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70)
검은 머리 영국 의사-470화(470/505)
470화 승모판 폐쇄 부전 [2]
승모판을 새로 만들어 주는 건 불가능하다.
승모판 치환술이라는 건 앞으로 100년도 더 지나야 가능한 일이니까.
사실 100년 이래 봐야 대단한 시간도 아니다.
2차 세계 대전도 안 터졌어.
1년 차이지만.
“실.”
“네.”
“후…….”
그래서 떠올린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하나는 늘어지고 파괴된 승모판을 가장자리부터 봉합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좀 좁아지지 않겠나?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정량적인 수술은 불가능하다.
‘사실 뭐…… 21세기에도 거의 대부분의 수술이 이렇지.’
내가 몸담았던 외상외과는 개념이 좀 다르다.
기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보다는 일단 살려 놓는 게 우선이라 그렇다.
2차, 3차 수술 들어갈 때야 뭐 기능을 고려하겠지만…….
완전한 재건은 불가능했다.
가령 턱뼈 날아가면 종아리뼈로 보통 재건해 주는데, 그게 턱뼈의 기능을 완전히 대신할 수 있겠나?
안 해 주는 것보다야 100배 나으니 하는 것이지만 그 누구도 100%를 기대하진 못한다.
“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지만…….
뭐가 되었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이 21세기 수술에 비하면 한참 못하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평. 얼마 안 남았어.”
“네, 알고 있어요.”
여전히 모래는 스산한 소리를 내며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중이다.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다.
감각을 일깨워 주니까.
“딱히 의미 있는 봉합은 못 한 거 같은데…….”
거기에 더해 리스턴의 쓴소리도 도움이 된다.
그래, 너무 가장자리만 봉합했다.
분명 아까보단 좁아졌겠지만…….
전체 너비로 따지면 글쎄, 한 1, 2%라도 좁아졌으면 다행일 거다.
더 안쪽을 봉합해야 한다는 얘긴데…….
“실.”
“네.”
나는 각오를 다지며 다시 실을 받았다.
리스턴 또한 내 각오를 다져 주었다.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어쩔 수 없지 않나.”
“네, 그렇죠.”
그래,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일에 꼭 최선의 결과가 있을 수는 없다.
‘시발…… 찰스 베일리, 당신은 대체…….’
흉부외과 수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가 떠오른다.
무려 5명의 테이블 데스를 겪고 의사, 아니 인간으로서의 마지막을 걸고 한 수술에서 간신히 성공해 여론을 반전시킨 전설의 인물이다.
말이 좋아 전설이지 사실 의대에서 배울 땐 미친놈이란 수식어가 꼭 붙는다.
마지막 수술은 오전에 실패하고(환자가 죽고) 그 소문이 퍼지기 전에 다른 병원에 가서 오후에 한 거거든.
도덕적으로 문제가 좀 있는 양반이다, 이거다.
‘아냐, 그런 게 아니야.’
허나 비슷한 시대에 서서 보니, 그 사람은 그냥 한 발 더 나갈 용기가 있던 사람이었을 뿐이었던 거 같다.
뭐…….
명예욕에 미쳤으니, 과시욕에 미쳤느니 하는 비난도 있지만.
자기 손끝에서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걸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는 의사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건…….
‘그 사람에게도 신이 주신 사명이 있었던 거지.’
이번엔 그 사명이 내게로 넘어온 거뿐이다.
항상 긴가민가했다.
다시 살게 된 이 삶은 과연 무엇인가?
확실히 21세기의 삶보다는 수월하긴 한데…….
신이란 존재가 한 사람의 인간에게 이렇게 큰 선물을 대가 없이 줄 수 있는 건가?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힘에는 그만한 책임감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해묵은 히어로물에서 자주 나올 만큼 진부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자꾸 쓰이는 것은 그만한 진리도 없기 때문일 거다.
지익.
나는 의미 있는 봉합을 하기 위해 감염과 염증으로 인해 너절해진 승모판에 바늘을 찔러 넣고 반대편으로 통과시켰다.
그 순간 모래 떨어지는 소리보다 더 스산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아!”
리스턴의 비명은 그다음이었다.
안 그래도 바늘을 보다 얇고 단단하게 만들어 오던 참이었다.
이번 수술을 위해서 말 그대로 명품이라 해도 좋을 만한 바늘을 준비했다.
그러지 않으면 약해진 판막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 그랬다.
허나…….
“제기랄…….”
“이거…….”
“일단 심장 닫아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망할!”
누누이 말했지 않나.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항상 최고의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고.
나뿐만 아니라 ‘P.S.’사에 소속된 최고의 장인들까지 갈아 넣었건만, 그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도 환자의 판막은 버티지 못하고 찢어졌다.
도리어 수술하기 전보다도 훨씬 심각하게 나풀거리고 있었다.
-수술 실패.
단순한 네 글자에 불과한 단어지만, 이 단어가 갖는 의미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사람이…… 죽는다.
그것도 마취하기 전까지 우리와 떠들었던 그 사람이 죽는다.
내가 살려 주겠다고 공언했던 그 사람이 죽는다.
당연히 수술방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 누구도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
사람 죽는 거야 노상 볼 수밖에 없는 19세기 의사라 해도 그랬다.
“클램프 아웃.”
“아웃.”
하여간, 나와 리스턴은 아주 능숙하게 심장을 닫았다.
그러고는 혈관을 잡고 있던 클램프를 풀었다.
그러자 피가 왈칵 심장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이런.”
하지만 아까 환자와는 여러모로 다른 양상이었다.
심장이 안 뛴다는 건 아니었다.
제 주인의 삶을 영속시키기 위해 평생 성실히 뛰어온 이놈은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허나 피가 겉돈다.
그 어떤 장비 없이 그게 보일만큼이나 심각하다.
“깰 수…… 있나?”
리스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될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모르겠다는 의미다.
그걸 모르지 않는 리스턴은 앨프리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앨프리드는 환자의 혈압과 심박동 그리고 전반적인 움직임을 보고는 두 손을 다 폈다.
“10분……이라.”
“최선을 다해 보죠.”
“그래. 밖에 보호자 일단 들어오라고 하게.”
리스턴의 말에 존 스노가 수술방 문을 열고 나섰다.
그사이 우리는 환자의 가슴을 닫기 시작했다.
리스턴은 송곳으로 예의 그 신기를 발휘해 실이 통과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었다.
나는 그 구멍으로 명주실을 통과시켜 매듭을 지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교환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손발이 잘 맞았다.
아마 환자 상태가 조금만이라도 더 좋았다면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을 거다.
끼익.
허나 우리는 존이 보호자를 끌고 들어올 때까지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무슨 일이죠?”
보호자는 이미 뭔가 안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아까 수술했던 환자는 수술이 다 끝나고 병실로 옮겨지고 나서야 보호자를 만났으니까.
아니, 보통 다 그렇게 하지 않던가?
원래 절차가 바뀌는 것은 대개 좋지 못한 사인인 법이다.
그게 병원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수술은 실패했습니다. 윈스턴 부인.”
보호자, 그러니까 환자의 아내는 내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고여 있던 눈물이 도르르 뺨을 따라 흘렀다.
응급실이었으면 이제부터 보통 고성이 오가기 마련이다.
조금 더 격한 경우엔 주먹도 날아온다.
나도 맞아 봤다.
허나 죽음이 너무나 가까이 있는 시대라 그럴까.
아니면 환자가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럴까.
“인사를…… 인사를 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태도였다.
노부부도 아니다.
내가 알기로 윈스턴 부인은 이제 고작 19살이다.
환자는 22살.
19, 22살 부부가 이제 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사이에서 내가 아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한마디 인사라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뿐이다.
“그렇게 해 드리려고요.”
“네…… 감사합니다.”
“네, 부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보호자에게 다시 한번 다짐을 하고, 나와 리스턴은 다시 말없이 상처를 닫기 시작했다.
벌어진 가슴뼈를 닫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얄궂게도 환자는 잘 닫히는 편이었다.
그에 더해 살가죽도 잘 닫혔다.
희한하게 진짜 중요했던 심장 수술보다 이쪽이 훨씬 잘되는 느낌이랄까?
“흐…….”
아무튼, 제때 닫은 덕에 앨프리드는 늦지 않게 삽관되어 있던 관을 뺄 수 있었다.
환자는 마른 눈을 끔뻑이기 시작했다.
신음을 흘리면서였다.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흐, 흐.”
숨이 차서인지가 헷갈렸는데 이제 알았다.
“숨이 차실 겁니다.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하니까요. 이따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나는 잠시 환자를 돌아보다가 이내 윈스턴 부인에게 말했다.
환자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설마하니 나겠나?
환자가 안 좋을 때 의사가 괜히 가족들을 부르라는 게 아니다.
환자도 가족도 마지막만큼은 함께하고 싶은 법이니까.
“우선, 가서 인사하세요.”
“아…… 네…….”
윈스턴 부인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편에게로 다가갔다.
남편은 여전히 헉헉거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피가…… 제대로 돌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 길어야 5분? 아니,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늘을 넘기긴 어려울 거란 점이다.
“우리는 잠시 자리를 비켜 주죠.”
“그래, 그러지.”
나와 리스턴을 필두로 일행 모두가 구석으로 이동했다.
마취를 전담하던, 그러니까 앨프리드만 옆을 지켰다.
별 의미는 없을 거다.
앨프리드라서가 아니다.
19세기여서도 아니다.
저 지경이 된 심장을 당장 고칠 수 있는 방법은 21세기에도 없다.
‘뭐…… 에크모 돌리면서 장기 이식 기다리거나 치환술을 한다면 방법이 있긴 하겠구나.’
생각해 보니까 있다.
미친 시대다, 21세기는.
“허, 허…….”
“여보…… 고생 많았어.”
“허…….”
“당신…….”
“고…….”
“만나서.”
“마…….”
“행복했어.”
“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인사가 끝났다.
아직 윈스턴 부인은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있긴 했지만, 저런 건 대화라고 하지 않는다.
독백이라고 부를 뿐이다.
“앨프리드.”
“네, 교수님.”
내 말에 앨프리드가 환자의 눈을 감겨 주었다.
그리고 나는 청진기를 들어 환자의 가슴에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는…….”
“부인은 계속 말씀하세요. 청각은 죽기 직전까지 남아 있거든요.”
“아, 네.”
이미 듣지 못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윈스턴 부인의 눈물겨운 애정 표현이 모두 쓸데없는 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사실 오히려 방해가 된다.
가뜩이나 좋지도 않은 청진기라 잡음이 섞이면 헷갈리거든.
하지만 나는 굳이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내가 한 짓이나, 저거나…….’
대신 10분가량 더 기다린 후 사망 선고를 내렸다.
방을 나오자 리스턴이 담배를 건넸다.
언젠가 나한테 주겠다고 벼르고 있던 고급 파이프였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피워 버릇해야 되는데 말이지.”
나는 평소처럼 거절하는 대신 파이프를 받아 입에 물었다.
그러자 리스턴이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그래 봐야 폐로 밀려오는 담배 연기가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그냥 피우기로 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히듯, 통증도 다른 통증으로 잊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