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73)
검은 머리 영국 의사-473화(473/505)
473화 심장에서의 진보 [2]
“흉통?”
“네, 흉통.”
가슴에 통증이 있다가 갑자기 가거나 천천히 가는 질환은 19세기가 아니라 그 한참 전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이 그리 드문 질환이 아니니까.
물론 설탕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훨씬 적기야 했겠지만, 대항해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도 어언 수백 년이다.
유럽의 귀족이나 부호들은 꽤 잘 먹고 잘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 봐야 21세기 대한민국에 비하면 별거 아니긴 하지만…….
“흉통이야 뭐…… 무서운 병이지. 다윈한테 다녀온 것도 그 때문이었지 않나. 급사할까 봐.”
“그렇죠. 제가 그 비밀을 풀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당뇨 유병률을 비롯한 만성 질환 유병률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애초에 서양인과 유전적으로 다른 것도 있는 데다가 음식이 전반적으로 점점 달아지고 있어서 그랬다.
아마 2000년대 전이나 초반에 일본에 가 본 사람은 느꼈을 거다.
일본의 음식이 전반적으로 되게 달다고.
허나 2020년대에 가서 먹어 보면 그냥저냥 잘 모르겠는데? 싶을 수 있다.
걔네가 안 달아져서는 아니고 우리가 달아져서 그렇다.
‘전 세대보다 건강하지 못한 세대…… 그게 우리라고 했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을 거다.
물리적인 고생이야 아무래도 20, 30대 세대가 훨씬 덜할 수밖에 없으니까.
허나 의학적인 견지에서만 보면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잘 먹고 덜 움직이면 인체는 망가지게 되어 있거든.
조상님들 전부가 잘 먹고 덜 움직였다면 적응을 했겠지만 아쉽게도 100년은 너무 짧다.
‘심장…… 어마어마하지.’
그렇다 보니 젊은 심근경색이나 협심증도 팍 늘었다.
단 거 먹고, 기름진 거 먹으면서 동시에 움직임은 가전 기기나 자동차의 발전으로 인해 아웃소싱을 해 댄 결과라 할 수 있다.
해서 연구도 엄청나게 진행했다.
다소 생뚱맞은, 외상외과인 나조차 그랬다.
기저 질환에 심장 질환이 있거나 당뇨가 있는 경우엔 아무래도 외상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사실 그보다는 높은 교수님이 갑자기 이게 궁금하다고 해서 내가 갈려 나간 거긴 한데…….
‘으읏.’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대체 뭔 영화를 누리겠답시고 그 밑에서 박박 굴렀을까…….
차라리 몇 년 뒤에 들어왔으면 훨씬 나았을 거 같다.
티브이에서 갑자기 MZ네 뭐네 하면서 떠들어 재끼기 시작했잖아.
처음엔 또 언론에서 쓸데없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괜한 세대 갈등 조장한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시대의 준엄한 흐름에 교수님들조차 ‘요즘 애들은 달라’ 하면서 눈치를 보는 걸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참 묘했다.
덕분에 나도 좀 풀린 거 아니니까 좋은 거 아니냐고?
아니.
위에서는 여전히 일을 내리는데 밑에서도 일을 올려서 진짜 죽을 뻔…… 아니, 죽었네?
“말 걸어 놓고 뭐 하나?”
“아, 아아.”
“가만 보면…… 방금도 뭐 접신한 건가? 잡귀는 조심하게. 특히 객귀는 위험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요. 그냥 딴 생각한 거예요.”
“그 생각이 정말 자네 생각이라는 보장이 있나?”
“무서운 소리도 하지 말고요.”
확신한다.
이 인간 최근에 무당을 잡아 온 것이 틀림없어.
특히 객귀니 뭐니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냥저냥 한 무당도 아니고 꽤 험한 사람일 거다.
“아무튼…… 뭘 알아 냈다고?”
“흉통의 비밀이요.”
“음…… 확실히…….”
리스턴은 나와 대화를 하다말고 밖으로 향했다.
진짜 무당을 불러올 게 뻔해서 붙잡았다.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축지법을 쓰나…….
엄청 빠르다.
“어디 가요.”
“이거 놔 보게. 내가 아주 용한 사람을 알아.”
“아니, 진짜라니까요. 진짜로 흉통의 비밀을 알았다고.”
“허…… 아, 어제 그 약을 했나? 내가 이 약쟁이 새끼를…….”
아니라고 하긴 어려웠다.
아질산 아밀의 환각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내가 알아야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지 않겠나.
어차피 그 상위 약이라 할 수 있는 니트로글리세린이 있는데 왜 먹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거 뭔가 처리를 해야 할 거다.
시벌…….
진짜 예민해서 뭐만 하면 터진다.
만약 입 안에 넣고 씹고 있는데 터져 봐.
그럼 진짜로 푸만추가 되는 거다.
“아니, 아니.”
“아니, 뭐. 했지? 거짓말할 생각은 말게.”
“하긴 했는데, 그 정도로 안 세요.”
“자네는 모르핀 중독자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지.”
“아니, 아니라니까! 그리고 약은 형님이 더 많이 하죠. 대마 중독 아닙니까!”
“뭔 소리야. 대마는 담배보다도 연한 물질인데. 아편쟁이한테 중독 소리 들으니까 아주 어처구니가 없군그래.”
아편은 억울하다.
지들이 아편 팅크 먹여 놓고 뭔 소리를 하는 건가.
난 그 이후로 진짜 몇 번 입에 댄 적도 없다.
내가 의사인데, 설마 내 몸을 파괴할 짓을 하겠어?
“하여간, 들어 봐요. 가슴이 아프다가 죽은 사람들, 이거 심장이 아파서 죽은 거라니까요?”
“너무 새로운 이론을 갑자기 들이미는데…… 내가 걱정이 안 되게 생겼나.”
“아.”
“그리고 심장이 아프면 그걸 뭐 어떻게 하려고. 사혈이라도 하려고? 요새 치료사 놈들이 그 짓 하다가 사람 잡는 거 알지?”
“들었어요, 그건. 다 죽였어야 했는데…….”
“그날 놓친 게 천추의 한이야.”
도살자 해리의 제자들…….
스승도 죽었으니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았는데, 내 오산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해리라고 뭘 알고 사람을 잡았던 게 아니잖아.
어차피 얼기설기 짜인 지식 또는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상상만으로 사람 살을 째고 피를 흘리게 했던 것이 지난 천년의 역사인데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거 같다.
“언제 토끼몰이라도 해야죠. 아무튼…….”
“이제 새로운 이론을 내려면 신중히 하게. 가슴 아프다고 심장이 문제라고 하면 그놈들이 더 기승을 부릴 거야. 알지? 이 런던 바닥에만 자네나 내 제자랍시고 떠드는 놈들이 하나 가득이야.”
“하아…….”
“어쩔 수 없네. 우리의 명성이 문제지.”
리스턴의 말에 당장 약부터 팔려고 했던 생각을 잠시 접었다.
여느 때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면서 뭐라고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리스턴의 말이 딱딱 들어맞지 않나.
확실히 이제 내 말에는 무게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제멋대로 해석해서 사람 죽이는 것들이 문제지만, 어쩌겠나.
시대가 이런 것을.
‘그래…… 너무 급했어.’
심혈관을 확장시키는 약을 먹으면 흉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 명제가 21세기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은 아니지 않나.
이제야 기억이 난다.
-근데 대체 이건 왜 있는 거야?
-괜히 있는 거 아닐까?
-주님께서 괜히 만들어 둔 게 있다고……?
-하긴, 근데 이상하잖아. 왜…….
관상동맥.
그러니까 심장을 먹여 살리는 동맥이다.
21세기에는 그 어떤 의사도 이 혈관을 두고 이건 왜 있는 거냐고 하지 않는다.
뇌혈관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혈관이잖아.
하지만 지금은 이게 왜 있는지 모른다.
혈액이 뭔 일을 하는지 몰라서는 아니다.
피가 통하지 않으면 조직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대강 알기는 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어떤 미친놈들이 피는 말단에서도 만들어진다는 의견을 내기도 하지만, 적어도 주류 의학은 이제 심장이라는 펌프가 전신에 피를 돌린다는 걸 받아들인 지 오래이거든.
‘하긴, 내가 봐도 좀…… 그렇긴 해.’
근데 왜 그러냐.
관상동맥이 아니라도 심장에는 피가 들어가서 그렇다.
그렇잖아.
피가 엄청나게 들어갔다가 나오잖아.
따로 심장에 들어가는 혈관이 왜 필요하겠나.
이 때문에 사특한 진화론자들은 ‘관상동맥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혈관인데 괜히 남아 있는 거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대다수를 이루는 창조론자들은 ‘아니다, 주님께서 스페어로 남겨 두신 거다’라고 주장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틀렸다.
“얘들아.”
“네!”
그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당연히 실험이 필요하다.
검사하거나 그러지 않는 건 아직 검사 기기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어서 그렇다.
말만 그럴싸하게 하고 결국엔 그지 깽깽이 같은 짓 하는 거, 나는 좀 별로다.
그러니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때 동원했던 바이오 로봇(인간) 같은 말 말이다.
“어제오늘 가슴 아파하다가 죽은 시신 좀 찾아봐. 값은 후하게 쳐준다고 하고.”
“네, 교수님!”
해서 나는 학생들을 풀었다.
조폭들을 풀어도 시신을 들고 오기는 할 거다.
하지만 걔네한테 돈을 주고 뭐 사 오라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보통 돈은 용돈으로 갖고 뺏어 오니까.
심지어 생산할 가능성도 있다.
가슴 아파하다가 죽은 시신이, 이게 또 찾으려면 없을 수도 있거든.
-야, 내가 가슴 때려서 죽이면…… 가슴 아파하다가 죽은 거 아니야?
-오.
내가 옆에 있으면 ‘오는 무슨 오’냐 하고 뒤통수를 후리겠지만 놈들은 그냥 좋아할걸?
“교수님. 여기!”
“저도!”
하여간, 나는 그날 저녁쯤 6구의 시신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 거짓말을 친 거면 돈 받으러 갈 거라고 했지?”
“물론이죠. 교수님 이름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몇 명은 안 팔던데요?”
조폭도 조폭이지만 시민들도 문제긴 하다.
‘속은 놈이 잘못이지’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어서 그렇다.
사고방식이 우리랑은 완전히 다르다고 보면 된다.
‘설마 선진국 영국 사람들이 그럴라고요’라는 말은 집어치워라.
별 안전장치 없이 약육강식의 질서에 사람들을 던져 놓으면 다들 이렇게 되기 마련이다.
내가 봤을 때 우수한 민족은 없다.
우수한 시스템이 있을 뿐.
“잘했어. 자, 그럼 다 따라와라. 오늘 수업은 좀 색다를 거야.”
“네, 교수님!”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것처럼 학생들을 모두 데리고 해부 실습실로 향했다.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투덜대지 않았다.
가르쳐 주면 그게 고마운 시대라 그렇다.
아, 내 시간이…… 이러는 애는 없다.
시간 있어 봐야 할 게 없어서 그렇다.
가서 지가 웹소설을 볼 거야 아니면 넷X릭스를 볼 거야 너튜브를 볼 거야.
“조교 앞으로.”
“네.”
아, 그사이에 내 제자들은 조교가 됐다.
정식 의사는 아니라 단독으로 진료를 볼 수는 없지만 내 감독하에서는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병원은 나와 리스턴의 감독 아래에 있기 때문에 병원 안에서는 모든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실상 헐값에 부릴 수 있는 의사가 되었다는 말인데 딱히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든다.
마, 의사는 원래 그렇게 크는 거야.
나중에 돈 많이 벌게 해 주면 되잖아.
“자…… 심장은 해부해 봤지, 다들?”
“네!”
“가슴을 열어서 관상동맥을 찾자.”
“네? 그걸 왜…….”
내 덕에 이번에 학회 데뷔까지 한 앨프리드가 물었다.
나는 말없이 칼을 든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용해졌다.
“자, 찾자.”
“네!”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