이 말이다.
한 시간이면 너무 짧은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현대 의학에서 한 시간짜리 수술은 진짜 간단한 것들뿐이라 그렇다.
심지어 내가 설정한 한 시간은 수술 시간도 아니고 마취 시간이다.
앞 뒤로 소독하고 어쩌고 하는 시간 제외하면 실제 칼 대고 할 수 있는 시간은 40분 정도에 불과할 거다.
‘근데 뭐 어쩌겠어. 그 이상은 마취 기술이 견디질 못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취에 대해서 그리 심도 있게 고민해 본 적은 없다.
마취과라고 해 봐야 수술과 입장에서는 수술방에 인테리어처럼 있는, 그래, 붙박이장 느낌이라서 그렇다.
당연히 거기 있었다.
마취해 달라고 하면 해 주고, 수술 시간이 몇 시간이 걸리건 간에 환자 몸 견디게 해 주었다고.
하지만 이게 직접 해 보려니까 그게 안 된다.
-아…… 또 죽었네.
-수술은 잘되었는데 죽다니. 이거 참.
지금과 같이 약도 불안정하고 나머지 시스템도 딸리는 상황에서 하는 마취는 더럽게 위험하다, 이 말이다.
한 시간이 맥스다.
그 이상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문제가 생겨.
아, 지금 죄수들은 어찌 된 거냐고?
“제발…… 제발 살려 주십쇼!”
“내, 내일도 하다뇨……!”
“차, 라리…… 차라리 죽여…….”
마취는 아까 깼을 거다.
근 이완이 안 풀려서 못 움직인 거지, 통증은 느꼈을 거라는 말이다.
뭐, 통증이라고 해 봐야 칼로 째는 종류의 통증은 아니다.
난 의사지 사람 잡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냥 쇳덩이가 목구멍에 틀어박힌 느낌 정도의 통증일 뿐이다.
딱히 나도 체험해 보고 싶은 종류의 통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로 아팠을까 싶긴 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짧아.”
“아니…….”
“그게…… 그게 할 말입니까?”
“사람도 아니야……!”
“사람이 아닌 건 니들이지. 아까 불었던 거 기억 안나? 고문도 아닌데, 이건.”
“우리가 했던 게 고문은 아니죠!”
“이건…… 이건……!”
“으아아아! 끕.”
발작하는 놈을 리스턴이 가볍게 재워 주었다.
나는 그렇게 누운 놈을 내려다보며 대략 30분 전까지의 이놈을 떠올렸다.
고요했다.
쉭 소리만 났다.
겉으로만 보면 마취된 사람이었다, 이 말이다.
허나 사실은 근 이완만 된 상태였다.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는데, 통증 유무도 있겠지만 더 큰 건 의식의 유무일 거다.
‘약간 마취 중 각성 같은 느낌이려나……?’
마취 중 각성이란, 쉽게 말해 마취 중에 의식이 깨서 통증도 느끼고, 목에 들어간 관에 의한 압박감도 느끼고 한다는 뜻이다.
괴담은 아니고 현대 의학에서 이루어지는 마취에서도 극히 드물게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내가 있던 외상외과처럼 너무 커다란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실제 사례를 직접 접할 수 있을 정도다.
나도 한 케이스 봤다.
물론 통증을 고스란히 느낀다기보다는 어…… 나 깼나? 정도의 느낌이었다고 하긴 했다.
그것만으로도 PTSD 가능성이 있어 정신과 진료를 같이 보셔야 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좀 기술이 딸리니까…… 더 생생하긴 했겠지?’
사실 말할 것도 없긴 하다.
얘네 눈동자는 움직이는데 숨만 못 쉬고 있더라고.
가위눌린 느낌일 거다, 이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귀신이 목에 쇳덩이 밀어 넣고 있는 게 추가된 거 정도?
‘존나…… 무섭긴 할 거 같다.’
자세히 상상해 보니까 얘네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갔다.
“으, 으아아!”
그중 한 놈은 꽤나 강렬한 체험이었는지 수업 시간에 자료 화면으로 봤던 환자처럼 굴었다.
손만 올려도 벌벌 떨고 소리를 지른다는 말이다.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나갔다 온 줄 알겠어?
실은 힘없는 사람들 찔러 죽이고, 물에 빠뜨려 죽이다 경찰서 끌려온 건데 말이다.
“뭐, 더 나쁜 놈들 있어요? 있으면 걔들로 하고.”
“없습니다.”
물론 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한 번 더 그 짓을 똑같은 놈들한테 할 생각을 하니 약간 미안하긴 했다.
허나 없다는데 어쩌나.
“하긴, 뭐…… 같은 놈한테 용량 조절하는 게 실험이 더 정확하긴 해요.”
“잘됐네요.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저 지랄하는 게 괘씸합니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실험만을 고려하면 이게 낫다.
경찰들이야 마취 중 각성 개념을 아예 모르니 내게 협조할 의지가 충만해 보였다.
당연하게도 내 일행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뭔 지랄들인지.”
“그러게요. 마취도 했는데.”
“아프면 말을 하든가.”
“참을 만했나 보지.”
의사가 이래도 되냐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의사는 뭐 지식이 하늘에서 저절로 내려오나?
배워야 알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목에 쇳덩이 처넣은 상태에서 말 안 했다고 뭐라고 하는 건 좀 너무 했지만…….
‘저거야 뭐…… 내과 애들도 흔히 하는 실수긴 하지.’
여러 번 얘기가 나왔던 앤데, 친한 애 중에 이비인후과 애가 있었더랬다.
솔직히 마이너 서저리 과라 하소연할 때마다 비웃었는데, 그래도 웃긴 얘기도 있긴 했다.
내과에서 자꾸 삽관 환자 성대 움직임 봐 달라고 협진을 낸다는 거다.
삽관이라는 게 성대 통해서 기도에 관을 쑤셔 박은 건데 그래 놓고 성대 움직임을 대체 어떻게 보겠나.
‘얘네들이 이러는 거야 문제가 아니지.’
21세기 내과 의사도 그러는데 19세기 애들이 그걸 바로 고려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나.
순식간에 마음이 넓어진 나는 후후 웃으며 일단 퇴근했다.
그러곤 오늘 삽관에 성공했던 쇠관을 비롯해 그와 최대한 비슷한 관들을 추리고, 복어 독 용량을 좀 낮추어서 준비할 것을 연구소에 지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 날 목표 했던 시간을 달성하진 못했다.
정확히 5일이나 걸렸다.
신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은 한 4시간 갔으면 4분지 1해서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못해서 그렇다.
모든 약은 적정 농도 이상일 때만 기능을 한다.
즉 같은 독이라 해도 농도가 적으면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한다는 거다.
해서 타깃한 효과를 어떤 농도에서 보일지가 무척 중요한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 죽여…….”
“그냥 죽여…….”
의도했던 바는 아닌데, 죄수들의 정신이 다 망가진 후에야 우리는 알맞은 농도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천만다행이게도 자백한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수사 결과 사형이 선고되었다.
어지간하면 의학의 진보에 기여한 대가로 살려 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죄수 놈들이라 이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