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6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66화(466/505)
466화 승모판 협착증 [1]
마취 실험이라는 게 딱 그놈들만 가지고 해 봤다고 종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나이와 체형이 다들 비슷했다는 게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었다.
아마 저 나이대에 저 무게에서의 적정 용량은 꽤 신뢰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너무 건장했어.’
영국 사람 하면 뭔가 되게 클 거 같잖아?
나야 뭐 조선에 가 본 적이 없으니 현시점에서는 비교가 안 되는데…….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 비하면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작다.
물론 그렇다고 유전자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보니 리스턴처럼 우연찮게 잘 먹었거나 혹은 하늘이 내린 사람은 정도 이상으로 거대하지만, 대개는 작다 이 말이다.
보통 사람들도 작은데 심지어 심장 수술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겠나.
만성 질환은 건장했던 사람조차 마르게 만든다.
“휴.”
“그…….”
심란한 생각을 하다 보면 한숨이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높은 사람의 한숨은 아랫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법이기도 하다.
물론 내 앞에 있는 남작이 딱히 나보다 아랫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힘은 약하다.
사회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주술적으로나 다 약하다.
“아, 뭐. 따지러 오셨나?”
“네? 아니, 그럴 리가요. 그냥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요…….”
그렇다 보니 사실상 내가 자기 심복을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5명이나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세다.
아…… 아니지.
내가 죽인 건 아니다.
정의로운 런던의 사법 기관이 그들을 죽였다.
나야 뭐 뒤에서 조금 정의의 편을 도왔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켕길 게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아까보다도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
딱히 아까라고 해서 주눅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보니 지금 내가 취하게 된 자세는 어쩌면 시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자세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이었으면 불편한 사람 꽤 있었을 거야, 아마.
하지만 여긴 19세기 런던이다.
시대가 다르다고 해서 감정도 다르리라는 법은 없으니 불편하긴 할 거다.
하지만 힘없는 사람은 그걸 입 밖에 낼 수 없다.
다만 자세를 고쳐 앉거나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뿐이다.
“그래, 뭐…… 그럼 왜 왔지?”
“그…….”
해서 나는 다리를 꼰 채, 남작을 바라보았다.
생긴 게 빈말로도 사내답다 하긴 어려운 인상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귀족이 되어 가지고 고리대금업이나 하고 있다니…….
참 한심한 놈이지 않나?
약탈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진정한 대영제국의 귀족이라면 모름지기 우매한 세계인들을 약탈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 말이다.
왜 같은 영국인을 괴롭혀?
고리대금업을 해도 대국적으로 할 수 있잖아?
안 빌리겠다는 나라에 강제로 빌려주고 고리로 떼먹으면 그걸 누가 뭐라 그래?
“그…….”
물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이 사람을 세워 놓고 훈계하고 있는 건 아니다.
멀쩡히 의자도 내어 주고 심지어 홍차도 끓여 주었다.
영국인에게 차를 안 준다는 건 그냥 싸우자는 거나 마찬가지라 그렇다.
뭐 이미 사람 5명이 죽어 나간 이상 싸우게 될 확률이 높긴 한데, 굳이 그보다 더한 모욕을 줄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허나 남작은 기껏 준 홍차는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아까부터 ‘그……’만 내뱉고 있다.
옆을 돌아보니 성질 급한 리스턴은 벌써 답답해 죽으려고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인간은 보통 자기가 안 죽고 남을 죽인다는 거다.
“그, 뭐요. 말해 봐.”
이런 하잘것없는 인간 하나 죽어 나가는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우리 병원에서 남작이 죽어 나갔다는 얘기가 흘러 나가는 건 좋지 못한 일이지 않나.
해서 내가 먼저 물었다.
그럼에도 남작은 또 한참을 ‘그’, ‘저’, ‘음’ 등을 남발하다가 리스턴이 기어코 칼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고 나서야 부리나케 입을 털었다.
“호, 혹시…… 고리대금업에 관심이 있으신가 해서요.”
“응?”
“뭔 소리야?”
나는 솔직히 보상을 요구할 줄 알았다.
줄 생각은 없었지만, 뭐가 되었건 뻔뻔한 놈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웬 고리대금업?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고 있자니, 남작이 멋쩍게 웃었다.
“그…… 리스턴 경이나 피에피영 경이 괜히 우리 애들을 죽였을 리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다 생각이 있는 놈입니다. 고리대금업…… 이거 돈 되는 사업이죠.”
여전히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들어 볼 생각은 들었다.
돈이 된다고 하잖아?
그렇다고 내가 뭐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궁금하잖아, 이런 건.
어차피 일기 형식으로 기록을 남길 생각인데 이런 기록이 다 후대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19세기 런던의 사회상을 알려면 병신 김태평의 기록을 보시오.
뭐 이런 상식이 하나 생길는지 누가 알겠어.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스트엔드…… 여기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 절반은 두 분이 하시죠.”
“음.”
“으음.”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그저…… 노여워하지만 마십쇼.”
이후에 이어진 대화를 요약하면 위와 같았다.
나와바리를 정하자, 이 말이었다.
“미친놈인가?”
대강 얼마 정도의 수익이 예상된다는 말도 했기 때문에 은근한 걱정도 들었다.
나도 혹하는데 리스턴이 덜컥 하겠다고 하면 어쩐단 말인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리스턴 형님에게만큼은 한 수 접어 줘야 한다.
“그, 그쵸?”
다행히 리스턴은, 과연 무협지에서 튀어나온 사람답게 협을 아는 인간이었다.
남작의 누구라도 혹할 만한 제안을 그저 미친놈이라는 말로 거절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사람 살리겠다고 일하는 사람들이 어찌 고리대금업을 해서 사람들을 죽인단 말인가.”
“맞습니다.”
“자네 눈알이 수상하게 흔들리던데, 이건 안 되네.”
“전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요?”
“그런 사람이 그렇게 자세히 물어본단 말인가?”
“어디까지나 기록을 위해서죠. 후세 사람들이 이 시대를 궁금해할 테니까요.”
“후세……? 후세를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사나?”
“제가 어디가 어때서요?”
내 말에 리스턴은 역시나 할 말이 없는지 입맛만 다셨다.
역시 사람은 늘 떳떳하게 살아야 하는 법이다.
펜이 칼보다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진실된 마음은 과연 칼보다 강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는, 나는 아까 하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결국, 실험을 더 해야 한다는 얘기지?”
“네. 그렇죠.”
리스턴은 똑똑한 사람이라 그렇게까지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운만 띄워도 딱딱 알아들었다.
“자네는 역시 무서운 인간이야.”
“네?”
“하지만 결국엔 도움이 될 테지.”
“그럼요. 제가 괜히 사람 괴롭히는 사람입니까?”
리스턴은 이번에도 입맛을 다시더니, 무릎을 탁 내리쳤다.
“뭐예요.”
모기라도 있나 했는데 그냥 뭔가 떠올랐던 모양이었다.
리스턴은 호주머니에서 쪽지를 하나 꺼내서 내게 보여 주었다.
말이 쪽지지 사실상 공문이었다.
“오…….”
“자백이 필요한 놈들이 꽤 있나 봐.”
“그런 놈들이야 항상 있는 법이죠.”
“그렇지. 교화가…… 되겠나? 솔직히?”
“거기서도 안 되나요?”
“안 되니까 런던 범죄율이 이 모양이지.”
정확히 말하면 교도소에서 보낸 문건이었다.
전에도 가 본 적 있던, 운동 기구처럼 보이는 고문 기구가 놓여 있던 그 교도소다.
내 짧은 생각에는 거기 한 한 달만 있으면 아,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아야겠다 할 거 같은데…….
역시 인간이란 쉬운 동물이 아닌 거 같다.
“또 놔줄 놈들이 하나 가득한 모양이야. 명줄도 질기지. 어떻게 거기서 버티지?”
“형님도 거기는 자신 없어요?”
“감자 한 덩이 먹고 6시간 동안 그걸 타라고? 안 되지.”
“하긴……..”
리스턴 형님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일찍 죽을 수도 있다.
기초 대사량이 높다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연료 효율이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무튼, 해 볼 거야?”
“해야죠. 근데 좀 쇠약한 놈들이 필요한데.”
“아…… 그냥 그대로 죽이려고?”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수술해야 하는 사람들이 쇠약하니까요. 최대한 상태를 맞춰 봐야죠.”
“아…… 그렇구만. 난 또.”
“자꾸만 절 오해하시네요.”
아무튼, 우리는 이내 교도소 몇 군데에서 수십 명의 죄수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아직 사형이 확정된 놈들이 아니다 보니 교도관들과 수사관들도 따라왔다.
“그냥 죽는 건 좀 곤란합니다.”
“네, 저도 의사라 그럴 생각은 없어요. 근데 사고로 사망하게 되면 어쩌죠?”
“아, 사고는 뭐 어쩔 수 없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그렇죠?”
“네. 애초에 티에피영과 죄수라니…… 비교가 됩니까? 기소라도 되는 날에는 기소한 놈부터 죽을걸요. 시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하긴, 그렇겠네.”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경찰 앞에서 사람 죽여도 안 잡혀 가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니까.
말이 되나 싶을 수도 있는데, 원래 실제 역사가 제일 개연성 없는 거다.
논픽션이 제일 재밌는 이유이기도 하고.
“아, 안 돼!”
“그러게 미리 불지.”
“지금 불겠습니다!”
“닥치고 누워.”
“아, 안 돼에에에에!”
한 번에 마취 걸어야 하는 사람이 워낙에 많다 보니 공간 확보하는 것도 일이었다.
나와 리스턴 정도 되는 사람조차 딱 한군데밖에 마련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물론 돈 좀 쓰면 극장도 빌릴 수 있었겠지만…….
아니, 그것도 입장권 받으면 오히려 돈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좀 그래서 그냥 해부실을 비웠다.
“여기 근데 좀…… 음산하네요?”
“아, 해부하던 곳이라.”
“아하. 그렇…… 네?”
“시신 늘어놓는 데 아니면 어디가 이렇게 넓고 서늘하겠어요.”
“아…… 아…….”
경찰 하나가 내게 친한 척을 하며 묻길래 나도 친절하게 답을 해 주었다.
그랬더니 왜인지 모르게 좀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상관없긴 했다.
어차피 이제부터 바빠질 참이었으니까.
“자, 자! 여기 훌륭한 지원자들에게 일단 감사!”
“네!”
오늘은 일행만 온 게 아니라서 그렇다.
원장님이 엄선한 다른 팀들은 물론이거니와 학생들도 왔다.
내가 원장님에게 앞으로 마취는 이렇게 하게 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전문적으로 마취만 하는 의사가 필요할 거라고 조언한 덕이다.
혹자들은 김태평이 자기 전용 마취 셔틀을 키워 내려고 수를 쓰는 거라고 하는 모양인데, 당연히 아니다.
마취과 전문의가 수술에 있어 필수인 것은 상식이잖아.
“일단 숙련된 앨프리드, 나, 리스턴 교수님…… 그리고 다음 순인 조지프, 콜린, 존 스노가 삽관하고 나머지는 관찰 및 보조하도록. 여차하면 기관절개술을 하면 되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고 저번보다 모양이 더 개선되어서 훨씬 잘 들어갈 거야.”
“네!”
“자, 그럼…… 시작하자!”
이를 위해서 나는 대규모 실험에 들어갔다.
인재 양성도 덤이었다.
사방에서 절규와 고해성사가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괜찮았다.
집중하면 어지간한 소리는 묻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