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71)
검은 머리 영국 의사-471화(471/505)
471화 승모판 폐쇄 부전 [3]
첫 수술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그사이 8명을 더 수술했다.
다행히 테이블 데스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률이 팍 뛴 건 아니었다.
‘아주 높게 보면 70%.’
총 열 명을 했는데 지금까지 7명이 살아남았다.
대단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살아남은 7명 중 2명은 내가 보기에 이번 주를 넘기기 어려울 거 같다.
감염 때문이다.
‘50%라고 봐야지.’
페니실린이 없어서 그렇다.
할 수 있는 거부터 다 하고 항생제 타령해야 한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21세기 의사도 여기 와서 우리 프로토콜 보면 놀랐으면 놀랐지 비웃지는 못할 거다.
최대한 손 박박 닦고, 또 장갑도 끼고, 심지어 가운도 걸치고 거기에 모자에 마스크까지 다 착용했다.
환자 소독?
우리처럼 하는 데는 21세기에도 없다.
애초에 사람한테 써도 되는지 걱정될 정도로 독한 걸로 닦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가 생기는 건 항생제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뭐 음압을 걸 수 없다는 것도 있긴 한데…….
‘50%라…….’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다.
사람 생명을 동전 던지기로 결정한다는 것과 정확히 같은 말인데…….
예전의 나였다면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도망갔겠지만, 이젠 아니다.
숱한 죽음이 나를 둘러쌀지라도 옳은 길로 나아가는 것이 19세기로 돌아온 내 사명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렇다.
게다가 지금 수술받는 이들은 전원 수술받지 않으면 길어야 몇 개월 혹은 1년 안에 사망할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그 이상 살 수 있는, 심지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면 무조건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이번엔 뭐예요?”
물론 항생제가 있으면 더 좋지 않겠나?
지금 나온다면 시간을 무려 100년도 더 앞당기는 것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사람이 간절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게 되는 법이다.
내게 지푸라기는 화학자 아저씨다 보니 연구소에 찾아왔다.
아저씨는 ‘이 새끼 또 왔네’ 하는 얼굴이다.
하지만 뭐라 하진 못한다.
왜?
감히 그랬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 이걸세.”
게다가 이번에는 내가 알아서 온 것도 아니다.
지가 불렀다.
뭔가 새로운 물건이 나왔다고 하면서였다.
올 때부터 별반 기대도 안 하긴 했다.
빵하고는 관계없는 거라고 해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상기된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 기대가 사라지고 있다.
“이게 효과가 뭔데요?”
“약한 환각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이야.”
이 새끼는 이제…… 완전 약쟁이거든.
뭐 코카인이나 모르핀에 완전히 빠졌다, 이런 건 아니다.
의지가 대단해서는 아니고 우리가 사람을 보내서 갖다 잡아 놓고 있어서 그렇다.
보통 사람 같으면 포기했을 거다.
이 시대에서 말하는 ‘잡아 놓다’의 의미가 21세기의 ‘잡아 놓다’와는 좀 다르거든.
자유가 없다고 보면 된다.
하긴, 그런 거 진심으로 믿고 떠드는 놈들은 바게트 놈들밖에 없다.
“아니, 왜 자꾸 마약만 만들어?”
“아주 약해. 약한 환각 효과만 볼 수 있다네.”
“약한 마약이면 마약이 아닌가?”
“아니, 아니…… 근데 부작용도 있어.”
어떤 사람의 자유는 억압해도 좋다. 아니, 억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대체 무슨 망발이냐고 할 수도 있는데 이 시대는 그렇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등 교육을 받는 시대가 아니거든.
21세기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안 된다.
거긴 사람들이 말 진짜 잘 듣잖아.
여기?
여긴 바이킹의 후손이라 그런가…….
바게뜨 놈들보다야 낫긴 할 텐데…….
‘그냥 아예 가둘까?’
항생제 만들라고 했더니 환각제를 만들어 오는 것도 빡치는데 거기에 부작용이 있어?
‘아니, 그냥 죽일까……?’
국익을 넘어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냥 죽이는 게 나을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이전의 나라면 그냥 생각만 하고 말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힘이 있다.
심지어 그렇게 보낸 놈도 여럿이다 보니…….
“어어. 왜 살기를 띠고 그러나. 말을 끝까지 들어 봐.”
리스턴의 말을 빌려 보면 안광에 뭐가 돈다고 한다.
그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리, 리스턴!”
“잡았어. 일단 말이나 해 보지.”
나도 모르게 약쟁이 아저씨에게 다가가고 있었는데 그만 리스턴에게 붙잡혔다.
저주라도 걸 생각으로 손을 뻗었지만 리스턴에게 그마저도 제지당했다.
덕분에 나는 리스턴과 마찬가지로 얌전히 서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게 말일세. 이 약을 쓰면 희한하게…… 나른해진다네.”
“그거 그냥 마약이잖나.”
별로 의미는 없어 보였다.
리스턴도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약쟁이는 다급한 얼굴로 주절거렸다.
“아니, 그래서 검사를 해 봤네. 자네가 보내 준 키트가 있잖나. 그걸로.”
“뭔 키트.”
“혈압이랑 청진 같은 거!”
“아…… 그래서?”
“혈압이 낮아진다네. 엄청 낮아지는 건 아닌데…… 좀 낮아져.”
“혈압이 낮아져……? 그럼 독약인가?”
리스턴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의산데 독에 환장하는 미친놈이라서는 아니다.
사실 독도 의학의 일종이지 않나?
괜히 무협지에 독마와 의선이 지킬 앤드 하이드처럼 공존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살리기 어려운 시대에는 마찬가지로 사람을 죽이기도 어려운 법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간에 발전하다 보면 정반합으로 인해 정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그게 좀 애매한데…… 그렇게까지는 안 떨어지네.”
“뭔 소리야?”
“일단 보면 알 거야. 이봐들!”
약쟁이 아저씨가 우리한테는 하찮은 존재지만 이곳 연구소에서는 소장이지 않나.
나나 리스턴이나 딱히 기초 과학에는 이렇다 할 지식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인사권을 소장이 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언제 어디서나 인사권이 최강인 법이다.
‘그래서 자꾸 이런 약만 나오나……?’
그러고 보니 우리 잘못인가 싶어졌는데, 하여간, 말은 잘 들었다.
순식간에 나무 탁자가 우리 눈앞에 세팅되었다.
그 위에는 네모난 유리판이 놓여 있었다.
그냥 있는 게 아니고, 압정 같은 것으로 사지가 고정된 개구리도 있었다.
“뭐 하는 건가?”
“일단 봐 봐요. 이봐.”
“네.”
약쟁이의 말에 다른 직원이 개구리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지 아주 능숙하게 칼질도 하고 핀셋도 곧잘 썼다.
그렇게 우리는 개구리의 심장과 거기서 이어지는 대동맥까지 한눈에 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개구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마취……했나?”
“네? 개구리도 마취를 하나요?”
“아니, 아니야.”
그 꼴을 보고 있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어서 물었는데 괜히 물었다 싶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나 하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람끼리도 같은 사람으로 안 보는 시대잖아.
비단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혐성국이니 뭐니 하면서 모욕하지만 내가 볼 때 영국은 양반이다.
오히려 21세기 패권국이자 세계 경찰 노릇을 하고 있는 미국이야말로 야만의 극치다.
걔네는 아직도 흑인 노예가 합법이잖아.
노예를 수술할 때는 마취도 안 한다고 들었다.
아직 전신마취 개념이 전파가 안 되어서가 아니라, 그냥 흑인은 백인에 비해 통증에 둔감할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고 한다.
“자…… 이제.”
근데 내가 개구리가 아플까 봐 걱정이 된다고 하면 얘네가 뭐라고 하겠나.
저 동양인이 실은 개구리가 인간으로 둔갑한 놈이었나 할 거다.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누명을 쓰고 불타 죽은 사람들이 있다, 유럽에는.
지익.
아무튼, 그렇게 있으려니 약쟁이 아저씨가 아까 만들었다는 약제를 가루로 빻아 생리 식염수에 섞고는 개구리의 심장에 주사했다.
“잘 보게.”
“음.”
나나 리스턴이나 눈을 크게 뜨고 뭔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았다.
아무리 약쟁이라 해도 이 인간이 허튼짓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아서 그렇다.
지금까지 해낸 최고의 업적이 코카인 분리이긴 하지만…….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보면 대단한 일이긴 하다.
“어…….”
“그래, 이거야.”
해서 보고 있다 보니 혈관이 조금 늘어지는 게 보였다.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넓어졌다.
좀 긴가민가하긴 했다.
개구리 대동맥은 대동맥이라 해도 워낙에 얇았거든.
“자, 보게.”
그러자 약쟁이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개구리의 대동맥을 띡 절단했다.
단면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그냥 그렇게만 했다면 피 때문에 뭘 보긴 어려웠을 텐데…….
역시나 이런 짓 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동시에 생리 식염수를 심장에 쭉 쏴서, 피가 아닌 묽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덕분에 나나 리스턴 모두 단면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어…….”
“오.”
그리고 그 단면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미세한 차이지만 확실히, 실시간으로 넓어지고 있었다.
“이런 미친…….”
나는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마음에 안 들어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이건 미친 거다.
세기의 발견이다.
특히 심장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 왜 그러나? 어어, 왜 놔? 왜 놔!”
“아니, 이 ‘미친’은 좋은 거라.”
“무슨…… 무슨 소리를…… 어, 어. 나 칼 들었어!”
해서 나는 약쟁이를 안아 주기 위해 달렸다.
리스턴과 나는 제법 오래된 사이인 데다가, 세월을 뛰어넘는 끈끈함도 있기 때문에 목소리만 듣고도 바로 풀어 주었다.
허나 약쟁이가 뭘 알겠나.
감히 안아 주려는 나를 향해 메스를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뗑.
뒤에 있던 리스턴만 아니었으면 그럴 수 있었을 거다.
리스턴이 귀신같이 휘두른 칼에 그가 쥐고 있던 메스는 그대로 날아가 천장에 박혔다.
그리고 약쟁이는 내게 안겼다.
한때 뚱뚱보 그 자체였던 이 아저씨는 그간 저 스스로 쓴 약 때문에 홀쭉해진 지 오래였다.
그에 비해 나는 열심히 운동을 해 왔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그를 안고 돌 수 있었다.
“으아아.”
“드디어 돈값 하네, 이 아저씨가!”
연구소에 들어간 돈이 대체 얼만가.
이 시대에 돈 한 푼 못 버는 놈들에게 투자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냐고 한다면 여기 내가 있다고 하겠다.
그렇게 그냥 낭비가 되나? 했더니만 이런 약이 나왔다.
“그래서 이 약 이름이 뭐죠?”
해서 나는 한참을 그렇게 약쟁이를 데리고 돌다가 물었다.
약쟁이는 아직도 어질어질한지 비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약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질산 아밀이라 하네.”
“아하!”
“응? 아나?”
“아니, 그냥 그럴싸한 이름이라.”
“아…….”
“자네 이럴 때는 진짜 모자라 보이네.”
나는 약쟁이와 리스턴의 눈초리 세례를 받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 약…… 21세기에도 쓰이는 약이야.’
혈관 확장제다.
그것도 꽤 강력한.
그래서 협심증 치료에도 충분히 쓰일 수 있다.
문제는…….
‘아, 근데 이거 또 마약이네.’
환각 효과가 실제로 있다는 점이다.
협십증 치료나 혈압 강하는 필연적으로 오래 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 약이 환각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약쟁이 양산 쌉가능이다.
‘하지만…… 죽을 사람을 살릴 수 있어. 게다가 환각 효과가 있으니 사고 싶어질 거야. 음, 어쩐다.’
고민이다,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