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69)
검은 머리 영국 의사-469화(469/505)
469화 승모판 폐쇄 부전 [1]
나는 잠시 천장 쪽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목탁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 미친놈이…….’
이제 하다 하다 스님도 잡아 와?
언제 한번 날 잡아서 리스턴의 집을 털긴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알아?
도공이라도 있을지?
그럼 대박이다.
이 영국 불상놈들은 그저 화려한 중국이나 일본 자기가 제일인 줄 알지만 알고 보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백자를 최고로 쳐 주지 않던가.
어째 말하다 보니까 내가 동포 피라도 빨아 먹을 것처럼 이야기가 흘렀는데, 당연히 그건 아니다.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이 유럽 촌놈들에게도 전하면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신속하게 심장을 닫았다.
“평. 심장을 닫을 때만큼은 나쁜 생각을 품지 말게.”
“그런 적 없는데요?”
“그랬으면 좋겠구만.”
“아무튼, 이제…… 풉니다?”
“그래.”
나는 모래시계를 흘겨보았다.
엄청 서둘렀고, 별문제 없이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래가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이거 거의 러시안룰렛인데.’
아무리 봐도 이 환자는 운이 좋았다.
아니, 내가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한다.
딱 첫 수술에서 협착만 있는 환자였으니.
덕분에 가장 기본적인 술기만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아니, 해결이라고 하면 다 나은 거 같으니까…….
시도는 끝냈다 정도의 표현이 옳을 거 같다.
‘근데도 시간이 다 갔어……?’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딸깍.
뭐가 되었건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다.
클램프를 풀자 왈칵 피가 심장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대동맥 쪽으로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이럴 때 초음파 기기라도 있었다면 협착이 좀 나아졌는지 바로 들여다볼 수 있을 텐데…….
초음파는커녕 엑스레이도 없다.
뭐 하냐 뢴트겐!
마리 퀴리 뭐 하냐!
‘태어나지도 않았겠지…….’
상태창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소환술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안 되면 빙의라도 시켜 줘.
필요할 때마다 써먹고 다시 저승 보내게.
“일단 한고비는 넘겼군그래.”
“네. 안 죽었어요. 적어도 여기서는.”
나는 울적했지만 리스턴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진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심장을 가르고 무언가 조작을 하고 다시 닫았는데 죽지 않았잖아.
굳이 기록을 뒤져 보지 않아도, 이게 최초일 거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유구한 역사 속에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던 일이 우리의 손끝에서 벌어진 순간이라는 얘기다.
“여전히 비관적이로구만.”
“정말 나아질지 어떨지 모르겠으니까요. 그래도…….”
“이 환자는 자네가 말했던 케이스 중에 제일 예후가 좋을 법한 환자잖아?”
“네, 아마 원래보다는 훨씬 오래 살 거예요.”
허나 단지 그뿐일 거다.
완치?
그런 걸 바라기엔 우리가 해 놓은 수술이라는 게 너무 조악하다.
뭔가 대단해 보이겠지만, 정작 승모판에 한 건 쇳덩이 문댄 게 다잖아.
물론 21세기에도 풍선 밀어 넣고 벌리는 게 다긴 하다.
그건 심장을 안 열고 그냥 혈관으로 카테터 넣어서 하고, 밖에서 영상을 통해 보면서 딱 적당히 벌리고, 또 벌린 다음 승모판의 기능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차이다.
‘시벌…… 어마어마한 차이네.’
대체 이후 2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떻게 이 수준에서 거기까지 간 거냐고.
진짜 외계 문명이랑 접촉이라도 한 건가?
“후…….”
아직 수술 끝난 것도 아닌데 메인 집도의라는 놈이 왜 이렇게 딴생각을 하고 있냐고?
이제는 메인이 아니라서 그렇다.
귀찮아서 넘긴 것도 아니다.
나는 드릴 없이는 뼈 못 붙인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사람이라는 종의 한계다.
“송곳.”
“네.”
하지만 리스턴은 된다.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다.
심지어 간신히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쉽게 하더라고.
푹.
그…….
출하년도가 꽤 되신 분들은 <바람의 X심>이라는 만화를 알 거다.
거기 사X토 하지메라고 검객 한 분이 나오는데, 아마 리스턴을 보면 스승으로 모실 거다.
푹.
송곳으로 뼈에 구멍 내는데, 거의 신기에 가깝다.
심지어 말이 송곳이지 철사가 통과할 구멍을 내는 게 목적인 만큼 조금 굵은 바늘이라고 봐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신기에 가까운 게 아니라 그냥 신기다.
‘아무리 봐도…… 내공이지?’
런던의 제철 기술은 세계 최고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19세기의 최고다.
포항 제철소에서 만드는 강철 보면 얘네들 다 기절할걸.
다시 말해 그렇게까지 강력한 철이 아니라는 건데 그걸로 사람 뼈를 막…….
푹.
심지어 갈아 내듯 뚫는 것도 아니다.
그냥 뼈를 바라보다가 훅 하고 송곳을 내지른다.
그럼 뼈에 구멍이 나 있다.
이미 시신에 내는 걸 수백 번이나 봤는데도 또 놀랍다.
제자들이나 블런델도 신기해하지만 아마 나만큼은 아닐 거다.
나는 저걸 원래 뭐로 뚫는지 알고 있거든.
‘다이아몬드 버(Bur)가 달린 드릴로 뚫는 게 정석이야…….’
사람의 뼈는 단단하다.
아까 바람의 X심 운운한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렇지만, 사무라이 만화는 거즘 구라라고 보면 된다.
어지간한 달인이 아니라면 사람 뼈를 단칼에 자르기가 어렵거든.
그래서 킬러들도 뼈째 자르는 건 애초에 시도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의사들은 뼈를 조작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
공돌이들을 갈아 넣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겨우 구멍도 뚫고 하는 건데…….
“휴. 다했다.”
역시 몸이 약하면 머리가 고생하는 걸까?
리스턴은 너무나 가뿐하게, 빈말로도 우수하다고 할 수 없는 조금 굵은 바늘로 뼈에 구멍을 무려 좌우로 14개를 냈다.
심지어 딱 일렬로 나 있다.
이게 가능한 건 아까 톱질하기 전에 살짝 흠집을 내놓은 덕이긴 하지만…….
그 흠집을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찔러 넣을 수 있다는 건 역시 리스턴만이 가능한 일일 거다.
“실.”
“네.”
아무튼, 이제 닫아야 한다.
이건 혼자 하기는 좀 어려운 일이다 보니 나랑 리스턴이 동시에 나섰다.
지이익.
지익.
실이라기엔 너무 두꺼운 녀석이다.
동시에 더럽게 비싼 녀석이기도 하다.
명주실이다, 명주실.
어지간하면 목화에서 추출한 실로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감염이 염려가 되기도 하거니와 같은 굵기일 때 기대할 수 있는 강도도 차이가 났다.
‘누에가 사기네.’
옛날에 미국 개척할 때 당시 영국 왕이었던 제임스 1세가 누에 치라고 했던 게 괜히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물론 그건 병신 짓이었다.
미국 동부가 얼마나 추운데 거기서 누에를 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애초에 배 타고 가다가 싹 죽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명주실은 진짜 미친 물건이기는 하다.
지이익.
평소 쓰이는 것보다 훨씬 굵다 보니 실크 특유의 느낌은 없긴 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짱짱하다.
양쪽으로 벌어져 버린 가슴뼈를 당겨서 매듭짓고 있는데 끊어질 거 같은 기미조차 보이질 않아.
“확실히…… 이건 진짜 좋구만?”
“괜히 실크가 비싼 게 아니죠.”
“난 그냥 비싸서 비싼 줄 알았는데…….”
“동양에서는 아마 오래전부터 여러 방면에서 쓰였을걸요?”
“이런 거 보면 우리 대영제국이 왜 그렇게 청을 집어삼키려고 하는지 알 것도 같고.”
“뭐…… 먹음직스럽긴 하죠.”
명주실 덕에 우리는 금세 가슴뼈를 닫을 수 있었다.
그다음이야 뭐 일사천리였다.
뼈도 봉합하는데 살이 뭐가 어렵겠나.
그냥 푹푹 찔러다가 닫으면 될 일이다.
“후…… 총 시간은 얼마나 걸렸지?”
“50분 정도입니다.”
내 말에 존 스노가 답했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희미한 미소나마 지을 수 있었다.
심장 수술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다 시대에 맞는 술기가 따로 있는 법 아니겠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내가 전보다 훨씬 발전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아마…… 다른 놈들은 안 될걸.’
유연한 머리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하.”
“기분이 좋아 보이네.”
“아직도 살아 있으니까요.”
“그래, 아직 살아 있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토해 내고 있으려니 리스턴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마따나 환자는 의식을 되찾은 후에도 살아 있다.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혈압도 수술 전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이다.
‘이게 100% 내 실력으로 해낸 거면 정말 좋겠는데…….’
좋다.
좋은 일인데, 마냥 좋다고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게 한이다.
재현이 가능할지 알 수 없어서 그렇다.
‘아마…… 승모판협착증만 있는 케이스면 가능하긴 할 거야.’
그래, 단순 승모판협착증 케이스는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류마티스열에서 주요 케이스는 협착증이 아니라 폐쇄부전이라는 게 문제다.
‘생각해 둔 게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게…… 정말 될까?’
좁아져 있는 걸 넓히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아까 내가 했던 것처럼 쇳덩이로 문대도 된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약한 동물이 아니거든.
애초에 이런 시대에도 멸종 안 당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 자체가 그 증거라고 본다.
하지만 넓어져 있는 걸 좁히는 건…….
“생각보다 잘 끝났으니, 한 케이스 더 하는 게 어떤가?”
“해야죠.”
“내가 봐도 방금 케이스는 쉬웠어. 자칫 자만하게 될까 두렵구만그래.”
“네, 확률상…… 어려운 케이스가 더 많을 텐데, 운이 좋았죠.”
“주님께서 자네를 사랑하시는 게지.”
“그런가 봐요, 정말.”
나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사실 아직까지도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이 시대로 왔다는 건, 뭔가 특별한 존재가 있다는 거겠지만…….
그 존재가 의지를 가지고 있나?
그건 모르겠다.
“기도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죽음을 각오하고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의 기분을 잡칠 생각도 없다.
해서 나는 불려 온 신부님과 함께 기도를 올리고, 아까처럼 수술을 진행했다.
가슴뼈를 가르고 뛰는 심장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후.”
한숨과 함께 리스턴과 신호를 맞추고 클램프를 걸었다.
그와 함께 심장으로 들어가는 피가 멈추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장도 멈춘 건 아니다.
19세기 기술은 아직 거기까지 나아가진 못했으니까.
아니,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도 그랬다.
그러니 투덜거려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칼.”
“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심장을 갈랐다.
“아.”
“아.”
그리고 늘어진 승모판을 확인하게 되었다.
오래 방치된 염증에 의해 섬유화가 진행되다 못해 녹아 버린 모양새였다.
“올 게 왔구만.”
“네에. 그래도…….”
“해 봐야겠지.”
“네.”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예상 밖의 상황은 아니다.
설령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해도 고민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주어진 시간은 최대 4분이니까.
“실.”
“네.”
최선을 다하는 것.
생각해 보면 21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질병이라는 불가항력의 적과 싸우는데 어찌 100%가 있을 수 있겠나.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언정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