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67)
검은 머리 영국 의사-467화(467/505)
467화 승모판 협착증 [2]
경찰에서 막 잡은 놈들이 아니라 교도소에 있던 놈들로 실험을 하니까 장점이 있었다.
수급이 아주 안정적이었단 점이다.
우리만 만족한 건 아니었다.
-이야…… 그 꼴 보고 다른 놈들도 다 자백하던데요?
그냥 삽관만 당하고 아니, 하고 간 놈들이야 겉으로 보기엔 별 느낌이 없을 거다.
물론 그런 놈들조차 계산이 엇나간 경우에는 마취 중 각성이랑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벌벌 떨고 있긴 했겠지만…….
사실 19세기는 그 비슷한 체험할 만한 곳이 천지에 널려 있다.
특히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질적인 환경을 자랑하는 이스트엔드 쪽은 그냥 그 세계 전체가 그렇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삽관하다 삐끗해서 앞니가 날아가거나 그에 더해 목에 구멍까지 낸 애들을 보는 건 퍽 두려울 만한 일이긴 할 거다.
‘이게 윈-윈인가?’
우리는 의학을 진보시키고, 저들은 죄수들을 교화시키고…….
내가 하는 일이지만 참 대단하다 싶다.
어떤 방향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이름 석 자는 아마…… 21세기에도 상당히 유명하게 되지 않을까?
“자…… 용량 정리했어?”
“네!”
교도소의 장점을 하나 더 뽑자면, 풀이 넓다는 거다.
일단 여자도 뽑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노인도 있다.
애들은…… 없는데, 나도 사실 애들 가지고 실험해 볼 생각은 없으니 이는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어디 보자…….”
“여기.”
그렇게 얻어 낸 자료는 우리의 역학 박사 존 스노가 정리하고 있다.
역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콜레라 역학 조사를 창조한 인물답게 아주 약간의 가이드만으로도 썩 괜찮은 결과물을 내고 있다.
뭐…… 완벽한 결과물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긴 할 거다.
아무리 죄수들 데리고 이런저런 실험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n수가 딸리긴 하거든.
게다가 그 방식도 문제다.
원래는 혈액 검사를 통해 혈액 내 농도 체크를 하면서 실험을 진행하는 게 정석인데 우리는 그런 게 안 되잖아.
‘뭐…… 이 시대에 이 정도면 대단한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역사 속 위인은 위인이다 싶다.
일단 근 이완이 되는 최소 용량의 근사치부터 해서 한 시간 이상 유지되는 용량의 근사치를 계산해 냈다.
근사치라고 하는 건 아주 정확하지는 않아서 그렇다.
필연적으로 이보단 좀 더 짙은 농도를 써야 할 거다.
원래 같으면 더 안전하게 가야 하는데…….
여기서는 예외다.
‘안전, 안전’ 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통증이 더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떠세요?”
“아주 좋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일은 네가 했는데. 이따 애들이랑 술집이라도 가.”
“오…… 감사합니다.”
이런 위인을 이런 헐값에 써먹을 수 있다니.
19세기 만세다.
심지어 감사해하고 있다.
지가 얼마나 대단한 인재인지 모르니까 가능한 일일 거다.
거기에 더해 사회 전체가 사람값을 아예 안 쳐 주고 있기도 하고.
‘꼭 한국 같네, 이런 건.’
감히 19세기 런던과 21세기 대한민국을 비교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이 사람값 안 쳐 준다는 거엔 동의할 거다.
기계나 설비에는 값을 쳐 줘도 사람은…….
정비소 가서 자동차 검사해서 이상 없으면 돈 거의 안 주잖아?
그에 반해 무언가 교체할 때는 기곗값이 붙어서 확 비싸지는데, 난 애초에 검사 비용을 충분히 쳐 주면 그런 일도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의료도 똑같았다.
기본 진찰료는 엄청 싸다.
그래서 말로, 머리로 진료 봐야 하는 의사들은 돈이 안 되고, 검사하거나 기계를 굴릴 수 있는 의사들은 돈이 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거 다 떠나서 거긴 공정하지가 않지.’
외상외과 교수 되자마자 죽었다고 억울해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것도 없었다.
어차피 외상외과 오래 못 하거든.
대한민국 의료비 분배가 개떡 같아서 그렇다.
누가 봐도 힘들고 어렵고 심지어 위험한 일을 하는 의료진보다 그렇지 않은 의료진이 경제적 보상도 더 크고 심지어 삶의 질도 훨씬 좋다.
나도 교수님한테 가스라이팅당해서 외과 한 거지 안 그랬으면 제대로 된 길, 즉 미용, 성형 아니면 통증으로 갔을 거다.
그거 하는 사람들이 나빠서 그거 하겠나.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다.
‘뭐…… 굳이 내가 여기서 이걸 고칠 필요는 없겠지.’
대한민국에 있었으면 노력했을 거 같다.
사실 거기 의료…… 한번 대대적인 공사 들어가긴 해야 하거든.
2020년대까지는 어찌저찌 세계 최고였던 것도 맞지만 문제는 지속 가능하지가 못하다는 데 있다.
출산율이 0.65라 생산 인구가 극단적으로 주는 데 반해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잖아?
사람들이 국민연금이 폰지라고 욕하지만 건보료야말로 고갈이 코앞이다.
절대 지금과 같은 사이즈의 의료 서비스는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의협에서 주장하는 수가 인상이 공허한 외침인 이유다.
뭔 돈으로 올려?
있는 수가도 까야 될 판인데.
‘야, 내가 보복부 장관이었으면…… 개원의 수입 줄이고 그 수입 딴 데로 몰았다…….’
어떻게 하냐고?
그걸 내가 왜 고민하나.
나는 19세기 영국인인데.
“그래서, 언제 시작할 건가?”
게다가 나는 지금 내 코가 석 자인 상태다.
리스턴의 말마따나 심장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미루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참고로 이 방에는 리스턴만 와 있는 게 아니다.
제임스 호프도 와 있다.
내가 부른 건 아니다.
지가 왔다.
씩씩대면서.
“벌써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허락도 없이 찾아왔다고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냥 가는 대신 목숨을 걸고 수술을 받아 보겠다고 선언했던 사람 중 한 분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워낙 많이들 죽어 나가는 시대이니만큼 ‘심장 때문에 죽은 거 맞아요?’라고 묻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진짜 천하의 개쌍놈이 될 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고인의 나이가 너무 젊은 것도 한몫한다.
아무리 시대가 이 지랄이라 해도 20대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갑자기 아파서 가는 일은 드물거든.
아니, 드물다고 하기엔 생각보다 흔하긴 한데 아무튼…….
“이런 제기랄.”
“뭐가 문제입니까, 티에피영 경. 당신은 최고의 의사이지 않습니까.”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제임스 호프가 그런 나를 재촉했다.
빨리 가서 심장 째라, 이거다.
최고의 의사 운운하면서 꼬시고 있다는 말인데…….
‘사실…… 아니라고. 나 최고의 의사가 아니야…….’
내가 그 전설의 백강혁이었으면 아마 벌써 쨌을 거다.
제한 시간이 고작 4분?
그래서 뭐.
하면 되지.
하지만 난 김태평이다.
나름 우수한 의사였다고 자부하지만 사람의 영역에 속한다는 게 문제다.
“그래, 병신인데 뭐가 문제란 말이야. 빨리 째세.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야.”
할 수만 있다면 더 뭉개고 싶다.
하지만 제임스 호프뿐만이 아니라 리스턴도 나서고 있으니 그러기도 어렵다.
아니, 이 둘만이라면 뭉갤 수 있다, 이제는.
“제발…….”
“저부터 해 주세요.”
하지만 이 영악한 제임스 호프가 줄줄이 환자들을 데리고 온 탓에 그것은 어려워졌다.
이 김태평…….
솔직히 고백하건대 처음 의대에 진학할 때부터 사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막말로 19살까지 수능 공부만 하던 놈이 세상을 알면 뭘 안다고 사명감이 있어.
있다고 하면 그 새끼가 이상한 거다.
하지만 의대 교육을 받다 보면 아무리 냉막한 놈이라 한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가슴속에 환자를 위한 마음을 한 자락씩 품게 되기 마련이다.
백날천날 그것만 배우고 병원 실습 가면 실제로 그 병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는데 안 그럴 수가 있겠어?
“알겠습니다. 제가…… 하죠.”
그러다 정신 나가고 하면 기피 과로 가는 거다.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다.
‘하…….’
존나 하기 싫다.
사명감이라고 하는 게 무슨 강철같은 그런 마음은 아니다.
교수님들도 하루에도 몇 번 이 길이 맞나 의심한다.
어떤 분들은 그냥 관성이 되어서 일하기도 한다.
그보다 많은 분들은 혹독한 현실에 닳아 버려서 떠나기도 하고.
비단 대우니, 삶의 질이니 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의사도 사람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건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이보게, 평. 자네답지 않게 왜 그러나?”
“이건 진짜 어려운 수술이라 그래요.”
해서 나는 환자를 수술하겠노라 해 놓고도 바로 수술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있었다.
리스턴은 그런 나를 따라 나왔다.
담배를 물려 주면서였는데, 나는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
‘시벌…… 니코틴.’
그래,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한 거다.
이렇게 스트레스 심하고 즐길 건 없는 시대에 담배라도 피워야지…….
21세기의 담배는 백해무익하겠지만 19세기의 담배는 어찌 보면 일종의 복지다.
“후.”
“잘 피우네. 원래 피우나?”
“꼴초들 옆에 있다 보니 좀 늘었나 보네요.”
“아아. 하하. 뭐 잘된 일이지. 알고 있나? 담배는 페스트도 예방한다네.”
지금도 봐.
이런 어질어질한 개소리를 맨정신으로 어떻게 버티냐.
뭐가 되었건 니코틴이 돌아서 그런가 아니면 리스턴이 옆에 서 있어서 그런가 아까보다는 긴장이 좀 풀렸다.
“이거……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어려운 수술이에요. 저 테이블 위에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요.”
“이보게 평.”
“네, 형님.”
“사람은 누구나 죽어.”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하하. 누가 그런 소리를 하나? 의사가 사람을 살린다고?”
해서 걱정을 털어놓았더니 리스턴이 껄껄 웃었다.
“사람을 죽고 살리는 건 하늘일세. 의사는 단지 그 경과를 잠시 바꾸는 데 불과한 존재야. 그렇지 않나?”
예전 같으면 뭔 개소리야 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래, 레지던트 땐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거라고 확신했더랬다.
하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했고 또 모든 처치와 치료가 이치에 합당했음에도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경험이 쌓이다 보면 무조건 보게 되기 마련이다.
희망적인 사람들은 시대의 한계로 죽었다고 하지만 글쎄.
인간이 시대가 더 변한다고 무한히 살게 될까?
그건 아닐 거 같다.
“게다가 저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코앞까지 온 사람들이야. 자네가 칼을 대지 않아도 죽는다, 이 말이지. 그나마 자네가 칼을 대면 혹시 모를 일 아닌가. 먼지 만큼의 확률이라도 살 수 있을지도…….”
리스턴은 생각에 빠진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후 하고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음.’
인종도 나이도 생김새도 다 다르지만, 나는 어쩐지 내 은사님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분 또한 죽음이 확정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술방에 들어가던 때가 있었더랬다.
대개 실패했고, 그때마다 아파했지만…….
심지어 고소도 당했지만.
정말 간혹 살아나는 사람이 있어 정년까지 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회한에 찬 얼굴로 내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가죠.”
“그래, 그래야 병신이지.”
외과 의사에게는 죽을 걸 알고 있음에도 들어가야 할 때가 있는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